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러진 화살 예고편



"대한민국에 전문가가 어디있어요, 사기꾼들 빼고.'

보이스피싱 당한 내 가슴에 팍 꽂히는 한 마디.
꼭 보러 가야지.


사물의 비밀|Secrets, Objects|2011

한달 전 개봉영화...다운로드는 뒷심이 있을듯...

어릴 적 읽던 하이틴로맨스가 생각난다.
'소녀'들을 대상으로 하면서도 
남자들의 로망에 성별만 바꾼 것 같은 불친절한 전개와
천편일률적인 신데렐라식 설정에도 불구하도 
달리 대안이 없어 엄청나게 퍼져나갔던 책들이다.

이제 그 모자람이 조금 채워져 
드디어 여자들을 위한 에로영화의 등장 ㅎㅎ
초창기 모지란 하이틴로맨스에 설욕하듯
그 설정을 뒤집어 여자와 남자를 배치시킨다.
허세 떠는 기성세대, 숨겨진 욕망 등등 
부부클리닉용 메시지들을 여기저기 널어놓긴 했지만
내가 느낀 이 영화의 방점은
'여자를 위한 에로물'이다.

예전에 추천을 받아 몇번 시도했으나 결국 끝까지 볼 수 없었던 
성의없고 지루한 에로물들과 달리
포기를 늦춰줄만큼 발전한 스토리나 사물의 시각이라는 설정이 등장한다.
하지만 그 설정들이 인물과 유기적으로 합쳐지지는 않아서 
머리핀 정도의 장식효과에 그쳤다.
그것과 비교할 수 없이 새롭게 느껴진 건
표현하고 결정하는 여자의 표정에 드러나는 쾌락과  
연애의 영원하지 않음에 낙담하지 않고 추억하는 당당함이다. 
꽤, 유혹적이었다.
기다렸어, 이런 영화.

영화속 호스트바의 풍경에서 깜짝 놀랐다.
저것은 주말이면 '음악'프로그램이라는 곳에 등장하는 아이돌의 무대가 아닌가.
열광하는 이모팬, 삼촌팬과 아이돌의 무대가 그위에 겹쳐졌다.
결국 양지에서 뭐 다른 게 있는 척 이루어지는 관음의 향연인.

약간의 아쉬움이라면 
전형적인 근육청년들 뿐이라 좀 식상하다는 것인데
다음번엔 좀 다양한 취향을 고려해주시면 고맙겠어요^^

정석원-호스트바에서 장서희와 얘기할때의 대사는 다른 장면들과 아주 달랐다.
아이라인만큼이나 잘 어울리던. 

감독, 뚝심이 좀 있는 사람같다.
마이너스러운 내용을 메이저로 연출하다니.

외면일기|Journal Extime|미셸 투르니에

아랍속담: "세상에 모르는 것이 없다고 자처하는 자는 화병으로 죽을 위험이 있다"


더불어 말을 주고 받을 상대가 없다는 것은 곧 할 말이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발자크, 뒤마, 바그너 같은 사람들이 한사코 호사스러운 사람들에 둘어싸여 지내고 싶어 한 것은 아마도 숨이 막힐 것 같은 그 편협한 인간군상에 대하여 응수하라는 방법이었을 것이다. "내가 쓴 작품이 네 머릿속으로 파고들 방법이 없으니 하다못해 내가 사는 방식을 통해서라도 네가 존경하지 않을 수 없게 만들 수밖에"


어떤 알지 못하는 여자가 내게 원고를 보내온다. 설명인즉, "어떤 말을 해도 아무도 들어주지 않아서 글을 쓰는 것입니다." 그럴 수 있겠다. 하지만 글을 쓴들 누가 읽어주겠는가?


L.D의 기막힌 고난. 카마르그 사람인 그는 한 번도 파리에 가본 적이 없었다. 그러다가 처음으로 파리에 가게 되어 피라미드가를 가로질러 오페라 대로로 접어든다. 그때 자동차 한 대가 지나가던 행인들을 덮친다. 운전자가 심근경색으로 그 자리에서 숨졌기 때문이다. L.D는 두 다리가 부서졌다. 그때 이후 그는 목발을 짚고 힘들게 걷는다.   


