설국열차|Snowpiercer|2013





슬픈 새로운 시작도 결국은 희망
빛이 전혀 들지 않는 꼬리칸에서 한칸씩 앞으로 나온다는 것 자체도 그렇지만
의외로 개성보다는 한 덩어리로, 그래서 하나의 생명체로 느껴지는 사람들이어서
그들의 죽음은 끝이라기보다는 나아가기 위해 팔다리를 잃어가는 과정처럼 느껴졌다.
그래서 그들은 죽었지만 인류는 멸종되지 않았고.

갇혀 있던 남궁민수가 오히려 세뇌에서 자유로왔던 것,
사회적 학습을 겪지 못한 요나가 자신보다 작은 아이를 돌보는 것,
커티스가 끝까지 자신을 잃지 않은 것은
희망적인 인간관으로 보였다.
특히 아비규환의 꼬리칸에서 평범하게 망가졌다가
구원의 기회를 놓치지 않고 희망을 넘겨받은 커티스는
왜 인간을 과거의 기록이 아닌 그 과오를 어떻게 극복했는지로 바라봐야 하는 지를
생각하게 해준다.

살아남기 위해 유일한 생존열차에 무임승차했으니 질서에 복종해야 하는가?
이 질문에 대한 각자의 답이 인류에 대한 자신의 태도와 일치해야 할 것이다.
나의 답은...
앞으로 어떻게 될 지 그 운명을 미리 알려주고 선택권을 주었더라도
검증되지 않은 신약을 선택하듯 절박한 사람들은 결국 이 기차에 올랐을 것이다.
하지만 생존을 위해 올라탄 기차에서 인간답지 못한 삶을 살게될 운명이라면
이 기차는 생존을 가장해 죽음보다 못한 삶으로의 유혹이었을 뿐이고
누구에게든 인간다운 삶은 그 질서보다 더 높은 가치가 있다...는 것.

위대한 능력자가 영원한 권력을 차지하는 것은 공정한가?
윌포드는 물론 뛰어난 개인이지만
그가 그 뛰어난 능력을 발휘하기까지 상상했던 모든 것, 목표했던 모든 것은
전부 인류에 빚을 지고 있다. 모든 문명의 진보도 그렇다.
그의 노력의 열매는 빼앗아서는 안되는 것이지만,
그 역시 인류에 빚진 만큼은 내려놓아야 할 의무가 있다.
메리토크라시라는 신자본주의 궤변의 헛점이 정리되는 느낌이다.



사실 가장 으스스했던 곳은 학교였다.
그 아이들은 모두 기차에서 태어났을 것이고, 말하자면 북한 같은 기차 안에 살며
배운대로 살 것이며, 만들어진 미래외에 다른 것은 살아낼 수 없다.
사람이니까, 아마도 예외가 생길 수 있겠지만 영화속에서는 나타나지 않았으니,
윌포드가 그속에서 자라난 충직한 아이들이 아닌 다른 후계자를 찾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시작은 그냥 평범한 헐리웃 액션영화 같았다.
이유없이 무작정 적대적인 대비로 사건을 이끌어가는.
하지만 반전 같은 이야기의 흐름이 이어졌고,
반란의 대격돌 장면은 청명한 음악이 흐르는 가운데 묵직하게 흘러갔다.
멋있다, 긴장된다-보다는 다르다는 느낌이 더 강했던 것 같다.
주거니 받거니 하는 커티스와 남궁민수, 커티스와 윌포드의 고백은
인상깊게 남을 독특한 클라이막스다.
결국 목적을 잃지 않은 커티스와 남궁민수가 새 인류의 장을 열던 마무리에서는
기뻐할수도 슬퍼할수도 없는 채로 그저 그 계속되는 삶을 목도하게 되었고.

아마도 앞 칸에 탄 사람들의 예약금으로 윌포드는 기차를 개발했을 것이지만,
그 투자자들은 결국 스스로 세뇌와 차별이 아니고서는 유지될 수 없는 독재국가에서
위대한 독재자를 칭송하는 추종자가 되고 말았다.
결국 돈은 야심가의 꿈을 실현시키고, 그에게 절대권력을 선사했으며
그 댓가로 돈의 주인들은 차별을 획득했다.
돈의 주인들이 재력을 즐기는 유일한 방식이 차별이니
클럽, 의상실, 스파 같은 생존과는 무관한 그 공간들은
꼬리칸 몇 칸 따위완 바꿀 수 없는 필수 공간이 될 수 밖에 없다.
눈으로는 다 볼 수 있으니 공존한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현실세계와 달리
굳게 닫힌 문으로 격리되어 있는 열차는 오히려 현실감있는 상징이다.

마음에 들었던 장면들.
꼬리칸 화가 승객이 아이를 잃은 두 부모에게 아이들의 초상을 그려서 건넨다.
-생존필수품은 아닌 예술에게도 자리를 찾아주려는 것 같던 꼼꼼한 노력이랄까...
요나가 성냥을 얻으러 커티스를 찾으로 왔을때
엔진칸 윌포드 앞에 우람늠름 서 있던 커티스의 모습
-단 한 컷으로도 증폭되는 이야기의 에너지!

영화를 보고 나올 때 제일 강렬하게 기억나는 배우는 틸다 스윈튼과 존 허트였다.
에드 해리스가 이름의 존재감 뿐이었던 것과 달리,
그 엄청난 분장속에서도 살아있던 표정과 눈빛!
올란도 이후로 처음보는 틸다 스윈튼이고, 기억도 잘 안나는 해리포터의 존 허트가
이런 배우들이었다니...놀랍고 즐겁다.
또 하나의 새로운 발견은 앨리슨 필.
인트리트먼트에서의 환자때 잠깐 인상깊었다가
요즘 뉴스룸에서는 완전 밥맛인 매기를 연기하고 있는데
여기서의 앨리슨 필은 정말 에너지 폭발이다.
투다이포의 니콜 키드먼을 생각나게도 하는.
이런 역을 만나는 것은 배우에게도 행운이라는 생각이 든다.

두 시간 동안 흥미진진과 이런 저런 생각을 동시에 하게 해주는 설국열차-정말 반갑다.
이 모든 이야기가 질주하는 기차-라는,
누군가는 제목이 너무 노골적이라고까지 하는 섹슈얼리티에서 시작했다니,
봉준호 감독이야말로 급이 다른 진정한 변태^^

딱 하나, 설국열차에 대해 맘에 들지 않는 건
어마어마한 크레딧이 올라갈 정도의 CJ 영화라는 것.
윌포드가 전시장에 내놓은 윌포드의 세계에
주머니 탈탈 털어 구경가는 꼬리칸 사람이 된 것 같은 기분이다.
게다가 나는 이 영화를 CGV에서 봤으니 더더욱 완벽--;;
좀 서글프다.
파는 물건처럼 대체가능한 것들을 안사는 건 어렵지 않은데 말야...

 탈까, 말까?

