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너의 목소리가 들려|2013

시원해서 좋았던 포스터

일하는 사람들의 공간-설정에서 한 걸음 더

어딜가나 다 있다-리스트는 항상 흥미롭다. 고매한 인격을 가질 것만 같은 자원봉사 모임에도 내 앞의 이익을 위해 남을 돕는 사람이 있고, 실적이 최우선인 영업직 사원중에도 자신의 실적을 위해 고객을 진심으로 대해야 한다고 믿는 사람이 있기 때문이다.
주인공의 직장도 언뜻 그래 보였다.  개인편의로 국선을 선택한 장혜성, 엄청난 사명감에 불타는 차관우, 노련한 신변호사, 아직 실력발휘는 하고 있지 않지만 소개상으로는 웬만한 변호사보다 판례를 많이 알고 있다는 유능한 사무관 최유창의 조합. 언뜻 평범한 직장 같지만 사실 이 설정은 작가가 한발 나간 결과 이다.
국선변호사에 대한 일반인들의 이미지는 두가지 뿐이다. 공무원마인드로 똘똘 뭉쳐 무능을 가장한 불성실한 변호사 또는 정의감에 불타지만 논리에 서툰 그래서 결국은 무능한 변호사. 이따금 국선변호의 예외는 잘나가는 변호사들이 자원봉사는 하는 경우 뿐이었다.
평범해 보이는 혜성의 직장엔 이런 변호사는 없다. 신상덕은 차관우의 우상이 될정도로 전설적인 인권변호사이며, 장혜성은 이기심에 똘똘뭉쳐 있기는 하나 언제 어디서나 반전의 씨앗이 될 수 있는 자존심이란 게 있다. 처음엔 심장만 있는 무능한 변호사로 그나마 기존의 국선 변호사 이미지의 전형 같았던 차관우는 이제 마음이 아니라 법으로 피고인들을 들어줄 능력을 갖춰가고 있다.
국선변호사라는 새로운 직종에 묻어가는 일반적인 배치 같았지만 결국은 고정관념을 벗어난 설정. 그 속에서 일어나는 갈등이 탄력을 받는 이유다.

인물속으로 한걸음 더

장혜성은 이기적이면서 자존심 세다-까지는 특별할 것 없었는데 의외의 뻔뻔함과 솔직함이 매력을 더한다. 칭찬받은 유일한 장점이 자기 것이 아님을 술주정으로 한탄할 때-눈이 썪었다는 대사가 이렇게 웃기긴 처음^^-친구가 있다고 거짓말하고 밥먹다가 동료들에게 들켰을 때,  차관우와 데이트를 하기 전 단추를 어디까지 풀어줄 지 고민할 때, 장혜성은 입체가 되었고 예뻐졌다.

그다음 주인공 박수하. 일단 박수하는 마음을 듣는 재능만으로도 특별하다. 거기에 십년 동안 은혜를 사랑으로 치환시킨 놀라운 재주가 있으며, 혼자서도 잘 살고, 그러면서 공부도 잘하고, 싸움도 잘한다. 고등학생 교복에 갇혀-사실 생활을 보면 별로 갇힌 것 같지도 않지만-있다는 것을 빼자면 엄친아의 모든 조건을 충족시키는 환상적인 캐릭터다. 거의 완벽한 설정에 가까운 것에 비해 그동안은 설정보다도 외모의 매력지수가 높은 건 아직 수하가 보여줄 것이 많다는 뜻? 한 가지 수하가 하지 않고 있는 일 중 궁금한 것이 하나 있다. 나라면 민준국을 만났을 때 왜 자신의 아버지를 죽였는 지 묻고 싶을 것 같은데. 남은 이야기들과도 관계가 있을까.

차관우. 어눌함을 가장하고 등장했지만 따져보면 이런 완벽남이 없다 존경하는 국선변호사의 뒤를 좇아 같은 사무실에서 일을 하게 된다. 언제 어디서나 변호사의 본분을 잊지 않는다(장혜성과 달리 차관우는 태도 면에선 언제나 신상덕의 지지를 받고 있으니까). 열심히 일하고 이긴다. 찍은 여자의 마음을 얻는 것도 시간이 좀 걸렸을 뿐 단박에 성공했다. 속도 없어 보이던 사람 좋은 웃음과  8:2가르마, 흰 양말로 코스프레하고 있었지만 사실 차관우는 신의 경지였던 것이다. 게다가 차관우는 고차원적인 방법으로 장혜성의 성장을 이끌고 있다. 신상덕이 항상 직언으로 장혜성을 찔러 움직이는 것에 비해 차관우는 장혜성을 지지하면서도 자신은 온몸으로 혜성이 배울 바를 한발 앞서 실습해 보이고 있으니까.  

민준국과 어춘심의 대결은 힘이 넘쳤다. 공포스러운 살인의 현장이지만 오히려 민준국은 다른 어떤 장면에서보다 속을 많이 들켰고 신념있는 엄마 어춘심은 마지막 한 마디로 죽었어도, 승리한다-내 딸 그렇게 못나게 키우지 않았다-는. 어느 부모도 쉽게 할 수 없을 그 한마디에서 발산된 믿음을 무슨 말로 표현할 수 있을까. 민준국은 어춘심의 숨은 끊었지만 그녀를 죽이지는 못했다. 왜냐하면 그 자신이 그녀의 가장 강렬한 신념의 현장의 유일한 목격자로서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할 것이기 때문이다.

어른들도 자라야 한다

아직까지 성장은 장혜성과 그보다는 조금 빠르게 배우며 사범이 되고있는 차관우의 몫인 것 같지만 전개가 더 되고 나면 신상길과 민준국도 어떤 변화를 보이지 않을까 기대가 된다. 그런 면에서 더 이상 배울 게 없을 정도였던 어춘심이 일찍 하산하게 된 것은 어쩌면 운명인 것 같다.  언제나 진실을 알고 있고, 남보다 더 많은 것을 알고 있는 사람이 가장 어린 수하라는 것은 의미심장하다. 청소년이니 성장이 당연한데 설정상 수하는 더 성장할 수가 없는 인물이기 때문이다. 수하는 반응하는 인물이 아니라 결정하는 인물이기 때문에 아마도 수하사마의 결정으로 이야기의 흐름은 끌려가게 될텐데 거기에 대처하는 또 다른 사마 차관우와 평민대표 장혜성의 성장이 기대된다.

1-2회를 놓치고 3회부터 보기 시작했는데 특히 7-8회는 압권이었다.
CCTV를 망가뜨렸을 것이라 추정되는 상황 증거가 있고, 악연이 있으며, 전과자인 피고인의 재판이라면 아마 현실에서는 두 말 할 것도 없이 중형을 받을 상황이다. 하지만 여기에 이론으로 공정한 법을 등장시키고 원칙을 따르는 주인공들의 힘이 보내지면서 재판은 사람들의 상식적인 판결을 넘어선다. 보통 사람들이 믿기 힘들 이 관대한 반전을 믿게 만들기 위해, 재판은 위증을 할 증인에게만 집중하도록 좁아져 있고, 혹시 의심할 사람들을 위해 신상덕이 미리 포석을 깐다. 그 뒤로 이어지는 차관우의 변론은 유일한 장애물을 뒤집어 증거로 활용하면서 설득력을 얻었다. 일반적으로는 말도 안될 것 같지만 일단 드라마 속에서는 가능했다.

위법을 써서라도 범인을 잡겠다는 서도영의 아버지 서대석의 논리에서 신상덕을 통해, 범인을 잡겠다는 맹목보다는 위법이 틀렸다는 메시지를 주기는 하지만, 이 법정은 한편으론 재판이 법정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며, 엄중해보이는 판결이 유능한 논리에 따라서는 얼마든지 달라질수도 있다는 회의감을 심어주기도 한다. 그것도 법을 공부한 장혜성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할 재판을 앞두고 한 일이 판례를 찾은 것이 아니라 검사를 찾아가 진심없는 예의로 한 구걸이었다는 것은 민간인 입장에서는 더 슬픈 일이다. 대부분은 저렇게 찾아가 비굴하게나마 도움을 청할 사람도 없으니까.

유일하게 버려진 캐릭터 서도영은 좀 안쓰럽다. 십대에 잘못 꿴 단추가 평생을 좌우한다는 교훈이라면 모를까 도영은 지금 무능한 검사를 온몸으로 보여주고 있을 뿐이다. 신념의 문제도, 태도의 문제도 아니고, 별짓을 다해도 안되는 진정한 무능함이다. 어쩌면 도영이야말로 지금 대한민국의 검사들에 대한 가장 큰 손가락질 일지도 모르겠다.

한 가지 재미를 더하는 건 아마도 의도적일 슬랩스틱 코드. 아직까지 최고는 칠랄레 팔랄레 하던 차관우지만 소소한 몸개그들이 매회 조금씩 빛을 발한다. 역시 고생한 만큼 보람이 있는 걸거야, 말보다는 몸^^

오늘 다음기사에서 발견한 반짝 댓글들: 정말 꼼꼼한 시청자들.
난 증언이 저렇게까지 치밀하게 복수할 일인가 싶었을 뿐인데...
하지만, 더 궁금한 건, 대부분의 시청자들에게 오점을 감춘 작가의 기술,
그리고 거기 또 기꺼이 넘어가주는 시청자 심리랄까....


