킹메이커|The Ides of March|2011



시작의 모리스의 선거캠프는 평범한 '좋은 후보'의 이상형을 보여준다.
자신감과 소신을 두루 갖춘 매력적인 후보,
후보에 대한 신뢰로 열심히 일하는 직원들.
그것이 깨지는 건 순식간이었지만.

하고 싶은 것이 있어 정치가를 꿈꾸는 건 바람직하다.
하지만 가는 길에 하나 둘 날개가 꺾이고 발이 묶여
결국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된다면
왜 그 상태로도 정치가의 꿈을 이루어야 하는 걸까.

하지만, 모리스.
위협은 위협일때만 위험할 뿐.
다 드러나고 나면 오히려 덮기 쉬워요,
사람이 죽고 그 진실이 풍문으로 돌아도 평화로운 대한민국을 보면.
개망신 한 번 당하고 나면
얼굴이 상상초월로 두꺼워 지는 걸.
요즘 정치현실은 한국이 미국에 한 수 가르쳐줘야 할 듯.

그럼에도 불구하고 움켜쥐고 싶은 한 마디.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모리스에게
진행자가 당신의 아내가 살해당하는 경우라면 어떻겠냐고 묻는다.
잡을 수 있다면 잡아서 죽일 방법을 찾겠다고 답하는 모리스에게
왜 그 처형을 사회가 하게 두지 않느냐고 묻자
명쾌하게 대답한다.
"사회는 개인보다 나아야 하니까요"
(Because society has to be better than individual)
우리의 우울은 각성한 개인을 따라잡지 못하는 후진 사회에 있는 걸까.

조지 클루니의 자신감이 만들어낸 충격적 인물 모리스.
게다가 감독 클루니는 클라이막스에서 관객을 툭 떨어뜨리고 간다.
어딘가 고전적인 느낌이 드는 영화다.
그리고 또 작가 클루니-아마 자기 대사는 자기가 썼을 거야.
한 마디 한 마디가 매력적인 클루니 스타일.
얼굴의 홍조가 세월을 느끼게는 해도
조니 클루니의 매력은 멈추지 않아.

처음 보는 배우 라이언 고슬링.
내게는 혜성처럼 나타난 것 같은 숙련배우.

****궁금한 제목 The Ides of March는 원래 보름날을 가리키는 말이었다가 줄리어스 시저가 암살당한 날의 상징이 되었다는데 전혀 의심치 못했던 부루투스에게 암살당한 시저의 운명이 담긴 날이면서, 달은 밝고 바닷물은 심난해지는 묘한 분위기를 담고 있다고 한다.





데인저러스 메소드|A Dangerous Method|2011

프로이트와 칼융과 알려지지 않았던 또 한 사람

폭력과 성을 평생 다루는 데이빗 크로넨버그에게
아마도 피해갈 수 없었을 인물들의 이야기.
예고편과 달리 별로 야한 장면은 없다(실망의 향기^^).

영화는
거물 정신분석학자들이자 의사들이었던 모든 등장인물들의
환자시절을 다루고 있어
그 연구의 진정성과 진지함에 더 힘을 실어주고 있다.
욕망과 억압이라는 갈등기재가
인물을 이끄는 핵심.
그러나 그 욕망과 억압을 제대로 읽는다는 것이
인간관계의 성공을 보증하지는 못했다.

말 한마디 한 마디로 상대를 읽거나 읽힌다는 것은
좀 꺼림칙한 일이고
어쩌면 무례한 일인 것도 같지만
호기심은 퐁퐁퐁.
책장에 수년간 자리차지만 하고 있는
꿈의 해석을 떠올리다.

폭력의 역사부터는 거장의 포스를 퐝퐝 풍기고 계신 크로넨버그.
한 우물 파기의 진수를 보여주고 있다.

잠깐 나타났다 큰 심난함을 던지고 사라지는 매력적인 또 한 사람 오토 그로스
억압에 반대하는 유혹적인 주장과 아사가 기묘하게  어울리던 자유인


모든 신경증의 원인은 성적인 문제에 있을까요?

그가 성에 대해 집착하는 건

성에 대한 경험이 없어서 일지도 모르죠.

제가 보기에 인류가 괴팍해진 이유는

몇 개 되지도 않는 즐거운 행위 중에 하나를


히스테리와 억압의 대상으로 만들었단 거예요.

쾌락은 단순한 게 아닙니다.

단순합니다.

우리가 복잡하게 만들 뿐이에요.

