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풍의 언덕|Wuthering Heights|2011

참 과감한....

좋아하는 작곡가가 그 곡을 작곡하던 심경을 더듬어 
헌정곡을 만드는 또 다른 작곡가의 작업을 보는 것 같았다.
선명하게 들어오는 'raw'라는 단어.
말은 몇 마디 오가지도 않고 
그 둘이 어떻게 그렇게까지 사랑하게 됐는지는  
잘 알 수 없지만
외국인인 내 눈에도 지역색이 가득한 인물과 배경들,
이미지의 습격이라 할만한 장면들,
연기를 잘하는 것 같진 않은데도
인물의 느낌을 잘 살려준 배우 등
정말 묘한 영화다.
끔찍하고 기괴하지 않아도
이미지가 이렇게 강렬할 수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주는. 

CG는 아니겠지?

마음에 쏙드는 얼굴의 그녀-늘 이런 얼굴은 아닌 것 같지만^^
처음엔 흑인이라 놀라고 영화보면서 그 미모에 놀랐던 히스클리프는 정면사진이 없다...


다크 나이트 라이즈|The Dark Knight Rises|2012

화려한 캐스팅이 다 이유가 있었다는^^
앤 헤서웨이 이번엔 괜찮았음.

생각보다 영화를 늦게 보는 바람에 떠도는 평을 이미 들어버렸다.
배트맨에 배트맨이 별로 안나온다, 하이테크는 커녕 무식하게 맨손으로 싸운다...
사실이었다.
근데 재밌다.
배트맨 비긴즈를 안 봐서 배트맨비긴즈와 다크나이트 사이라는 말은 공감을 못하겠지만.

이번은 꽤나 야심찬 프로젝트다.
아마도 다크나이트 이후로 엄청난 부담감을 느꼈으리라 예상은 하는데
크리스토퍼 놀란은 기계로 깜짝 놀래켜주기를 포기하고 
그야말로 리턴 투 베이직을 감행해버렸다.
돈도, 벗도, 장비도 없이 달랑 몸뚱이 하나를 가지고도 자신의 정신과 경쟁을 시키며
한동안은 외면하고 살던 그 세상으로 나가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한 인간 브루스 웨인.
한꺼번에 여자가 둘이나 등장해서 
브루스 웨인과 배트맨의 앞통수 뒤통수를 맘껏 넘나들기도 한다.

그렇지만.
좀 길게 느껴졌던 건 사실이다.
2인분이었음에도 조커 하나를 당해내지 못한 
악당의 매력없음 탓이다.
다시 사사롭고 시시한 존재로 돌아가버린 1차원적인 악당은
이미 
불안정하게 공포감을 주면서도 
어딘가 귀기울일 수 밖에 없었던 독특한 악당의 존재감을 맛본 관객들에게 
그저 지루한 필요악일 밖에.
정의의 이름 같은 건 한번도 등장하지 않지만
그냥 평범한 정의의 사도처럼 
그냥 무섭고 나쁜 놈에게 
일방적으로 당하는 시민들을 구하겠다고 다짐하는 배트맨을 보면서 
왜 그는 애시당초 고담시와 시민들을 지키고 싶어하게 됐는지가 
오히려 이번에 궁금해졌다.
다크나이트의 배트맨은 단순한 정의의 사도가 아니라
스스로를 위해서도 싸워야했던 존재였다는 게
자연스럽게 비교됐기 때문이다.

전작에서 조커가 강조하던 '혼란'은 이번에 100% 물리적으로 등장했다.
시스템과 자본, 권력이 힘이 되는 이른바 '문명'의 세계를 
맨주먹으로 점령하고 심판하는 무식한 폭거가 혹시 
포장된  힘의 주인들을 향한 경고인가도 싶고,
혼돈 속의 수많은 구타들이 현실의 은유인가 싶기도 했고
궁극의 하이테크는 결국 발달된 '맨몸'인 것 같단 생각도 들고...