"엄마는 2012년에 죽었다"..'너목들', 2막 반전 포인트 ③

한사랑님 다른댓글보기
아타까운 건 이 드라마에 오류가 좀 있다는 것!!
감방동료가 그랫죠? 민중국이 장변사진을 스크랩하고는 갚아야할 빚이 있다고... 민중국은 10년전 사고를 무죄라고 주장하는 사람인데 그렇다면 장변에게 갚아야할 빚은 복수밖에 없습니다. 수하에게는 아빠의 죽음이란 빚이 있지만 장변은 민중국으로 인해 피해본게 없습니다. 당연히 치킨집을 찾아가 용서를 구할 이유도 없구요. 또하나 오류는 민중국이 서도연에게 문자메세지를 보냈다면 ..왜 서도연과 미팅했을 당시 그녀가 10년전 사건의 목격자란 사실을 눈치채지 못했을까요? 해명해주실분..
 16:15|신고
답글 36
소담님 다른댓글보기
맞아 오류 얘기하니까 저도 생각나는게 있네요
민준국은 분명 치킨집에서 가명을 썼는데 주민들이 호의적이었다고요? 수사할 때 본명으로 물었다면 다들 모르거나 의아하게 생각했을 텐데요.
 16:39|신고
답글 2

----스포일러가 퍼진 후부터 열심히 스포일러를 피해가는 이야기를 보자니
아니 대체 대본을 언제 써서 촬영을 하고 있는 것인지?!
이 생방송 시스템의 놀라운 순발력이 감탄스럽고,
그러다가 생겨난 것으로 추정되는 여러가지 애정씬들은
스포일러의 선물(?)인가 싶기도 하다.
하지만 설마 늘어난 분량을 다 이렇게 때우지는 않겠지....? ㅎㅎ

-----------꼼꼼함을 참 좋아했는데 뒷모습이 너무 들떠보이네...
이왕 여기까지 왔으니 좀 흐트러질 수도 있고
스포일러라는 폭탄을 피하느라 고생도 많았을 테고
반복되는 옥의 티 따위는 시청률과 상관없다는 걸 아는 배짱은 이해되지만
그런 '사소'한 것 까지도 열심히 하는 사람들이 있는 걸 안다면
이 느슨함을 좀 부끄러워해야 하지 않을까?

----------15회와 16회의 법정은 이전의 법정과 다른 느낌이다.
무능하던 서도연은 처음으로 자신을 버리는 결단을 내렸고,
법의 과오는 26년의 세월을 너머 다시 법정에 불려와서 심판을 받았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27년도 아니고 28년도 아닌 26년에는 의미가 있는 것 같아 보인다.

주인공들을 위한 이 강렬한 에피소드에서
신상덕을 향한 카메라는 따뜻했다.
모두가 힘들게 노력한 승리에 취하는 게 당연해 보일때
자신을 돌아보고 반성하는 또 한사람.
늘 성실하게, 바르게 살아온 사람의 반성은
과오가 심판을 받은 후에도 고집스럽게 자리를 지키는 서판사와 강렬한 대비를 이룬다.

이때 다시 빛을 발하는 또 한 사람, 차관우.
처음, 속물에 싸가지로 외면받던 장혜성에게 세상의 문을 열어주었듯이
가슴 아픈 회한으로 닫힐 것 같았던 신상덕의 문고리를 붙잡아주었다.
이 모든 것은 그가 열심히 산 사람이기에 가능한 일.
박수하는 어느날 갑자기 갖게된 특별한 능력으로 마음을 듣는다지만
차관우는 스스로의 삶으로 닦아온 마음의 눈을 통해
자신을 들여다볼 줄 모르는 사람들속에서 희망의 모습을 따뜻하게 끌어내주고 있다.
참 멋있다, 이 남자.

PS. 지명수배중인 민준국에 대한 단서가 나왔는데도 바로 체포수사를 안한 이유는 뭘까?
PS2. PPL이 점점 심해지고 있다. 의상과 소품으로 인물을 설명한다는 것은 이제 한국드라마에서는 불가능한 이야기인가?

------------드디어 대단원.
솔직히 마지막 두 편은 과감한 낚시질-마치 무시무시한 일이 일어날듯 던져놓고는
과감하게 말장난으로 마무리 해버린-과 PPL과 서비스용 연애씬들로
초반의 긴장감은 거의 사라진 아쉬운 결말이었지만
마지막 장면만큼은 맘에 들었다.
민준국이 10회에서 죽는다는, 연장이 없던 원래의 버전이었다면
1회부터 16회까지 알찬 성취를 이루지 않았을까?
드라마로서 새로움을 보여줌과 동시에
자발적 훼손으로 상업적 성공에 부역하는 과정을 생중계로 보여준
씁쓸한 화제작으로 기억할 것 같다.

2013 아람누리 마티네콘서트 3 - 피아노, 오케스트라를 제압하라!



공부에는 좋은 선곡이었지만 피아노가 오케스트라를 제압하는 곡들은 전혀 아니었음^^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1번부터 5번.
13살에 작곡한 첫콘체르토가 출판이 늦어지는 바람에 2번이 되고
두번째 작곡한 콘체르토가 1번이 되었다고 한다.
다섯곡의 1악장이었지만
한 곡의 성장기를 보는 듯했다.
1, 2번은 바이올린 소나타 '봄'같은 발랄한 느낌도 있었고.
박종훈의 설명을 정리하자면
베토벤 이전의 콘체르토는 오케스트라와 솔로연주자의 어울림 정도였고
베토벤에 이르러서 형식이 갖춰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1,2은 그중에서도 하이든과 모차르트의 영향을 많이 받았고,
3번에 이르러 베토벤의 개성이 많이 드러나기 시작했으며,
4번 협주곡은 피아노로 시작하는 최초의 콘체르토 라고 한다.
3, 4번부터 건반의 사용범위가 넓어진 것은
그때가 되어서야 피아노건반이 88개로 보편화되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모차르트 하면 발랄한 피아노가 생각나고
하이든 하면 궁정에 울려퍼지는 단정한 실내악이 생각나는데
초기 베토벤은 그런 발랄함과 격식이 그대로 느껴진다.
그래서 별로 매력없다--;;

부드럽고 매끄러운 강남심포니오케스트라와
오늘따라 기운 없어 보이던 박종훈,
또랑또랑한 소리를 내던 조재혁,
감정표현이 확실한 치하루 아이자와가 연주했다.

어제 잠을 좀 못자서 서두른 아침이어서 그랬는지
오늘은 중간에 잠시 졸았음...
그래도 앵콜 터키행진곡으로 깜찍한 마무리.

매튜본의 백조의 호수|Swan Lake|1996

백조의 호수에서 백조만 남자들로 바뀐 발레인 줄 알고 봤기 때문에
초반엔 불만이 많았다.
발레는 안하고 다들 연기를 하고 있잖아....
조금 더 지나서야 눈치챘다-발레가 아니구나....

매튜본의 백조들은
기존 발레의 백조들과는 달리 동물성이 강하다.
우아한 날개짓 같은 동작보다는
새의 동작을 연구해서 그대로 보여주는 것 같은 움직임이 많다.
언뜻 연극 오이디푸스에 등장했던 까마귀 인간 생각도 났다.
웃옷을 벗고 있어서 땀방울이 흘러내리는 몸이 그대로 드러나
더 그런 느낌이 들기도 하고.
백조의상을 보면 틀을 잡아주는 벨트 가운데에 V자 홈이 파여 있는데
그 작은 차이로
백조들이 숨 쉴 때마다 거칠게 움직이는 배가 심장처럼 보였다.

게다가 백조가 남자라 공주가 나올 줄 알았는데
왕자는 그대로 왕자.
엄마보다는 여자로 사는 차가운 엄마 밑에서 상처 받고 자라서
처음으로, (꽤나 거친) 백조에게서 위안을 받고 사랑에 빠진다.
궁정 무도회는 
어머니와 아들이 낀 삼각관계인지 
상처받은 연인들의 질투어린 치정인지 헷갈리는데
결국 엄한 바보아가씨의 희생으로 마무리 되어버린다.
귀족싸움에 새우 사망...

백조의 호수-하면 떠오르는 테마곡이 세 번 나오는데
일부러 그런 건지 단 한 번도 백조는 그 음악에 맞춰 춤을 추지 않는다.
한 번은 호수 위를 그냥 지나가고,
두번째는 왕자가 백조를 그리워하는 장면의 배경이고,
마지막은 비련의 연인과의 작별이다.
차이코프스키 음악에 맞춰 왈츠에 탱고에 별의 별 춤을 다 기막하게 잘 추도록 만들었으면서
메인테마를 건너뛴 이유는 과연 무엇인가....
거친 백조들은 거칠게, 왕실에서는 위생적인 척 약으로
연인인 백조와 왕자를 처단한다.
하지만, 첫 장면에서는 어렸던 왕자의 악몽이었던 백조가
마지막에 왕자를 구원한다는 이미지의 마무리는 좀 이상해...
꿈은 반대다 이거냐...?

