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 예고편



"대한민국에 전문가가 어디있어요, 사기꾼들 빼고.'

보이스피싱 당한 내 가슴에 팍 꽂히는 한 마디.
꼭 보러 가야지.


사물의 비밀|Secrets, Objects|2011

한달 전 개봉영화...다운로드는 뒷심이 있을듯...

어릴 적 읽던 하이틴로맨스가 생각난다.
'소녀'들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남자들의 로망에 성별만 바꾼 것 같은 불친절한 전개와
천편일률적인 신데렐라식 설정에도 불구하도 
달리 대안이 없어 엄청나게 퍼져나갔던 책들이다.

이제 그 모자람이 조금 채워져 
드디어 여자들을 위한 에로영화의 등장 ㅎㅎ
초창기 모지란 하이틴로맨스에 설욕하듯
그 설정을 뒤집어 여자와 남자를 배치시킨다.
허세 떠는 기성세대, 숨겨진 욕망 등등 
부부클리닉용 메시지들을 여기저기 널어놓긴 했지만
내가 느낀 이 영화의 방점은
'여자를 위한 에로물'이다.

예전에 추천을 받아 몇번 시도했으나 결국 끝까지 볼 수 없었던 
성의없고 지루한 에로물들과 달리
포기를 늦춰줄만큼 발전한 스토리나 사물의 시각이라는 설정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설정들이 인물과 유기적으로 합쳐지지는 않아서 
머리핀 정도의 장식효과에 그쳤다.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이 새롭게 느껴진 건
표현하고 결정하는 여자의 표정에 드러나는 쾌락과  
연애의 영원하지 않음에 낙담하지 않고 추억하는 당당함이다. 
꽤, 유혹적이었다.
기다렸어, 이런 영화.

영화속 호스트바의 풍경에서 깜짝 놀랐다.
저것은 주말이면 '음악'프로그램이라는 곳에 등장하는 아이돌의 무대가 아닌가.
열광하는 이모팬, 삼촌팬과 아이돌의 무대가 그위에 겹쳐졌다.
결국 양지에서 뭐 다른 게 있는 척 이루어지는 관음의 향연인.

약간의 아쉬움이라면 
전형적인 근육청년들 뿐이라 좀 식상하다는 것인데
다음번엔 좀 다양한 취향을 고려해주시면 고맙겠어요^^

정석원-호스트바에서 장서희와 얘기할때의 대사는 다른 장면들과 아주 달랐다.
아이라인만큼이나 잘 어울리던. 

감독, 뚝심이 좀 있는 사람같다.
마이너스러운 내용을 메이저로 연출하다니.

외면일기|Journal Extime|미셸 투르니에

아랍속담: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다고 자처하는 자는 화병으로 죽을 위험이 있다"


더불어 말을 주고 받을 상대가 없다는 것은 곧 할 말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발자크, 뒤마, 바그너 같은 사람들이 한사코 호사스러운 사람들에 둘어싸여 지내고 싶어 한 것은 아마도 숨이 막힐 것 같은 그 편협한 인간군상에 대하여 응수하라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내가 쓴 작품이 네 머릿속으로 파고들 방법이 없으니 하다못해 내가 사는 방식을 통해서라도 네가 존경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수밖에"


어떤 알지 못하는 여자가 내게 원고를 보내온다. 설명인즉, "어떤 말을 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서 글을 쓰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겠다. 하지만 글을 쓴들 누가 읽어주겠는가?


L.D의 기막힌 고난. 카마르그 사람인 그는 한 번도 파리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파리에 가게 되어 피라미드가를 가로질러 오페라 대로로 접어든다. 그때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던 행인들을 덮친다. 운전자가 심근경색으로 그 자리에서 숨졌기 때문이다. L.D는 두 다리가 부서졌다. 그때 이후 그는 목발을 짚고 힘들게 걷는다.   


시몬느 베이유: "인간의 사랑에서 맛볼 수 있는 가장 달콤한 쾌락들 중 하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가 모르는 가운데 봉사하는 것"


자신이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책의 탁월한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프로페셔널의 특권이 아닐까 한다. 반대로 아마추어는 자기의 취향과 맞지 않는다 싶으면 즉시 그 책의 분명한 장점들에 대해서도 아예 장님이 되어 버린다. 


폴 발레리의 플레이아드 전집 제 1권에서 문득 '물의 예찬'이라는 멋진 텍스트를 발견한다. 문학의 어떤 드높은 경지를 보여주는. 그런데 그 글에 대한 주석이 달려있어 읽어보니, 그 글이 페리에 광천수 회사에서 발레리에게 청탁한 광고문안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요한 세바스찬 바하가 소나타나 칸타타의 주문을 받고 불후의 명작을 작곡해준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천재'니, '재능'이니 하는 말은 그의 사전에 없었다. 그는 오직 가장 겸허한 장인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1992년 4월. 프랑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과 영국의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이 동시에, 거의 같은 나이에(각각 1908년과 1909년에 출생) 사망했다는 소식. 이보다 더 완벽하고 자연스런 대조는 상상하기 어렵다. 하늘을 노래한 작곡가와 지옥을 그린 화가가 동시에 죽어 서로 만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다니. 


알퐁스 알레: "피라미드의 형태 자체는 아주 아득한 고대에 이미 노동자들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일을 적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볼테르: "나는 작은 시냇물과도 같다. 나는 깊지 않기 때문에 맑다."


쥘 베른느는 그의 예언적인 책 '20세기의 파리'에서 장차 건설하게 될 전철은 당연히 공중에다가 놓을 수 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이 도시의 지하의 시설들이 너무나도 복잡하게 뒤얽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 지적은 20미터 미만까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지하 30미터가 넘으면...거기서는 사막한 가운데나 처녀림 한복판이나 마찬가지인 순수한 대지적 요소를 다시 만나게 된다. 인간의 문명은 불순물들의 얇은 막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얘들다, 투르니에 집안의 모든 사람들은 뇌에 종양이 있다는 걸 알아둬라. 너희들도 투르니에 집안이니 너희들 역시 미치광이들이란다. 그런데 나로 말하면 집안에서 행동이 가장 얌전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나는 뇌속에 있는 모든 광기들을 내 책들 속에다 전부 다 비웠기 때문이지."


역사시대의 두개골과 선사시대의 두개골...두개골에 혓바닥을 대보고서 알아내는 방법...선사시대의 두개골은 골막이 없어졌기 때문에 혀에 강하게 밀착된다...긴 두개골을 가진 사람들은 역동적이며, 전투적인 성격, 변덕이 특징이다. 둥근 두개골을 가진 사람은 차분하고 현명하고 안정적이다...골상학을 창시한 F.J.갈이 말했듯이 "뇌는 광대한 대륙이고 그것을 에워싸는 두개는 그 지도다."


스탕달: "이상화할 것, 라파엘이 초상화를 그릴 때 실물과 가장 닮아 보이도록 하기 위하여 이상화하듯이."


박쥐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생쥐가 소리친다: "오, 천사로구나!"


우리 집 정원에서 넓적부리 암놈 한 마리가 제 아들놈 중 하나와 살림을 차렸다. 자연이 앙갚음을 하는지 이 암놈들이 모두 새끼를 깔 수 없는 알을 낳았다. 그런데도 암놈은 한사코 알을 품는다. 두 번이나 나는 암놈이 그 알을 깨어서 속에 든 것을 삼키는 것을 보았다. 그러더니 괴상하게도 이 암놈은 그 알의 껍질들을 연못에 가지고 가서 씻는 것이다. 이 새는 마치 내게 나 자신에 대한 일종의 회화를 보여주는 느낌이다. 구상하다가 결국은 실패하고 만 작품들의 원고를 버리지 못한 채 끝없이 품고 있는 작가의 희화를 말이다. 


1.나는 금주할 능력이 있는가. 대답: 그렇다.
2.금주를 하기가 힘든가? 대답:그렇다.
3.금주를 해서 얻은 이익이 무엇인가? 대답: 없다.


아를르에서 살던 잔느 칼르망이 123세에 사망하다. 그녀는 인류의 장로다. 특별한 섭생법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분별있게 살아야지요. 그래서 나는 114살 때 술과 담배를 끊었었어요."


우리 마을 정육점 주인: "투르니에 씨. 나처럼 진짜 당신을 잘 아는 처지라면 당신이 쓴 책 같은 것은 안 읽어도 되는 거죠, 안 그래요?"


앙트완 블롱뎅: "나는 나 자신의 문턱에서 사는 데 길이 들었다. 왜냐하면 안으로 들어가 보면 너무 어둡기 때문이다."


일기란 늘  자신의 내면의 들여다보기 마련이지만 자신은 자신이 만나는 세상이 늘 더 큰 자극을 주기에 외면일기를 쓰기로 했단다. 자신이 보고 느끼고 만나는 것들에 대해 짧으나 기록해두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았으나 그것을 허망하게 느끼는 파우스트에 반대하면서 오히려 어린 시절로 돌아가 영재가 되어 최대한 많은 지식을 받아들이고 소양을 쌓아 새로운 인생을 사는 자신을 소설의 소재로 삼고 싶어하는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집-김화영과의 인터뷰가 부록으로 들어있다.

황야의 수탉에서 느껴지던 발랄함과 재기가 약간은 엿보이는 산문이지만 역시 산문집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프랑스에서 투르니에의 어린이용 책들은 베스트셀러라는데 노작가와 아이들의 조합은 참 잘 어울린다 싶다. 몇 권은 재미있게 몇 권은 난해하게 읽어서 이제는 투르니에를 좋아한다고 해얄지 아닐지도 확실치 않지만, 관심이 가는 작가인 것은 분명하다.
드문 산문집 도전.