시몬느 베이유: "인간의 사랑에서 맛볼 수 있는 가장 달콤한 쾌락들 중 하나: 사랑하는 사람에게 그가 모르는 가운데 봉사하는 것"


자신이 개인적으로 싫어하는 책의 탁월한 가치를 알아볼 수 있는 능력이 바로 프로페셔널의 특권이 아닐까 한다. 반대로 아마추어는 자기의 취향과 맞지 않는다 싶으면 즉시 그 책의 분명한 장점들에 대해서도 아예 장님이 되어 버린다. 


폴 발레리의 플레이아드 전집 제 1권에서 문득 '물의 예찬'이라는 멋진 텍스트를 발견한다. 문학의 어떤 드높은 경지를 보여주는. 그런데 그 글에 대한 주석이 달려있어 읽어보니, 그 글이 페리에 광천수 회사에서 발레리에게 청탁한 광고문안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요한 세바스찬 바하가 소나타나 칸타타의 주문을 받고 불후의 명작을 작곡해준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천재'니, '재능'이니 하는 말은 그의 사전에 없었다. 그는 오직 가장 겸허한 장인의 기술을 가지고 있었을 뿐이었다.


1992년 4월. 프랑스 작곡가 올리비에 메시앙과 영국의 화가 프란시스 베이컨이 동시에, 거의 같은 나이에(각각 1908년과 1909년에 출생) 사망했다는 소식. 이보다 더 완벽하고 자연스런 대조는 상상하기 어렵다. 하늘을 노래한 작곡가와 지옥을 그린 화가가 동시에 죽어 서로 만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되다니. 


알퐁스 알레: "피라미드의 형태 자체는 아주 아득한 고대에 이미 노동자들이 시간이 갈수록 점점 더 일을 적게 하는 경향이 있었다는 사실을 말해준다."


볼테르: "나는 작은 시냇물과도 같다. 나는 깊지 않기 때문에 맑다."


쥘 베른느는 그의 예언적인 책 '20세기의 파리'에서 장차 건설하게 될 전철은 당연히 공중에다가 놓을 수 밖에 없는데, 그 이유는 이 도시의 지하의 시설들이 너무나도 복잡하게 뒤얽혀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그 지적은 20미터 미만까지 맞는 말이다. 그러나 지하 30미터가 넘으면...거기서는 사막한 가운데나 처녀림 한복판이나 마찬가지인 순수한 대지적 요소를 다시 만나게 된다. 인간의 문명은 불순물들의 얇은 막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얘들다, 투르니에 집안의 모든 사람들은 뇌에 종양이 있다는 걸 알아둬라. 너희들도 투르니에 집안이니 너희들 역시 미치광이들이란다. 그런데 나로 말하면 집안에서 행동이 가장 얌전한 사람이다. 왜냐하면 나는 뇌속에 있는 모든 광기들을 내 책들 속에다 전부 다 비웠기 때문이지."


역사시대의 두개골과 선사시대의 두개골...두개골에 혓바닥을 대보고서 알아내는 방법...선사시대의 두개골은 골막이 없어졌기 때문에 혀에 강하게 밀착된다...긴 두개골을 가진 사람들은 역동적이며, 전투적인 성격, 변덕이 특징이다. 둥근 두개골을 가진 사람은 차분하고 현명하고 안정적이다...골상학을 창시한 F.J.갈이 말했듯이 "뇌는 광대한 대륙이고 그것을 에워싸는 두개는 그 지도다."


스탕달: "이상화할 것, 라파엘이 초상화를 그릴 때 실물과 가장 닮아 보이도록 하기 위하여 이상화하듯이."


박쥐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생쥐가 소리친다: "오, 천사로구나!"


우리 집 정원에서 넓적부리 암놈 한 마리가 제 아들놈 중 하나와 살림을 차렸다. 자연이 앙갚음을 하는지 이 암놈들이 모두 새끼를 깔 수 없는 알을 낳았다. 그런데도 암놈은 한사코 알을 품는다. 두 번이나 나는 암놈이 그 알을 깨어서 속에 든 것을 삼키는 것을 보았다. 그러더니 괴상하게도 이 암놈은 그 알의 껍질들을 연못에 가지고 가서 씻는 것이다. 이 새는 마치 내게 나 자신에 대한 일종의 회화를 보여주는 느낌이다. 구상하다가 결국은 실패하고 만 작품들의 원고를 버리지 못한 채 끝없이 품고 있는 작가의 희화를 말이다. 