아버지는 그걸 '성숙'이라고 하지만

전 '항복'이라고 불러요.

PS. 심리학 관련 팟캐스트 중에 심리학의 역사라는 시리즈가 있는데거기서 특집으로 이 영화가 등장했다.
크로넨버그는 그들의 시절을 그대로 보여주려 실제장소를 많이 등장시켰다고 한다.
오토 그라스는 융에게도 영향을 주어서 융 스스로 오토를 만나기 전과 후로 자신이 변했다고 고백했다고 했다.

미라클 워커|The Miracle Worker|1962


이름만 알던 앤 뱅크로프트와 어느 천재아역 소녀

감성적일수록 잘 다치니 조심스러워야 하고
아이들을 대할 때 꼭 필요한 것이 참을 忍자 백만개와 기다림이라는 것을
깊이 깊이 새기자.

"Now, I need to teach you on word-EVERYTHING."
"I know one word  that I can put the world in your hand. Whatever this is to me, 
  I won't take less."

...by Anne Sullivan in Miracle Worker


인어할머니와 선장|2011

 귀여운 선장 아저씨
한 귀요미 하시다가 요때는 다소곳 하신 인어할머니

안 그래도 요즘 
인생 뭐 있어-가 수시로 튀어나오는데
비 그을 지붕 있고,
잘하는 일이 있고,
같이 할 벗이 있고,
말 섞을 이웃 있고,
그리워할 가족 있고,
돌볼 생명도 있고,
아직 '내 몸 하나' 쯤은 건사할 수 있고,
저렇게 예쁘게 웃을 수 있는 
주름진 얼굴로 세월을 보낸
해녀 할머니와 선장 아저씨의 
수더분한 우정이야기는 약간 염장을 지르기도 한다.
역시 전문직~

긴 세월 주름, 그늘 없는 삶을 사신 것도 아니고,
보는 동안, 누가 저 집 좀 고쳐주지-싶은 생각이 안 든 건 아니었지만.....
마무리 밖에 남지 않은 노년이 아니라
'살아가는' 아흔살 멋있었다.
아마도 인간극장 편집본이지 싶은데
이금희의 목소리가 그리워진다.


멋진 악몽|ステキな金縛り|Once in a Blue Moon|2010


누구 한 명 빠트리고 싶지 않은 열연의 종합선물세트


내가 일본드라마를 그동안 그렇게 많이 봤나 싶기도 하고
일본에 배우가 이렇게 별로 없나 싶기도 하게
이 영화엔 아는 얼굴들이 가득이다.
예외없이 다들 멋진 연기를 선보이지만^^

누가 들어도 황당한 설정을 
한 시간 반이 넘게 볼만하게 끌고가는 
재주있는 이야기꾼의 입담.
감독은 웃는 가운데 옆구리를 한 번 쿡 찌르고 가던
연극 '웃음의 대학'의 작가였다.

내내 북적이던 이야기와 캐릭터들의 영화였지만
마지막 아버지와 나란히 앉아있던 장면이 
차분한 마무리 영상으로 남았다.

볼때마다 감탄스러운 후카츠 에리.
열광은 안해도
만날때마다 팬임을 깨닫게 해주는
믿음직스러운 배우.
처음보는 타케우치 유코도 은근 잘 어울렸고
짧았지만 강한 포스를 남긴 시노하라 료코까지
삼총사의 활약이 돋보이는 재기발랄법정극.

거제.우포습지


6km를 가는데 2시간이 걸렸던 바람의 언덕.
근처이 예쁜 펜션들은 이미 다 예약마감으로 그림의 떡.
한적할 때 와서 며칠 있다가고 싶은 곳이다.


살짝 참한 것이 여수의 물빛을 닮았는데 그보다는 더 가벼운 느낌의 거제 바다.




순천만에 이어 두번째 가보는 습지.
습지는 참 부자다. 없는 게 없고 적게 있는 게 없다.
 정상전망대가 실내이고 밖으로는 나갈 수도 없다는 게 참 맘에 안들었지만
설렁설렁 돌아다니기 적당한 규모였던 우포늪.
습지 공부 좀 하고 왔다.

인공 공원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우람한(!) 자연공원

통영.거제

불편한 잠자리 덕에 엄청난 피곤함을 이기고 꼭두새벽에 벌떡 일어나고야 말았다.
모두가 잠든 새벽에 할 게 없어서 예정에도 없던 동피랑 벽화마을을 가보기로 했다.
달동네를 철거하지 않고 그림을 그렸다기에 그냥 그런가 보다 했는데....