피아니스트 백건우 리사이틀|2011


P R O G R A M
베토벤 Beethoven월광 소나타 Sonata No.14 Op. 27-2 “Moonlight”
브람스Brahms인테르메초 작품 117의 1번 Intermezzo Op. 117-1
인테르메초 작품 117의 1번 Capriccio Op. 76-1
인테르메초 작품 118의 2번 Intermezzo Op. 118-2
--------- intermission -------
리스트Liszt소나타 B단조 Sonata in B minor

또박또박 소리의 세계를 이끌어 줄 거장 백건우를 기대하고 갔다가
청년 백건우를 만나고 왔다.

연애버전 같던 월광.
아주 가까이로 풍부한 감성이 찾아오는가 싶더니
3악장의 폭주-제어를 벗어난 듯한-에 가슴은 여러 번 두근두근.

브람스는 내겐 겨울 풍경 중 하나 같은 이름.
음...생각해보니 가을도 쫌 그런가..?
백건우의 브람스 새앨범 찜.

심난한(^^) 리스트지만
중간중간에 아름다운 선율이 숨어있었다.
백건우가 맘에 든 건 어느 부분일까?
월광의 3악장과 이어져 있는 것 같기도 했던.

연주 뿐 아니라 공연이라 부르기에 손색없던
짧은 시간이었다.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유난히 꼬리가 길던
중간입장 관객이 한명 있었다.
백건우에게 내가 다 미안할 정도...
속으로 다짐했다.
이제부터 공연에 지각 않도록 노력해야지.
혹 늦을 것 같다면
절대 소리 안나는 신발을 신고 가야지...



밤과 낮|Night and Day|2008

인류의 기원이란 제목이 더 멋있지만 애정의 기원이 더 홍상수그러운^^

고무봉다리 하나 달랑 들고 파리 사파리에 나선 마약전과 화가 양반.
단 두 달 만에
옛연인-새연인-아내의 염정트라이앵글을 통과.
하하하.

한국 여관방과 술집에서 하산한 홍상수가
파리의 여관방과 술집으로 안내한다.
파리의 홍상수 관광지, 한번 가보고 싶다.

그러고보니 은근 1박2일 스타일.


요즘 홍상수 영화들을 보고 있자면
사랑이란 게 귀엽긴 한데
볼수록 알수 없어지는 느낌이다.
홍상수, 당신의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계몽영화|Enlightenment Film|2009

포스터도 야심찬 '계몽영화'

가끔
아버지 전두환, 아버지 이건희,
키스커플 이명박과 김윤옥 각각의 비위...
뭐 이런 것들이 한숨만큼 궁금했었다.

그런 집안들의 속살을 야심차게 까보여주는 
씩씩하고 발랄한 '계몽영화'.
가르치려들어도 좋아, 이렇게 재미있다면.

표백|장강명|한겨레출판

마음에 드는 표지-파격,도발,고발 다 아닌 것 같지만^^


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것은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렇게 쪼잔한 스케일의 세상에 우리를 밀어넣는 것에 항의하겠다는 
단호한 의사표시를 하는 젊은이들의 기록, 표백.
개인의 개성이 조직에 묻혀 순응되어간다는 점에서 
'표백'이라는 표현은 일리가 있긴 하지만
굳이 78년 이후의 한국이 아니더라도
그냥 보편적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타협해가는 과정-이라고 많이들 생각하지 않나?

언젠가 어디선가 읽었던 내용들이 같이 떠오른다.
이름도 까먹었지만 꽤 유명한 온라인논객이 20대들에게 충고하던 글이었다.
젊은 아름다움이 경쟁력인 여배우사회에서조차
3-40대들이 20대보다 대접받고 몸값도 높다는 걸 지적하며
청춘을 보조로 만들어버린 사회에 반항하고 저항하라고 했었다.

책장이 잘 넘어간다.
그런 와중에도 무언가는 이빨에 낀다.
도박빚을 갚으려고 죄와벌을 썼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고 하더니, 
타협형의 인간들의 선의의 행동이 
그들의 삶에서 우선순위가 아니고 이기심의 발로라는 것을 지적하는 식이다.

책을 읽고나면 
진짜 어린-낙담도 하고, 허세도 부리고, 
지적 허영을 뽐내기도 하며 그 가운데 구멍을 드러내기도 하는-작가의 
도전작 같은 느낌이 드는데
경력있는 기자의 소설이라는 것이 의외였다.

사실 내용에 호기심을 느껴 읽은 책인데 
오히려 후반부의 미스테리 전개가 유일한 매력으로 느껴진다.
다 읽었지만 밑줄 긋고 싶은 부분은 없다.
주요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 부분에서 팍 웃었다.

그날 나는 다른 팀원들과 저녁을 먹지 않고 주간지 기자인 휘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휘영이 약속에 늦었지만, 전화를 걸어 어디까지 왔느냐고 재촉하는 일 없이 하급 공무원답게 기다리고 있었다. 휘영도 약속시간에 늦어서 미안하다, 지금 어디까지 왔는데 얼마 뒤면 도착할 것 같다는 전화는 걸지 않았다. 기자답다.

한 가지 더 재미있었던 건 작가가 인용하고 있는 책들 중에서 
내가 읽은 것도 몇 권있는데 
인용한 부분들 중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었다는 것.
이 작가와 나는 같은 책을 좋아라 읽으면서도 
완전 다른 부분에 열광하는 취향^^ 
그래서인지 
읽지 않은 책중에서도 별로 관심가는 책은 없었는데 
딱 한 권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처녀귀신'.
꼭 읽어봐야지.

PS. 후반부 삼성전자 휴대폰은 소설 최초의 PPL?
삼성이라는 이름이 여러 번 실명등장하는 게 그냥 짜증스러웠음.

====================================================================
소설이긴 해도 연쇄자살저항이 꽤 컸나보다.
문득 그들의 항의를 곱씹게 된다.
우주의 중심이 나인데
왜 그들은 그렇게 거대담론에 목말라했던 것일까.
끝까지 '보여주기'를 포기 못했다는 건
스스로의 행복에는 무관심하면서 
다른 사람의 선망으로만 만족하는 
산업세대 같은 낡은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뜻한다.
그런, 
거대해야한다는 강박증에 가려
네모난 지구의 끝에서 뛰어내려버린 에너지를 통해
불쌍한 이 시절의 청춘도 청춘임을
보여주려는 것이었을까.

두근두근 내 인생|김애란|창비

그래서 이번에는 바람의 열세 계급 중 0계급에 속한다는 '고요'라는 단어를 읊어보았다. 그것은 한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기척이 되어, 세상에서 가장 멀리가는 동그라미를 만들어냈다. 신기한 일이었다. 0계급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줄 알았는데, 0계급이 무언가 하고 있었다.


'.....어릴 때 나는 까꿍놀이라는 걸 좋아했대. 아버지가 문 뒤에서 '까꿍!'하고 나타나면 까르르 웃고, 감쪽같이 사라진 뒤 다시 '까꿍!'하고 나타나면 더 크게 웃었다나봐. 그런데 어느 책에서 보니까, 그건 아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기억을 저장하는 거라더라, 그런 걸 배워야 알 수 있다니, 그렇게 작은 바보들이 어떻게 나중에 기술자도 되고 학자도 되는 지 모르겠어. 나는 처음부터 내가 나인 줄 알았는데, 내가 나이기까지 대체 얼마나 많은 손을 타야했던 걸까. 내가 잠든 사이 부모님이 하신 일들을 생각하면 가끔 놀라워....

아름이의 몸을 빠르게 자라고 그래서 일찍 늙게 만든 건 병이었지만,
보통, 어른되기의 과정이 그렇듯
아름이의 내면을 좀 극적이지만 평범하게 자라게 한 건
사람과 사연이었다.

'이웃에게 희망을'에서 볼 법한 불치병에 걸린 아이와 그 가족의 이야기.
하지만 내용은 전혀 신파가 아니다.
경쾌하고 솔직하게 아름이의 속을 파고들어간 작가의 감성과
아름이의 담백한 시선이 즐거움을 준다.
성석제의 극찬에서 눈치챘겠지만
성석제 스타일의 유머도 대거 등장한다.

결국 잉태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자신의 역사를 완성하고 떠난 아름이에게 명복을.
 

공연|쿠루리 단독공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의 훌륭한 OST로 기억하고 있던 쿠루리.
달랑 하나 뿐인 앨범이지만 지산락페스티발을 갈까도 고민하게 만들었던
나의 파워라인업 밴드.

공연의 시작은
제법 하드한 곡들이어서
깜짝 놀랐다.
하이웨이의 약간 나른하면서도 담백한 보컬을 생각했기에
쎈 보컬에 잠시 당황.
소리는 좀 더 탁했던 것 같다.
전곡 음이탈의 진기록.
안그래도 전날 한잔했나 싶었는데
전날 막걸리 마셨다고 솔직하게 고백을 했다.

들려준 신곡 중 몇곡 끌렸고
예상과 다른 소리였지만 역시 하이웨이 좋았다.
신나게 놀아보자 했으나
그만큼의 흥이 나지 않아 살짝 미안.
일본의 델리스파이스라고나 할까.

공연장은 체조경기장 수준의 음향이었고
지하 구석에 비해 뭐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지만
코앞에서도 찾을 수 없던,
인근 상인들도 알지 못하던 상호 V홀.
덕분에 생면부지의 커피집 손님에게 부탁해 길찾기를 시도했다.
차라리 서교호텔 별관 지하라는 이름으로 찾아가시라.

그대를 사랑합니다|I Love You|2010

그대를 사랑합니다-진짜 울고 웃게 해...

자, 다양한 사랑얘기로 한 걸음.

동감|2000




"선배가 이러지 않아도 내일 대통령은 바뀌어요."
라는 소은의 말이 거슬린다. 
선배가 그랬기 때문에 다음날 대통령이 바뀌었다는 게
내 생각이라서.
상관없을 것 같지만
각자의 분야에서 싸워온 사람들 때문에 세상은 조금씩 바뀌어가고
그래서 서로에게 조금씩 변화가 이롭게 되는 것이 
사회라고 생각하기에 
늘 움직이는 사람들에 대한 마음 빚이 있다.