1.나는 금주할 능력이 있는가. 대답: 그렇다.
2.금주를 하기가 힘든가? 대답:그렇다.
3.금주를 해서 얻은 이익이 무엇인가? 대답: 없다.


아를르에서 살던 잔느 칼르망이 123세에 사망하다. 그녀는 인류의 장로다. 특별한 섭생법이 있느냐는 질문을 받자 그녀는 이렇게 대답했었다. "분별있게 살아야지요. 그래서 나는 114살 때 술과 담배를 끊었었어요."


우리 마을 정육점 주인: "투르니에 씨. 나처럼 진짜 당신을 잘 아는 처지라면 당신이 쓴 책 같은 것은 안 읽어도 되는 거죠, 안 그래요?"


앙트완 블롱뎅: "나는 나 자신의 문턱에서 사는 데 길이 들었다. 왜냐하면 안으로 들어가 보면 너무 어둡기 때문이다."


일기란 늘  자신의 내면의 들여다보기 마련이지만 자신은 자신이 만나는 세상이 늘 더 큰 자극을 주기에 외면일기를 쓰기로 했단다. 자신이 보고 느끼고 만나는 것들에 대해 짧으나 기록해두는 것이 더 유익하다고.

세상의 모든 지식을 알았으나 그것을 허망하게 느끼는 파우스트에 반대하면서 오히려 어린 시절로 돌아가 영재가 되어 최대한 많은 지식을 받아들이고 소양을 쌓아 새로운 인생을 사는 자신을 소설의 소재로 삼고 싶어하는 미셸 투르니에의 산문집-김화영과의 인터뷰가 부록으로 들어있다.

황야의 수탉에서 느껴지던 발랄함과 재기가 약간은 엿보이는 산문이지만 역시 산문집은 그다지 매력적이지 않다. 프랑스에서 투르니에의 어린이용 책들은 베스트셀러라는데 노작가와 아이들의 조합은 참 잘 어울린다 싶다. 몇 권은 재미있게 몇 권은 난해하게 읽어서 이제는 투르니에를 좋아한다고 해얄지 아닐지도 확실치 않지만, 관심이 가는 작가인 것은 분명하다.
드문 산문집 도전.

피아니스트 백건우 리사이틀|2011


P R O G R A M
베토벤 Beethoven월광 소나타 Sonata No.14 Op. 27-2 “Moonlight”
브람스Brahms인테르메초 작품 117의 1번 Intermezzo Op. 117-1
인테르메초 작품 117의 1번 Capriccio Op. 76-1
인테르메초 작품 118의 2번 Intermezzo Op. 118-2
--------- intermission -------
리스트Liszt소나타 B단조 Sonata in B minor

또박또박 소리의 세계를 이끌어 줄 거장 백건우를 기대하고 갔다가
청년 백건우를 만나고 왔다.

연애버전 같던 월광.
아주 가까이로 풍부한 감성이 찾아오는가 싶더니
3악장의 폭주-제어를 벗어난 듯한-에 가슴은 여러 번 두근두근.

브람스는 내겐 겨울 풍경 중 하나 같은 이름.
음...생각해보니 가을도 쫌 그런가..?
백건우의 브람스 새앨범 찜.

심난한(^^) 리스트지만
중간중간에 아름다운 선율이 숨어있었다.
백건우가 맘에 든 건 어느 부분일까?
월광의 3악장과 이어져 있는 것 같기도 했던.

연주 뿐 아니라 공연이라 부르기에 손색없던
짧은 시간이었다.

또각또각 소리를 내며 유난히 꼬리가 길던
중간입장 관객이 한명 있었다.
백건우에게 내가 다 미안할 정도...
속으로 다짐했다.
이제부터 공연에 지각 않도록 노력해야지.
혹 늦을 것 같다면
절대 소리 안나는 신발을 신고 가야지...