사냥꾼의 밤|The Night of the Hunter|1955


 저 표정으로 못하는 일이 없는 대단한 사냥꾼 로버트 미첨
사냥꾼은 잠들지 않는다

사냥꾼에 대처하는 성인의 자세

대체 이 영화는 정체가 뭘까 싶었다.
아이들이 시체를 발견하는 것에서 시작해 스릴러인가 싶었지만,
뻔뻔하고도 쪼잔해보이는 해리와
감옥에서 혹시라도 잠결에 비밀을 누설할까봐 양말을 돌돌말아 입에 무는 벤하퍼가 나올땐
범죄코미디인 줄 알았다.
그러다가 해리가 사람을 죽이는 장면에서부터는, 감자기 무서워진다.
도망치는 아이들은 자연스럽도록 어설퍼서 가슴이 조마조마해지고,
해리가 접근하는 처자들은 너무 순진해서 조마조마하다.
마지막에 등장하는 아이들의 든든한 보호자 레이첼에 이르러서는 가족드라마 같은 느낌.
무덤덤한 미망인에서 광신도를 거쳐 희생자가 된 윌라 하퍼의 흥미로운 인생급변,
어느 어른들보다도 목적지향적이며 어른스러운 존과 귀여운 펄.
윌라 하퍼의 머리칼이 나부끼던 호수의 강렬한 이미지들도 인상깊다.
뮤지컬의 느낌이 들던 노래장면 중 해리의 테마곡인 leaning으로 시작하는 찬송가는
상황에 따라 어이가 없어서 웃기기도 하고 무섭기도 하다.
마지막에 각각 총과 칼을 들고 대치하면서
성경의 사랑을 실천하는 레이첼과
성경을 이용해먹는 해리가 이 노래를 동시에 부르는 장면의 대비는 묘하다.

귀여운 펄^^

영화 한 편에 없는 게 없는, 말 그대로 종합선물세트인데
놀라운 건 재.미.있.다.는 것!
영화가 2시간 40분 짜리인 것도 영화를 다보고 나서야 알았다.
다음의 옛날영화를 흝다가 듣도보도 못한 영화라 호기심에 골랐는데
의외의 대박.

그런데, 영화정보란에는 예상 밖의 슬픈 정보가 들어있다.

배우 찰스 로튼의 유일한 연출작으로 마치 악몽을 꾸는 듯한 괴이한 환상적 이미지를 뛰어나게 빚어냈다. 개봉 당시에는 엄청난 흥행 실패와 혹평을 받았지만 프랑스 누벨바그 평론가들에 의해 재발견된, 이른바 저주받은 걸작. 이는 찰스 로튼에게 배우로서뿐만 아니라 감독으로서도 엄청난 파멸을 안겨주었고 1962년 정신병으로 처참하게 죽는 날까지 광기에 휩싸이게 만든다. (시네마테크부산)

누군가의 영혼과 인생이 들어간 명작이었네...

싸이코|Psycho|1960

 꺄~~~~악~~~!
꺄~~~~악~~~!

그렇게 피해다녔음에도 몇 번은 볼 수 밖에 없었을 정도로 유명한 샤워장면.
그걸 알고 있어서 히치콕의 서스펜스 정의에 딱 맞는 상황이 벌어졌다.
언제 샤워장면이 나오나 조마조마하다가
주인공이 걸어들어가는 순간의 공포.
그 조마조마함은 영화는 보는 내내 이어진다.
살인장면이 영화 '괴물'속의 헤드폰 여자처럼 느닷없이 등장하는 바람에
영화를 보는내내 '일어날 수 없는 일은 없다'는 생각으로 계속 불안하게 영화를 보게 된다.
처음부터 범인을 보여주는 것 같았던 것도 공포감을 더한다.
이것 역시 소설 원작이라는데
히치콕은 참 잘도 고른다, 이런 소설들...

며칠 전 MIT 신경학 분야의 한 일본출신이 교수가 기억을 조작해서
하지 않은 것을 한 것으로 기억하도록 조작하는 실험에 성공했다는 기사를 읽었다.
이 연구가 다중인격을 설명할 수도 있지 않을까?
대단한 발견이긴 해도 대체 이런 무서운 실험을 왜 할까 싶은데
일단 연구자가 밝힌 연구 목적은 기억을 상실한 사람들을 도울 수 있다는 것이고,
쥐실험까지 끝냈지만 어쨌거나 윤리문제로 인간에게는 적용하지 않을 예정이라고 한다.
전성기의 히치콕이 돌아온다면 넘쳐나는 소재들로 창작욕을 불태웠을 것 같은 느낌.

아리조나의 피닉스 평화로운 전경에서 시작해
경찰서의 작은 방에 앉은 주인공의 클로즈업으로 끝난 대비.
드디어 분열을 이기고 통합된 하나의 인격, 그러나 베이츠 부인의 부활이 아니라
노먼이 상상한 베이츠 부인의 완성이다.
시작부분 들고 찍는 카메라처럼 시내를 불안하게 줌인하던 카메라가 특이했다.
명불허전이라지.
다들 이래서 그랬나보다 싶다.

***무서울 것 같아서 일부러 오전에 이 영화를 보기 시작했는데
헉...머리를 쪼는 것 같은 어마어마한 매미 소리.
대충 안다, 보통 가까워서는 이런 소리가 안난다는 것을.
혹시나 봤다가 에어컨 실외기 호스에 앉아 있는 매미 발견.
처음엔 실외기 내리치는 정도로 겁만 좀 줘도 조용히 하더니
나중엔 세탁볼을 던져도 무시.
결국 청소막대기로 밀어냈지만,
그 거대한 매미와 엄청 큰 매미소리가 어우러져
아침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공포 분위기였다.
이제 사이코를 생각하면 매미의 공포가 같이 생각날 듯....

현기증|Vertigo|1958


아기자기하고 다양한 기법을 선사하는 히치콕 테크놀로지의 향연.
안그래도 사이코를 보면서 클로즈업 된 눈이 참 무섭다-했는데 
현기증의 도입부에서는 관객들에게도 어지럼증의 참맛을 보여주겠다는듯
더 길게 등장한다. 
이창에 이어 아픈 동안 대단한 사건을 겪게되는 제임스 스튜어트. 
적당히 거리를 두고 싶어하면서도 한 번 빠져들면 멈추지 못하는 성격이 비슷하다. 
존의 현기증 증세는 내려다보는 풍경이 갑자기 깊어지는 것으로 표현이 되는데
큰 화면에서는 그 아찔함이 그대로 전해졌겠지?
엔딩은 좀 황당했고, 히치콕 욕먹기 좋게 
절대악은 비껴가고 쥬디에게만 가혹한 권선징악으로 끝났다.

화면속 움직임이 줄 수 있는 다양한 재미.
하지만, 역시나...좀 길게 느껴졌다.
흥미진진한 이 스토리는 프랑스소설이 원작이라고 조그맣게 나온다. 
이런 범죄를 계획하고 실현하는 인간에 대한 
호기심이 불끈 솟는다. 

감시자들|Cold Eyes|2013


두 시간이 후딱 지나갔다.
아기자기한 범죄물이다 생각하고 있었는데 느닷없는 그림자씨의 만년필 공격--;;
무섭다.

기억에 남는 건
아저씨에서 원빈을 따라 뛰어내리던 카메라가
여기서는 설경구 뒤통수에 붙어서 뛰어내리는데
원빈같은 스타일리쉬한 맛은 없어도
송골매 선생의 성성한 흰머리가 좀 짠했던 장면,
무서운 고수이면서 최근 서도연 검사의 친아버지로 활약 중이신 김병옥의 포스,
그림자 정우성의 뒷마무리 공격,
그리고 이쁜 한효주-그냥도 이쁠텐데 담부터 클로즈업 샷에서는 써클렌즈 좀 벗길...

그리고 궁금한 건.
6명이 몇 주를 걸려도 실패했던 작전을 재개하면서
한효주는 무슨 배짱으로 그림자를 맨몸으로 따라갔으며,
설경구 말고는 연락할데가 아무도 없었나?
대로 변 제한된 시간일때도 다람쥐를 한방에 보낸 전문가 그림자가
훨씬 평화로운(?)작업장이었던 주차장에서는 왜 실패했을까.