무조건 적인 호감의 대상-고래양이 먼저 맞이해 준다.

 김지윤 만화의 한 장면 같기도한 벽화

통영에서 'ㅇ'이 빠진 것인지 아님 토영이라는 말이 있는 것인지...

벽화들 자체의 미모보다도 지금은 정말 보기힘들어진 이런 좁은 골목길들이 반가왔다.
개발이라면 무조건 열광하는 역사가 반세기를 넘는 대한민국에서
이 마을, 이 주민들은 참 근사해보였다.
마을이 높은 곳에 있어 통영이 다 내려다 보인다.


소정 씨, 가지말래요, 사랑한대요^^
이 연애쪽지는 제대로 잘 전해졌을까?

원래는 케이블카를 타고 한려수도를 굽어볼 계획이었지만
아침에 너무 일찍 일어난 관계로 
통영만의 다른 한쪽 긑에 있는 예쁘다는 리조트 구경을 갔다. 
커피 한잔 할 수 있기를 기대했지만 
리조트는 입구의 안내사무소만 작게 있을 뿐 부대시설이 많은 곳은 아니어서 
그냥 이쁜 건물 구경에 만족. 
그런데 그 리조트를 찾아가는 길이 바로 케이블카 코스였던 거라...
이렇게 구경할 수 있는데 굳이 케이블카는 왜 만들었을까.


통영 수산과학관에서 바라 본 한려수도.
이곳의 직원들은 매일 은은한 경치를 감상하겠지.
이 정도면 프리미엄 근무환경이다.

너무 배가 고파서 아침을 하는 한다는 곳 아무데나 들어갔는데
산양일주로에 있는 민박을 겸한 식당이었다.
카드전표를 보니 '통영해물식당'이라고 되어있다.
멍게비빔밥과 해물된장을 시켰는데 
음...바닷가 식당의 해물된장에서 상한 조개가 나올 줄이야.
엄청나게 까고 계시던 멍게들도 계산하면서 자세히 보니 
상태가 우리동네 횟집만도 못한.....
아, 이 먼곳 까지 와서 이런 걸로 바가지쓰며 배를 채워야 한다는 게
얼마나 슬픈 일인지 그 분들이 꼭 알았으면 좋겠다.
점심 때 구조라 항 앞에서 잠시 정신줄 놓고(관광지임을 잊고) 먹었던 
불어터진 멍게 보다는 조금 나았던가.
그지같은 것만 골라 외지인에게 내미는 관광지의 손길을
정말 다시는 만나고 싶지 않은데. 
감로식당의 산채정식을 백만번 그리워하다
이대로는 구조라를 미워하며 떠날 것 같아
뭔가 하나를 하기로 했다.
지도에 보니 탐방로가 나와있기에
망설임없이 결심.


 구조라 성터
(지도에는 '성'으로 나와 있어서 나는 이것을 보고도 계속 구조라 성을 찾아 헤맸다는--;;)
 서낭당
전망대의 바다쪽 전망 

전망대의 마을 쪽 전망

입구에 지도도 그려있고 처음엔 철계단으로 시작하길래 
뭐 괜찮을 줄 알았는데
'구조라성'이라고 나와있는 것과는 달리 그것은 '성터'였다.
인적이 드물었는지 관리의 흔적은 전혀 없어 
방향치인 주제에 남은 아이폰 배터리 한방울을 전망대 사진으로 소진해버린 나는
잠시 조난(^^)의 공포에 떨기도 했다.
햇빛 찬란한 낮이었지만 
어쩐지 서낭당의 기운도 심상치 않게 느껴졌고.
다행이 두팀 정도의 외국인여행자들을 만나
내가 완전 틀린 길을 갔던 것은 아님을 간신히 확인했다.

처음엔 이 무관리 상태의 탐방로가 신문기사에 버젓이 이색관광지로 소개되어 있는 것이 
좀 심하다 생각했지만 
결과적으로는 대 만족이다.
전망대에서 바라보는 양쪽의 풍경도 멋있었지만
그것보다 
정글속에서 폐허를 찾아낸 느낌이랄까.
오르막의 가파른 길이라 체감 각도는 90도 같기도 했던 힘든 길이었어도
아마 다시 간다면 또 오르게 될 구조라 탐방로. 

문경새재.해인사


선비들이 과거를 보러 가던 길이라는 문경새재의 한 고개.
발고락 담그는 수준의 짧은 답사 였지만
큰 바위들 많고 나무들 울창한 고장임은 한껏 느끼고 왔다. 