발레 의상이 유난히 독특한 이유가
당시 귀족들의 눈요기를 위해서라는 얘기를 들은 적이 있다.
매튜본의 백조의 호수는 의상이라는 일차원적 눈요기를 넘어선
역동적이고 과감한 성인버전의 잔혹동화였다.
기대보다는 살짝 실망스러웠지만 군무는 멋있었고,
어쨌든 이제야 비로소 호기심 해결.

혹시나 찾아보니 풀버전 동영상까지 유투브에 올라와 있다.
내가 본것도 1996년판 공연실황인데 유투브와는 다른 버전이다.
요게 좀 더 멋져 보이는데 빌리 엘리엇에 나왔던 배우가 등장하는 버전이란다.
DVD사기 전에 찾아나 볼 걸...

(공원장면)
백조들이 손을 부리 삼아 각을 잡고 몰려들땐
히치콕의 '새'를 찍어도 될 기세~! 

이브의 모든 것|All About Eve|1950

 영화는 더 깊이 파주는 구석이 있지만 상업적인 면만을 속 뽑아서 잘만든 것 같은 포스터
제목이 이브라서 모든 여자들에 대한 이야기인 줄 알았다--;;

헐...한국전쟁 시절에 이런 영화가 만들어졌다니.
칼부림 없이도 긴장감이 쫙 느껴진다. 
내용은 간단하다.
누구라도 도움을 주고 싶어질만한 참하고 성실한 젊은 처자 이브가 
행운을 노려 인연을 만들고 그 인연의 도움으로 기회를 잡은 뒤
뒤통수를 쳐서 성공하는 이야기.
전형적인 악녀 캐릭터에 직업까지 배우라 
당연히 요부스타일의 여배우일 것 같지만
오히려 수더분하고 성실한 미모의 배우가 연기함으로써 
이야기가 더 괜찮아졌다. 
모든 것이 요망한 미모로 해결되었다면 그녀의 처세술은 하수일뿐이었을텐데
일차원적 미모를 능가하는 성실함과 태도에 대한 노력으로 레벨업.
여러 사람이 작당을 해서 하나를 등신 만드는 거야 흔한 절망이지만
한 사람이 여러 사람의 뒤통수를 치는 기막힌 상황이 더 미칠 지경이라는 참신함(^^)도 좋았다. 
다행이 영화는 뒤통수 맞은 사람들끼리는(묻힌 비밀은 있지만) 서로 흥분하지 않도록 배려함으로써 이브의 욕망에 집중하게 해준다.
게다가 남자들은 여자가 잔머리만 굴려도 홀랑 다 넘어가는 단세포라든가,
질투는 여자의 힘이며 여자의 적은 여자라는 
게으른 설정들을 빌려쓰지 않아서 더 흥미진진했다. 
오히려 빌이 직관을, 캐런과 마고가 의리를 발판으로 삼았다는 것도 신선했고.
(언젠가는 캐런이 재앙이 되어버린 악의 없는 장난도 고백할 날이 오리라 믿는다~)
마지막에 새로운 이브지망생이 거울속에서 무수히 증식하는 장면도 멋있었다. 
제목이 이브라서 여자를 나타내는 대표명사 같을 거라 예상했지만
이브 속의 '여자'보다는 '욕망'에 집중해주는 느낌이었다.

이브-마고-마릴린 먼로-레베카에서 사촌이었던 영국배우(여기서는 평론가)

성공한 배우인 마고는 '여자'가 되려면 남자가 필요하며 그러기위해선
성공을 하기 위해 버렸던 '여자'를 되찾아야 한다고 고백하면서도 일을 그만두지는 않고,
마고의 연인 빌은 마고의 재능에 반해 사랑을 시작했지만 
가장 힘든 시기에 한 걸음에 달려와주는 인간애의 경지까지 나아가며
유혹에 굴하지 않는 의리도 보여준다-빌 정도의 감이라면 아마 이브의 진심을 꿰뚫은 것 같기도 하지만... 

하지만 가장 깊은 인상을 남긴 건,
영화 속 인물들의 대화가 욕망을 얘기할 때조차도 막나가지 않으며 성찰이 있었다는 점이다. 
공황이 끝나고 다시 찾아온 풍요는 그들에게 
비참하던 그 시절을 딛고 다시 우아하게 살도록 격려해준 것 같은데 
그에 비하자면 염치도 없고 천박한 요즘 자본은 대체 조상이 누군지 궁금해진다.

베티 데이비스 아이즈라는 꽤 유명한 팝송이 있었는데 그 눈이 바로 저 눈!

못다한 27번의 키스|27 Missing Kisses|2000

제목은 멋지다
무려 18세에 14살을 연기한 그녀

마을에 불쑥 나타난 14살 짜리 소녀 시빌이
불 같은 짝사랑을 하면서 한 소년의 마음을 쑥대밭으로 만들고 사라지는 이야기.
소년과 소년의 아버지와 소녀외에도 
모든 것이 자유롭고
대체 뭐해서 밥들은 먹고 사는지 궁금하게 만드는 
주민들의 여흥과 불륜이 잔뜩 등장한다.
당당히 요구하는 짝사랑이 14살의 것인지 시빌만의 것이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어른들끼리의 난봉질은 용납해도
아들의 애인을 뺏는 짓은 하지 않는 상식적인 집시스타일의 정착민 마을은 호감이 간다.
풍요로운 성생활을 즐기던 성숙하고 매력적인 남자는 굳이 소녀를 탐할 이유가 없었다. 
마을 자체는 호감이 갔지만
여기 등장하는 어떤 연애도 공감할 수 없었다.   
게다가 현실같지 않은 그 공간과 사람들도 그냥 어수선하게 한번 구경하고 말았다.

    
풍경이 꽤 독특해서 오라고 꼬신다. 
가보고 싶다, 그루지야.

오데트|Ordet|The Word|1955

결국 종교도 인간의 선택

생소한 덴마크 영화인데 내용도 남다르다.
처음부터 끝까지 신을 믿는 다른 방식과 기적, 믿음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종교에 대한 신념의 차이고 고립된 생활을 하는 보겐농장가족은
막내아들의 결혼 때문에 종교논쟁을 벌이게 되는데
가족과 종교라는, 섣불리 건드리면 안되는 논쟁이 시작되면서
결국은 후회할 언사들까지 오가게 된다.
종교의 관대함과 희망은 성경을 읽고 기도할 때와는 달리
눈 앞의 이웃에게는 베풀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심지어 자신의 신념이 옳다는 것을 설득하기 위해
저주에 가까운 얘기까지 오간다.
뒤늦게 깨닫고 화해로 끝나긴 하지만,
기적이 없었다면 가능했을까.

신에 대한 믿음과 선한 삶 중 어떤 것이 더 가치있나.
부족한 믿음을 가지고 하는 기도는 인간을 구원할 수 있나.
기적이 없이도 믿음은 유지될 수 있나.

믿음은 부족하지만 착한 삶을 살았던 맏아들의 절실한 바람은 이루어졌고
믿음이 없는 기도 역시 응답을 받았으나
이 모든 것은 기적의 형태로 이루어졌기에
영화 속 종교는 신의 존재보다는 기적을 바라는 인간의 열망과 인간들이 선택하는 삶의 방식으로 설명된 듯 하다.

흑백의 넓지 않은 화면은
실내와 실외가 꽉찬 느낌.
특히 실내장면은 연극실황중계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다.
하지만 인상 깊은 건 초반, 스스로를 예수라 믿던 둘째아들의 언덕 장면.
바람에 흔들리는 들풀들 뿐인데도 멋있었다.


화합의 기적이 일어나는 순간

“영혼은 스타일 속에서 드러난다. 스타일은 예술가 자신의 소재를 바라보는 방법의 표현이다.” 
칼 테오도르 드레이어(Carl Theodor Dreyer)

에브리바디 페이머스|Iedereen Beroemd!|Everybody's Famous!|2000

아카데미 후보였다는 게 믿기지 않네...

외모의 편견을 깨고 주눅들어 있던 재능을 끄집어 내는 거야 언제든 찬성이지만
세심함이 부족하다. 
예상 밖의 전개, 예상 밖의 결말-예상을 빗나가게 해주겠다는 강렬한 열망으로만 달려나가는
벨기에 영화.
아무에게도 해를 끼치지 않았고 
모두가 해피한 결과를 가져왔으니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인정적인 결말까지야 괜찮지만
인질을 잡고 있다고 생각해서 포위중이던 납치범에게 
감동의 박수갈채까지 보내는 경찰은 좀 아니다 싶다. 
아무리 예상은 뒤집으려 노력했더라도
쇼비즈니스의 냉혹함 같은 건 여전히 구태를 벗지 못했고.
진짜 깜짝! 놀랐던 건 2000년 벨기에 방송의 소박함이지~
옛날 가요톱텐을 보는 느낌이랄까.