영화가 어딘가 뒷북느낌이 나는 건 하필 요즘의 사건들 때문.
우리나라 국정원의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면
영화와 닮은 스노든의 폭로는 차라리 클래식.
감청과 감시를 국가권력으로부터 인권보호차원에서 비판하는 그들이
애국도, 충성도 아닌 허수아비들의 공작을 지켜보는 입장에서는
부럽기까지 하니까.
감사를 피하겠다고, 부도를 피하겠다고 범죄를 의뢰하는 악이라면
그들도 그 동네에서는 약자임에 분명하다.
음모이론은 루저들의 단골안주 같아서 정말 싫어했는데...
영화는 재미있었지만
여러모로 씁쓸한 풍경들이 겹치던
기이한 두 시간.

가스등|Gaslight|1944



영화사상 최악의 남편이랄 수 있을 그레고리를 탄생시킨 스릴러.
목숨을 위협하지도 않고 어떤 폭력도 등장하지 않지만
이런 상황이야 말로 오싹하다.
10년이 지나도 사라지지 않는 탐욕도 으스스할 뿐더러
인생을 올인한 프로젝트를 하나 하나 성사시키는 용의주도함,
게다가 목표물인 폴라를 서서히 고립시켜
스스로를 의심하게까지 만드는 잔혹함까지.
일말의 갈등도 없이 눈 하나 까딱 않고 실현시키는 이 남자-대단하다.
자기가 미쳐가고 있다는 것을 맨정신으로 믿게 되는 처참함을 연기한 잉그리드 버그만도 근사했다.
잉그리드 버그만 주연의 1944년 영화 가스등.
희곡이 원작이라고 한다.
큰 사건 없이 올가미처럼 폴라를 죄여오는 상황들과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집중하면서
평범한 대사들이 긴장감을 불러오는 특이한 경험.
지금은 덩치밖에 안남은 것 같은 헐리웃이지만
그 뿌리가 꽤 단단함을 느꼈다.

사진으로는
그레이스 켈리네 동네의 고전 미인인 줄 알았는데
잉그리드 버그만은 느낌도 색깔도
그보다는 훨씬 다채로운 느낌.

미스터 고|Mr. Go|2013

 그래도 미스터고의 홈런은 통쾌

처음에 고릴라가 프로야구를 한다는 얘기를 들었을 때 헐..했다가,
그게 80년대 만화원작, 그것도 무려 허영만 원작이라는 얘기에 두 배로 헐..하면서도
좀 기대가 됐고,
미리 올라온 메이킹들을 보면서 고릴라 '털'에는 정말 기대를 많이했다.
결론? 정말로 '털'은 멋지더군요!
(3D로 봤으면 더 멋졌을지도?)
또 다른 하이라이트는 성충수와 미스터고의 술자리-미스터 고, 풍란 맛 어땠어? ㅋㅋ
마지막에 고릴라의 힘 때문에 생긴 어이없는 상황도 재미있었고.
(근데 성충수는 그 공을 맞고 어떻게 살아남았는지....)
고릴라 선수 축출을 위한 명분 때문이었겠지만 마지막의 난투극은 너무 길어서 무서웠다.
마지막의 성충수는 레이팅이라도 바래다 주러 갔으면 모를까, 왜 찾아 간 거지? 갈데 없어서?

캐릭터 설명만으로는 성충수가 그대로 재현되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의외로 성동일은 코미디 보단 정극의 연기가 더 깊은 감동을 주는 배우인듯 하다.
보이지 않는 상대와의 연기라는 거 내가 상상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매력적인 서교의 어눌한 한국어는 고생한 보람이 별로 없을 거 같고.

하지만 내가 제일 분개(^^)한 건,
마운틴 고릴라는 로우랜드 고릴라보다 난폭하다고 누가 그래!
마운틴 고릴라는 킹콩미니어처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지만,
평상시에는 매우 활발하고 사교적인 동물이다.
아무리 선악구도가 중요하다 해도 내가 좋아하는 마운틴 고릴라를 음해하다니, 옳지 않아!

http://www.igorilla.org/assets/images/who/mglowsilver2.jpg
로우랜드 VS 마운틴 고릴라
제일 쉬운 구별은 머리털-보이는가 저 선량한 마운틴 고릴라의 눈빛?
레이팅은 좀 아픈 애였을 뿐...


하지만, 어쨌든 볼만한 영화였다.
용가리류의 영화들에서 받아온 오랜 불신의  상처를 씻어주는 느낌? ㅎㅎ
영화 속 베스트는 역시 미스터 고.
야구에 서커스 까지 미스터고가 나오는 장면은 다 좋았다, 앗. 마지막 난투극 빼고.
그다음은 오다기리 죠...!
망가지면서 쾌감을 느끼고 그 쾌감을 관객에게 바로 전해주는 
변태 미남대인의 변치 않는 매력-하하하....
중국어할때 서교의 카랑카랑함도 맘에 든다.

내가 좋아하는 감독은 아닌데도 다 봤네, 김용화 감독의 영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은 얘기를 또 볼만하게 만드는 감독이라고 생각하는데
국가대표에서와 같은 과감한 도전.
멋지다고 본다.
하지만 알 수 없는 건 사람의 마음(?).
이래저래 평들이야 나오고 있는 것 같은데
내 보기엔 오브라더스나, 미녀는 괴로워나 국가대표나 미스터고나 다 비슷하구먼,
그만큼 열광해주지 않을 모양이다. W.H.Y ?
난, 이번이 더 굉장한 도전이고 그건 참 멋지다고 생각하는데.
중국에서라도 대박나서 김용화가 모험을 계속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예전에 봉준호의 플란더스의 개가 한국인-개의 동물학대 이미지로 고전했던 것을 생각하면
구단주 김강우의 스토리에, 미스터의 의지까지 여러 포석을 깔았음에도 불구하고
해외에서 동물학대 논란에 욕먹기는 피해갈 수 없겠지만....

트위터 유람



다른 건 몰라도 나쁜 영화와 싸우기를 하는 사람은 정성일 밖에 없을 것 같고
후진 영화를 증명할 수 있다는 납량특집 버전ㅋ
출사표같은 느낌인데....왠지 귀여워^^

 

어쩐지 김기덕을 조금 이해하게 되는
(그래도 영화는--;;) 


이건 리히테르에 대한 거니까.

뭔가를 많이 사랑해본 사람들의 고백이 끝없이 이어질 것 같은 정성일의 트위터.
트위터 같은 건 안 좋아할거라는 어렴풋한 편견이 있었는데...
정성일을 리트윗하려고 트위터를 시작할지도 모르겠네...^^

내가 사는 이유|Reason I Live For|1997

 한류 이전의 이영애는  욕심만큼 도전하는 참 괜찮은 배우였는데...
 방송속의 윤여정과 많이 닮은 것 같은 노희경 표 윤여정의 탄생이랄까...
 요즘은 이때의 강성연같은 신인배우는 없다...너무 귀여웠던.
김호진은 얼굴로 먹고 들어감^^
 강성연과 쌍벽을 이룬 신인계의 거장, 김현주-일명 '몰라양'
숙자할매 자매와 진구 어무니: 김영옥의 욕쟁이 할머니 데뷔도 여기가 처음인 듯~
(유튜브 MBCclassic 채널로 볼 수 있다, 파일명은 영문명 Reason I Live For) 

내가 사는 이유를 좋아했던 건 순전히 숙자-진일 커플 때문이었는데 
그 기억을 되살려 다시 보자니
아니 이런 적이 있었나 싶은 이영애의 발군의 연기가 눈에 들어왔다.
예쁜 것 따위는 개의치 않겠다는 대미녀의 과감한 자세랄까...ㅋ

게다가 두번째 대박은 진구 아부지, 고 김무생이다. 
항상 무게 잡고 좀 있어 보이는 진지한 역할이 주였는데
진일아부지는 허세 빼면 시체에 뻔뻔하기로 치자면 
무엇을 상상하든 그 이상-의 경지다. 
그런데 어머, 세상에 저런 인간이...싶은데도
증오하게 되지는 않는 인물.

