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정만세|2011

부지영의 산정호수의 맛
제법 선정적인 것 같은 소재와 제목이지만 어찌보면 좀 황폐하기까지 했던.

첫 장면부터 강렬했다.
벌판의 남녀.
뿌연 렌즈 너머로 애틋함이 오가는 눈빛에
불행한 결혼의 흔적 같았던 상처를 애절하게 보듬던 순한 젊은 남자와
그 연정에 격하게 반응하던 중년의 여자.
이어진 장면은 여자의 적나라하게 벌거벗은 얼굴이다.
자석요가 겹겹이 깔린 방안은 
그녀가 고단하게 몸쓰는 일을 한다는 걸 그대로 보여주었는데
그 다음 장면에서 편의점에서 일하는 딸을 찾아간 그녀는 
방안에 안어울리게 놓여있던 핑크색 어그부츠가 딸의 노동의 댓가이고
갑작스런 산정호수 나들이에 그 어그를 신고 나설만큼 
연애하는 이 여자가 
딸의 입장에서는 짜증나는 엄마임을 보여준다.
한 장면 한 장면 잡히는 소품마다 
열렬히 정보를 전해주는 성실한 영화가 참 오랜만인 것 같다.
(특히 내 말귀 수준에 딱 맞게 전해주시는 경우는^^)

나름 적극적이면서 적나라한 환상연애.
사랑받는 사람의 빛이 자신감이라면 
사랑하는 사람의 빛은 자신을 가꾸는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그녀는 사랑에 빠져 헤롱대는 여자의 모습 그대로 
그저 발산 뿐 이었다.
아마도 그녀의 연애가 빛나지 않았던 이유.

딸이 알바로 장만한 어그를 신고나가 개꼴을 만들어버리는 
민폐엄마의 위대한 등장에 박수를~
부지영의 새영화가 보고싶다.

 양익준의 미성년
사랑스런 그녀의 매력에도 불구하고 롤리타 컴플렉스

남자는 처절하게 연애에 패배했다.
여고생도 연애상처를 극복하기 전이다.
그래서 연애한다.
단도직입담백연애스토리이긴 한데
그녀의 매력이 물씬 풍겨남에도 불구하고
그는 미성년에도 빠져드는 남자라기 보다는
그저 미성년을 마다할 수 없는 남자로 보인다.
보지않은 영화 똥파리에서도 여고생이 등장한다던데.
이십일세기형 당돌과 도발의 덕목을 갖춘 여고생에게 끌려다니기 딱 좋은 우유부단형 남자.
로리타컴플렉스의 한국형 완성작 이다.

기대보다는 덜 심심했고
기대보다는 좀 아쉬웠지만
모처럼 단편의 허전함이 없는
재미있던 시간이었다.

임재범 콘서트-다시 깨어난 거인|2011


이번 공연만큼은 '노래하는 임재범' 보다는 '사람 임재범'으로 만나고 싶었던 듯
전보다 훨씬 많은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아직 적응하지 못한 사람들의 갑작스런 갈채가 낯설다면서도
'사람 임재범'은 자신을 좋아해 찾아와 준 사람들속에서 
좀 편해지고 싶었던 것 같았다.

시작은 '빈잔' 라이브.
의리의 차가수 등장.
그 다음은 추노 주제곡, 시티헌터 주제곡,
'주먹이 운다', '가로수 그늘 아래 서면' 등
리메이크나 드라마주제곡 같은
서비스 정신 투철한 곡들이 이어졌다.
(가수가 서비스 업종인지는 임재범 덕에 알았네^^)
 그 노래들 사이로 들려주는 '재범이 형'의 이야기들.
강도도 내용도 쎄졌지만
공연통과의례같은 그의 인생반성문과 참회. 
순간의 진심이겠지만
사실 난 이러다가 재범이 형이 또 어디론가 사라져버려도 
놀라지 않을 거다.
좀 빨리 돌아오기를 바라기는 하겠으나.

전보다 많아진 이야기와 초대가수들, 
아우라를 스스로 찢어버린 재범이 형이
굶주린 팬들을 위해 마련한 
임재범표 쎄시봉 같다고 생각하며 아쉬워 하고 있었는데.
아, 역시 그는 록커다.