이제 영화속에서 어느 정도의 범죄는 용납하고 넘어가고 있을 뿐더러
심지어 권선징악은  식상함의 대명사가 되어버리기도 했지만
거짓말과 상납이 얼룩진 두 남녀의 성공이 별로 예뻐보이지 않았다.
중반까진 재미있게 보고 있었는데...!

연애의 온도|2013

헤어져, 라고 말하고 모든 것이 뜨거워졌다!

혹하는 포스터와 혹하는 카피를 견디고(대체 왜^^)
뒤늦게 만난 연애 영화.
지지부진한 것 같았지만 이영화는 쿨했다.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이 꽤나 질퍽하게 인연을 강조했었다면
여기서는 연애 자체가 과정으로서 강조되는 느낌이다.
끊임 없이 연연해하는 쿨하지 않은 주인공들의 쿨함을 유지한 비법. 
김민희는 이제 믿음직하기까지 하네~

 저런 유니폼을 입고도 이런 장면이 나오는 간지 남녀
 누구나 하나쯤 있었으면 바랄 완소아이템 박계장^^ 
 김민희는 이제 얼굴도 좀 배우다워진 것 같은 느낌이 든다, 예전엔 모델 같았는데...

지상의 밤|Night on Earth|1991

유난히 많은 포스터 중 하나

사진 순서대로
5. 헬싱키  3.파리
4. 로마
1. LA   2.뉴욕

다섯 도시의 택시에서 일어나는 이야기가 옴니버스로 이어진다.

첫번째 LA
앳된 얼굴에 줄단배를 피우는 택시기사 코키와 승객인 영화캐스팅전문가 이야기.  
누구나 좋아할 것 같은 행운을 정작 모두가 좋아하는 것은 아니라는 
당연하지만, 현실에서는 볼 기회가 드문 진실을 보여준다.
길거리 캐스팅으로 수십 년 간 발연기 하시는 분들이 좀 보시는 것도 좋을 듯... 

두번째 뉴욕
영어 뿐 아니라 운전까지 서툰 이민자 택시기사와 택시 기사들이 가기 싫어하는 브룩클린 주민의 만남. 얘기는 가장 밋밋하지만 티나게 아귀를 맞춰가는 일차원 유머가 솔찮이 즐겁다. 
그리고 헬무트 아저씨의 평온한 얼굴도.
항상 대가 센 미인으로 나오는 프리티 우먼의 줄리아로버츠 친구분 등장.  

세번째 파리
베티블루 이후 처음 보는 베아트리체 달이 시각장애인 승객이고, 잘생긴 전사스타일의 코트디부아르 출신 이민자가 택시기사다.  다섯 편 중 대화의 합이 제일 재미있었던. 

남:  다른 시각장애인 처럼 선글라스를 끼지 않네요.
여: 다른 시각장애인은 본 적이 없어서 몰라요.

남: 안 보여서 불편한 게 많죠. 할 수 없는 게 많으니까.
여: 남들이 하는 건 다할 수 있고 남들이 못하는 것도 할 수 있어요.
남: 운전은 못하잖아요.
여: 당신도 못하긴 마찬가지에요.

마지막에 택시 기사는 사고를 내고 상대방 운전자에게 눈이 멀었냐는 욕까지 먹는다 ㅋㅋ

네번째 로마
인생은 아름다워의 로베르토 베니니가 밤중에 신부를 태운 택시기사로 등장해서 말 그대로 원맨쇼를 펼친다. 신부가 안듣겠다는데도 고해성사를 하겠다면서 어릴 때부터의 모든 생물종(^^)을 망라한 성일탈 행위를 고백하는~ 이 사람은 정말 배우 아니면 무슨 일을 할까 싶을 정도로 등장하는 동안 잠시의 여백도 만들지 않는다. 1991년의 한산한 로마 풍경도 색다르고.

다섯번째 헬싱키
서늘한 느낌의 헬싱키에서는 무표정한 택시기사와 생애 최악의 날을 맞았다는 남자와 두 친구가 등장한다. 승객의 인생최악의 사연을 들을 때만 해도 정말 기가 막히다 싶은데, 반전은 택시기사로부터 나온다.
하지만 정작 그 얘기가 힘이 됐을 사람은 취해서 못 듣고 말았네...쯧... 

한때 옴니버스가 대유행하던 시절 
하다 만 것 같은 이야기들을 줄줄이 엮어내기도 했었는데
옴니버스의 교본 같은 느낌이다. 
이 정도는 해줘야지-하는.
짐자무시의 다른 영화들과는 완전 다르게
-재미있다!
나름 힘들게 DVD를 구해놓고서 팽개쳐 둔 지 어언 몇 년.
그 사이 이 영화는 다음영화에서 500원^^ 

비틀주스, 청춘스케치의 상큼함이 살아있는 모습 그대로 등장한 위노나 라이더.  
(개인적으로 금발의 위노나는 별루라서 가위손은 패스)
지금 봐도 대체할 사람없는 독특한 분위기가 느껴진다.
요즘, 잘 지내시나요...?

신체강탈자의 침입|Invasion of the Body Snatchers|1956

모든 사진은 http://www.imdb.com 에서
오호~ 생각할수록 더 무서워~

외계에서 날아온 이상한 씨앗이 인간을 복제한다는 기발한 아이디어는
역시 원작이 있었다.
씨앗인간들은 인간의 몸을 세포단뒤로 복제하면서 성장을 하는데, 
대상이 될 인간이 잠든 사이 영혼을 채취해서 완벽하게 인간을 대치한다.
하지만 그 '완벽'이 정말 완벽하지는 않았던 것이 
인간의 감정은 복제할 수가 없었던 것.
하지만, 씨앗인간들은 오히려 
사랑, 욕망, 야심, 신념 같은 것들이 세상의 평화를 깼다고 강변하며
평화로운 세상을 위해 자신들 중 하나가 되기를 선택하라고 
주인공인 베넬박사를 설득했었다. 
결국 연애를 할 수 없다는 절망에(^^) 베넬박사는 인간으로 남을 것을 결심하고
영화는 베넬박사의 신변이 보장되기 시작하자 소설의 마지막 장면처럼 끝나버린다.
     
가까운 사람들이 갑자기 모든 기억을 가진 최첨단 인공지능 마네킹이 되어가고
오늘은 누가 적이고 누가 친구인지 알 수도 없는데
아무도 믿어주지 않는다-생각할수록 무섭다. 

영화 끝부분에 
키스하던 그 순간이 생애최고의 공포였으며,
아주 잠깐 사이의 잠이 영혼을 죽여버렸다는 고백이 
인상깊었다.

요 깍지에서 새 몸들이 자라나요~

 이 분들은 새 몸의 빠른 성장을 지켜보고 계심

주인공 복제인간들은 이렇게 만들었는지 몰라도 나머지들은 대놓고 마네킹^^
또는 산 사람 눕혀 놓기~

어느 사랑의 연대기|Story of a Love Affair|1950

 둘 사이에 끼어들면 누구든지 꽥^^
걸어다니는 화보 같은 두 배우

오래 그리워하고 다시 만나서도 불타오르면 
그것이 가장 힘센 사랑이라고 쉽게 믿지만,
아무도 사랑하지 않으면서 아무거나 사들인다고 생각되던 남자도
아내만큼은 말 그대로 목숨바쳐 사랑했다는 이야기.
이렇게 쓰면 꽤나 낭만적인 사랑얘기 같지만 
영화는 꽤 건조한 편이다.
원치 않는 상대에게 헤어지자는 말은 못하면서 
절대절명의 순간에 외면이 가능한 걸 보면
수동의 죄라는 것도 분명 있는 게 틀림없다.
변명하기도 좋지, 난 아무짓도 하지 않았다-라고 하면 되니까.

그 시절엔 몰라도 이제는 식상할 정도가 된 
김중배와 결혼한 심순애와 이수일의 외도랄까.
(근데 이 김중배는 서툴 뿐, 사악하지도 않고 낭만도 있다)
운명에 대한 어쩔 수 없는 끌림이 엮여있지만
이야기의 흐름 자체는 별로 인상 깊지 않았다.
다만, 매 장면이 어느 잡지의 표지가 되어도 이상하지 않을 만큼 
꽤 멋있었다는 것, 
특히 여주인공은 거의 화보집 수준이었다.
잡지나 패션쇼가 아니면 길거리 같은데서는 절대 볼 수 없을 패션감각을
침실에서, 욕실에서, 거실에서, 심지어 길바닥까지 끌고 나와 주신다.
이자벨라 로셀리니와 많이 닮았다.


윌로씨의 휴가|Les Vacances de M. Hulot|1953

덕분에 휴가 잘 다녀왔네요^^

영화는 바캉스족이 떼로 몰려다니는 기차역에서 시작한다.
땡깡부리는 아들에게 싸다구를 날리는 호기어린 엄마,
테니스라켓에 턴테이블까지 바리바리 싼 무거운 짐가방을 들고
기차가 도착하는 승강장 여기 저기로 옮겨다니는 사람들.