그러나 여전히 내마음을 사로잡는 건
숙자-진일 커플이다.
다들 거칠게 인생을 헤쳐나가는 사람들 속에서
아무 생각 없는 진일이와 정신 나간 숙자의 순도 높은 사랑은
유일한 꽃밭 같은 존재.
숙자 아니면 싫다는 지조 있는 진일이^^
다시봐도 이별 장면은 슬프다...

지금도 노희경은 여전히 인기최고의 드라마작가지만
난 여전히 초기작들이 끌린다.
감성으로 끝장을 보겠다는 처절함 까지 느껴지는 거짓말,
아무 생각 없던 사람까지 대성통곡하게 만들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이별,
그리고 내가 사는 이유와
데뷔작이었던 세리언니와 수지도 좋아한다. 
노희경은 감성드라마도 대단하지만
특히 내가 사는 이유같은 사람풍경이 담긴 드라마가 좋은데
더 이상은 이런 드라마를 보여주지 않는 게 좀 아쉽다.
언젠가는 가능할까...?


드디어 진구 어무니, 진구 아부지에게 복수!
뒤이어
05:19  진일아부지와 욕할매의 설전
11:13  진일이와 숙자의 이별............

서울의 달|The Moon of Seoul|1994

이만한 크기의 사진이 남아있다니 놀랍네~ 
원제는 서울의 달빛이었다는데 결말을 생각하면
쓸쓸한 서울의 달이 더 어울리는 것도 같고...

상큼한 다음버전^^


"사랑해...영숙아...난... 지쳤어..." 라고 했지만 
홍식은 이 말을 하고서도 살겠다는 몸부림을 쳤었다.
누워 바라보던 서울의 달을 마지막 세상 풍경으로
홍식은 쓰레기통 옆에서, 서울의 외면 속에서 죽었다.

생각해보면 참 엄격한 권선징악.
쓰레기 같은 놈이라쳐도 
마지막회를 바라보는 사람들의 눈물만큼은 사랑받던 홍식이라 기회를 얻을 수도 있었겠지만
사랑장사를 하던 제비가, 결국 법이 아니라 사랑의 심판으로 죽는 건 
피할 수 없는 비극이지 싶다. 
그 덕에, 1회와 달리 성실하게 살아가기로 한 다른 주인공들의 행복한 인생반전은 
더 빛나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뺀질거리는 직업의 대명사가 제비인데 홍식은 항상 '노력'을 강조한다.
말로만이 아니라 춤이면 춤, 골프면 골프 밤낮 없이 열심이고 본격적인 '낚시'에 들어가서도 정보전에 열심이다.
낯선 곳에서, 심한 경쟁틈에서 느끼는 좌절과 고립은 어쩌면 통과의례같은 것일수도 있는데
홍식은 어디를 다쳤길래 서울에 대한 복수심을 그렇게나 불태우게 된걸까.
악역이 주인공인 것도 처음 같지만, 처음으로 연민을 불러일으키는 악역이었던 걸로 기억한다. 
누구나 마음 속에 제비한마리가 있다는 말이 그렇게나 와닿았다는데 그 제비는 어떤 제비일까...



홍식의 마지막, 막동이의 전조도 보이는 한석규 갤러리.



춘섭의 발견: 영숙의 눈으로 보던 진상찌질이가
호순의 눈으로는 이렇게도 보일 수가^^
  



 

잊고 있던 개성있는 음악의 고향이었네...
 

가끔 옛날TV 케이블이 따로 생겼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들게하는 프로그램들이 좀 있다.
DVD같은 게 나오기도 전, 한류가 없던 시절의 인상깊은 드라마들이 그렇다.
아마도 다시보고 싶은 드라마 고르기를 하면 꽤나 상위에 오를 것 같은 서울의 달은
벌써 몇년째 보고 싶은 드라마였는데 세상에나..
혹시나 검색해본 유튜브에서 mbcclassic이라는채널로 전 편이 다 올라와 있는 것이다!
1회는 없어서 못보고 2회부터 계속 보고 있는데
거의 20년 전 드라마이지만 여전히 재미있다.
요즘과 다른 건, 아무리 잠깐 나오는 조연이어도 발연기는 절대 없다는 것.
이런 건 신기하다.
그때에 비하면 요즘 연예계야 말로 인력이 넘쳐나고
자본도 훨씬 많이 받쳐주는데 왜 품질은 그만 못한 건지...

홍식-춘섭-영숙의 열연은 말할 것도 없고
요즘은 국민엄마라고 불리는 김해숙의 좀 어린 엄마 시절이 나오는데
목소리가 좀 높을 뿐 이때부터 명연기다.
좀 재미있는 건 유일하게 가끔 어색한 나문희.
지금의 그 무게감에 비하자면 이때는 신인 중년연기자 같은 느낌? ㅋㅋ
까맣게 잊고 있었는데 이대근도 나오고...
윤미라가 연기파 배우라는 생각 안해봤는데
나이와 상관없이 해맑은 백치미에, 있는 그대로 표현하고 마는 이런 역할은
윤미라 아니면 아무도 할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무표정밖에 생각안나던 백윤식은 엉뚱해 보이지만 휴머니즘 넘치는 인물이었고,
김용건의 애잔한 러브스토리도 처연하고,
셋방살이 부부와 아들의 이야기도 잔잔하다.
이제 후반부에 접어들면 홍식과 결혼하는 이미지도 나오고
깜찍한 호순이 김원희도 등장할 예정이라 기대된다.

요즘 드라마속의 가난은 두 가지 뿐이다.
인물의 욕망을 설명하기 위한 배경, 혹은 분노의 원인.
그러다보니 가난이 뭐다 보다는 가난은 이래서 나쁘다가 도식화되어버렸다.
가난이 아름답다고 미화할 것 까지야 없지만
얼어버린 수도에 좌절했다가
따뜻한 물을 부으며 조금씩 희망을 갖고
결국이 물이 나올때 기뻐하는 모습 같은,
좋다, 나쁘다를 떠나
그냥 바라볼 수 있는 가난의 다양한 일상,
가난에도 여러가지 얼굴이 있다는 사실이
아예 지금은 존재하지도 않는 것처럼
잊혀지고 있는 것 같다.

그 시절의 사람들이 꿈꾸던 미래는 외관상으로는 오래 전에 왔다.
상국이네 식구들은 열심히 돈 벌어서 아파트로 이사했을까?
단지 집없는 설움이 싫어 번듯한 아파트를 원했던 욕망의 끝에서
혹시 지금은 아무 목표도 없이 돈만 긁어모으며 살고 있진 않을까?
아니면 번번이 대한민국의 풍파를 정면으로 얻어맞아
지금은 아예 희망도 없이 분노로 세월을 보내고 있을까?
그 결과들은 20년이 지나 그 시절의 미래인 지금도 확실해지지 않았다.
하지만 앞으로의 20년 후가 그보다 확실하지도 않다는 것이 더 우울한 일이다.
----상국이네는 마지막회에서 드디어 아파트로 이사간다.
공사장 일용직과 커피집 아르바이트 맞벌이로 아파트는 살 수 있었던 건
아마도 이때가 마지막이 아니었을까.