그러고 보면 2000년대 영화답지 않게 
등장인물들이 참 구태의연하다.
미래의 남자가 과거의 여자에게
잘 알지도 못하면서 번번이 가르치려 드는 것도 그렇고.
층진 머리의 77년도 대학생도 이상해.
여러모로
헐렁한데 비해 운이 좋았던 영화.
소은이의 시절을 좀 진짜 같게 그렸더라면 
그것만으로도 
두고두고 의미있었을텐데.

유지태와 김하늘을 보는 즐거움,
장자연사건 이후로 짜증나도록 싫은 송병준과 결혼한 
이름이 기억안나는 여배우가 등장한다.
임재범의 노래가 벌써 12년전이었다는 것도 좀 낯서네.

로미오와 줄리엣|국립발레단



몇달 전 예매할 땐 몰랐는데 시작전 갑자기 정명훈이 등장.
영화처럼 크레딧이 등장하더니 정명훈과 서울시향의 이름이 보였다.

만약 내가 매년 로미오와 줄리엣을 보는 관객이라면
오늘 공연은 참신하고 새로운 감동의 공연이었을 것이다.
미니멀하고 기능적인 무대,
내면묘사를 하는 듯한 무용수들의 움직임.
하지만 아직은 고전발레-내 기준엔 동작이 극의 기능적 역할로서 보다는 
동작 자체에 더 집중할 수 있는-를 좀 더 보고 싶은 내겐
응용 버전인 이번 공연이 예상을 너무 많이 벗어났다고나 할까.
명성을 확인시켜주는 정명훈과 서울시향과 영화같은 연출 덕에
한편으로는 
서울시향과 함께 하는 발레가 아니라
발레와 함께하는 서울시향의 프로코피예프 완주 처럼도 느껴졌다.

시작 전엔
로미오와 줄리엣이니만큼 
박슬기가 줄리엣을 해도 괜찮지 않을까 생각했는데
오늘의 줄리엣은 고혹적으로 로미오에게 한 수 가르쳐 주기도 하는 역할.
김주원이 워낙 유명한 얼굴이기 망정이지
의상이 좀 이상해서 잠시 캐퓰렛 부인인 줄 알았다--;;

전체적으로 폭풍 감동의 공연은 아니었지만
역시나 눈에 띄는 한 사람은 있었으니.
오늘은 유모.
첫 등장의 짧은 독무대도 혼자 꽉 채운 개성만점의 캐릭터였다.
인형 같은 움직임과 동작으로 나타나는 표현들이 왠지 풍성하게 느껴지던.
---캐스팅을 보니 박슬기^^

***국립발레단 홈페이지에 보면 전에 무척 재미있게 봤던 신데렐라와 
오늘 로미오와 줄리엣이 같은 안무가의 솜씨란다.
뭔가 오늘의 불만이 말끔하게 설명되지 않는 느낌--;;

드라마스페셜 82년생 지훈이

오랜만에 몰입해서 보고 있던 단막극인데
지훈이부자 갈등의 클라이막스에서 갑자기 아버지가 TV를 켜니
뉴스가 흘러나온다.
1026서울시장선거 관련내용이다.
선거독려 차원인가 했더니
박원순의 900억 의혹과 나경원의 다이아반지가 나온다.
조용할 땐 나경원의 해명과 선거유세가
두 부자가 고래고래 소리지를 땐  나경원의 의혹과 박원순의 유세가
길게 깔렸다.
기계적인 배분은 공평할지몰라도
의혹의 무게감도 다른 걸 배치하는 것도 그렇고
효과적으로는 매우 불공정했다.
무엇보다도.
극에서 매우 중요한 장면이었는데
뉴스가 거슬려서 드라마를 놓쳤다.
이 드라마의 연출자, 드라마를 생각하고 이펙트를 넣는 건가?
여러모로 작가 짜증나겠다.
오늘 돌린 보도자료도 짜증나겠던데...

나는 꼼수다23회-홍준표대표초청 관훈토론회

최초의 삐리리가 삽입된 버전.
방송사상 최장길이.
이러저러 기록을 만들어가고 있는 와중에 또 몇 개를 더한 특집방송이 된 23회.

17대일보
털보일보
누나일보
양돈일보

당당한 찌라시들.
아무래도 낯가리는 유일한 사이이다보니 기척이 자주느껴지지는 않았지만
김용민이 유난히 호방하게 웃을 땐 분위기가 100% 유지된다.
그리고 홍준표.
정치인이다-고문료 '좀'이 얼마든 다달이 돈 들어오는 '일'에 이름을 올려놓고 몇년간 '깜빡 잊'을 수가 있거나 '깜빡 잊'었다고 말할 수 있다.
사람이다-외로운 거 싫어하고 미움받기 싫어한다.

연극|우어 파우스트|Ur Faust


지난 번 오이디푸스 이후 명동극장에 대한 신뢰가 생겨 더 기대가 되던 오늘.
특별한 무대장치 없이도 배우들의 움직임과 공간 그 자체를 자신만만하게 활용하는
젊은 감각이 돋보였던 무대였다.
하지만.
원작을 모르기에 어디까지가 괴테의 진심인지도 알 수 없지만,
도대체 이 비극은 무엇을 향해 달리는 것인지 의아했다.
당당하게 거래하는 듯 하면서도 결정적인 순간에 휘둘리는 파우스트는
베르테르의 나약함과 지식인의 자기연민이 조합된 매력제로의 인간이었고,
가볍고 일상적인 악마에서 공포로 넘어가지 못한 채 혐오수준의 악이었던 
메피스토도 설득력이 없었다.
이따금 지킬과 하이드처럼 보이기도 했던 둘이지만
같이 등장할 땐 오히려 관계가 모호해보였다.

그 중에서도 최악은  그레첸의 설정인데
약간 실험극 처럼도 느껴지는 극의 분위기와는 동떨어지게도
마녀사냥 이전 시절의 순결이데올로기가 결정적인 갈등의 기폭제가 된다는 것이
참...짜증스러웠다.
정규수의 역할이 신인 줄 알았는데 바그너였다니-헐.
기본없이는 볼 수 없는 극이었던 모양인데
그런 줄 알았으면 당연히 안봤을걸...

오늘의 보석은 주얼리 정-이 아니고^^
발렌틴 역의 윤대열.
발렌틴은 어딘가 '해변의 여인'속 하정우캐릭터를 생각나게 하는 인물인데
이남희가 전형적인 '연극배우'스타일의 연기라면
어느 무대에서나 자연스럽게 보일 연기를 연극무대에서도 존재감있게 보여주었다.

이래저래 기대에 미치지 못한 공연.
명동극장이 아니라 국립극단에 신뢰를 보내야 할 지..?

연극|라이어3|2011



끝난 후 '너무 재밌었어'라고 말할지언정
공연중엔 기본 만원어치는 주무시는 우리 배여사께서도 
한숨 졸지도 않고 보신 연극.
호언장담이 무색하지 않게 
계속, 쭉 웃긴다.

무려 2/3가 넘는 시간동안 갈등의 주원인이었던 부인이
끝나기 5분 전 갑작스럽게 변심하는 것,
동성애에 대한 희화화,
끝까지 몰아치기만 하는 반전의 연속의 어수선함에도 불구하고
꼬리에 꼬리를 무는 이야기의 전개는
감탄할 만 했다.
그래도 압권은
낯설지만 폭발력 있던 배우들의 힘!
배우들의 크레딧을 좀 공개해 주지...

강정평화상단 소라젓

뜻에 동참하고자 주문하기로 맘을 먹고서도
혹시 맛없으면 뜻에도 동참하기 싫어질까봐
소심하게 소라젓 하나만 주문했다.
원래 휴가차 며칠 집을 떠날 계획이어서
발송을 미뤄달라고 메일을 보냈는데
(강정상단은 매주 화요일에 모아서 발송해서
수요일에 받을 수 있게 해준다고 한다)
고맙게도 하루 당겨 부쳐주겠다고 전화가 왔다.
더운날씨에 관리실에 방치되는 것이 좀 걱정스러웠는데
다행이 날씨가 도와줘서 무사히 밤에 받았다.
그런데....
200g한병을 맥주 안주로 한입에 다 먹어버림--;;
처음 먹어보는 소라젓은 
젓갈이라기보다는 그냥 무침같은 맛인데
오독오독 씹히는 조미료기운 없는 믿음직스러운 맛!
두려움 없이 더 주문하겠어~~!

한가지. 
화려한 아이스팩포장이 아닌
소박한 버블캡에 우체국 배송이라
더운 날씨라면 조큼 걱정.....

공연|YB초심유지인증콘서트 '청춘'


10분 늦은 공연장에서는 '88만원의 Losing Game'의 클라이막스(^^) 인 8.10.8의 10.8 부분이 
무한반복되고 있었다. 
왠지 감이 좋은(ㅎㅎ) 시작이다 싶었는데 
뒤이은 곡은 백만년 만에 들어보는 '이 땅에 살기 위하여'!
YB가 윤도현밴드이던 시절 
'성실함'이 느껴지는 특이한 목소리와 음악에서 느끼던, 
설명할 수 없는 한국적인 감성에
뭔가를 더해주던 인상깊은 곡이었다.
참 처절한 가사를 전달하는 절규형 랩인데
묘하게도.
신.나.서!
귀엽게 생긴 윤도현이 열심히 노래하는 모습에 반했었지만
이 곡으로 윤도현밴드의 음악적 색깔과 재능의 냄새를 맡았다고나 할까.

YB를 찾은 건 거의 10년만이다.
사실 작년에 펜타에서 보긴 했지만 
YB 때문에 간 건 아니었으니깐...
요즘 깃발과 나는 나비를 반갑게 듣던 중이어서 공연을 질렀는데
신나게 놀다왔다.
내심 끝날 때쯤 '깃발' 한 번 더 질러주지 싶었는데
'빙글빙글'이 그렇게 신나게 마무리를 해줄 줄이야.
'돌고돌고돌고'는 조금 지칩디다....
어쨌든 연말 전석스탠딩 예고를 즐겁게 품고 왔다.
그땐 마실 것 준비에 만반을 기하겠어^^! 
후반사운드 같은 재앙은 또 없기를...