이어서
콩알탄을 밟고 지나가는 것 처럼 끊임없이 안쓰러운 소음을 내고 달리는 
윌로씨의 자동차가 등장-본격적인 휴가의 시작이다.
뚜껑달린 오토릭샤 같은 윌로씨의 자동차는
윌로씨 한 명만 타도 몸이 꼭 낄 것 같은 크기에
옆에서 큰 차가 먼지바람이라도 뿜고 달려가버리면 
너무나도 괴롭게 비틀거린다. 

친절한 윌로씨는 
짐을 든 숙녀를 외면하는 법이 없고
뒤늦게라도 인사를 빠트리는 적이 없으며
실수는 엄청나게 많이 하지만
똑같은 실수를 하지 않는 걸로 봐서는 
절대 바보가 아니다^^

나는 슬랩스틱 참 좋아하는데
언제부터인가 슬랩스틱은 
연기자의 엄청난 고통이 없이는 볼 수 없는 슬픈 장르가 되어버렸다.
그런데, 자크 타티감독은 
모든 물건들이 살아있는 것처럼
서로에게 반응하는 모습으로 존재감을 나타내는 
차원이 다른 슬랩스틱의 세계를 펼치고 있다.
타티감독의 슬랩스틱은 
다른 영화들이 내면연기하는 동안, 
움직일 수 있는 모든 것들의 에너지를 드러내고,
휴가의 느긋한 느낌을 치밀한 짜임새로 보여주면서
움직임의 힘을 느끼게 해준다. 
슬랩스틱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는 청량감 넘치는 고전.
저가타이틀의 바다에서 보물을 건진 기분이다.

내가 뽑은 이 영화의 베스트.
아이스크림 가판대 너머로 손 밖에 안 보일 정도의 애기가
아이스크림 콘 두 개를 산다.
양 손에 하나씩 들고 제 무릎만한 계단을 조심조심 올라가면서 
한 계단 올라설 때마다 이쪽저쪽 아이스크림을 살핀다.
이 영화는 슬랩스틱이니까
보는 관객은 저 아이스크림이 언제 못 먹게 될 지 조마조마하고
너무나 집중해서 아이스크림을 들고 가는 애기가 워낙 귀엽다보니
다가올 비극에 가슴까지 아플지경이다.
드디어 숙소에 도착했지만 손잡이가 높다.
애기는 어쩔 수 없이 아이스크림을 든 손으로 제 머리위의 손잡이를 잡고 돌리고
아이스크림은 180도에 가깝게 뒤집어지는데....
놀랍고도 다행스럽게도 그대로다.
애기는 계속 조심조심 들어가 형에게 아이스크림을 성공적으로 건넨다.

추천이유.
매력적인 등장인물의 마력을 적극 활용하였으며, 
아이스크림 구입-전달-시식의 단순한 구조 속에 
서스펜스와 반전을 함께 담아낸 명 연출^^  

PS. 헐...윌로씨가 감독이었네~

KBS 드라마 스페셜 단막 2013 - 내 친구는 아직 살아있다

우정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시절, 
대어급 연기와 매력을 발산하신 주인공 여러분들 박수~!

완전히 사망하신 줄 알았던 단막극이
힘겹게 부활한 기념으로 지난 주부터 열심히 챙겨보고 있는데
오늘은 꽉차게 만족했다.
원래 청소년시절에도, 순정이라면 사족을 못쓰면서도
학원순정물은 유치하다(^^)는 이유로 외면했는데
현장감 넘치는 캐릭터를 자랑하는 청소년들의 맹활약 덕에  
집중해서 봤다.
어디서 왔나 했더니 호평 자자하던 학교시리즈 작가의 작품이었다.
청소년들을 다루는 솜씨가 어쩐지 예사롭지 않더라니...

요즘 화면 속에서 만나는 학생들을 보고 있자면
저 중에 내가 알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도 있겠지 싶으면서
이 힘겨운 획일화 생존전략과 어쩔 수 없는 개성의 생존전략 속을 
잘 살아내고 있는 그들이 참 대견스럽다. 
그러면서도 직접 대하고 보면 
싸가지 없다든가. 생각이 없다든가 라는
그야말로 진짜 생각 없는 진단을 손쉽게 내리게 되니
변화에는 좀 더 많은 교감과 시간이 필요하겠지.

아직 방송 후의 기사는 별로 올라오지 않아서 좀 아쉬운 와중에
완전 사건사고 중심 스타일의 냉정한 타이틀 발견-픽션을 대하는 논픽션의 자세랄까.
그래, 이제 연예기사도 이렇게 팩트 중심으로만 가는 거다, 푸하하....



게임의 규칙|The Rules of the Game|1939

순정은 지고 마는 게임의 법칙

영화가 시작되기도 전에 
이 영화는 누구를 비난하려 한 것이 아니라는 자막이 떡 하니 뜨지만
겹겹히 쌓인 삼각관계에서 
오직 순정이면서 쿨하지 못했던 두 사람만이 
사건의 피해자와 가해자가 되며 끝나는 관계로
감독의 의도가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영화속 부르주아들은 욕을 좀 먹게 되어 있다.

굉장히 솔직한 등장인물들은 꽤 쿨하다. 
열렬히 구애를 하다가도 
적당히 설득되기도 하고
쿨하게 넘어가는 듯 하다가 
다시 열정적이 되기도 한다. 
가식적인 상류사회라기보다는 
순간의 욕망에 충실해도 되는 자유가 뿜어져 나온달까.
전반적인 화면은 충분한 거리를 두고 피사체를 담고 있어서 
어떤 장면은 그 시절의 기록영화 같기도 하다.
앵글도 최대한 눈높이에 맞춰진 편안한 구성.
움직이는 그림처럼 보이기도 하는데 
화가의 아들인 르누아르 감독이란 걸 알아서 더 그렇게 보였는지도.
아버지 그림을 팔아 영화를 만들었다는 소설 주인공 같은 감독^^
좀 신기했던 건 굉장히 진짜같이 죽던 사냥감 동물들.
진짜 죽인 건...설마 아니겠지.

나는 알 수 없었던, 명성이 자자한 이 영화의 미덕은
오손웰즈의 시민케인에 앞서 
딥포커스-화면의 모든 인물들에게 촛점을 두는 기술-를 시도해서 
보는 사람에게 주도권을 주었다는 점, 
스태디캠이라는 휴대 카메라가 없던 시절에 
공간을 이동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자연스럽게 찍었다는 점,
배경에 있는 인물들도 항상 연기와 동작을 하고 있어서 
다양한 서브플롯을 묘사하고 있다는 점,
전쟁을 앞 둔 유럽사회의 지배층의 날모습을 우스꽝스러운 그대로 드러냈다는 점
등 이라고 한다.    

지금보면 놀라움이라기보단 저 시절에도? 정도의 감탄이 나올 뿐이고
그 시절의 정서를 공감하는 것도 쉬운 일이 아니데
어째서 위대한 영화의 목록에는 이 오래된 영화들이 상위를 차지하는 걸까.
평론가에게 위대한 영화란 더 오랜 세월을 살아 견뎌내는 생존력순인 걸까. 

[르누와르의 소개]
6분 정도 되는 짧막한 감독의 직접 영화소개 서플이 있다.
처음 개봉했을 때 얼마나 처참하게 관객들의 외면을 받았는지, 
-한 남자관객은 들고 있던 신문에 불을 붙여서 극장에 불을 지르려 했고,
관객들은 의자를 짓밟으며 난리를 쳤다는데,
(감독이 한 얘기는 아니지만) 
아마도 '프랑스 사람들은 조롱하는 것만 좋아하지 
조롱받는 건 아주 싫어하기 때문'일거라고 한다-
그래서 영화가 제대 보존도 되어 있지 않은 바람에 
나중에 다시 재건하는 것도 힘들었다고 한다. 
결국 한 장면이 빠져서 완전한 복원은 실패했지만
그다지 중요한 장면은 아니라 감독도 오케이.
자신은 누구를 비난할 의도가 아니었음을 계속 강조하면서
오히려 내숭떨지 않는 인물들을 즐겨달라고 말했다. 
나중에 평가를 다시 받게 되어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사 놓은지는 꽤 된 영화인데 그래서인지 숙제한 기분이다, 핫핫핫...

스미스 부부|Mr. & Mrs. Smith|1941

괜찮은 유머코드에도 불구하고...

예쁘기는 한데, 피곤할 정도로 따지는 스타일에, 솔직하지도 않고,
챙겨주길 바라고, 변덕스럽고, 내숭떠는 전형적인 고양이 스타일의 여자와
섬세하지 않고, 경쟁심이 있고, 질투로 사랑을 깨닫는 둔한 면이 있고, 
너무 정직한 막무가네 남편의 옥신각신 커플 이야기.
싸우다가 바닥까지 가는 거야 어쩔 수 없겠지만  
전 남편의 욱하는 성질을 욕하다가
폭력을 싫어하는 새 남자친구에게 차라리 부인을 때리는 남자가 더 낫다고
소리지르는 장면에서는 할 말을 잃었다.
설마 이 영화가 공포영화의 거장이 만든 코미디라서 실패했다고 분석한 건 아니겠지.
유머코드는 꽤 맘에 들었는데 말야.
로버트 몽고메리의 코믹연기도 일품.