서민드라마이다 보니 서울의 달에는 물가를 짐작할 만한 내용들이 많아서 흥미를 끈다.
재벌들도 이 드라마 한 편이면 버스요금 70원 같은 소리는 할 일이 없던 시절~
얼마나 달라졌을까? 서울의 달로 보는 물가!

마을버스 200원
김밥 1000원
고졸 8년차 월급 38만원
대기업 4년차 대리 100만원
원두커피 1300원
파출부 전일 2만원
커피집 아르바이트 시간당 2000원
건설일용직 3만원, 숙련 5만원, 전문가 7만원, 최고 10만원(칠과 미장, 보일러까지 담당)
초코파이 90원(송가네 수퍼 100원)
스포츠댄스 한달 20만원
고깃집 회식 회비 2만원
호떡 200원(1개)

가장 충격적이었던 건 김밥...지금 1000원짜리 김밥은 대체 정체가 뭐냐 싶고,
고깃집 회식회비도 비슷한 것 같아서
식당주인들의 남는 것 없다는 얘기가 새빨간 거짓말은 아닐 것 같은 생각도 든다.
지금은 좀 아니지만 한때 교통요금 싸기로 유명했던 우리나라에서
마을버스비가 4.5배 비싸질 동안 임금상승 정도를 생각해보면
가격이 붙은 모든 것들 중 노동이 꼴찌구나 싶다.


구글에서 찾은 옛날 기사
원본 링크: http://cue.imbc.com/Common/Publish.aspx?Idx=5677


인터뷰ㅣ「서울의 달」의 한석규-이미지 ‘양면화’에 성공한 행운아
[MBC 가이드][인물] 1994년 10월호

91년 제20기 MBC 탤런트로 데뷔한 이래 평범하면서도 지적인 역할을 주로 맡아온 한석규는 10월 16일 막을 내린 주말 연속극 「서울의 달」에서 야누스적인 인물인 홍식을 잘 소화해내며 이미지 변신에 성공했다.

한석규-이미지 ‘양면화’에 성공한 행운아

 “홍식은 제겐 특별한 역할이었죠. 아마 평생 잊혀지지 않는 배역일 겁니다.”
가진 것이라고는 몸밖에 없는 두 농촌 청년의 서울 생활을 그린 주말 연속극 “서울의 달”이 지난 10월 16일 막을 내렸다. 탄탄한 구성과 잔잔한 재미 등 방송 초부터 최종회까지 수많은 화제를 뿌린 이 드라마는 홍식 역을 맡았던 한석규 개인에게도 의미가 깊은 작품이라 할 수 있다.

“연기자라면 누구나 해보고 싶은 주말 연속극에다 처음으로 주인공을 맡았기 때문에 그 기쁨이야 말로 다 할 수 없었죠. 그런데 그 기쁨의 시간이 지나면서 부담으로 바뀌더라고요. 다행이 홍식이란 인물의 성격을 나름대로 파악해가면서 자신감을 가졌고, 연기자가 한 역할에 몰입한다는 것이 무엇인가 어렴풋이나마 느끼게 됐죠.”

「서울의 달」에서 한석규가 맡았던 홍식은 이를 테면 악역이다. 성공하기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사랑까지도 의미 없다고 생각한다. 더구나 그의 직업은 사회의 암적인 존재인 ‘제비’. 
그러나 한석규는 이러한 악역을 악역으로서만 끝내지 않았다. 보이지 않는 곳에 숨겨진 홍식의 가장 연약한 속살을 드러내면서 그를 나쁜 사람으로 매도하고 미워할 수만은 없게 만들었다.

“저는 홍식을 불쌍한 사람이지만 나쁜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한편으론 멋있는 구석도 있습니다. 그는 누구보다도 솔직하고 뒤끝이 없는 남자죠. 사람은 천차만별이지만 또 어떤 면에서 보면 모두 똑같습니다. 
 내 성격 중 홍식과 가까운 면들을 최대한 부각시키고, 홍식과 같이 음지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이 왜 그렇게 됐을까 이해하려고 노력하며 홍식을 닮아가려 애썼습니다. 
하지만 아쉬움도 많이 남습니다. 인간의 약점, 본능, 슬픔 등을 더 치열하고 적나라하게 표현할 수 있었을텐데 왜 그만큼밖에 하지 못했을까 하고요.”

사실 한석규는 단정한 용모에 늘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을 짓고 있는 ‘이웃집 오빠’ 같은 이미지를 갖고 있다. 스스로도 “너무 평범하게 생겨서” 연기자로선 적합하지 않다고 생각해 한때 자신의 직업으로 성우를 택했을 정도로 그의 개성은 조금은 약한 듯하다. 하지만 한석규는 이번의 「서울의 달」을 통해 그동안 가지고 있던 평범하고 부드러운 청년의 이미지를 탈피했다.

“사실 처음에는 홍식이 이전의 배역들과는 너무 달라 저뿐만 아니라 많은 분들이 걱정스러워했어요. 그러나 드라마가 진행되면서 눈이 날카롭다는 말을 많이 들었죠. 아마도 제 눈의 쌍꺼풀이 아니어서 더 그렇게 비치나 봐요. 연기자가 양면적인 이미지를 가지고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 생각해요. 그래서 이런 말들을 들을 때 기분이 좋았고 힘이 나기도 했습니다.”

그는 자신이 지금 어느 정도 인정을 받고 있다면 그것은 데뷔 시절부터 이어지는 운 때문이라고 말한다. 91년 데뷔하던 해에 MBC 탤런트 20기 동기생 중에서는 처음으로 한창 인기리에 방송되고 있던 청춘 드라마 「우리들의 천국」에서 고정 배역을 맡았고, 주말 연속극 「아들과 딸」에서는 귀남 역인 최수종의 대학 친구로 잠시 등장할 예정이었던 그가 후남 역의 김희애의 상대역으로 내정됐던 문성근 대신 그 역을 차지하게 된 것. 
특히 가난하고 마음의 상처를 지닌 후남을 따뜻하게 감싸주는 석호는 부와 명예, 인격을 고루 갖춘 인물이었는데, 이 역으로 인해 한석규는 성실하고 밝은 남자라는 이미지를 얻어 청춘 스타로서 발돋움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었다. 10월 중순까지 그는 「한 지붕 세 가족」「서울의 달」「도전」의 세 드라마에 출연했다. 
특히 9월 23일에는 녹화 일정이 겹쳐 하루에 세 드라마 녹화를 동시에 해야 했다고 한다.

“우선 부끄러운 마음이에요. 아직 부족한 점이 많은데 한 가지도 잘 하지 못하면서 너무 여기저기에 얼굴을 내비치는 것 같아서요. 데뷔 초창기만 해도 겹치기 출연은 하지 않겠다는 생각을 무슨 고집처럼 갖고 있었는데, 드라마라는 것이 여러 사람이 더불어 함께 만드는 작업이기 때문에 나만의 생각을 고집할 수 없는 것 같아요. 
충분히 고민하지 못하고 드라마에 임할 대는 무척 안타까웠지만 앞으로 이런 과정들이 큰 도움이 되리라 믿습니다.”

그가 이렇게 바빠진 것은 이승렬 프로듀서가 연출하고 있는 미니시리즈 「도전」에 갑자기 캐스팅됐기 때문이다. 「파일럿」에서 이승렬 프로듀서와 함께 일한 적이 있는 그는 평소 그의 완벽한 연출 스타일을 존경해온터라 「도전」을 관심있게 지켜보았다고 한다. 그래서 출연 제의가 들어왔을 때 드라마가 이미 진행중인 데다가 일정 또한 여의치 않았지만, 자신이 할 수 있는 역할이 있다면 최선을 다할 생각이었다고.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의 중간에서 화해의 매개체로 나서는 알렉스 김이 한석규가 맡은 역할. 한국계 영국인으로 여섯 살 때 영국 가정에 입양 됐지만, 아픔을 극복하고 젊은 나이에 박사까지 된 인물이다. 알렉스 김은 「서울의 달」이전의 배역들과 크게 다르지 않아서 편한 점도 있지만 이전과는 무언가 다른 모습을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오히려 부담은 더 크다고 한다.