밤과 낮|Night and Day|2008

인류의 기원이란 제목이 더 멋있지만 애정의 기원이 더 홍상수그러운^^

고무봉다리 하나 달랑 들고 파리 사파리에 나선 마약전과 화가 양반.
단 두 달 만에
옛연인-새연인-아내의 염정트라이앵글을 통과.
하하하.

한국 여관방과 술집에서 하산한 홍상수가
파리의 여관방과 술집으로 안내한다.
파리의 홍상수 관광지, 한번 가보고 싶다.

그러고보니 은근 1박2일 스타일.


요즘 홍상수 영화들을 보고 있자면
사랑이란 게 귀엽긴 한데
볼수록 알수 없어지는 느낌이다.
홍상수, 당신의 '사랑'이란
무엇인가요?

계몽영화|Enlightenment Film|2009

포스터도 야심찬 '계몽영화'

가끔
아버지 전두환, 아버지 이건희,
키스커플 이명박과 김윤옥 각각의 비위...
뭐 이런 것들이 한숨만큼 궁금했었다.

그런 집안들의 속살을 야심차게 까보여주는 
씩씩하고 발랄한 '계몽영화'.
가르치려들어도 좋아, 이렇게 재미있다면.

표백|장강명|한겨레출판

마음에 드는 표지-파격,도발,고발 다 아닌 것 같지만^^


뭔지는 모르지만 아무튼 그것은 이루는 것은 불가능하고
이렇게 쪼잔한 스케일의 세상에 우리를 밀어넣는 것에 항의하겠다는 
단호한 의사표시를 하는 젊은이들의 기록, 표백.
개인의 개성이 조직에 묻혀 순응되어간다는 점에서 
'표백'이라는 표현은 일리가 있긴 하지만
굳이 78년 이후의 한국이 아니더라도
그냥 보편적으로 '어른이 되어가는 과정'-타협해가는 과정-이라고 많이들 생각하지 않나?

언젠가 어디선가 읽었던 내용들이 같이 떠오른다.
이름도 까먹었지만 꽤 유명한 온라인논객이 20대들에게 충고하던 글이었다.
젊은 아름다움이 경쟁력인 여배우사회에서조차
3-40대들이 20대보다 대접받고 몸값도 높다는 걸 지적하며
청춘을 보조로 만들어버린 사회에 반항하고 저항하라고 했었다.

책장이 잘 넘어간다.
그런 와중에도 무언가는 이빨에 낀다.
도박빚을 갚으려고 죄와벌을 썼다고 해서 달라지는 건 없다고 하더니, 
타협형의 인간들의 선의의 행동이 
그들의 삶에서 우선순위가 아니고 이기심의 발로라는 것을 지적하는 식이다.

책을 읽고나면 
진짜 어린-낙담도 하고, 허세도 부리고, 
지적 허영을 뽐내기도 하며 그 가운데 구멍을 드러내기도 하는-작가의 
도전작 같은 느낌이 드는데
경력있는 기자의 소설이라는 것이 의외였다.

사실 내용에 호기심을 느껴 읽은 책인데 
오히려 후반부의 미스테리 전개가 유일한 매력으로 느껴진다.
다 읽었지만 밑줄 긋고 싶은 부분은 없다.
주요내용과는 전혀 상관없는 이 부분에서 팍 웃었다.

그날 나는 다른 팀원들과 저녁을 먹지 않고 주간지 기자인 휘영을 기다리고 있었다.  휘영이 약속에 늦었지만, 전화를 걸어 어디까지 왔느냐고 재촉하는 일 없이 하급 공무원답게 기다리고 있었다. 휘영도 약속시간에 늦어서 미안하다, 지금 어디까지 왔는데 얼마 뒤면 도착할 것 같다는 전화는 걸지 않았다. 기자답다.

한 가지 더 재미있었던 건 작가가 인용하고 있는 책들 중에서 
내가 읽은 것도 몇 권있는데 
인용한 부분들 중 기억나는 건 하나도 없었다는 것.
이 작가와 나는 같은 책을 좋아라 읽으면서도 
완전 다른 부분에 열광하는 취향^^ 
그래서인지 
읽지 않은 책중에서도 별로 관심가는 책은 없었는데 
딱 한 권 눈에 들어왔다.
제목은 '처녀귀신'.
꼭 읽어봐야지.