세 곡 뿐이긴 했지만,
십대부터 70대 이상까지
나가수 이후로 마치 국민가수가 된듯한 다양한 팬층을 두고도
디아블로와 함께
달릴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다음 공연때까진 Rock in Korea, Paradom(대체 무슨 뜻인가--;;)의 가사를 
반드시 외워버리겠어요!

아마도 오늘은 어제보다 더 힘들었을텐데
YB의 등장으로 힘 좀 받으셨을까나.
내가 해준 건 암것도 없지만 
좋아하는 사람들끼리 친해지는 건 
어쩐지 흐뭇하다.
가끔 노래하는 표정을 보면
배우의 피가 흐르는 건 아닌가도 싶다.
연기데뷔작이자 은퇴작이었던
'누가 용의 발톱을 보았는가'에서의 연기는
기억이 안나는데 말야^^

공연에선 처음 들어보는 '최선의 고백'-정말 임재범 버전의 멋진 축가가 되었다.
그런 와중에 All by myself와 거인의 잠-인줄 알았는데 '추락':아직도 헷갈리다니...-은 지금이라고 느껴질 만큼 처절했다.
다시 쓸쓸모드로 돌아가는 것 같아 조금 심난했지만,
그동안의 고독에 대한 진혼굿이라고 생각할게요.
'비상'의 솔직한 연출을 콘서트의 타이틀로 기억할거니까.
또 만나요.
다음엔 좀 작은 공연장에서요~~!



뮤지컬|모차르트|2011



이달 들어 두번째의 횡재수^^티켓이 굴러들어왔다.
사실 뮤지컬이라면 그다지 구미가 당기지 않는 편인데
영화라면 어느 한 장면이 깊이 남게 마련이고
연극이라면 배우의 어느 한순간이 와닿기 마련이고
음악이라면 어느 한구절만큼은 인상깊게 마련이며
발레가 그 완성도로 가격대비 엄청난 만족과 새로운 재미를 주는데에 비해
불행이도 뮤지컬은 화려한 무대연출의 감탄스러움에도 불구하고
티켓값을 생각하면 가격대비 만족도면에서는 늘 바닥을 치는 종목이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는 것이
듣기 싫은 목소리를 병적으로 싫어해서 오페라도 보지 못하며
취향 아닌 가수는 가차없이 돌려버리는 내가 
뮤지컬의 모든 가수 목소리를 좋아하기란 불가능할 뿐더러
특유의 드르륵 뮤지컬 발성에는 경기를 일으킬 지경이니...

그럼에도 불구하고 
산넘고 물건너 성남까지 또 갔던 건
오랜만에 임태경의 목소리를 듣고 싶었기 때문이다.
그동안 꽤 여러 공연을 했다고 들었는데
내가 좋아하는 그 목소리는 여전하건만
이처럼 전달력이 강조되는 노래에서는 
다른 전문배우들과 달리 내용을 알아듣기가 힘들만큼  전달력이 떨어졌고
스스로가 쑥스러워 하는 것이 그대로 전해지는 춤,
뭐가 달라졌나 싶은 연기력,
여전한 체력문제.
그저 
공짜표라 즐거웠던 공연이었다.

그러나 그에게는 여전히 팬클럽이 있다.
살짝 원망스럽기도 한 팬덤이다.
그는 이제 가수가 아닌 배우이고
같은 무대에선 배우들과 저절로 비교되도록 
뮤지컬배우로서의 갖춤이 너무나 부족한데도
팬들은 기립박수를 치고 있었다.
나는 이제 그의 팬이 아닐 것 같다.
언젠가 노래하는 무대로 돌아온다면 
기꺼이 돌아갈지 몰라도.

오늘 내 박수는 
베버부인과 레오폴드에게로.
예전 불의 검의 수하이 역으로 처음 알게 된 서범석의 놀라운 파워가 
'뮤지컬배우'를 정의해주는 것 같았다.
그보다 잘하는 것은 물론 환영이나
그에 못미친다면
응당 부끄러워해야 함을.

자유를 원하는 천재로서의 관점은 새로웠지만
첫번째 고비나 두번째나 
전혀 진폭없는 모차르트의 갈등이
극자체로서도 짜임새가 부족해 보였다.
내내 과로하던 애기 모차르트만 좀 안쓰러웠을 뿐.