레베카|Rebecca|1940

 궁금한 레베카가 적극 등장하는 포스터

헐...묵직한 반전이 숨어있던 레베카.
영화는 공포 서스펜스와는 거리가 멀고 심리물이랄까...암튼 그렇다. 
처음엔 제목이 레베카면서 앞이 왜 이렇게 길지? 생각했는데
끝까지 보고 나니 이유는 좀 알 것 같다.
그렇긴 해도 히치콕의 영화들은 좀 더 짧은 게 더 집중에 좋을 듯 싶다.
레베카만 해도 두시간이 넘고.
1938년에 출판된 베스트셀러 원작이 있는 영화인데
보는 사람을 원하는대로 믿게 만드는 비상한 재주를 선보이는 히치콕 덕에 
댄버스 부인과 맥심을 솔깃하면서 따라가게 된다. 
코빼기도 안보이는 여자의 이름이 제목이면서
각자 다른 감정, 다른 이유로 
그 여자의 기운 아래 벗어나지 못하는 인물들-
신선하다.  

반전의 시작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지만
이 시절의 여배우들 치고는 꽤 연기력 좋아보이던 조안 폰테인.
검색해보니 막스 오퓔스의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에 나온 적이 있다.
시기상으로는 이 영화가 히치콕의 헐리웃 데뷔작이지만
다른 영화들을 먼저 보고 난 다음이다보니
평범한 분위기에 연기가 돋보이는 조안 폰테인과
등장만으로 분위기를 만드는 그레이스 켈리의 비교가
요즘에도 한창 벌어지는 얼굴로 반을 먹고 들어가는 배우논쟁을 생각나게 한다.
레베카에 대한 설명이 나올 때마다 자연스럽게
머리를 검게 염색하고 연기를 아주 잘하는(^^) 그레이스 켈리가 떠올랐다.



전설적인 배우라는 이름만 듣던 로렌스 올리비에를 드디어 처음 봤는데
미남배우의 샘플 같은 얼굴이다.
이때만 해도 영국과 미국의 액센트는 지금처럼 많이 다른 건 아니어서
약간 담백한 정도의 말투를 구사하는데
좀 뻣뻣하면서도 디테일한 표정이 없어서
처음엔 로렌스 올리비에가 맥심이 아닌 줄 알았다--;;
성격 상 여기서는 맞는 캐릭터이긴 해도
지금처럼 얼굴근육단련이 남다른 배우들의 시절은 아니었던 것 같다.

[DVD코멘터리]
제작자인 셀즈닉과 히치콕에 대해 책을 쓰기도 한 영화학자 Leonardo Jeff가 들려주는
촬영장 뒷얘기와 히치콕 영화해설인데,
일단 한 사람이 영화의 처음부터 끝까지 이어지는 코멘터리를 한다는 것 자체가 대단하고,
그래서인지 모르겠으나 레베카 외에 다른 히치콕 영화와 시민케인까지 언급된다.
히치콕 팬이라면 꼭 들어보고 싶을 코멘터리.

일단 말초신경을 자극할만한(^^) 뒷 얘기는
로렌스 올리비에가 여주인공인 조앤 폰테인를 맘에 안들어해서
촬영 중에도 당시 연인이었던 비비안 리로 바꾸자고 졸랐다고 한다.
그때도 여자관객들은 로렌스 올리비에가 눈썹을 만질때마다 꺄악~을 발산했다고.
드윈터 역에 시민케인의 오손 웰즈도 물망에 올랐었는데, 인물이 좀 안되서 탈락^^
로렌스 올리비에는 그 뻣뻣 스타일의 연기로 명성이 자자한 배우라,
연애물은 어색하지만 의미있는 즉흥연기를 더할만큼 인물표현이 탁월했다고 한다.
여기서는 담배피우는 타이밍을 두고 여러 번 칭찬한다-성적 긴장감을 제때에 잘 표현한다고.

내 눈에 꽤 연기를 잘하는 것 같았던 조앤 폰테인에 관한 여러가지 뒷얘기도 나오는데,
일단 히치콕은 표정 변화가 많은 연기 보다 네가티브 연기
-예를 들면 화를 내기보다 미리 미소를 짓고 있다가 미소가 가시는-를
좋아했다고 한다-히치콕 영화의 배우들의 무표정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것.
히치콕은 애초에 조앤폰테인을 캐스팅 할 생각도 없었는데
제작자 셀즈닉의 아내이자 작업에 참여했던 아이린 셀즈닉의 강력한 추천으로 캐스팅.
클로즈업 장면에서는 눈썹이 1미터나 움직이는 것 같으니 치켜뜨지 말라는 주의까지 받고
눈물이 안나오는 바람에 자기가 자청에서 히치콕에게 뺨을 한대 맞고 눈물장면을 촬영했다고 한다...
하여간 그렇게 힘들게 찍었는데도 폰테인의 연기는 감독과 제작자 맘에 안들어서
결국 제작자의 사후 편집기술과 여러 가지 후반작업으로 연기력을 극대화시켰다고--;;
영어액센트도 여기서는 배우들이 거의 다 영국배우들이었고
유일한 미국인 조앤 폰테인이 서툰 영국영어를 구사한 것이라고^^
게다가 폰테인은 다른 배우들의 왕따에도 꽤 시달렸다는데...
이 모든 얘기를 들으면서 다시 보자니 영화속 주인공과의 싱크로율 상승.

레베카는 히치콕의 헐리웃 입성영화이지만 영국배우, 영국감독, 영국배경, 영국원작, 영국스타일이 만들어낸 영국영화의 전형이라고 했다.
몇 몇 장면에서는 카메라의 움직임과 인물의 심리상태를 자세히 설명해주는데, 솔직히 담배가 성적인 긴장을 불러일으킨다는 말이 몇 번 나오는데도 그건 통 공감을 못하겠는...
드윈터 부부의 애정관계는 분석을 들으며 다시 보게 된 장면들.
얼핏 보기엔 점점 가까와지는 것 같았지만
맥심은 고백하는 순간까지도 아버지 같은 애정표현만 하거나 거리감을 두고 있었다.
여기까지는 좋았는데 왜 마지막 장면에서 남편의 변화는 아무 얘기 안하고 넘어갔을까나....

영화가 완성되고 나서 셀즈닉은 여러 번 시사회를 하면서 영화의 편집을 바꾸었다고 한다.
그래서 파벨의 대사였던 '암이 전염되나?'는 원작에 있더라도 바로 삭제되었다고.
시사회에서 나온 여러 질문도 소개해준다.
댄버스-레베카의 관계, 댄버스-파벨의 관계,
왜 폰테인의 배역은 이름이 없는지,
맥심은 왜 댄버스를 계속 데리고 있었는 지,
레베카는 왜
그렇게 수상한 병원(진료실도 아닌 개인 아파트 같은 곳에 모든 자료가 있는) 의사의 진단을
철썩같이 믿었는지 등등.
이런 의문점에 대해 히치콕은 Icebox Factor라는 말을 사용했다고 한다.
부부가 동네극장에서 영화를 보고 집에 돌아와
냉장고에서 음식을 꺼내 먹으며 '아까 영화에서 그건 왜 그랬지?'라고 얘기할 만한 것들.
코멘터리에서는 이런 부분들을 심리묘사에 쏟은 정성에 비해
디테일에는 소홀했던 것으로 정리해준다.
히치콕은 이런 문제는 별로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단다.
거장은 부족한 부분에도 새로운 용어를 만들어 붙이는 것으로 끝내는구나.

내용이 늘어진다는 구박에, 배우 연기지적까지
제작자의 역할이 그렇게나 구체적으로 여러 단계에서 다각도로 이루어지는 지 몰랐는데,
모든 제작자들의 전부 이렇게 일을 한다면
감독들은 참 작업하기 만만찮을 듯.
어쨌거나 내용을 다 듣고 나니
이 영화는 히치콕의 영화가 아니라 셀즈닉-히치콕의 영화라 불러야 할 것 같다.
코멘터리에 한글자막이 고맙긴한테 번역이 엉망이라서
한글인데도 문맥 이해가 안되는 부분들이 꽤 되지만,
어쨌거나 유익했던 서플.
신기하게도 코멘터리와 함께 본 두 번째는 전혀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역시 매 장면 조목조목 뜯어보다 보면 시간이 빨리가는 거구나.

나는 비밀을 알고 있다|The Man Who Knew Too Much|1956

대체 어떤 남자를 말하는 건 지?

무려 런던심포니 오케스트라와 모로코-런던을 잇는 스펙타클.
초반의 의외의 진행은 흥미진진했지만
하지만 화려한 스펙(^^)과는 별개로 허리가 뚝 끊어지는 느낌이다.
그도 그럴듯이 죽은 남자의 정보가 너무나 결정적이다보니
우연히 현장에서 맞딱뜨린다는 기막힌 구성의 빛이 바래고 말았다.
채플이란 이름을 들으면 사람보다는 장소가 먼저 떠오를 것 같은데도
일부러(아마도) 헤매준 것을 빼면
이 부부는 수동적으로 고난의 파도를 탔을 뿐
뭔가를 해결해가는 재미는 별로 없다.
사람들은 꽤 얽혀 있지만
뭔가 굉장한 일이 벌어질 것 같은 기대감은
초반에 나온 게 다라서 금방 금방 수그러든다.
얼굴은 처음 보는 도리스 데이의 음색은 멋있었지만
뒷부분의 노래가 늘어질 땐 듣기 싫기도.
하지만 히치콕은 거장답게
산뜻한 엔딩으로 마무리를 한다. 엔딩씬-깜찍하다.
뻔한 대사가 오갈 장면에 음악을 쓴 경제성도 돋보이지만
전체적으로는 좀 늘어지는 느낌이랄까...

