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적자 THE CHASER|2012

마지막회를 보고 난 지금, 너무도 담백하고 쿨한 포스터의 글귀


어제 마지막회를 앞둔 추적자의 후반부.
신혜라가, 듣고 싶은 말을 해주는 게 정치라는 강동윤의 인상깊은 한마디를 되새길 때
그게 혹시 정치인 강동윤의 백조의 노래일까 싶어 
대를 이은 마름 신혜라의 멋진 역전을 기대했었는데
세상에.
박경수 작가는 예상 보다 더 멀리 나갔다.

시청자들의 상상력이 닿는 엔딩은 강동윤의 낙선,
혹은 분노를 극대화 시킬 백홍석의 체포,
아니면 좌절로 몰아갈 이 모두의 실패,
굳건한 한우그룹의 서회장 정도가 아니었을까.

대부분의 작가들은 그럴싸해 보일듯한 엔딩이 그려지면
마지막의 아쉬움은 아랑곳없이 의리를 지켜주는 시청자들을 믿고
편히도 훌훌 털고 문을 닫건만, 
박경수 작가는 마지막까지 집요했다.

정치, 재벌을 돌아 사법부까지 꼼꼼하게 할퀴고 가던 마지막에서 
정말 꿈처럼 들리던 "한번이라도 진실을 말해","수정이가 알아줬으면 좋겠다"
-이 두 가지 백홍석의 간절한 바램을 다 들어주었다.
아무것도 잃지 않음으로 보는 사람의 울화를 예약했던 서회장은
서노인의 모습으로 그의 상실을 확연히 보여주었다.

어른들의, 
악몽같았지만 현실적인 환타지의 따뜻함을 보여준,
그리고 몇 주간 월요일을 기다리게 해준 힘있는 이야기의 종결.
아쉽지만 그간의 애정을 다해 박수를 보낸다.

배우들을 얘기하자면 날을 새도 모자랄 종합선물세트.

쉰소리로 진정 못하겠다며 상복을 입고 법정으로 성큼성큼 걸어가던 백홍석,
저런 의지가 되어줄 수 있다면 결혼은 큰 빛이겠구나 느끼게 만들던,
딸의 병석 앞에서 서로를 위로하던  미연과 홍석,
의리의 조남숙,
의리로 사랑도 하는 용식,
작은 원을 벗어나진 못했어도 아버지를, 남편을 사랑했던 서지수,
그 이유는 몰라도 좋은 삼촌, 좋은 오빠임은 분명했던 서영욱,
대한민국의 한계를 알아서 큰 꿈을 꿀 수 있었던 작은 야심가 신혜라,
보는 것만으로 기분 좋아지는 얼굴을 가진 사랑스런 백수정,
연민을 느끼게 만든 강동윤,
예쁜 서지원,
멋있는 최정우.
(이렇게 등장인물 많은 드라마에서 이름 까먹지 않게 
이름을 수십번씩 불리게 만든 작가의 센스가 돋보인다)

숙제로 남겨진 건
오랜 친구였다가 한 번의 유혹으로 두 번이나 친구를 배신한 윤창민,
한 번 희생 하고 한 번 배신하고 다시 백홍석의 곁을 지킨 황반장,
대한민국 수재인증절차를 다 겪고도 지방대 설움을 토로하다 
평범한 기소를 불의로 이긴, 검사받는 검사 박민찬.
사람의 바다에서 사람이 무엇인지 여전한 물음표를 남긴다.

이제 서회장의 차례다.
이름을 기억할 필요도 없는 서회장이다.

서회장의 환타지는 이건희를 다시 보게 만들었다.
이건희는 서회장이라기보다는 서영욱의 노년 버전이다.
들여다볼수록 
'지들 손으로 할 줄 아는 건 하나도 없'다는 '하녀'의 병식의 대사를 자꾸 생각나게 하는 이 무능한 사람들이 만들어가는 돈과 권력의 크로스오버.
대한민국의 평범한 재벌집 사위라면 
강동윤처럼 맞서 뺏기보다는 서영욱의 수족이 되어 
알고 보면 별 것 아니어도 자본주의 대한민국에서 큰 소리 칠 법한 삶을 살았을 것이고
서지원 같은 청정 딸은 제명대로 살지 못했을 것이고
어떻게든 야심차고 능력있는 사위의 비위를 맞춰 
제대로 한판을 벌여보려 했을 지 모른다.

추적자가 흥미로왔던 지점은 바로 여기였다.
그나마의 진실을 밝힐 수 있는 이유는 
따지고 보면, 백홍석의 집념이 아니었다.
돈과 권력이 강렬히 충돌하던 고비마다
백홍석이 도망치고, 살아남았기 때문이다,
권력자들의 충돌 덕분에.
힘의 견제야 말로 
정의의 자양분임을 숨기지 않았던 놀라운 설계.

실은 이 모든 재앙의 사주이면서, 없는 집 출신 강동윤에게
"있는 집서 태어났으면 죄 안 짓고 한 자리 했을 거"라던 
관록있는 뻔뻔함의 주인공 서회장,
마지막회에서 집 안의 빈자리를 쓸고 다니다 총리와 통화로 마무리하던, 
의풍당당 서회장과 외로운 서노인을 오간 박근형.
나이는 연기력을 보증해주지 못하지만
이런 연기를 보면서 
자꾸 믿음이 가는 것을 어찌 막으랴.

기다림이 있던 한 달.
오늘로 아쉽게 마감하다.
조만간 날 잡아 
16부작을 다시 완주하리라....^^

추적자 칭송곡 중 허탈하지 않던 텐아시아 기사 하나
"내 마음을 앗아간 <추적자>의 절대 그이

댓글 없음:

댓글 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