YB의 친구 STERANKO.
사운드만으로는 YB보다 더 신나기도 했는데
노래보다는 체력장에 몰두하는 보컬 덕에
대체 보컬 목소리가 기억이 안나--;;
참아줘서 고맙다는 마지막 인삿말이 인상적이었다. 
펑크락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았는데
음악은 무척 흥겹던.
찾아다니진 않을 것 같은데 
만나면 좋을 친구^^

올림픽공원 공연은 
전후로 사람을 참 지치게 하는데
특히 후가 더 심하다.
몰려있는 지방전용 택시들-그렇게 한몫 바라고 죽치느니
어디로든 달려가시는 게 즐겁지 아니할까요...?
밀고 들어갈 틈없는 버스와 지하철-계단까지 줄선 모습에 할 말을 잃었다.
다음엔 아무 버스나 타고 일단 탈출해야겠어.

소녀시대의 공연이 있는 날이었다.
덕분에 지하철 일회권을 끊는 범 아시아 팬들로 일대가 더 붐비던 엄청난 광경을 목격했다.
조폭 SM이 양성하는 18개의 허벅지의 엄청난 파워.
하긴 꿈을 이룬 소녀들은 멋지고
누군가들은 또 즐거운 하루를 보냈겠지.
그 많은 인파 중 누구도 공연의 감동을 얘기하고 있지는 않았지만.


악인|悪人|Villain|2010



진실의 뒷면을 한치의 예외없이 반듯하게 드러내주는 
단정한 영화, 악인.
모든 등장인물을 사랑하지 않는 게 조금 아쉬운 점이라면
집중력을 몰아부치는 리듬이 힘있어 보인다. 
이상일 감독은 전에 신나게 본 적 있는 식스티나인의 감독.
피와뼈의 감독인 줄 알고 어쩐지 명성에 비해 안 무섭다 했더니만--;;

재미대가리없던 슬로우댄스라는 드라마 이후 
다시보는 츠마부키 사토시와 후카츠 에리.
후카츠에리는 대사없는 순간의 무게를 표정에 실을 줄 아는 배우다.
참 눈에 안 띄는 얼굴 같은데도
어떤 드라마나 영화든 한 장면은 꼭 던져주고 가는 배우.
점점 단단해져간다는 인상을 받는다. 

이쁜 사토시에 푹 빠져 있던 한 때가 있었지, 크하하...
그때도 거슬리던 입 삐죽거리기 버릇이 많이 사라졌다.
놀라운 사실은 
이젠 그지같이 하고 나오면 정말 그지같이 보이기도 하는 것!
드라마에선 둘의 존재감이 비슷해보였는데
영화에선 둘의 거리가 꽤 있어뵌다, 아직은.
그래도 이쁜이가 쑥쑥 자라 배우가 되어가는 것을 보니 즐거운 걸.


여행냄새

넉넉한 양에 저렴함을 자랑해서 
여행갈 때면 팔다리용 썬크림으로 애용하는 니베아 썬크림.
잠깐 문 밖을 나설 땐 얼굴용 썬크림을 아끼려고(^^)
+ 썩기 전에 쓰려고
바르고 나가곤 한다.

오늘도 한가한 마음으로 야트막한 정발산을 걷는데
갑자기 휙 지나가는 '여행냄새'.
정체는 바로 여행 때마다 바르던 물건 냄새와 나무, 흙의 풍경의 조화였다.

예전, 연극 '19그리고 90'에서 귀여운 할머니가 
'예술에서 천대받는 후각을 위한 기계'를 소개할 때
처음으로 후각을 위한 예술이 없다는 걸 깨달았는데,
혹시 후각이야말로 너무나 선동적이어서 
감히 건드리지 못한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대표적인 환각제들이 코를 통해 들어가는 것도 그렇고
버터냄새에 미친듯이 빵집으로 달려들어간다거나
음식의 모양보다도 냄새에 더 이성을 잃는 것도 그렇고
아, 그래, 그 유명한 소설 '향수'도 있었다.
학생시절 행사준비를 하던 기분이 냄새로 기억나기도 해서
나는 지금도 공연장을 가면 기분이 좋기도 하고, 
긴장을 하기도 한다-누가 날 부를 일이 생길까봐^^
내 나름대로 이름붙이기로는 
'관계자외 출입금지'구역 냄새^^

냄새와 두뇌는 좀 더 빠른 길로 연결되어 있는 건지도.
사진을 볼 때보다 
더 자유롭게 추억할 수 있게 해주는 것 같기도 하다,
느낌이 더 살아있도록.
놀러가고 싶은 충동이 더 자극되기도 하지만.


우리 의사 선생님|Dear Doctor|2009



침 인상좋은 소아과 의사 였던 모습이 기억나는데
여기서도 주민들과 사이좋게 지내는 의사였던 쇼후쿠테이 츠루베(난이도 최상의 이름--;;),
풋풋함으로 기억하고 있는 에이타.
보기 좋은 앙상블이었다.
비교해보면 신정아의 악마버전이 미스리플리,
천사버전이 우리의사선생님?
마지막의 의리는 깜찍했지만
적당히 밍숭맹숭한 휴먼드라마.

가끔 '완전한 전문직'이라고 생각했던 직업들에 대한
새로운 구멍에 충격을 받는다.
하긴 허준도 한의대에서 배운 게 아니니까.

고백|Confessions|2010

정말 정직한 제목 '고백'


아이들의 문제는 사실 부모일 때가 많다.
아무래도 권장할 수는 없는 엄마의 복수래도
그렇게 해서 속이라도 풀린다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유코의 복수는 결국 피해자를 늘리고 말았다.
자기 인생은 스스로 책임져야한다는 이 사람의 생각으로는
전혀 책임감을 느끼지 않겠지만,
내가 볼 때는
그렇다.

깨달음까지는 좋았지만 
궁지에 몰린 아이들은 손에 피를 더 묻히고 말았으니.


문제를 꿰뚫는 유코의 한마디 한마디는 
통쾌하고 신선하고 무섭다.
결국은 아픈 아이들을 상대로 한 참 험한 싸움.

수상한 고객들|2011

대단한 승범 옆의 대단한 임주환

대단한 승범 옆의 파워풀한 김수미


어떡해, 너무 좋은 승범씨~!

별로 기대하지 않았는데...!
극장에서 안본 후회영화 1순위.
승범을 위한 영화인지는 몰라도
승범의, 승범에 의한 영화임은 확실하다.

후비는 것 같은 비탄의 대사들에도 불구하고
달콤하게 녹아버린 결말은 좀 허무하지만
보기 좋은 걸 어쩌리.
센스있는 승범의 졸업선물까지
땀방울로 달려가는 코미디.

류승범이 자꾸 멋있는 남자가 되어가는 것이 아쉬우면서도 빠져든다.
근데 시사회에서는 왜 당황한 걸까.
궁금하네, 정말.

애정만세|2011

부지영의 산정호수의 맛
제법 선정적인 것 같은 소재와 제목이지만 어찌보면 좀 황폐하기까지 했던.

첫 장면부터 강렬했다.
벌판의 남녀.
뿌연 렌즈 너머로 애틋함이 오가는 눈빛에
불행한 결혼의 흔적 같았던 상처를 애절하게 보듬던 순한 젊은 남자와
그 연정에 격하게 반응하던 중년의 여자.
이어진 장면은 여자의 적나라하게 벌거벗은 얼굴이다.
자석요가 겹겹이 깔린 방안은 
그녀가 고단하게 몸쓰는 일을 한다는 걸 그대로 보여주었는데
그 다음 장면에서 편의점에서 일하는 딸을 찾아간 그녀는 
방안에 안어울리게 놓여있던 핑크색 어그부츠가 딸의 노동의 댓가이고
갑작스런 산정호수 나들이에 그 어그를 신고 나설만큼 
연애하는 이 여자가 
딸의 입장에서는 짜증나는 엄마임을 보여준다.
한 장면 한 장면 잡히는 소품마다 
열렬히 정보를 전해주는 성실한 영화가 참 오랜만인 것 같다.
(특히 내 말귀 수준에 딱 맞게 전해주시는 경우는^^)

나름 적극적이면서 적나라한 환상연애.
사랑받는 사람의 빛이 자신감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의 빛은 자신을 가꾸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사랑에 빠져 헤롱대는 여자의 모습 그대로 
그저 발산 뿐 이었다.
아마도 그녀의 연애가 빛나지 않았던 이유.

딸이 알바로 장만한 어그를 신고나가 개꼴을 만들어버리는 
민폐엄마의 위대한 등장에 박수를~
부지영의 새영화가 보고싶다.

 양익준의 미성년
사랑스런 그녀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롤리타 컴플렉스

남자는 처절하게 연애에 패배했다.
여고생도 연애상처를 극복하기 전이다.
그래서 연애한다.
단도직입담백연애스토리이긴 한데
그녀의 매력이 물씬 풍겨남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성년에도 빠져드는 남자라기 보다는
그저 미성년을 마다할 수 없는 남자로 보인다.
보지않은 영화 똥파리에서도 여고생이 등장한다던데.
이십일세기형 당돌과 도발의 덕목을 갖춘 여고생에게 끌려다니기 딱 좋은 우유부단형 남자.
로리타컴플렉스의 한국형 완성작 이다.

기대보다는 덜 심심했고
기대보다는 좀 아쉬웠지만
모처럼 단편의 허전함이 없는
재미있던 시간이었다.

임재범 콘서트-다시 깨어난 거인|2011


이번 공연만큼은 '노래하는 임재범' 보다는 '사람 임재범'으로 만나고 싶었던 듯
전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직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의 갑작스런 갈채가 낯설다면서도
'사람 임재범'은 자신을 좋아해 찾아와 준 사람들속에서 
좀 편해지고 싶었던 것 같았다.