런던에 도착하자 남편은 결정적인 단어였던 엠브로스 채플을 찾아 전화를 걸고
조의 친구들이 곧 들이 닥친다.
내색하지 않으면서, 유괴범을 찾아 아들을 되찾기 위해서는 아주 중요한 전화라
대량의 손님들이 찾아올 예정인 호텔방에서 전화를 거는 것이 부주의해 보여야 하는데도,
히치콕은 반가움을 표현하는 아내의 친구들을 시끄러운 훼방꾼으로 보이게 만든다.
초반에 꽤나 조심스럽게 남편에게 충고까지 하다가
위기에 닥쳐서는 그냥 드러누운 것 말고는 한 일이 없는 조를 보면서 짜증이 나기도 한다.
공연장을 찾거나 경고음을 발사(^^) 하게 된 것은 우연아니면 너무나 여성스러운 반응일 뿐,
(이 영화덕에 비명지르기의 위상이 높아지지는 않았으니 여자-비명의 도식만 강조된다)
어떤 경우에든 일관성 없이 부려먹을 캐릭터 예비인력으로
여자를 배치했기 때문에 가능한 상황이었겠지.
갈등의 시작이 되거나,
남자의 마음을 후려서 절대절명의 위기를 벗어날 수 있는 히든카드의 역할은
아름다움이라는 관상용 속성만을 반영한다.
이게 아닌 여자는 히치콕 영화 속에서는 별 쓸모가 없다.
나름 기지넘치는 대사를 해주시던 이창의 간호사가 있지만
그 분은 사실 남자였어도 아무 상관없는 캐릭터.
조의 엇갈린 육감으로 인종차별은 가볍게 극복해주셨으면서
같은 인종 내 다른 인류에 대한 성찰이 부족하다는 것은 심히 유감이다.
이제서야 어렴풋이 기억난다-페미니스트들이 히치콕을 싫어한다는.
좋아할 수가 없겠네, 정말...

영화 시작할 때 심벌즈 아저씨,
유난히 불안한 눈동자, 긴장한 얼굴-귀엽다^^

다이얼 M을 돌려라|Dial M for Murder|1954

오, 멋진 포스터~!

치밀한 계획의 승리랄까.
이 영화야말로 다른 서스펜스에서 많이 인용된 이야기인 듯하다. 
워낙에 자극이 백만배 강화된 시절이다 보니
딱 한 번 등장하는 살인의 현장은
별로 공포가 전해지지는 않았다^^
이창에서도 그랬던 것 같은데
평소 유순하게 당하던 사람들의 분노는 살의로까지 이어지고 있다.
전에 잠깐 키우던 햄스터 커플을 생각나게 하는 구나.
매일 수컷을 괴롭히던 암컷이 어느 날 아침 시체가 되어 있었던...
다이얼M에서는 미리 치밀하게 계획을 하고 
계획단계에서 이미 협박이 들어갔다는 점에서 확실히 악질이다.
이 이야기가 모두 한 사람 머릿속에서 나왔을 텐데 
준비한 사람의 치밀함과 수사하는 사람의 치밀함을
어쩌면 이렇게 그럴싸한 수준에서 잘 배분했는지-감탄이 절로 나온다. 
모험이었는 지는 몰라도 
이 영화는 처음 25분 이상이 같은 장소에서 일어난다. 
공간은 그대로 두고 사람이 바뀌면서 변화를 주는 식이다. 
남편이 의뢰를 하는 장면에선 주인공이 쉴새 없이 계획을 떠들어대는데
대화의 진행 단계에서 보는 사람이 궁금할만한 질문을
영화속 상대방이 물어봐 주면서 계속 몰입하게 만든다. 
이창에 비해서는 
보이는 장면이나 촬영의 효과보다 드라마의 힘이 더 강했던.
음악도 별로 등장하지 않고 이야기의 힘으로 몰아부치고 있다.
그나저나 홈즈의 후예라 그런거야?
영국경찰 너무 듬직하구만!
50년대에도 이미 2분 안에 출동에
멋진 해결솜씨!!

그런데.....
이런 훌륭한 구성에도 불구하고 
또 쫌 지루하긴 하다^^
이 정도라면 무서워서 못봤던 사이코도 함 도전 해볼까?

 애인, 여자, 남편
그레이스 켈리는 여기서도 돈 많은 부인^^
아무래도 부자 여자 전문배우였나보다...

약지의 표본|L'Annulaire|The Ring Finger|2005

 이국적인 미모의 여주인공은 역시나 기이한 남주인공에게 퐁당

유머 대신 몽환 버전의 세크리터리?
격렬함 없는 감정 표현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보이는 묘한 느낌.
벗어나긴 싫다며 자유를 거부하고서
사랑을 자유롭게 선택한 건 멋지지만
연애과 아무 상관없는 약지를 표본으로 하겠다는 이유는 대체 뭘까.
그가 없던 과거와의 이별인 걸까?

실체로 존재하는 것이면 뭐든 표본으로 만들어 준다는 이 특이한 연구실은
비가 오거나 무더운 날이면 여늬 곳들 처럼 찾아오는 사람이 적기도 한 그런 곳이다.
사람들은 버릴 수 없는 것, 아픈 것을 표본으로 만들어 이곳에 남겨둠으로써
잊을 수 있다고 한다.
잊기위해 소멸시켜 버리는 것이 아니라
다시는 찾지 않으려고 온전한 모양으로 정성껏 복원해 표본을 만든다는 것이
그럴듯하다.
일본 소설 원작의 프랑스 영화라는 조합이 묘하게 잘 어울리던...
 
옛날 영화들에 이어
느린 호흡 훈련에 도움이 된다.
뭔가 빵-터지거나 쉴세 없이 이어지는 대사에 익숙해져서
장면 자체에 대한 집중력이 너무 약해져 있었던 것 같다.
사실 대사 없는 장면들이야말로
꽤나 꼼꼼히, 의도적인 설계를 거쳐
어쩌면 대사 이상을 말하고 있을텐데...

많이 본 건 아니지만 프랑스 영화는 중간이 없다.
과장된 코미디, 아니면 정지가 이어지는 것 같은 느린 영화들.
프랑스 블럭버스터를 한 번 봐야 될 것 같은...

지금 이 분들은 표본을 채취하고 계십니다^^

경축! 우리사랑|Viva! Love|2007

해숙씨, 러브 축하!

전문가 20자평에 박평식이 '축하하기보다 양해할 만한 사랑'이라고 썼다.
푸하하....이 정도 표현은 해주셔야지~!
하지만 그건 철저히 관찰자 시점이고 (아마도) 이 영화의 제목은 봉순씨 관점일테니
축하가 맞는 것 같다.
요즘 심심찮게 등장하는 콩가루 집안의 미덕(^^)이 귀엽게 그려지는 
의외의 쾌작.
좀 덜 과격한(나이차 면에서) 명랑서민버전의 은교라 할 수 있겠다.
봉순씨는 딱히 대단한 걸 배우고 사는 사람은 아니지만 
금욕주의 시인인 이적요 처럼 돈 주고 이성을 산 적은 당연히 없다.
러브라인의 어이없는(^^) 폭발도 그렇지만
'내 집'에 대한 '나'의 권리를 주눅들지 않고 실천하는 
봉순씨의 당당함이 더 맘에 들었다. 
폭로전으로 갔으면 부부클리닉이 되고 말았을텐데
적당한 코믹모드로 넘어간 것도 깜찍하다.
포스터에서는 뻔뻔하다-지만 좋을 동안 좋아하겠다는 거야 어쩌겠나.
때되면 보내준다는 소박한 봉순씨.
  
두 가지 흠이라면 
하나, 토하기 관련 장면들 너무 적나라해서 
무슨 공포영화도 아닌데 눈가리고 넘겼다는--;;
둘, 명색이 로맨스물인데 키스 정도는 괜찮잖니. 
봉순씨를 열심히 여자로 살려놓을 땐 언제고
결국 아줌마로 박제시켜 버리다니, 
뭔가 앞 뒤가 안맞는 느낌.
로리타 영화들의 관음증을 꼬투리 잡을 꺼리를 던져주기는 하지만. 