갑자기 마지막에 툭 튀어나온 퉁명스러운 반전과
애정없이 연출된 불쌍한 베인,
지난 번 다크나이트의 설욕으로 아이맥스 고집한 보람없는 스케일이 
아쉬움이긴 해도 
배트맨에게는 충분한 예우를 보인 마무리라고나 할까.
민간인 웨인의 모습은 찰나였지만 왠지 나도 뭉클했으니까.
이로써 배트맨 시즌2도 안녕인가..?
아쉽다.
  


나도 모르게 너무나도 반가와해버린 모건프리만^^

***참, 자선파티 장면에서 흐르던 죽은 황녀를 위한 파반느.
뜬금 없다 싶으면서도 좋아하는 음악이라 들었는데
생각해보면 새 사랑을 시작하며 떠난 연인에게 바치는 진혼곡이었나 싶기도 하네.

리미트리스|Limitless|2011

정신산란한 전개를 가늠하게 해주는 정직한 포스터


남들 평생해도 못할 일을 10년 안에 하고 떠난 천재들의 일생을 읽으며
그들의 단명은 평생 쓸 힘을 몰아서 썼기 때문이 아닐까...라고 생각한 적이 있었는데
역시 나만의 생각은 아니었다.
그 놀라운 능력으로 
하찮은(--;;) 돈벌이와 환락에 빠져 버리는 
주인공의 시시한 멘탈 때문에
친근한(??) 욕망의 대리만족을 느끼는 사람이 얼마나 될 진 몰라도
좀 허무하다.
혹시, 
능력은 그 능력을 쓸 능력이 있는 멘탈에 따라 스케일이 정해진다는 
반면교사 였을까...



반가와요, 드니로
 
before & after

아파트 열쇠를 빌려드립니다|the Apartment|1960

여기는 어듸? 다섯손가락 안에 드는 미국 대기업 보험회사

1960년이라면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근처에라도 가보고 싶어 전쟁의 폐허에서 안간힘을 쓸 무렵.
그 시절에 이미 수십층짜리 고층건물에 
보험이라는 신종산업이 이렇게나 거대했다는 것도
엘리베이터가 있었다는 것도
부패한 자본주의의 상징같은 바람질이 만연했다는 것도 놀랍지만
공산당선언문의 멋진 도입구의 배경화면이 될 법한
이런 화면을 잡아내는 상업영화 감독이 있었다는 것이 더 놀랍다.
자본주의의 노동비극하면 찰리 채플린의 나사돌리기가 먼저 떠올랐지만
이 장면이 지금과 더 가까워 보이는 것은 
아마도 세련됨 때문이겠지.
대단한 감독이었구나, 빌리 와일더는.
오래된 영화이고, 짧지도 않지만 
시간가는 줄 모르고 봤다.
역시 고전은 꼭 재미없을거란 편견을 버려야 돼.

헐리웃의 윤여정이랄까.
살짝 백치미와 어딘가 도발적이면서 칼칼한 매력의 소유자 셜리 맥클레인.
시대에 순응하던 한 청년의 인생에 용기를 불어넣다.


베니와 준에서 샘이 선보였던 테니스라켓으로 감자으깨기와 다리미로 토스트 만들기의
원조, 라켓으로 파스타 건지기-훨씬 더 손쉽고 간편해보이는 군요^^

내 아내의 모든 것|2012

안 예뻤던 적이 없지만 부쩍 물이 오른 것 같은 임수정


얼마 전 트뤼포의 옛날 영화 '여자들을 사랑한 남자'를 보기 전에도 그랬지만
시작부터 중반부까지 사실 좀 충격받았다.
이런 이야기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이 이렇게 여럿이라니.
이건 오랜 관심에서 나온 당연한 결과물일까,
아니면 기획을 매끄럽게 갈고 갈아 나온 완성품일까.
역시, 
이제, 
하늘아래 새로운 것은 없....나?