시작은 '빈잔' 라이브.
의리의 차가수 등장.
그 다음은 추노 주제곡, 시티헌터 주제곡,
'주먹이 운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등
리메이크나 드라마주제곡 같은
서비스 정신 투철한 곡들이 이어졌다.
(가수가 서비스 업종인지는 임재범 덕에 알았네^^)
 그 노래들 사이로 들려주는 '재범이 형'의 이야기들.
강도도 내용도 쎄졌지만
공연통과의례같은 그의 인생반성문과 참회. 
순간의 진심이겠지만
사실 난 이러다가 재범이 형이 또 어디론가 사라져버려도 
놀라지 않을 거다.
좀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기는 하겠으나.

전보다 많아진 이야기와 초대가수들, 
아우라를 스스로 찢어버린 재범이 형이
굶주린 팬들을 위해 마련한 
임재범표 쎄시봉 같다고 생각하며 아쉬워 하고 있었는데.
아, 역시 그는 록커다.

세 곡 뿐이긴 했지만,
십대부터 70대 이상까지
나가수 이후로 마치 국민가수가 된듯한 다양한 팬층을 두고도
디아블로와 함께
달릴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다음 공연때까진 Rock in Korea, Paradom(대체 무슨 뜻인가--;;)의 가사를 
반드시 외워버리겠어요!

아마도 오늘은 어제보다 더 힘들었을텐데
YB의 등장으로 힘 좀 받으셨을까나.
내가 해준 건 암것도 없지만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친해지는 건 
어쩐지 흐뭇하다.
가끔 노래하는 표정을 보면
배우의 피가 흐르는 건 아닌가도 싶다.
연기데뷔작이자 은퇴작이었던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에서의 연기는
기억이 안나는데 말야^^

공연에선 처음 들어보는 '최선의 고백'-정말 임재범 버전의 멋진 축가가 되었다.
그런 와중에 All by myself와 거인의 잠-인줄 알았는데 '추락':아직도 헷갈리다니...-은 지금이라고 느껴질 만큼 처절했다.
다시 쓸쓸모드로 돌아가는 것 같아 조금 심난했지만,
그동안의 고독에 대한 진혼굿이라고 생각할게요.
'비상'의 솔직한 연출을 콘서트의 타이틀로 기억할거니까.
또 만나요.
다음엔 좀 작은 공연장에서요~~!



뮤지컬|모차르트|2011



이달 들어 두번째의 횡재수^^티켓이 굴러들어왔다.
사실 뮤지컬이라면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는 편인데
영화라면 어느 한 장면이 깊이 남게 마련이고
연극이라면 배우의 어느 한순간이 와닿기 마련이고
음악이라면 어느 한구절만큼은 인상깊게 마련이며
발레가 그 완성도로 가격대비 엄청난 만족과 새로운 재미를 주는데에 비해
불행이도 뮤지컬은 화려한 무대연출의 감탄스러움에도 불구하고
티켓값을 생각하면 가격대비 만족도면에서는 늘 바닥을 치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이
듣기 싫은 목소리를 병적으로 싫어해서 오페라도 보지 못하며
취향 아닌 가수는 가차없이 돌려버리는 내가 
뮤지컬의 모든 가수 목소리를 좋아하기란 불가능할 뿐더러
특유의 드르륵 뮤지컬 발성에는 경기를 일으킬 지경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넘고 물건너 성남까지 또 갔던 건
오랜만에 임태경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꽤 여러 공연을 했다고 들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그 목소리는 여전하건만
이처럼 전달력이 강조되는 노래에서는 
다른 전문배우들과 달리 내용을 알아듣기가 힘들만큼  전달력이 떨어졌고
스스로가 쑥스러워 하는 것이 그대로 전해지는 춤,
뭐가 달라졌나 싶은 연기력,
여전한 체력문제.
그저 
공짜표라 즐거웠던 공연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여전히 팬클럽이 있다.
살짝 원망스럽기도 한 팬덤이다.
그는 이제 가수가 아닌 배우이고
같은 무대에선 배우들과 저절로 비교되도록 
뮤지컬배우로서의 갖춤이 너무나 부족한데도
팬들은 기립박수를 치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의 팬이 아닐 것 같다.
언젠가 노래하는 무대로 돌아온다면 
기꺼이 돌아갈지 몰라도.

오늘 내 박수는 
베버부인과 레오폴드에게로.
예전 불의 검의 수하이 역으로 처음 알게 된 서범석의 놀라운 파워가 
'뮤지컬배우'를 정의해주는 것 같았다.
그보다 잘하는 것은 물론 환영이나
그에 못미친다면
응당 부끄러워해야 함을.

자유를 원하는 천재로서의 관점은 새로웠지만
첫번째 고비나 두번째나 
전혀 진폭없는 모차르트의 갈등이
극자체로서도 짜임새가 부족해 보였다.
내내 과로하던 애기 모차르트만 좀 안쓰러웠을 뿐.

이소라도 없는 '나는 가수다'

사실 임재범 노래안했다는 기사 뜬 뒤부터 나가수를 TV로 안보기 시작했다.
따져보면 연결한 스피커 키워놓고 본 건
임재범이 '여러분'을, 이소라가 '사랑이야'를 불렀던 한 주 뿐.
윤도현이 혼자 나올 때도 혹하지 않았는데,
임재범을 안 볼 수 없어 보기 시작했다가
2집 이후로 듣지 않던 이소라를 (나로서는) 재발견했고
점점 물 만난 것 같아 보이는 YB까지
삼박자의 완성이었다.
임재범도 보여준 것 보다는 보여줄 게 더 많을 것 같아 더 기대했었는데.

정말 음악은 취향이라서
김범수의 노래 참 찌르르하고
BMK 노래 잘하는 것 알겠고
박정현이야 원래 잘하는 것 알고 있었던 가수이지만
안 보던 프로그램을 찾아보게 되고
그 노래를 종일 듣고
노래하는 순간을 기다리게 만드는 카리스마는
인정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난 옥주현이 노래를 못하는 가수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고
딱히 싫어할 만큼 알지도 못하지만
일단 가수시절에도 내가 좋아하는 노래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성공한 뮤지컬배우이자
좋은 뮤지컬배우가 꿈이라며 열심히 노력하던 사람에게 '나는 가수'라고 외치도록
-옥주현의 입장에서는 거의 입증이 되어버린-
무대를 만든 신정수라는 사람의 취향이야 말로 별나다고 생각한다.
일기를 일기장에 쓰듯 팬클럽 활동은 팬클럽에서.
아무리 안티 어쩌고 해도
한때 날리던 걸그룹의 출신인데
'가창력'만 증명하면-여기서의 가창력은 아마도 고음처리와 바이브레이션의 적정한 조합.
그 팬들에게 더 큰 기쁨을 주는 것이야 당연하지 않을까.
장르불문에 감동의 무대만을 생각한다면
조수미는 어때? 국악하는 김영임은?
송대관 태진아가 설마 노래를 못해서 안부르시나?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옥주현이 '재발견'이 필요할만큼
'묻혀있던 보석'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대중성엔 명예를, 실력엔 대중성을?
-스스로 신의 경지에 등극하시는 PD마마.
예능이라고 발뺌하기엔 비겁한 것이
'음악모드'자막은 뭐고 공연을 위한 투자 어쩌구는 다 뭐니.

한때는 이소라의 '사랑이야'에 6위를 매긴 청중평가단을 이해도 했다.
현장의 모든 무대가 감동이라서
그나마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 것 처럼 보이는 가수에게 표를 던진 게 아닐까 하고.
결국 이소라가 떨어져서 이해를 접으려 했지만.

똑같이 화려한 퍼포먼스였는데도 
1위의 김범수와 5위의 옥주현.
김범수의 무대가 그동안 펼칠 기회가 없었던 회심의 장이였다면
옥주현의 무대는 뮤지컬 무대와 걸그룹시절의 퍼포먼스 감을 살린 무대였다는 걸
현장에서도 느꼈다는 뜻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이건 이소라가 남긴 희망 같기도 하다,
즐기는 자를 이길 수는 없다는.  
사랑이야 부터 이어진 이소라의 '노래하기'에
번번히 꽂히고 있었으니까.
'높은음 올라가기 경주' 말고 
읖조리는 시작 한 소절에도 마음이 내려앉는, 
속에너지-내공-없이는 나올 수 없는 노래. 
맨날 앉아서 부르니까 편해보였겠지만
임재범 때 만큼이나 이소라가 없는 무대 역시 전같진 않을 것이다.
이쯤되니 가수들 데리고 올림픽하냐던 비난이 조금 이해된다.
정작 가수들은 좋았다고 하지만
어쩐지 이 감동의 존재들을 이따금 외롭게 만들었을
'대중의 사랑'이라는 것의 속성을
실시간 생중계로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역시 음악은 공연과 음반이다?!



연극|봄날



언젠가 아들들은 돌아올 것이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긴 했지만
모든 것을 잃은 뒤 남은 그리움은
그동안의 욕심으로
자식들의 가슴에 남긴 상처만큼 방치된 후에 보상받는 셈이니
그걸 억울해하기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직도 TV손자병법의 고단한 과장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은
오현경의 무대를 꼭 보고 싶었다.
'기집'들이 소용없는 이유로
안보는데서 절에 시주나 하고
남편 담배나 훔쳐피우고
뭐라 나무라면
서럽다고 목이나 매는 쓰잘데기 없는 인간이라는 기막힌 대사를
어쩌면 그렇게 그럴싸하게 하던지.
게다가 마지막 단 두줄의 대사로 울컥하게 만들던
역시 굉장한 무대인간.
나쁜 아버지로서 당당했던 것만큼이나
버려진 뒤 담담하게 받아들이던 그 모습은
연민의 모습 그대로 남았다.