고개길 한 길에 있던 옛 쉼터.
풀이 가득 자란 마당은 을씨년스러워 보이는데
마침 푸른 계절이라 쓸쓸해 보이진 않았다. 


울창한 숲의 한 자태.

모처럼의 연휴를 그냥 보내지 말자고 과감히 떠나본 2박 3일 여행.
연휴의 인파를 피해보겠다고 나름 새벽바람 나들이를 감행했지만
부지런함의 효과는 오전 뿐.
해인사로 가는 구비구비 도로에서 부터 조금 지쳤었던 것 같다.



독특한 나무들이 많던 해인사.
돌을 쌓는 것도 모자라 나무 틈새 저렇게 소원빌기 돌맹이들이 촘촘히 끼어 있다. 
 나무는 좀 지쳤어도 어르신 같아 보이기는 했다.


이 정도 둘레는 더 이상 놀랍지도 않았지만 
이 독특한 질감을 기억해 두고 싶었다.


입구쪽이 나 있던 작은 들꽃밭


맑은 날씨였는데도 하늘은 웅장했다.

스마트폰과 함께 하는 첫번째 여행인지라 실시간 검색을 적극 활용해보기로 했다.
그래서 점심도 문경새재 안 할매집에서 먹고
저녁도 해인사 뒤쪽의 감로식당에서 먹었는데
특히 산채정식을 떡 벌어지게 차려내던 감로식당의 음식은 정말 대만족이었다.
조금 짜긴 했지만 깔끔하고 푸짐하던 저녁.
여기서 자고 싶었지만 첫날 최대한 달려놓자는 드라이버의 의견에 따라
무리해서 통영을 향해 달렸는데.
아뿔싸. 10시 넘어 도착한 통영은 남아있는 숙소가 하나도 없었다.
호텔에 모텔에, 심지어 찜질방 입장도 짤리고 났을 땐
통영다리를 대여섯번이나 오가느라 진이 다 빠졌다.
남은 방법은 선택의 여지가 없는 노숙.
한적할 것 같은 이순신장군 공원을 찾아가서 차안에서 잤다.
남의 집 마당에 텐트치고도 자보고, 
모래위에 침낭깔고도 자봤는데
다양한 노숙역사에 또 이렇게 한 획을 그었다. 


내가 독실로 사용한 이순신공원의 장애인 화장실.
하루종일 과로하신 아이폰도 여기서 충전^^

돈의 맛|The Taste Of Money|2012


많은 기대+약간의 허무+남은 기대


이미 중독된 사람들은
자신의 미혹에 대해 제대로 설명할 필요를 느끼지 못한다..
아마 그건 안하는 게 아니라 못하는 것일지 모른다.
너무나 당연하게 생각하고 있는 환경 중 하나이기 때문에.

그래서 영화를 보고나서도 돈의 맛이 뭔지는 알 수 없었다.
그들에게 돈이란 원래부터 쳐 있던 병풍이고
없이는 세계가 성립되지도 않는 공기같은 존재.
딱히 목표가 있어서가 아니라
그냥 가진  게 돈이라서 돈을 가지고 이것 저것 해볼 뿐이다.
그래서 병풍 구경은 뉴스를 보듯 무심히 했다.
내게 강렬하게 남았던 건 '모욕'이다.

우리가 '스트레스'라고 부르며
죽음에 이르게 하는 강력한 병균인 걸 알면서도
누구나 견디는 것으로 치부하면서 삶의 철학과 분리시켜 버렸던 그것이
실은 모욕이었다는 경쾌한 정의가 뜨끔하다.
이 시절에 다시 생각하게 되는 인간의 존엄성이라니.

그럼에도.
사실 전반부의 임상수 답지 않은 투박함에 깜짝 놀랐는데
아쉬운 마음에 인터넷을 떠돌다
정성일의 감상문을 발견했다.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code=990100&artid=201206032133415


아쉬움을 달래주는 친절한 성일씨.

김강우에게는 조금 아쉬운 놀이터 였지만
윤여정에게는 제대로 큰 마당이다.
초반부에서부터 임상수스타일의 심지를 유일하게 지켜가던 배우의 힘.
큰 박수를 보냅니다.

크레딧의 발견: 음악감독: 김홍집(알고 보니 임상수의 오랜 인연)
                      노래: 어어부밴드 특이한 목소리의 백현진
                      검사역 남궁선(그 인테리어 디자이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