“밝고 쾌활하고 사려깊은 유러피언의 분위기를 내기 위해 노력하고 있어요. 인물 성격에서 큰 변화를 주기는 어렵고 해서 의상에 신경을 많이 쓰고 있어요. 아무래도 겉으로 드러나는 외양의 이미지를 많이 바꾸어주니까요. 이미지 변신이란 하나의 어려운 숙제죠. 이건 시청자를 위한 것보다는 연기자 자신에 대한 도전이라 할 수 있죠. 
어느 선배가 ‘연기자는 끊임없이 자기를 학대하고 이것을 즐기는 사람’ 이라고 말한적이 있는데, 참으로 공감이 가는 말이었어요.”

한석규는 많은 장점을 가지고 있는 연기자이다. 2년여의 성우 경력이 말해주듯 중저음의 매력적인 목소리를 갖고 있고, 노래 실력은 대학시절 “MBC 강변 가요제”에 나가 입상한 적이 있는 ‘수준’이다. 
요즘은 장르의 구별없이 여러가지 일을 동시에 하는 연예인도 많지만, 한석규는 이러한 것들이 자신이 맡은 역을 완벽하게 하는데 도움이 되기를 바랄 뿐 아직은 연기만 열심히 하고 싶다고 한다.
10월 말에 미니시리즈 “도전”이 끝나면 한석규는 당분간 드라마에서 모습을 감춘다. 광복 50주년 특집 드라마 “전쟁과 사랑”의 준비를 위해 충전의 시간을 가질 것이기 때문이다.

글 이미희 홍보국 출판부

세 부인에게 보낸 편지|A Letter To Three Wives|1949

제목만 봤을 땐 부인 셋인 남자가 쓴 편진 줄 알았는데...
한 여자가 세 아낙들에게 보낸 편지^^

이브의 모든 것에 반해서 고른 두번째 조셉 L. 맨키비츠의 영화였는데
역시나 여자들이 주인공이지만
이번엔 애정사에 대한 섬세한 얘기들이 펼쳐진다.
어느 날 아침, 이 세 아낙들은 편지를 한통 받는데 
거기에는 '나는 오늘 니들 남편 중 하나와 도망친다'고 씌어있다.
네 여자와 세남자는
어려서부터 맺어진 부부 한쌍인 잘 나가는 방송작가 리타와 교사 브래드, 
이 부부의 동네 절친인 조지와 자신감 없는 그의 아내 데보라,
역시 동네 절친이면서 부자남편 포터와 결혼한 로라메이,
동네 친구 중 하나면서 모든 남자들에게서 후한 평을 받는 미지의 여인 에디.
그리고 그 편지는 에디가 리타와 데보라와 로라메이에게 남긴 것이었다.

이미 집을 떠난 상태로 예정된 봉사활동을 위해 배를 타기 직전 편지를 받은 세 여자는 
도망간 남자가 자신의 남편일지 모른다는 불안감에 
각자 그날 아침 남편들의 수상쩍은 행실부터 시작해서
한마디 말도 없이 떠나간 이유가 뭘지를 거슬러 떠올리게 된다.

일단 판을 벌여놓고
한 쌍 한 쌍 들여다보는 방식이 꽤 흥미진진한데
한 눈에 빠져 결혼 했지만 
남편의 사랑이 식을까 불안해 하는 자신감 제로의 새색시와
남편보다 잘 나가는 비민주적 부인과 그로 인해 상처 받는 남편,
사랑해서 결혼 했지만 돈 때문에 서로의 애정을 의심하는 부부의 얘기는
사랑과 전쟁과 비교해도 될 만큼 
60년의 세월이 무색한 현실감이 있다.
자극적이지 않다는 것은 차이.
의도와는 달리 부부힐링으로 끝나는 모범적인 결론도 바람직하다.
저런 일이 실제로 한번씩 일어나 준다면 
비슷한 힐링 효과가 있을 것 같은 생각도...^^

뫼비우스 상영금지?

나는 김기덕이 싫다.
얼마나 깊은 고뇌인지 이해할 맘이 들기에는
강간과 폭력 없이는 표현되지 않는 그 내면이 너무 처참해서
더는 마주할 담력이 안 생겨준다.
지금까지 나쁜 남자가 마지막인데
세상의 모든 영화상을 영화상을 휩쓸고 돌아온다 해도
내 평생 김기덕 영화는 나쁜 남자가 마지막일 가능성이 매우 높다.
그 김기덕의 새 영화 뫼비우스에
"폭력성, 공포, 모방위험이 있으며 직계간 성관계를 묘사하는 등
비윤리적, 반사회적 표현"으로 영등위가 제한상영가 등급을 매겨서
제한상영관이 없는 우리나라에서는 사실상 상영금지되었다고 한다.
심지어 김기덕 답지 않게 삭제까지 해서 다시 등급신청을 했는데도.

하지만
독재자 딸이 대통령이 되고
국정원은 조작정치를 하고
통계청은 통계 조작하고
국민을 학살한 독재자가 쫓겨나지도 않은 채 다리뻗고 잘 살고
인권을 개나 줘버린 CEO 대통령은 떼 돈 벌어 잠적하고
...참 혼자 보기 아까운 걸
전체관람가로 생방송해대면서
소시오패스 꿈나무들을 무럭무럭 키우는 주제에
제한상영가?
꼴값 떨구 있네, 정말...

저런 영화 한 편 보고 따라서 미쳐날 뛸 정도로 덜 떨어진 국민들에게
투표권은 어떻게 믿고 주니.....?

연극|레이디 맥베스|Lady Macbeth|2013


변형된 고전은 별로 좋아하지 않지만 한태숙 연출가의 첫 작품이었다는 걸 알고 있었기에
이번 기회를 놓칠 수 없었다.
첫 공연이 벌써 15년 전이라고 하고,
이번 공연은 그때보다 많이 업그레이드 되었다지만,
내게 레이디 맥베스는 잘 자란 아이의 유년시절을 보며
지금 성장한 재능이 그 시절엔 어떤 모습이었을지를 찾고 싶은 마음으로 선택한
연극이었다.

원작의 맥베스는 예언에 기대 탐욕이 깨어나고
그 욕망을 실현하는 두 개의 자아가 일으키는 갈등의 드라마라는데,
레이디 맥베스는 그 시작고리가 분명치 않다.
그것이 운명이라면, 노력하지 않아도 찾아오고 말 것을 알면서
굳이 희망이라 부추겨 기회를 잡으려는 욕심은 잘 이해가 되지 않았다.
어쨌든 결과적으로 왕을 죽인 것은 맥베스 부인.
그러니 이 극은 멕베스 부인의 이야기라기 보다는 맥베스의 여자 버전으로 봐도 될 것 같다.
남자는 성공과정을 즐기지만
여자는 남자가 이룬 성공 자체를 즐긴다면서
결국 그녀는 그렇게 편승해가지 못하고 자기 손에 피를 묻혀 버리고 말았다.

그 늙은 왕의 몸속에 그렇게 많은 피가 있을 줄이야...
물 한 컵이면 씻어질 줄 알았던 피의 기억을 떨치지 못한 그녀는
손목을 자르겠다고도 절규한다.