가장 거리를 두고 싶어지는 인물.
동생들의 어머니였던 큰아들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이리저리 다독이지만
자신을 위해 치열하게 가슴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누구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누구를 진정으로 이해하기도 힘들어보였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의 힘으로 많은 부분 지탱되니
모두에게 마음의 빚을 지우는 사람이기도 하다.

조금 느린 박자의 연극.
가족의 화해라는 익숙한 소재지만
그 화해가 부당함에 대한 저항이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힘이 느껴지는 극이었다.
그 저항이 아니었다면
늙은 아버지는 꼬부랑 저승길의 주인공이 되었을 것이고
또 '그리움'이란 것도 영영 몰랐을테니.
오르막 무대에서 배우들이 움직일때
왼쪽벽으로 그림자가 져서
수묵화같은 느낌이 들었다.

많이 웃기도 하고
그 시절을 기억하시는 듯한 관객들의 조용한 수다가 뒤섞여
좋은 분위기였다.

어울림극장-참 좋은 공연장이던데
연극하기엔 너무 커서 빈자리가 많았다.
새라새정도였다면
꽉찬 객석의 박수를 받았을텐데.

아, 참. 특이했던 거.
절에서 맡기고 간 처자가 처음 등장하던 차림이
'내일은 왕님'에서 이치이 토야-사사야 유우 버전 '되돌이고개' 의상처럼 보였다.
슬쩍 그 의상에 오현경의 '되돌이고개'가 겹쳐지기도 하던...

DVD|이층의 악당

본편
손재곤 감독과 김혜수의 성실한 코멘터리.
항상 배우들은
화면을 보면서 얼마나 힘들고 아팠는지, 얼마나 추웠는지, 얼마나 더웠는지 등등
열악한 촬영환경때문에 고생한 얘기를 계속 늘어놓으면서
듣는 사람을 지겹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김혜수는 그나마 적은 편.

서플먼트
꽤 부실하다.
메이킹과 예고편 뿐.
한석규의 인터뷰를 보면 굉장히 효율적인 촬영이었다는데
아마도 그래서 부스러기(?)과에 속하는 서플이 휑한지.
이원상의 인터뷰쯤은 있을 줄 알았는데.
촬영장의 활력소였다는 김혜수는
리허설이 끝나자 마자 장난모드로 금새 돌아서던데
몰입과 이완의 시간이 참 적게 걸리는 배우구나 싶었다.
이층의 악당에서의 연주는 타짜 이후로 가장 볼만한 캐릭터.

왜 한석규는 언제나 '젠틀'의 이미지가 따라다니는지 궁금했다.
'아들과 딸' 빼면 재벌이어도 비행재벌, 형사여도 비리형사나 비행형사,
사기꾼에, 제비가 더 많았는데.
여기서의 창인을 보면 좀 답이 나온다.
막장같아 보여도 최소한 어느 바닥까지는 내려가지 않는
그래서 인간이라는 존재에 오히려 가느다란 희망을 준다고나 할까.
그런데.
바로 이 얘기를 똑같이 한석규가 인터뷰에서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이게 바로 한석규의 연기의 틀처럼 보이는 그것이구나를 깨달았다.
한석규는 나쁜 놈이지만 한편으로는 나빠져봤자인 박창인이 진폭이 큰 인물이라고 했다.
맞는 것 같긴한데 보는 입장에서는 그 큰 진폭을 느낄 수 없다.
한석규는 격렬한 분노나 망가짐에 있어서도 자신의 틀을 넘지 않는다.
가끔은 그런 것도 보고 싶은게 관객의 마음이지만,
한석규에게는 인생관하고도 연결이 되는 큰 변화 일지도.

하지만
혼자 있을 때, 순간의 무너지는 감정이라든가,
차마 표현은 하지 않더라도, 어느 순간 지나가는 강렬한 해방된 감정같은 것도
표현하는 일을 하는 배우니까
때로는 드러내줘야 하지 않을까.

다시 보면서 웃긴 부분이 바뀌었다.
기운이 빠져 봉지냄새조차 매가리없이 맡는 사실적인 엄마손파이장면은
측은해보이기까지 했다.
이번에 가장 많이 웃은 건 연주의 전화공세에 대처하는 장면.
이렇게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몽타쥬에서
정확하게 게이지를 올려가며 감정을 표현하는 건
정말 한석규의 전매특허라 할만하다.
변함없이 웃긴 건 주민등록번호 장면인데
처음 볼땐 애드립감으로 웃었다면
이번엔 어딘가 처절해보이기도^^
오랜만에 돌려보고 싶은 장면이 풍성한 한석규의 영화.

처음 보는 건데 이런 등급이 케이스뒷면에 나와 있다.

케이스 등급                                  나의 생각
주제(유해성): 다소 높음               전혀 유해하지 않음
선정성: 다소 높음                         기대하면 완전실망ㅋㅋ
폭력성: 다소 높음                         보통 같긴 한데 폭력성은 없을수록 좋으니 통과
공포: 보통                                    이것도 기대하면 실망
약물: 보통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음....아, 연주가 알콜중독
대사(저속성): 다소 높음              욕이 좀 나오는 건 사실
모방위험: 다소 높음                     그렇군.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엄기호

솔직히 말해 스펙은 이 잉여인간의 시대에 '자기관리'라는 도깨비 방망이로 탈락시킬 놈을 찾기 위해 강조되고 있다.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할 의사도 능력도 없는 시장의 무능을 '자유'의 이름으로 개인의 무능으로 돌려버린 것이 바로 스펙의 실체이다...체제는 완벽하게 승리하였다. 청춘을 자학하는 잉여로 만들어서 말이다. 자기를 계발하는 주체의 이면은  자학하는 주체이다.

한국의 가족이 위기에 빠진 이유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노동'을 하지 않고 그저 쉬려고만 하기 때문이다...모두가 편히 쉬려고만 할 때 그들이 쉬기 위해서 집을 편안하게 만들고 그들의 정서를 돌봐주는 일은 순전히 엄마의 몫이었다. 그러니까 감정노동을 하는 '노동자'는 엄마 뿐이다...지금까지는 일방적으로 어머니가 감정노동을 수행하면서 가족을 떠받쳐왔다. 이런 점에서 감정노동은 가장 착취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의 감정노동에만 의존하는 가족에는 어머니를 착취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어머니의 한탄과 같은 문제가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중산층의 세련된 엄마들이야 그것이 자신이 수행하는 전문가적인 '매니지먼트'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머지 엄마들에게는 오로지 자신만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밑 빠진 독에 물붓기'이다. 다른 가족들이 감당해야 하는 감정노동은 엄마의 한탄을 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무한대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너무나 피곤한 일이다. 어머니가 있으면 있는대로 어머니와 자식들간의 신경전이 끊이지 않고, 어머니가 없으면 가족 자체가 깨지고 만다. 따라서 감정노동이 민주화되지 않는 이상 가족간의 문제는 사라질 수가 없다.

우리는 이미 민주화가 자유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어찌되었건 한국은 민주화가 되었지만 내가 자라오는 동안 자유는 없었다. 우리에게 자유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것이다. 부자인 아이들은 하루 종일 책상머리에만 앉아있을 수 있으니 좋은 성적을 맞은 수 있다. 그들도 절약이라는 것을 배우지만 '살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산층의 아이들은 자신이 노력하면 어쩌면 삼성맨이 될 수 있다는 알지만 삼성의 CEO가 되지 못한다는 것도 안다. 가난한 아이들은 대를 물려 내려온 가난함이 자신의 것이 되리라는 것을 안다. 우리 세대의 자유란 그리고 지금 통용되는 자유란 '계층적, 경제적 차등에 따른 제한된 선택의 자유'라고 말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나뉘는 계층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자유란 자신이 속한 계층이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아지는 것이다. _자은

변영주의 어떤 글에서 이십대에 대한 가장 따뜻한 시선이라는 짧은 감상을 봤다.
하지만 엄기호의 설명대로라면 이 책은 따뜻한 시선이라기 보다는
정확한 기록이 맞을 것이다.
이 성실한 청년들이 스스로를 잉여로 자책하며 청춘을 탕진한다는 사실이
많이 측은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책속의 청년들이 아닌 다른 20대도 이렇게나 성실할까
의심을 지우지 못하며
환영하지 않는데도 슬슬 자라는
나의 꼰대근성을 확인한다.
가르치려 드는 사람-꼰대.
참 정확한 정의다.

늙고도 철 없음은 때로는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청춘들의 청춘활용에는 모두가 부정적이라는 게 부당하다고 느끼면서도,
이따금 긴장이 풀린 근육들 사이로
요즘 애들은...류의 말이 비져나올때 우울해진다. 
가진 거라고는 돈밖에 없고
그 과정도 범법으로 얼룩진 소수의 절대권력 늙은이들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젊음을 질시해 
청년들을 허망한 스펙경쟁에 몰아 놓고 즐길 틈을 주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 
언젠가 느꼈던 음모이론이기도 하지만.

pronunciation / i / and / I /

         / i / and / I /
tongue          forward
                higher high
lip             spread neutral
mid-T firm        relaxed
                 eat           it
                 seek        sick
                 least        list
                 reach      rich
                 heel         hill
                 leave       live


/ i /:
Please have a seat. 
He's a real team player. (He works well in groups, unselfish, thinks of others) 
Making ends meet isnt always easy. (paying the bills, covering expenses) 

/ I /:                          
I miss him.
Click on the link. 
Give me a ring some time. (call me) 
He's going to flip his lid. (get very angry)



라푼젤|Tangled|2010

라푼젤이라는 이름이 어디서 왔는지는 빠져서
라푼젤은 근본없는(^^) 공주로 재탄생ㅋ


공주가 왕자도 아닌 도둑을 개과천선시켜 결혼하는 건 희망적인데
아무리 도둑년이라도 나름 선물사러 먼 길도 떠나주는 엄마였는데
잃어버린 시간에는 등까지 띄워주면서 
함께 보낸 시간에 너무도 무신경한 이야기.
니 잘못은 아니었으니 
친부모랑 애인이랑 잘살아.
그냥 나만 재미없었으면 되지, 뭐.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Come Rain, Come Shine|2011

 사랑한다
사랑하지 않는다...?