투덜이를 외톨이로 낙인찍어 버린 것이 
좀 서운하긴 해도
깔끔하고 공들인 티가 팍팍나는 
귀여운 로맨틱코미디.
참 친절한 대접을 받으며 살았을 것 같은 외모로 
동감인 대사들을 까칠해보이면서도 자연스럽게 해낸 임수정은 
이제사 소녀티를 다 벗은 느낌이다.
그리고 장성기씨.
사랑에 아파 본 그대는 이제 한 차원 높은 카사노바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찗지만 여러 번 돌려보게 만든 정성화의 우정출연 신공도 박수~

생각해보니 임수정은 남자선물이 처음이 아니네.
어릴 땐 엄마가, 나이들어선 남편이...음, 남자공수해주고 싶어지는 여자인가 ㅎㅎ~ 
어쨌거나 이번엔 고수의 뺨을 정통으로 후려침으로써
본의 아니게 팜므파탈 본좌에 오름.

도둑들|The Thieves|2012

캐릭터들의 행진

전작들과는 달리 여자가,
그것도 네명이나 비중있게 포함된 최동훈의 새영화.
이런 영화 치고는 멜로라인이 꽤 잘 끼어들어 있다는 점,
두 시간 반 동안  시계 한 번 안보고 지나가게 만든 속도감에
박수를 보내고 싶다.

하지만 부산을 배경으로 한 총격추격씬은
모든 등장인물이 전문가 예니콜의 전문성을 우습게 만들만큼 대단한 줄타기의 달인에,
적군이 아무리 쏴대도 
주인공은 맞지 않는 매직 총격씬의 오랜만의 재현이어서
그동안의 부산스러울만큼 자상한 설명이 무색할 지경.

하지만 배우들에게 시선이 고루 가도록 만든 생동감은 
기대를 저버리지 않는다.

우선 전지현.
나는 사람들이 전지현의 연기를 무시할 때 
늘 불만스러워하던 얼마 안되는 사람 중 하나다.
시월애와 4인용식탁에서 전지현의 괜찮은 표정을 여러 장면 발견했기 때문이다.
권상우가 그렇듯 전지현도 단조로운 목소리 연기 때문에
인상깊은 표정연기까지 폄하되었지만
설정된 인물 예니콜은 전지현의 단점을 거의 완벽에 가깝게 극복했다.
나올 때마다 즐거웠던 인물.

타짜의 재발견을 계속 이어가는 김혜수도 좋았고
역시 멜로빨 있는 김윤석도 멋있었다.
여기서는 제대로 액션을 한 것도 그렇고.
아마도 처음이 아닐텐데 처음으로 깊은 인상을 받은,
홍콩전통스타일의 싸나이를 완성한 임달화,
이젠 영화속에서도 천연덕스러운 김해숙,
더는 연기 못한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은 이정재.
절명한 김수현까지 모두 모두 수고하신 티가 팍팍 나는 
오랜만의 노동집약형 오락영화.  

그런데 펩시와 예니콜은 왜 이 모험직업을 계속 할까.
특히 현금예찬론자 예니콜,
'오빠'하나 땡겼다가 이혼하는 게 
더 짭짤할 것 같은데 말이지... 


지리산 둘레길 하동호-삼화실




잠들기 전의 걱정과는 달리 몸상태가 개운하길래
역시 좋은 공기속의 수면은 약효가 있다고 생각하면서
욕심을 부려 걸어보기로 '계획'은 세웠다.
포크레인 공사때문에 8시쯤 깼다가 다시 한시간 쯤 더 자고 느릿느릿 출발.
대략의 정보로도 그닥 어려울 것 같지 않던 코스였고
실지로 그렇기도 했지만 전날과 달리
그냥 마을길과 포장도로, 비포장 도로가 번갈아 등장하는 길이 대부분이다가
끝부분 고개에서 잠시 숲이 나온다.
이제 -재로 끝나는 이름은 고갯길이라 나름 경사가 좀 있다.
이 날의 유일한 고개는 존티재.
1.2Km밖에 안되는 고개지만
런닝화를 신고, 다리에 척척 감기는 긴 바지와 민소매 옷을 입고,
노트북(나의 무식함을 통감함과 동시에 둘레길을 얼마나 깔봤는지를 알 수 있는 등짐)까지 맨 채로 열과, 습기와, 모기와 싸우며 통과하는 사이
어느새 어제저녁 상태로 묵지근해진 몸은
다음 코스를 포기하는 걸 순식간에 결정해버렸다.