한 번 들으면 잊을 수 없었을 그 저주같은 예언은
네 사람의 강렬한 몸짓과 주술같은 반복으로
극이 끝난 지금까지도 계속 머릿속에 남아
한 인간을 파멸로 이끈 떼어버릴 수 없었던 유혹의 제 몫을 다했다.

연회장면의 음악도 멋있었는데
두 개의 활로 빠른 템포를 연주하던 그 소리는
클럽에서 틀어도 몸이 움직이겠다 싶게 꽤 격렬했다.

진흙 덩어리, 밀가루 덩어리들로 잔혹함을 묘사해내는 이런 연출을 보면
직접적인 묘사에 천착하는 김기덕의 정신세계의 황폐함이 좀 딱하다는 생각까지 든다.

홀린듯 끌려다니다가, 뜨거운 피로 유혹하기도 하고, 떨칠 수 없는 것을 떨치려 몸무림치던
서주희의 맥베스 부인은 강렬했다.
꿈속에서는 조종당하는 경박한 맥베스로, 맥베스 부인의 현실에서는 충직한 의사로,
내내 무대위에서 극의 안팎을 잘 이끌어 가던 정동환에게도 박수.

하지만 한태숙의 극은 배우들 뿐 아니라
무대의 바닥에 까지도 박수를 보내게 만드는 힘이 있다.
무대의 어떤 물건 하나도 제 몫을 하고
다음엔 어딘가 쑥쑥 자라나 자란 만큼의 재주를 선보일 것만 같은.

다만,
탐욕과 유혹의 정서로 보자면 맥베스를 뛰어 넘지 못한 이 이야기,
그렇다고 여자의 이야기가 들어있지도 않은 이 이야기를 통해
애초에 그가 하고 싶었던 이야기가 뭘까...는 의문이 남았다.
레이디 맥베스는 극 자체의 힘과는 상관없이
그저 재능있는 배우들과 음악가, 안무가, 연출자의
한바탕 장기자랑 무대를 만들고 싶었던 것일까.
모든 것이 야심 넘치는 실험정신의 테두리속에서 그려진 것 같다는 생각.

하지만, 뭐 어때.
노력하는 재능은 즐거운 자극이 되어주는 걸...
멋있었다.



DVD|베를린|The Berlin File|2013

처음은 아닐테지만 아무튼 오랜만에 예약하고 기다리던 DVD도착!!!
사진집 맘에 쏙 든다!

스틸과 다른 느낌의 석규 형님의 자태가 나를 흥분시킨다



질소냐...달겨드는 하정우 배우
-전지현 배우의 경우 섰다하면 의상 카다로그 같은 모습에 오히려 스킵
멋지다는 건 멋진건데...좀 이상한 마이너스.

동명수 아닌 , 그리고 동명수인 승범

다시 보고 싶은 걸, DVD 나오면 보려고 다운로드를 외면해가며 오래 기댜렸다, 베를린.
DVD를 기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그렇듯 코멘터리와 부가영상에 대한 기대도 매-우- 컸는데-
석규 형님의 광팬으로서 베를린의 코멘터리는 많이 속상하다.
돌이켜 보면
시사회를 빼먹은 주연배우가 정말 용서안되는 류승완의 심정도 이해는 가지만
류승완, 류승범, 하정우, 전지현도 좋아하는 나로서는
그 반목의 분위기가 그대로 전해지는 코멘터리가 그저 속상할 밖에.
석규형님의 열연이 펼쳐지는데도 계속 딴 얘기를 하는 것이 대부분이고
초반, 따로 놀았음을 숨기지 않는 짧은 언급에 이어
좀 촐랑거리기를 바랬는데 중후한 중년이 되었다는 식당 씬,
'접신'의 순간이었다는 CIA요원 마티의 총격 후 장면을 빼고는 아예 언급 자체가 없다.
너무 속상해서 아예 코멘터리를 이정범-류승완 버전으로도 바꿔봤지만
거긴 서먹한 두 사람의 액션 얘기 뿐.

코멘터리 뿐 아니라 메이킹에서도 석규형님 홀대는 계속 된다.
영화 베를린에서는 액션콘티를 위해 배우들이 직접 액션 연기를 보이는 것을 촬영하는데
표정연기에 전혀 숙달되지 않은 대역 액션배우도 그렇게나 오래 클로즈업하면서
석규형님의 액션 촬영 장면은  별로 없다.
액션지현을 칭송하느라 전지현의 대역배우는 열굴도 안보여준 것과 대조적이다.
마치 모든 액션장면은 진짜 전지현이 다 한 것처럼...
심지어는 보기에 꽤 괜찮았던 석규형님의 삭제씬 하나는 이유조차 설명 안해주고 넘어갔다.
그나마, 류승완 아닌 다른 사람이 편집한 것 같은 One Way라는 부가영상에서만
석규형님이 좀 자주 등장하는데
류승완 감독의 우호적인 말들은 영화 개봉전 공개되었던 홍보용 장면이 그대로 들어가 있는 것 뿐이다.
촬영기간동안 무슨 일들이 일어났던 건지 나는 전혀 알 도리가 없다.
하지만 보고 싶은 영화를 다시보고 싶어서 DVD를 찾는 관객들에게
굳이 이런 느낌을 전해줄 필요가 있을까.
그들은 일년도 더 지난 뒷얘기를 가볍게 전했을 뿐이지만
난, 어쩐지 촬영기간 내내 소통되지 못한 한석규의 상처를 짐작할 수 있을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나중에 코멘터리 끄고 영화나 다시 봐야지...

Disc 1
- Commentary by 류승완 감독, 하정우, 최영환 촬영감독, 한재덕 프로듀서
- Commentary by 류승완 감독, 이정범 감독

Disc 2
- 베를린, 리가 (로케이션)
- 액션설계 (프리프로덕션, 액션콘티 제작과정)
- One way (메이킹)
- 소리를 만들다 (사운드 믹싱 및 효과음 제작과정)
- 삭제장면 with Commentary
- 티져 예고편 
- 예고편 

우아하게 가난해지는 방법|알렉산더 폰 쇤부르크

헝가리 사람들과 영국사람들이 국적을 내세우는 것은 교만한 마음에서가 아니라, 특히 인생의 가혹한 순간에 적어도 어떤 특별한 것의 일부라는 감정을 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런던에서 한동안 같은 집에 살았던 친구, 케빈이 어느 날 밤 삶에 지쳐서 배터시 다리에서 뛰어내리려는 사람을 만류하는 광경을 목격했다. 케빈이 뛰어내리지 말라고 그 남자를 설득한 논거는 <당신은 영국사람이라는 것을 자랑할 수 있습니다!>라는 것이었다. 그런 비슷한 상황에서 독일인에게 <당신은 독일사람이라는 것을...>이라고 말하면, 말을 끝까지 듣지도 않고 뛰어 내릴 것이다.

이런 경우 어떤 특별한 것의 일부라는 느낌과 교만이 뭐가 다른 건지는 모르겠지만....
(영국 사람이 안 뛰어 내린 이유나 독일 사람이 뛰어내린 이유는 똑같은 소속감 같으니까!)
웬지 웃겼다.  

크게 부유해질 수 있는 두 가지 가능성이 있다. 첫번째 가능성은 마음에 품고 있는 모든 소원을 성취하려고 애쓰는 것이다. 악착같이 일을 하며 누리고 싶은 일들을 꿈꾼다. 그러다 마침내 실제로 소원을 이루게 되어도 행복해지지 않는다고 확정짓는다. 두번째 가능성은 소원을 수정하는 것이다. 