알랭로브그리예의 질투를 읽을 때처럼
어떤 순간의 맨 앞자리로 끌어당겨지는 것만 같았던 두시간.
하지만 이 우아한 젊은이들은 너무나도 평온하고 조용조용 감정을 추스르기에
은밀한 즐거움도 엿보기의 미안함도 느낄 필요 없었다.
느닷없이 들이닥쳤던 이웃들 정도의 거리랄까.
하지만 어쩐지
연애의 상처는 여자에게 더 깊게 남는다는-딱히 현실적이지도 않은
여성용 두려움 제조기 중 하나인 것 같아 맘에 들지 않았다.
왜 같은 깊이로, 같은 너비로 기대하고 바라게 되지 않을까.

'괜찮아'라는 괜찮은 말 한마디가
참 정나미 떨어지는 말임을 금방 깨닫게 해 준 임수정,
현실세계에서는 당연한 피해자인데
영화속에선 평화로운 원인제공자로 변신해 준 현빈.
두 배우의 무한도전.
도전은 성공한 것 같다.
인기와 연기력이 균형잡힌 드문 젊은 배우들이다.

49일|2011


서인정의 눈물이 셋 중 하나이기를 바랬는데
역시 예쁜 이야기 전문가다운 마무리였다.
사실 난 많은 사람을 깊이 사랑하는 것은 불가능하다고 생각하지만
적은 사람을 얇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다면
뭐 꼭 불가능도 아닐 것도 같다.
보통 오지랖이 배신당하는 건
오지랖을 애정이라고 강요해서지
신지현처럼 진심인 경우는 달라야 하는 거니까.

조금 다친 것일뿐
다들 사람이어서 좋았다.
결국 막장드라마가 욕먹어야 하는 것은 자극적인 소재가 아니라
개연성을 충분히 설명하지 못하는
성실함의 부족때문일 것이다.

볼 때마다 감탄하게 되는 놀라운 이요원.
-나중엔 대사없이도 신지현인지 송이경인지 알아볼 수 있었으니...
인형같은 얼굴에 사랑받는 아이 신지현이 딱이었던 남규리.
-풀메이크업은 너무 했더라만...

실수하고 반성하고 용서하고 이해하고.
사실은 이런 것이 평범한 세상의 풍경일텐데
너무나 극적인 세상의 자극 때문에
삶의 미각을 잃어가고 있는 건 아닌지.
조미료 맛집음식들에 지친 혀에
집밥같은 드라마였다.
하긴...
집에서도 조미료 쓰긴 쓰겠지만^^

영주.안동


하늘은 좀 흐렸지만 날씨 좋고, 경치 좋고, 쾌적하고 편안했다.
간고등어에 딱히 불만은 없지만
역시 먹는 즐거움이 좀 부실했다는 것이 아쉬움.
원래 영주가 목적지였는데
새벽바람에 출발한 덕에 시간이 남아 안동까지 호기있게 간 덕에
빡쎈 패키지 국내여행 코스.
얼마전 맛있게 먹었던 생각이 나서 부석사 앞 할머니가 파시는
두릅과 취나물도 사들고 왔다.
그런데 뭐 할 줄아는 게 없어 그냥 데쳐서 고추장 찍어먹고 있음^^


부석사 초입의 정원

옛날집의 백미 처마와 문짝들

부석사의 이름을 정했다는 '뜬돌'

 하회마을의 어느 예쁜 집
 하회마을의 어느 예쁜 담
하회마을의 풍성한 장독대

박물관에서 보니 더 특이해 보이던 하회탈
허도령이 턱을 완성못했다는 전설이 있다는데
턱이 없어 광대가 웃으면 같이 웃고 
광대가 울면 같이 우는 실감 가면이라는 설명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별 기대없이 들어간 박물관인데 
이런 엄청난 성질머리의 주인공을 보다니...
반가왔다^^

불안|알랭드보통|Status Anxiety|Alain de Botton

불안...이 내적인 드라마의 증거는 흔치 않다. 보통 어디에 몰두한 눈길, 부서질 것 같은 미소, 다른 사람의 성공소식을 들은 뒤 이어지는 유난히 긴 침묵 등으로만 간간이 나타날 뿐이다.

속물근성(snobbery)이라는 말은 영국에서 1820년대에 처음으로 사용되었다. 이 말은 옥스포드와 케임브리지의 많은 대학의 시험 명단에서 일반 학생을 귀족자제와 구분하기 위해 이름 옆에 sine nobilitate(s.nob)을 적어 놓는 관례에서 나왔다고 한다. 이 말은 처음에는 높은 지위를 갖지 못한 사람을 가리켰으나 곧 근대적인 의미, 즉 거의 정반대의 의미를 가지게 되었다. 상대방에게 높은 지위가 없으면 불쾌해하는 사람을 가리키게 된 것이다.
멍청한 아첨군이 아니고서는 아무도 권력이나 명성때문에 당신을 사귄다고 말하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우리 밑바닥에 그런 무조건적인 사랑에 대한 욕구가 존재한다는 증거다...운이 좋아 잠시 아슬아슬하게 손에 쥐고 있는 지위가 본질적으로는 자아와 아무련 관련이 없을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오만 뒤에는 공포가 숨어있다. 괴로운 열등감에 시달리는 사람만이 남에게 당신은 나를 상대할만한 인물이 못 된다는 느낌을 심어주려고 기를 쓴다.

자존심= 이룬 것 /내세운 것
이 방정식은 우리의 자존심을 높일 수 있는 두 가지 방법도 암시한다. 하나는 더 많은 성취를 거두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성취하고 싶은 일의 수를 줄이는 것이다.

루소의 주장은...부란 우리가 갈망하는 것을 소유하는 것이다....부는 욕망에 따라 달라지는 상대적인 것이다. 우리가 얻을 수 없는 뭔가를 가지려 할 때마다 우리는 가진 재산에 관계없이 가난해진다...루소는 사람을 부자로 만드는 방법은 두 가지라고 생각했다. 더 많은 돈을 주거나 욕망을 억제하는 것이다...우리와 같다고 여겼지만 우리보다 더 큰 부자가 된 사람과 실제로나 감정적으로나 거리를 두면 된다. 더 큰 물고기가 되려고 노력하는 대신, 옆에 있어도 우리 자신의 크기를 의식하며 괴로울 일이 없는 작은 벗들을 주위에 모으는 데 에너지를 집중하면 된다.
(ㅎㅎ 귀엽고도 현실적인 해결책...인가^^)

사람은 거짓되고, 음험하고, 기만적이고, 교활하고, 자시느이 이익에는 탐욕스럽고 남의 이익에는 둔감하므로 적게 믿고 그보다 더 적게 신뢰한다면, 잘못될 일이 없을 것이다
(구이차르디니Guicciardini, 1483-1540)

우리는 언젠가 친구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적과 함께 살아야 하고, 언제 원수가 될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며 친구와 함께 살아야 한다(라브뤼예르 La Bruyere, 1645-1696)

세상은 장점 자체보다는 장점의 표시에 보답을 하는 경우가 더 많다
(라로슈푸코 La Rochefoucauld, 1613-1680)

중요한 일을 하게 되면 반드시 실패는 감추고 성공은 과장하라. 이것은 속임수이지만, 사실보다는 다른 사람들의 의견에 당신 운명이 걸려 있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늘 일이 잘 풀리고 있다는 인상을 주는 것이 좋다. (구이차르디니Guicciardini, 1483-1540)

당신은 정직한 사람이다. 주군의 총애를 받는 신하들의 비위를 맞추지도 않고 그들의 미움을 사도 상관 안 한다. 그저 당신의 주군과 의무를 사랑하며 살 뿐이다. 그래, 그래서 당신이 망한 것이다. (라브뤼예르 La Bruyere, 1645-1696)

사랑의 대상이 되는 것보다 공포의 대상이 되는 것이 훨씬 더 안전하다. 사랑은 감시의 유대에 의해 유지되지만, 사람은 지나치게 이해에 얽매여 있기 때문에 자신에게 유리한 기회가 생기기만 하면 이 유대를 끊어버린다. 그러나 공포는 벌에 대한 두려움으로 유지되며 이것은 늘 효과적이다.
(마키아벨리 Machiavelli, 1469-1527)

다수는 착하지도 않고 지혜롭지도 않으므로, 친절보다는 엄격함에 의지해야 한다.
(구이차르디니Guicciardini, 1483-1540)

ATM은 1968년에 개발되었으며, 다음해에 맨해튼의 케미컬뱅크 지사의 벽에 구멍을 뚫고 처음 설치되었다. 10년 뒤 세상의 ATM숫자는 5만대로 늘어났으며, 2000년에는 백만대로 늘어났다...ATM한 대는 무려 37명의 은행 출납계원 일을 한다(게다가 병드는 일도 없다).

다른 사람들의 머리는 진정한 행복이 자리잡기에는 너무 초라한 곳이다(쇼펜하우어, 소품과 단편집 Parenga und Paralipomena, 1851)

위대한 예술가의 작품을 보라, (매슈) 아널드는 제안한다. 거기에서 (직접적이든 아니든) "인간의 잘못을 없애고, 인간의 혼돈을 정리하고, 인간의 곤궁을 줄이고자 하는 욕망"의 흔적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모든 위대한 예술가들은 "세상을 자신이 처음 보았을 때보다 더 낫고 더 행복하게 만들고자 하는 갈망"에 사로잡혀 있다. 예술가들이 이런 갈망을 늘 노골적인 정치적 메세지로 표현하는 것은 아니다. 심지어 스스로 그런 갈망을 의식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들의 작품에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항의가 나타나기 마련이고, 이에 따라 우리의 시각을 교정하고, 아름다움을 인식하도록 교육하고ㅡ 고통을 이해하거나 감수성에 다시 불을 붙이도록 돕고, 감정이입 능력을 길러주고, 슬픔이나 웃음을 통하여 도덕적인 균형은 다시 잡아주려 노력하기 마련이다. 아널드는 이런 태도의 핵심을 이루는 선언으로 자신의 주장을 마무리한다-예술은 "삶의 비평"이다.