지리산 둘레길은
둘레'길'보다는 지리'산'에 더 방점을 두어야 하는 곳인데
올레 같을 줄 알고 설렁설렁 준비한 나의 준비부족 탓이다.
한 여름의 산이 시원할 것만 생각했지
대낮에도 산모기들이 이렇게 극성일 줄도 생각못했다.

이번은 간보기 코스로 이만~~

지리산 둘레길 위태-하동호

이른 아침 5시 반쯤 출발해서 진주에 도착한 게 11시.
진주버스터미널에서 위태까지 가는 11시 30분 버스를 타고 둘레길 출발점에 도착한게 1시.출발지인 위태에는 초입에 민박집이 하나 있었고 다행히 푸짐한 점심을 먹을 수 있었다.
육해공을 넘나드는 푸짐한 반찬이었는데 1인분에 6천원.
가끔 밥이 없으면 못 얻어먹을 수도 있다고 하신다.

도착시간이 어중간해서 어쩔 수 없이 땡볕속에 시작하게 된 둘레길 여행.
둘레길 중 가장 볼만한 코스이고 힘든 코스와 숲길이 이어진다는 간단한 정보를 듣고 
의기 양양하게 출발했는데....!
일단 경사가 장난이 아니었다. 
대 여섯번을 꽤 심각한 경사를 올라야 하고 
올라간 그만큼 내리막을 걸어야 하니까.
'둘레길'을 지리산 언저리의 '올레길'로 생각한 나의 무식함으로 인해
몸이 많이 고생한 첫날이었다.


가는 길에 만난 버섯친구들
하지만 
숲길, 들판, 마을, 대나무길 등등 
재미있고 볼만했던 길인 건 분명하다.
가을에 가면 또 얼마나 이쁠지.

둘레길은 계속 마을을 지나가기도 하고
산을 오르는 길에도 누군가가 한 짐씩 나무를 해놓은 더미가 이어져 보인다.
나무를 하는 사람은 못 봤지만 아무튼
인적이 끊어지지 않는 느낌이었고
가다가 힘들때 도착지 민박집으로 전화하면 
차를 가지고 데리러 오신다고 한다.
사실 여행자들은 걷는 길이지만
다른 한 쪽으로는 마을주민들이 차로 다니는 길이 나있어서 가능한 일.
가는 길에 시원한 간이 물놀이도 가능^^



문제는 무식한 내가 마실 물도 딸랑딸랑하게 준비를 하는 바람에 
길 중간에서 식수가 똑 떨어진 것.
다행이 어느 민박집을 발견해서 들어갔는데 
파는 음료는 맥주밖에 없다고 하신다--;;
그래서 염치불구 하고 물을 한 통 얻었는데 
아무래도 그냥 가기 좀 그래서
그냥 맥주를 한 병을 나눠마시기로 결정.
그랬더니 맛있는 멸치와 깎은 오이를 또 내주신다.
헐...죄송하지 않을때까지 마시다간 자리를 뜰 수 없을 기세라
인사를 잘 드리고 출발하는 수 밖에.


갖고 싶은 깜찍이 맥주잔

네시간 반 동안의 코스.
쉬엄쉬엄 갔는데도 코스예정시간보다 30분 먼저 도착했으니까
시간은 여유가 있는 편이다.
너무 힘들어서 도착지에서 제일 먼저 보이던 민박집에 묵기로 했는데
쾌적하고 넓은 투룸이 5만원이었고
고기나 음료 등등 필요한 건 수퍼에서 사다주신다.
숯불바베큐가 가능하다는 말에 낼름 생삼겹을 부탁드렸는데
연기때문에 좀 부산스럽기는 했어도
쫄깃한 맛은 역시 일품.
갑자기 소등을 하시는 바람에
스마트폰 두개로 풀 랜턴을 가동하면서
늦저녁을 즐겼다.



신기한 건
밤이 되니 평상위는 선풍기 하나 필요없을 만큼 쾌적한 온도가 되고,
낮에 숲에서 극성이던 모기들도 일제히 사라졌다는 것.
숙면에 좋은 환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