그래도 좀 실용적인 경고하나-술 작작 마시지 않으면 안 한 일로 괴로워하게 된다 ^^

 단란한 가족의 뒷모습의 앞면
'내사랑 울보'라니 ㅋㅋㅋ
 귀여운 봉순씨와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최강동안 71년생 김영민

디어 한나|Tyrannosaur|2011


분노와 구원의 전이.
물질만능주의시절에 사람의 힘을 대놓고 강조하는 드라마들이 만들어지는 것 역시
사람의 힘을 보여주는 것 같아 한 편은 든든한데
그렇다고 해서 느슨함이 눈감아지진 않는다.
며칠 일을 안 나가도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유능한 직장인,
아무도 안 믿는다며 폭력을 몸으로 때우는 선진국 여자.
이런 걸 궁금해하는 내가 오바인가.
하지만 처음 제프를 만났을 때 한나는 그게 맹목이든 가식이든
배우고 싶은 모습이었다.
타인을 현재의 모습 있는 그대로 바라보고 손을 내밀 수 있으려면
얼마나 깊어져야 할 지.

예전엔 서양 영화속 장례식 장면이 참 좋았다.
있을 때 잘하지 죽은 다음에야 찾아와서 한바탕 통곡으로 속풀이를 해버리는 게
무슨 의미가 있나 싶어서.
근데, 이번엔 좀 다른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곧 잊을텐데
장례식까지 울지 않으려고 노력할 필요 없잖아.
춤 한번 노래 한번으로 금방 되찾을 수 있는 웃음인데
하루쯤 미뤄도 되잖아.
울어도 되잖아, 굳이 빨리 웃으면서 보낼 거 없잖아...
그래도 이 영화 속 장례식 노래는 맘에 들었지만.

극장에서 봤다면 몰랐을텐데
다운받은 파일은 항상 영화 등급이 표시된다.
영화 시작에 선정성이 다소 높음으로 나와있는데
선정적인 장면은 하나도 없고 강간씬이 하나 있다.
강간이 폭력이 아니라 선정이라니 분노가 상승했다.
후지다, 정말.

시민케인|Citizen Kane|1941



존재할 때 미처 몰랐던, 혹은 지나쳤을 모습을
세상을 떠난 후 하나 둘 맞춰간다면 어느 것이 진짜일까.
기자는 그닥 케인의 인간 자체에는 관심도 없어 보이던데.

약간 반항심도 있었던 어린 소년 케인은
확고한 어머니의 의지로 부모와 떨어져 살게 된다.
자신이 부모를 떠나게 된다는 사실을 안 케인이
자신을 맡아 줄 은행가에게 덤비자
케인의 아버지는 애들은 역시 매가 필요하다는 말로 사과를 한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느냐고 묻는 케인의 어머니, 남편이 그렇다고 하자, 말한다.
그래서 이곳은 아이키우기에 좋은곳이 아니라고.

새끼 언론재벌 시절의 케인은
그 동기가 돈이 아니라 야심이라는 것을 빼면
다른 재벌들과 다를 것 없다.
24시간 취재시스템으로 바꾸고, 직원을 갈아치우고,
다른 언론사들을 마구 먹어치우고, 잘 나가는 경쟁사 임원을 통째로 스카웃 하고,
지키겠다는 생각보다는 뭔가 전기를 마련하기 위해
진실만을 보도하겠다는 편집인 서약까지 해버린다.
남을 신랄하게 비난하려면
똑같은 짓을 해봐서 그 속을 꿰뚫되
자기 자신은 절대 돌아보지 않음으로써
상대를 향한 공격이 날이 항상 날카롭게 서있어야 한다-는 것이
아마도 케인 스타일~

그러던 그는 갑자기 사랑에 빠져 흑백이라 안보이지만  볼빨개짐 충만했을 결혼도 한다.
물론 그 결혼은 재벌답게(^^) 금방 다른 사랑으로,
겉보기엔 재능도 없던 여가수를 위해 이혼도 불사하고, 정치도 포기하고,
노래선생을 붙여가며 오페라 극장을 장만해주고, 성까지  지어주었다지만,
정작 그녀는 모든 것이 행복하지 않았다고 고백한다.
케인은 그저 자기방식을 고집하는 대상이 필요했을 뿐이라는.
이 모든 것은 진짜로 영화속에 하나도 안 부러울법한 자태로 등장한다
-규모는 어마어마하지만 별로 들어가 살고 싶지는 않은 세계의 느낌이랄까...

가장 가슴아픈 이야기는 케인과 가장 오랜 우정(이라고 치자)을 나눈 리랜드에게서 나온다.
그는 케인을 가장 많이 아는 사람 같은데
케인에 대해서 아주 작은 연민도 보여주지 않는다.
별로 가깝지 않은 사람들의 기억속의 케인이 더 호감이 갔던.
로즈버드의 정체 때문에 결말은 식상해진다.
요즘도 많이 반복되는 주제지만 이런 결말은 인생을 참 무책임하게 만든다는 생각이 든다.
케인에게도 깨달을 기회는 많았다, 그가 선택하지 않았을 뿐.
스스로를 가두는 선택을 계속 하면서 이런 안타까운 회한이라니.



이 영화가 위대한 영화 1위라는 것은 호기심과 반감을 동시에 주는데
아마 이런 장면이 40년대에 찍혔다는 것에 대한 
호들갑스러운 호평도 1등에 기여했을 것이다. 
(놀랍게도 크레딧에 '특수효과'가 있다!)

케인을 항상 올려찍는다든가, 
크로니클사의 임원사진이 케인의 신문사 환영식으로 이어지던 신선한 장면전환
등등 기술적인 새로움이 많은 것은 사실이지만
솔직히 이 느릿느릿한 이야기는 좀 지루했다.
아마 그 시절에 봤다면 더 괜찮게 느꼈을 듯.
  
흑백영화의 미덕-20대의 오손 웰즈가 케인의 노년까지 연기하는데 아무 무리가 없다,
쫌 팽팽한 아저씨 정도? ㅎㅎ

그래도 아직 모르겠어, 시작할 때 나오던 그 원숭이들은 뭐지..?
정성일 아저씨가 필요해~~!
이 분께서는 이 영화를 또 얼마나 알차게 즐기셨을지 생각만해도 부럽다...

이창|Rear Window|1954

요즘 영화 같은 포스터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를 볼 때도 느꼈지만
그 시절의 미국은 참 괜찮아 보인다.
원칙도 있고, 적당한 인정도 있으며, 풍요롭기도 하다.
(그 시절에 이미 지금 패악을 떠는 자본주의 병폐가
윗동네에서 슬금슬금 내려오고 있었겠지만...)
완벽한 애인이 너무 과분하다는 배터질만한 이유로 결혼을 망설이던 사진기자가
모험촬영 중에(약간의 은근한 압력이 있었으나 아무튼 자발적이기도 했던)
잠시 휠체어 신세를 지는 사이 이웃집들을 엿보는 데 맛이 들린다.
영화소개글에 처음부터 살인사건을 목격한다고 나오는데
그 사건은 영화 중반부나 되어야 등장하고, 사실 그는 목격을 하진 못했다.
영화 중반부까지는 동네 사람들의 사생활과
공통점이 없이 너무나도 다른 삶을 사는 이쁜 부자 애인과의 관계에 대한 고민이 등장한다.
어째 이웃들도 그닥 바람직한 결혼생활을 보여주지 않아서
그의 망설임이 계속 탄력을 받는데,
그 중 최악이었던 한 부부 중 부인이 어느 날 사라지면서
심심한 그는 열심히 그럴듯한 추론을 시작한다.
처음에는 그를 구박하던 방문 간호사와 애인도 금새 이 흥미진진 추리에 퐁당,
나중엔 적극적으로 진상조사에 나서게 된다.
그 사이 애인과의 상호적응력은 완전 상승.
 
주인공은 엿보기를 포기하지 못하지만
법보다 높은 윤리적 수준에서 고민을 한다.
살인사건을 해결했다 한들 이것이 윤리적인가-라는.
훌렁 훌렁 창문 열고 살던 연립주택 동네는
미쿡스타일이라기보다는 아시아 스타일 같아서
옛날엔 서양도 저렇게 참견들 하고 살았구나를 확인시켜 준다.

평범한 연주곡을 배경으로 소근거리며 전화통화하는 장면에서 느꼈던 서스펜스는
꼭 음향으로 쎄리거나, 음악으로 설치지 않아도
분위기는 충분히 잡힌다는 것을 보여주었다.
의외로 클라이막스는 순식간에 후루룩 지나갔지만.
(범인의 자백이 어찌나 빨랐던 지, 묻기도 전에 말해주는 경지^^)
사진기자라는 직업이 내용전개 상 이렇게 실용적으로 써먹히는 것도 처음봤다.
한 가지 더 놀라웠던 건,
지금 뉴욕 한복판에 갖다놔도 그 느낌이 그대로 살아날 것 같은 그레이스 켈리의 패션이다.
그 시절에 이미 1000불이 넘는 옷을 사는 사람이 많다는 대사가 나오기도 하고,
마지막 장면에서 펼쳐든 바자르 잡지도 요즘과 표지가 많이 달라보이지 않던데,
이건 단순히 복고의 영향인 걸까? 아니면 신기에 가까운 감각일까?

극장간판을 연상시키는 포스터
이건 좀 만화 분위기
당대 최고 배우 둘을 제압하는 히치콕의 패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