비극을 본 관객은 훌륭한 삶을 살아가는 일의 어려움 앞에서 슬픔을 느끼고, 그 일에서 실패한 사람들 앞에서 겸손해진다.
변태와 정신병자, 실패자와 패배자를 이야기하는 신문이 이해의 스펙트럼 한쪽 끝에 있다면, 비극은 반대편 끝에 있다. 비극은 죄 지은 자와 죄가 없어보이는 자 사이에 다리를 놓으려는 시도이며, 책임에 대한 통념에 도전하고, 인간이 수치를 당한다 해도 자신의 이야기를 할 권리까지 상실하지는 않는다는 점을 존중하면서 그 사실을 심리학적으로 세련되게 표현해낸다.

비극의 주인공은 윤리적 수준에서 특별히 좋지도 나쁘지도 않은 평범한 인간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가 쉽게 만날 수 있는 사람, 좋은 자질과 더불어 어떤 약점, 예를 들어 지나친 자만심이나 격한 기질이나 충동이 있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 인물은 동기가 악해서가 아니라, 아리스토텔레스가 그리스어로 아마르티아(Hamartia), 즉 판단의 잘못이라고 부른 것, 또는 일시적인 맹목, 또는 현실적이거나 감정적인 과실 때문에 엄청난 실수를 저지른다. 여기에서 가장 끔찍한 페리페테이아(Peripeteia), 즉 운명의 역전이 이루어진다. 이 과정에서 주인공은 자신이 귀중하게 여기던 것을 모두 잃고 거의 언제나 자신의 생명을 대가로 내놓는다.
주인공에 대한 동정심, 주인공과 동일시를 했기 때문에 생기는 자신에 대한 두려움은 비극을 감상한 뒤에 나오는 자연스러운 감정적 결과다. 비극작품은 재앙을 피하는 우리의 능력을 과대평가하지 말라고 가르치며, 동시에 재앙을 만난 사람들에게 공감을 느끼도록 우리를 인도한다. 따라서 극장을 나설 때면 쓰러지고 실패한 사람들을 우월한 태도로 대하기가 어려워진다.

교육에서든 경제에서든 진정한 자격이 있는 후보를 뽑아 패자들의 고통에 아무런 양심의 거리낌을 느낄 필요가 없는 체제를 바라는 마음은 쉽게 이해할 수 있다.

"부자가 되는 사람은 일반적으로 말해서 근면하고, 결단력 있고, 자신만만하고, 열의가 있고, 신속하고, 조직적이고, 분별력이 있고, 상상력이 없고, 둔감하고 무지하다. 가난하게 살아가는 사람들은 완전히 어리석고, 완전히 지혜롭고, 게으르고, 무모하고, 겸손하고, 사려깊고, 둔하고, 상상력이 풍부하고, 예민하고, 아는 것이 많고, 앞일을 생각하지 않고, 예상할 수 없게 충동적으로 사악한 모습을 보이고, 꼴사나운 악당이고, 드러난 도둑이자 완벽하게 자비롭고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다."
존 러스킨, 이 최후의 사람에게 Unto This Last, 1862 하하하....

돈과 선, 돈과 행복을 연결시키는..관념은 세 가지 가정에 기반을 두고 있다. 첫째는 무엇이 우리를 행복하게 하는지 확인하는 일은 그리 어렵지 않다는 것이다. 건강을 위해서는 몸에 무엇이 필요한지 몸이 보통 알고 있어 염분이 필요하면 훈제생선으로 향하고 혈당이 낮으면 복숭아로 향하듯이 정신도 번영을 위해서는 무엇을 목표로 삼아야할지 잘 알고 있어 우리를 어떤 일이나 기획으로 자연스럽게 몰고 간다는 것이다. 둘째로 근대문명에서 접할 수 있는 엄청나게 다양한 직업과 소비재가...실제로 우리의 가장 중요한 요구 몇 가지를 충족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셋째로 쓸 수 있는 돈이 많을수록 제품과 용역도 더 많이 이용할 수 있고, 따라서 우리가 행복해질 가능성도 커진다는 것이다.
이런 가정들에 반박하는 가장 강력하면서도 읽기 쉬운 책은 여전히 장자크루소의 '인간불평등 기원론'이다. 루소는 우선 우리가 아무리 독립적 정신을 갖추고 있다고 해도 자신의 요구를 이해하는 능력은 위험할 정도로 낮은 수준이라고 전제한다. 우리 영혼은 만족을 얻기 위해 필요한 것을 제대로 말하는 경우가 드물며, 어설프게 말을 한다 해도 근거가 박약하거나 모순될 가능성이 옾다. 건강해지기 위해 뭔가를 소비해야한다는 점에서는 정신과 신체가 같지만 루소는 몸도 물이 필요할 때 술을 찾고, 침대에 누워있어야할 때 춤을 찾는 것처럼 정신도 모순된 요구를 하지 않느냐고 묻는다. 우리의 정신은 만족을 하려면 이런저런 것이 다 필요하다고 말하는 외부의 목소리의 영향력에 민감하다. 이런 목소리는 우리의 영혼이 내는 작은 소리를 삼켜버리고 긴요한 것을 정확하게 찾아내는 힘들고 까다로운 일을 방해할 수 있다.

폐허는 우리의 노력을 완전과 완성이라는 이미지를 버리라고 한다. 폐허는 우리가 시간에 도전할 수 없다는 사실, 우리는 파괴의 힘의 장난감일 뿐이라는 사실을 일깨워준다. 파괴의 힘은 기껏해야 저지하는 정도이지 완전히 정복할 수는 없다. 국지적인 승리는 가능하지만, 몇 년 정도 혼돈에 약간의 질서를 부여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결국은 모든 것이 엉망이 되어 원시의 용액으로 돌아갈 운명이다. 이런 소멸의 전망에 위로의 힘이 있다면 그것은 아마 우리의 불안의 많은 부분이 우리의 기획과 관심의 중요성을 과장하는 데서 나오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는 우리의 이상때문에 괴로워하며, 우리가 하고 있는 일의 중요성을 너무 크게 생각하기 때문에 괴로워 한다.
따라서 기독교 도덕가들은 불안을 달래려면 낙관적인 사람들과는 반대로 모든 것이 최악으로 흘러간다고 강조하는 것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천장은 무너져 내리고, 은행은 폐허가 되고, 우리는 죽고, 우리가 사랑하는 모든 사람은 사라지고, 우리가 이룬 것들, 심지어 우리의 이름마저 땅에 짓밟힐 것이다....천년의 관점에서 바라보는 것은 우리 자신의 미미함을 바라보며 마음의 평정을 얻을 수 있는 흔치 않은 기회가 된다...광대한 풍경 역시...

우리의 약점에는 늘 두 가지 요소가 있다. 공포와 사랑에 대한 욕망이다.
예수는 동료애를 장려하기 위해 어린 아이를 보듯이 어른을 보라고 촉구했다. 실제로 다른 사람을 아이로 그려보면 그 사람의 성격을 다시 생각하게 된다. 그리고 그 사람에게도 우리가 어린 아이들을 향해 자연스럽게 보여주는 공감과 너그러움을 쉽게 표현하게 된다. 우리는 어린 아이들은 나쁘다기보다는 짓궂다고 하고, 오만하다고 하기보다는 건방지다고 하지 않는가. 자고 있는 모습을 보며 그 사람을 미워하기 어렵듯이 어린아이를 미워하기는 어렵다.

도시의 공적인 공간이나 시설이 그 자체로 훌륭할 때에도 개인적 영광에 대한 야심은 어느 정도 줄어든다. 그냥 평범한 시민이 되는 것이 괜찮은 운명처럼 보일 수 있기 때문이다...모든 인간이 귀중하다는 인식을 회복할 수 있을 때, 아니, 그보다 더 중요한 것으로, 그런 인식을 유지할 수 있는 공간과 태도를 조성할 수 있을 때, 사람들은 평범한 삶을 어둡게 보지 않는다.

보헤미안 시인은 기독교의 순례자처럼 그를 이해하지 못하는 대중으로부터 핍박을 받을 수 있지만. 기독교에서와 마찬가지고 무시 자체가 무시당하는 자의 우월성의 증거가 된다. 어떤 사람이 이해받지 못하는 것은 이해할 것이 많다는 뜻이다. 시인이 걸을 수 없는 것은 큰 날개 때문이다.

-----------------------------------------------------------------------------------------------
TED의 짧은 연설에는 책 한권이 다 들어있었던 거였다.
달변가 이기도 한 알랭 드 보통.
철학의 끝이 소박한 사람의 진리와 닿아있다는 강변이
긍정적인 세계관으로 이어져 든든하다.
살아가기의 깔깔함이
살아가는 것 자체보다는
'다른 채 견디기'라는 것
작대기 하나를 더 그어주는 책이지만
너무나 열심히 말하고 있는 그의 얘기에 귀기울여진다.
꿈틀거려지는 것도 같고 말야...
어차피 이런 주장은
들을 준비가 된 사람들만 찾는다는 것이
안타까운 현실.

삶에서 부대끼는 사회적인 환경 중에서
불안의 원인을 사랑결핍, 속물근성, 기대, 능력주의, 불확실성으로 놓고
해결책을 철학, 예술, 정치, 종교, 보헤미아로 나누어 써가는 가운데
가장 큰 공감은 예술, 그 중에서도 비극의 역할부분이었다.
얼마 전 오이디푸스를 보며 느꼈던 세익스피어에 대한 궁금증 해소랄까.
그래서 그는 위대한 작가로군요.
그래서 예술이 아름다움의 세계인 거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