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스트|Beasts of the Southern Wild|2012

욕조섬의 보스-허쉬파피


정신없는 핸드헬드 때문에 시작은 그저 그랬다.
아, 촌스럽게 '아트'티를 팍팍내는 것인가....
하지만 곧 좀 이상해보이는 상황에 빠져들게 된다.
독특한 이국 풍경이라기엔
그저 경계 밖 좀 지저분하고 단순한 삶인가 싶더니
금새 그 경계도 훌 쩍 넘어
좀 많이 다른 아버지 윙크와 딸 허쉬파피의 가정이 드러난다.

니집 네집 가려쓰는 것도 그렇고
며칠 간의 아버지의 가출(알고 보면 강제 입원) 동안 이 아이는
누구에게 손을 빌려달라지도 않고
혼자 자고 먹고 기다린다.
푸쉬쉬한 머리에 불 붙을까 봐 고장난 냉장고에서 헬멧까지 챙겨쓰는
잘 배운 아이 허쉬 파피-너무 귀여워!
하지만 이들 부녀에게 다정한 재회는 없다.
아버지는 거칠게 등을 보이고 딸은 자기 집을 태워버리니까.

이 영화에선
엄마 포옹 한 번, 아빠 포옹 한 번으로도 아이에게 필요한 사랑은 전해진다고 한다.
하지만 더 중요한 건 아이가 보고 듣고 느끼며 자란 삶의 방식에 대한 자부심이겠지.
그 자부심을 가지고 이 아기는 아버지를 돌볼 줄 아는 보스로 다시 태어난다.

살 곳 조차 선택할 수 없는 문명의 자유란 게 얼마나 제한적인 것인지
오랫동안 잊었고 앞으로도 사장되어버릴 야성의 교육과 함께 사라질 것이 무엇인지
환타지로 보여주는 어른 동화, 비스트.

그 이상한 사투리의 정체는 뉴올리언즈-루이지애나,
인종차별이 심하기로 유명한, 엉클톰의 고장.
남부사투리를 쓰는 자유의 땅 욕조섬 주민이라니
그 섬을 떠나지 않겠다는 이들의 강렬한 저항이 더 설득력 있어 보인다.

하지만 영화가 끝나면 생각나는 건
푸쉬쉬 머리에 빵빵한 두 볼 사이로 입은 삐죽, 콧구멍에 기합을 주며
욕조섬을 누비던 허쉬파피다.






http://www.uproxx.com/webculture/2013/02/was-the-onions-quvenzhane-wallis-tweet-that-bad/

너무 귀여워!

2013 고양아람누리 마티네콘서트 1 - 88개 건반 위의 마술



오랜만의 피아노 공연이어서 설렜는데
겉으로는 좀 까칠해보이기도 하는 박종훈은 까칠은 커녕 편안했고
피아노에 대한 이런저런 얘기들은 유익했고
예상보다 풍성한 공연에 감동했다.
오늘도 쇼팽은 별 감흥이 없었지만^^
박종훈의 라캄파넬라는 정말 교과서 같은 느낌-안정적이면서 근사했다.
하지만 오늘의 발견은 박종해와 박쥐서곡.
처음엔 엥? 할정도로 생소리 같았는데 
들을수록 그는 나무건반의 소리, 때리는 소리까지 지나는 길에 들려주는 
야생의 피아니스트 ㅎㅎ
화려한 후반부에서는 피아노 한대가 오케스트라라는 말을 실감나게 해주었다.
오늘 폴로네이즈를 이 분이 쳤더라면-하는 아쉬움 살짝.

원래 없다는 앵콜까지 챙겨주신 친절한 종훈 씨.
여섯손으로 직접 편곡한 쇼스타코비치 왈츠와
스탠딩 여섯손의 신기원을 연 스팅은 비주얼 최강!
특히 마지막 스팅에서는 흥겹게 편하게 노는 것 같던 무대분위기가
새로웠다. 
만나서 술마시고 당구치고 카드하고 노는 것 보다
이렇게 피아노치고 노는 남자들-멋있다. 부럽다.

오늘 공연을 보면서 
마티네 때문에 일산에서 이사가기 싫어질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맘에 들어, 이런 공연을 이렇게 볼 수 있다는 것! 