PS. 후반부 삼성전자 휴대폰은 소설 최초의 PPL?
삼성이라는 이름이 여러 번 실명등장하는 게 그냥 짜증스러웠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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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설이긴 해도 연쇄자살저항이 꽤 컸나보다.
문득 그들의 항의를 곱씹게 된다.
우주의 중심이 나인데
왜 그들은 그렇게 거대담론에 목말라했던 것일까.
끝까지 '보여주기'를 포기 못했다는 건
스스로의 행복에는 무관심하면서 
다른 사람의 선망으로만 만족하는 
산업세대 같은 낡은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뜻한다.
그런, 
거대해야한다는 강박증에 가려
네모난 지구의 끝에서 뛰어내려버린 에너지를 통해
불쌍한 이 시절의 청춘도 청춘임을
보여주려는 것이었을까.

두근두근 내 인생|김애란|창비

그래서 이번에는 바람의 열세 계급 중 0계급에 속한다는 '고요'라는 단어를 읊어보았다. 그것은 한 세상에서 가장 조용한 기척이 되어, 세상에서 가장 멀리가는 동그라미를 만들어냈다. 신기한 일이었다. 0계급은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줄 알았는데, 0계급이 무언가 하고 있었다.


'.....어릴 때 나는 까꿍놀이라는 걸 좋아했대. 아버지가 문 뒤에서 '까꿍!'하고 나타나면 까르르 웃고, 감쪽같이 사라진 뒤 다시 '까꿍!'하고 나타나면 더 크게 웃었다나봐. 그런데 어느 책에서 보니까, 그건 아이가 눈에 보이지 않는 사물도 사라지지 않는다는 기억을 저장하는 거라더라, 그런 걸 배워야 알 수 있다니, 그렇게 작은 바보들이 어떻게 나중에 기술자도 되고 학자도 되는 지 모르겠어. 나는 처음부터 내가 나인 줄 알았는데, 내가 나이기까지 대체 얼마나 많은 손을 타야했던 걸까. 내가 잠든 사이 부모님이 하신 일들을 생각하면 가끔 놀라워....

아름이의 몸을 빠르게 자라고 그래서 일찍 늙게 만든 건 병이었지만,
보통, 어른되기의 과정이 그렇듯
아름이의 내면을 좀 극적이지만 평범하게 자라게 한 건
사람과 사연이었다.

'이웃에게 희망을'에서 볼 법한 불치병에 걸린 아이와 그 가족의 이야기.
하지만 내용은 전혀 신파가 아니다.
경쾌하고 솔직하게 아름이의 속을 파고들어간 작가의 감성과
아름이의 담백한 시선이 즐거움을 준다.
성석제의 극찬에서 눈치챘겠지만
성석제 스타일의 유머도 대거 등장한다.

결국 잉태의 그 순간으로 돌아가
자신의 역사를 완성하고 떠난 아름이에게 명복을.
 

공연|쿠루리 단독공연


조제, 호랑이 그리고 물고기의 훌륭한 OST로 기억하고 있던 쿠루리.
달랑 하나 뿐인 앨범이지만 지산락페스티발을 갈까도 고민하게 만들었던
나의 파워라인업 밴드.

공연의 시작은
제법 하드한 곡들이어서
깜짝 놀랐다.
하이웨이의 약간 나른하면서도 담백한 보컬을 생각했기에
쎈 보컬에 잠시 당황.
소리는 좀 더 탁했던 것 같다.
전곡 음이탈의 진기록.
안그래도 전날 한잔했나 싶었는데
전날 막걸리 마셨다고 솔직하게 고백을 했다.

들려준 신곡 중 몇곡 끌렸고
예상과 다른 소리였지만 역시 하이웨이 좋았다.
신나게 놀아보자 했으나
그만큼의 흥이 나지 않아 살짝 미안.
일본의 델리스파이스라고나 할까.

공연장은 체조경기장 수준의 음향이었고
지하 구석에 비해 뭐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지만
코앞에서도 찾을 수 없던,
인근 상인들도 알지 못하던 상호 V홀.
덕분에 생면부지의 커피집 손님에게 부탁해 길찾기를 시도했다.
차라리 서교호텔 별관 지하라는 이름으로 찾아가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