이 첫번째 가능성이란...! 개콘 쇠고기 영감님의 놀라운 철학이 그대로 담겨있는 한 말씀이 아니신가!
원래 욕망이라는 것은 지금 이 순간 끓고 있는 에너지라서 
미래의 과실이 아무리 탐스러운들
현재의 끓는 점을 놓치고 나면 김빠지듯 사라져 버리는 것 같다. 

그런 아이들(원하는 것을 뭐든 사주는 부모의 아이들)이 나중에 자라서 어른이 되면 옆 사람이 가진 것은 무엇이든 갖고 싶어하는 마음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스스로를 전혀 억제할 줄 모른다. 

꼭 그렇게 자라지 않은, 말하자면, 찢어지게 가난한 시절을 통과했다는 
다이나믹 코리아의 장년층을 보자면
욕망의 제어가 꼭 그런 부모 탓만은 아닌 것도 같지만,
욕망을 억제하는 습관이 필요하다는 것에는 공감한다. 
이 책에서는 특히 행복의 조건을 넉넉하게 만들어서 손쉽게 행복해지라고 
계속 얘기하는 중이기도 하니까.

미국의 소비반대주의자들은 <하루라도 물건을 사지 말자>라는 운동을 생각해냈다. 그러면 겸사겸사 운동도 할 수 있기 때문에 정말로 천재적인 발상이다. 일주일에 하루, 예를 들어 금요일을 선택하여 현금이든 카드든 절대로 1센트도 지출하지 않기로 작정한다.......
<신용카드콘돔>을 대중화시키려는 운동도 미국에서 시작되었다. 이 운동의 요지는 <너는 정말로 이것이 필요한가?>, 아니면, <너는 내면의 공허함을 메우려고 이것을 사는 게 아닌가?>라는 물음이 쓰인 작은 봉투안에 신용카드를 넣어두자는 것이다. 그러면 물건을 살 때마다 신용카드콘돔에서 신용카드를 꺼내야 한다.  

소비자가 아니면 대접받지 못하는 자본주의시대에 공허함을 위로하려는 소비가 필수적인 소비보다 많을테니 실패는 당연하다. 공허함은 위로받아야 하는 것이기도 하니까. 하지만, 대대적인 운동이 아니더라도 가끔은 이런 브레이크 덕분에, 공허함에 지지 않을 '나'를 단련시킬 수도 있지 않을까?

...어쨌든 마크 리치는 (탈세, 사기, 불법거래 혐의 FBI수배자)추크나 몬테카를로, 버뮤다 같은 장소에서 자주 만날 수 있는 인간유형, 호화스러운 감옥수감자의 대표적인 사례이다. 그런 곳에 사는 사람들은 주로 탈세범들, 마음만 먹으면 세계 어디서나 살 수 있는데도, 그 엄청나게 많은 돈 중에서 조금 세무서에 떼주길 꺼리는 까닭에 굳이 추크 같은 시골 구석이나 섬을 선택하는 인간들, 아주 가련한 종자들이다.

무릎을 칠만한 탁월한 관점이었지만...폰 백작님은 한국을 잘 모르시니 이런 말씀을 하신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무조건 깔보는 아프리카나 동남아 어디에서도 독재자, 탈세범들이 망명하지 않고 제 집에서 다리 뻗고 사는 경우가 없건만, 한국에서는 아무 지장없이 잘 살 수 있다...!

나는 삶을 유지하는데 필수적인 것만이 아니라, 최하층을 포함하여 모든 점잖은 사람들에게서 국가의 관습으로 보아 포기하라고 요구할 수 없는 것들도 삶의 중요한 자산이라고 여긴다 <애덤 스미스, 국부론>

생계보조의 임무는, 보조를 받는 사람이 인간으로서의 품격에 어울리는 사람을 영위할 수 있도록 하는 데 있다 <독일 연방 생계 보조법 제1항>

사치는 가지고 싶은 것은 가지고 가져야 하는 모든 것은 포기하는 것<카를 라슬로, 사치를 위한 호소> 

사치라는 말은 무절제, 과함의 이미지가 강렬해서 이런 정의들을 좀 어거지스럽게 들리기도 하지만, 가난해지는 입장에서 부자에 꿀리지 않는 부를 만끽하려는 사람들에게 보내는 실용적으로 수정된 정의라 치자.  

도덕률의 경우에는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지 마라>는 명령이 토대를 이루고 있으며. 이것을 단념하고 저것을 회피함으로써 그 명령을 완수할 수 있다. 그러므로 도덕률은 언제나 일시적인 것으로 그치는데 비해, 미덕은 무한하다는 불굴의 장점을 가진다. 사랑하거나 신뢰하거나 희망하는데는 원래 한이 없는 법이다. 또한 누군가가 도를 넘어서 현명하거나 용감하거나 정의롭다는 말은 결코 들어보지 못했다. 그러므로 결핍의 시대에 우리는 미덕만큼은 자책하지 않고 마음껏 활용해야할 것이다. 

가난에 이어지는 훈훈한 마무리. 하지만 미덕이란 또 무엇인가요.
거기에는 불쌍한 부자들을 향한 연민도 포함되는 것인가요....



책 머리에서 이미 이 책이 별로 실용적인 기술을 알려주는 것은 아니라고 강조하고 있지는 하지만, 솔직히 꽤 재미있게 들리는 제목 속에 엮은 부분부분 허술한 인문서 같은 느낌이다. 
알랭 드 보통의 '불안'이 
약간 냉소적인 유머감각을 가진 독일 사람에 의해 번외편으로 다시나타난 것 같은.
좀 맘에 안들었던 건 사소한 가지들까지는 크게 하나로 묶어내지 못하고 있다는 것.
토크빌을 자기 맘대로 보수주의자가 아닌 자유주의자라고 결정해버리고, 
사치를 저렇게 정의하면서 구멍난 셔츠를 즐겼다는 체 게바라가 
롤렉스 시계를 차고 있었다는 게 대단한 삶의 모순인 것 처럼 슬쩍 흘리는 건 또 뭐고......
좀 오락가락 하신다. 

좀 신선했던 점이라면 
한국에서 예전에 배우던 편협한 독일인의 이미지는 
절약이 몸에 배어 허례허식따위는 없다-였는데,
(전 세계를 무대로 하고는 있어도 독일 얘기가 많이 나오긴 하니까)
독일에도 그런 부자들이 있구나-라는 
어쩌면 당연한 사실을 독일인의 시각에서 보게 되었다는 점이다.  

아쉬운 건 필자의 말투 자체가 코드가 맞으면 참 재미있기도 할 것 같은데
내게는 그 재미가 많이 전해지지 않았던 점이다.
그래도 이런 제목 아래 씌어진 책을 읽으며
각자가 자기만의 가난을 정의하면서
반대로 자기만의 풍요를 즐기게 되면 좋을 것 같다.
내가 생각하는 가난은
꼭 하고 싶은 것을 순전히 돈 때문에 못하게 되는 것.
잘 생각해 보면 돈이 제약이 되는 경우야 많긴 하지만
내가 감히 엄두도 못낼 일을 너무너무 하고 싶어 죽을 지경이거나
다른 상황은 다 괜찮은데 딱 그 일을 할 돈이 모자라서 못하는 경우 보다는
오히려 지금 이걸 하고 나면 나중엔 어쩌나하는 미래에 대한 불안이
더 큰 경우가 많으니까.

전엔 같은 책을 완전 다르게 읽은 사람을 보고 신기했는데
이번에는 정 반대였다.
도서관에서 빌린 이 책은 내가 접고 싶은 부분마다 다 접은 자국이 나 있었으니까.
한편으론 그만큼 천편일률적으로 읽게 되는 심심한 책이라는 뜻도 되겠다. 
제목은 다시 봐도 손이 가는 제목이건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