분노의 윤리학|2013(스포일러 포함)






굉장했다-이 매혹적인 제목의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 전개.
개.새.끼.들의 경연장인데도 영화는 경쾌하게 나아간다.
점잖은 윤리학 강의가 결벽증 환자들을 더 움츠러들게 하고
사이코패스와 소시오패스들에게는 전혀 깨달음을 주지 못한다는
결정적인 한계가 있다면
분노의 윤리학이야말로
모두가 공감할 수 있는 설득력 있는 강론이다.
그들은 본능으로 움직이며
공포에 짓눌리지 않을 정도의 순간적인 에너지가 있다.
게다가 그 에너지들은 균형을 이루기에 견제가 가능하다가도
균형이 깨어지는 순간
서로를 해치면서 자멸로 이끌어주신다.
법을 어긴 놈은 법으로
법을 신경안쓰던 놈은 무법스타일로
비겁한 놈은 은밀한 방법으로
포기할 줄 모르던 놈은 다 털리는 방법으로
합을 맞춰가며
지들끼리 깔끔하게 완벽한 쓰레리 처리.
평범한 사람들이 욕으로 입을 더럽히거나 손에 피묻힐 필요없이 말이다.
이런 개.새.끼.들을 놓고
누가 더 나쁜가를 따지는 건 소모적인 일이다.
우열을 가리자면 어쩔 수 없이 누군가에게는 더 너그러워지던가 가혹해지면서
판단하는 사람들의 가치관까지 또 도마에 오를텐데
왜? 굳이?

조진웅의 굉장한 오버,
이 보람찬 과정을 깜빡하고
다시 평면적인 비난의 대상-그녀의 욕망을 집중하게 만든
과한 엔딩만 아니었다면
DVD소장감.
각본상 신인상의 유력주자로 조심스레 찜.

PS. 착한남자, 남쪽으로 튀어에 이은 세번째의 짝사랑남 김태훈.
이미지 경계경보.....

베를린|Berlin|2013




거대한 판 속의 개인,
직업이 특수할 뿐인 '사람'들의 이야기를 하고 싶었다는 류승완의 해설에 고개가 끄덕여 진다.
생각해보면
명색이 자유민주국가라는 남한도 이 모양인데
일당 세습독재를 벗어난 적 없는 북한이 멀쩡할 리가 없다.
남북통일은 정말 대업이 될 것 같다...아주 어려운.

그 속에서 쓰이고 버려지는 개인들이 모여 살던 특이한 '가정'의 풍비박산.
총알이 날아올 때, 피를 흘릴 때, 죽을 때만 포옹가능한 딱한 부부의 딱한 사랑이야기.

초반, 피뿌리지 않고도 박진감 넘치던 깔끔한 액션과
후반, 에너지를 다하는 육탄전 흥미진진.

초반 얘기가 복잡하다는 평을 주워듣고 긴장하며 봤는데
헐...이 정도면 충분히 설명해주고 있는 것 같구만, 뭐가 그리 복잡..?
이제는 영화보면서 보물찾기 하기 싫어졌나 봐, 다들.
스케일에 눌리지 않고
속도감있게 몰아쳐 준 액션스토리에 박수, 그리고 류승완 화이팅.


단발파마머리를 한 폐쇄국가 실력자의 아들이자 영웅의 수제자라니...핫핫...
비교할 수 없는 방식으로 에너지 경쟁 속에 우뚝 솟는 류승범의 신공은 
블럭버스터에서도 여전하다. 


고독 속에 빛나는 여전한 그녀의 감성
그녀의 하이라이트는 마지막 장면이었지만.

 좋은 그림 한 장
 
디테일은 없다고 생각했던 하정우의 블럭버스터 디테일 
베를린은 표종성의 영화니까.


초반과 후반 조용히 쾅 치고가는 석규 헹님.
헹님보러 한 번 더 갈까봐요.

PS. 감사인사 부분에 박찬욱과 주진우 등장^^

PS2.  추석에 마침 본시리즈를 해주길래 TV로 봤다.
1편인 본아이덴티티를 보고 있자니
아, 이래서 사람들이 베를린과 본시리즈를 비교했구나가 이해됐고,
자기정체성을 찾아가는 비밀요원이라는 이야기에 비하자면
베를린의 서사는 북한이 나와서 뿐 아니라 좀 낡은 느낌이 들긴 했다.
아저씨에서 보고 감탄했던 맨 주먹 액션까지...
정말 1편은 다들 감탄할만하구나...의 공감이었고
남은 두 편에 대한 기대도 만발~!

그런데, 본 슈프리머시와 본 얼티메이텀은 이상하게도 집중이 되지 않았다.
자신의 정체를 알아가면서 지난 만행에 사과까지 하던 본이
언젠간 자신처럼 혼란을 겪게 될지 모를 동료들을 마구 처단하는 장면은
'정체성'이라는 심오한 주제에는 역시 어울리지 않는
흑백논리식 전개 였다.
물론 가장 큰 건 로맨스의 부재 ㅋㅋ...

어딘가 끈끈함이 느껴지는 베를린의 액션과 이야기가 더 끌리는 건
한국사람들이 나와서이기도 하겠지만
역시 인물이 주는 개성과 매력이 컸던 것 같다.
그렇지만 본아이덴티티는 계속 칭송하리라, 무려 12년 전의 영화라니...! 

연극|아일랜드

게릴라극장 마지막 공연.


무대 같지만 사실은 공연장 밖

마지막 공연 직전에 소식을 듣고 모처럼의 대학로 나들이차 갔던 게릴라극장의 아일랜드.
안티고네의 이야기가 등장한다는 것이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죄수이야기보다 더 땡겼었는데
안티고네의 역할은 클라이막스의 폭발이었다.
그런데도 나는 연극을 보다가 졸았....

원래의 번역이 어땠는지는 모르겠지만
난 현대적인 각색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특히나 연극이라면, 
관객이 무대밖의 자리를 인지하고 보는 엄격한 자리라면
무대와 객석의 경계가 오히려 몰입을 도와주는 경우도 있기 때문이다.
설정과 등장인물 모두 남아프리카공화국을 떠나지 않으면서
그들의 욕설만이 유창한 한국어라는 이유로 
한국적 재해석이라 할 수 있을까.
좁고 한정된 공간이라서 더 소소한 재미를 주었던 연극 몇 편을 떠올려보니
아일랜드의 단조로운 무대는 별로 인상깊을 것도 없었다.
그래서 연출에는 후한 점수를 줄 수 없지만  
모든 기사들의 찬양은 과장이 아니어서 
두 배우의 에너지는 놀라왔다.
특히 윈스턴의 남동진.
미세한 표현을 가까이서 지켜보는 즐거움이 있었다.




남쪽으로 튀어|2013

 갑씨도 애 많이 쓰시던 걸요^^
별 의미없이 남쪽을 외치는 선명한 제목
색깔론자들의 입을 틀어막고 시작하겠다는 듯이.


주민등록증을 찢고 나면 뭐가 제일 불편할까-를 생각해보려다가 아예 접었다.
꽤 욱-하며 살았다고 생각하는데 나는 역시 수준미달...
그래서인지 해갑씨가 그저 멋질 따름이다.
게다가 김윤석의 '갑'은 섹시하기까지^^

한 살 한 살 먹을 수록
자신의 몸을 움직여 무언가를 만드는 사람들이 점점 더 멋져 보인다.
꼭 맥아이버 수준의 완성도만 그런 건 아니다.
태풍 같은 바람이 몰아치는데도 거침없이 성냥을 그어 담뱃불을 붙이던 아저씨,
굳이 버스가 출발한 뒤에 마구 달려 버스에 오르던 소년 차장,
낡아서 매일 길바닥에 퍼지는 중고 승합차를 뚝뚝뚝딱 고치던 운전기사 등등.
그동안 봤던 맨몸의 가치를 매일매일 증진시키며 사는 사람들에 대한
부러움이 다시 떠올랐다.

낡은 시골집을 고치고
배를 몰고 나가 저녁거리 장만하고
집을 지키려 바리케이트를 쌓는 아버지.
고집불통 같지만
가족에겐 군림하지 않는 해갑씨, 멋져~

동화같은 느닷없는 엔딩도 그렇고
임순례의 향기가 묻어나지 않았지만
두시간 반의 즐거움은 충분하다.

시나리오 크레딧에도 이름이 올라 있던 김윤석.
임순례랑은 왜 싸웠을까.
김윤석 버전도 좀 궁금하긴 하다.


하기 싫은 것 안하고 사는 피가 다른 남자,
엄마와 아내를 정확히 인지하고 있는 여자,
현실적이고 독립적인 딸,
흡수가 빠른 아들,
사랑을 퍼트리는 막둥이.

"누군가는 너를 이해해 줘"
이런 자신감을 주고 받는 해갑씨와 가족의 모습은 든든해 보인다.
그래서 나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일수록 오히려 가족이 있어야 하는 걸까?
두 모녀, 똑같이 맞고 쓰러져도 민폐로 연출되지 않아서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