이소라도 없는 '나는 가수다'

사실 임재범 노래안했다는 기사 뜬 뒤부터 나가수를 TV로 안보기 시작했다.
따져보면 연결한 스피커 키워놓고 본 건
임재범이 '여러분'을, 이소라가 '사랑이야'를 불렀던 한 주 뿐.
윤도현이 혼자 나올 때도 혹하지 않았는데,
임재범을 안 볼 수 없어 보기 시작했다가
2집 이후로 듣지 않던 이소라를 (나로서는) 재발견했고
점점 물 만난 것 같아 보이는 YB까지
삼박자의 완성이었다.
임재범도 보여준 것 보다는 보여줄 게 더 많을 것 같아 더 기대했었는데.

정말 음악은 취향이라서
김범수의 노래 참 찌르르하고
BMK 노래 잘하는 것 알겠고
박정현이야 원래 잘하는 것 알고 있었던 가수이지만
안 보던 프로그램을 찾아보게 되고
그 노래를 종일 듣고
노래하는 순간을 기다리게 만드는 카리스마는
인정만으로 되는 건 아니다.

난 옥주현이 노래를 못하는 가수라고는 한번도 생각해본 적 없고
딱히 싫어할 만큼 알지도 못하지만
일단 가수시절에도 내가 좋아하는 노래의 주인공은 아니었다.
하지만 이제는 성공한 뮤지컬배우이자
좋은 뮤지컬배우가 꿈이라며 열심히 노력하던 사람에게 '나는 가수'라고 외치도록
-옥주현의 입장에서는 거의 입증이 되어버린-
무대를 만든 신정수라는 사람의 취향이야 말로 별나다고 생각한다.
일기를 일기장에 쓰듯 팬클럽 활동은 팬클럽에서.
아무리 안티 어쩌고 해도
한때 날리던 걸그룹의 출신인데
'가창력'만 증명하면-여기서의 가창력은 아마도 고음처리와 바이브레이션의 적정한 조합.
그 팬들에게 더 큰 기쁨을 주는 것이야 당연하지 않을까.
장르불문에 감동의 무대만을 생각한다면
조수미는 어때? 국악하는 김영임은?
송대관 태진아가 설마 노래를 못해서 안부르시나?
도대체 무슨 기준으로 옥주현이 '재발견'이 필요할만큼
'묻혀있던 보석'이라고 생각했는지 모르겠다.
대중성엔 명예를, 실력엔 대중성을?
-스스로 신의 경지에 등극하시는 PD마마.
예능이라고 발뺌하기엔 비겁한 것이
'음악모드'자막은 뭐고 공연을 위한 투자 어쩌구는 다 뭐니.

한때는 이소라의 '사랑이야'에 6위를 매긴 청중평가단을 이해도 했다.
현장의 모든 무대가 감동이라서
그나마 에너지를 많이 소모한 것 처럼 보이는 가수에게 표를 던진 게 아닐까 하고.
결국 이소라가 떨어져서 이해를 접으려 했지만.

똑같이 화려한 퍼포먼스였는데도 
1위의 김범수와 5위의 옥주현.
김범수의 무대가 그동안 펼칠 기회가 없었던 회심의 장이였다면
옥주현의 무대는 뮤지컬 무대와 걸그룹시절의 퍼포먼스 감을 살린 무대였다는 걸
현장에서도 느꼈다는 뜻이 아닐까.

어떻게 보면 이건 이소라가 남긴 희망 같기도 하다,
즐기는 자를 이길 수는 없다는.  
사랑이야 부터 이어진 이소라의 '노래하기'에
번번히 꽂히고 있었으니까.
'높은음 올라가기 경주' 말고 
읖조리는 시작 한 소절에도 마음이 내려앉는, 
속에너지-내공-없이는 나올 수 없는 노래. 
맨날 앉아서 부르니까 편해보였겠지만
임재범 때 만큼이나 이소라가 없는 무대 역시 전같진 않을 것이다.
이쯤되니 가수들 데리고 올림픽하냐던 비난이 조금 이해된다.
정작 가수들은 좋았다고 하지만
어쩐지 이 감동의 존재들을 이따금 외롭게 만들었을
'대중의 사랑'이라는 것의 속성을
실시간 생중계로 보는 것 같기 때문이다.
역시 음악은 공연과 음반이다?!



연극|봄날



언젠가 아들들은 돌아올 것이다.
시간이 많이 남지 않긴 했지만
모든 것을 잃은 뒤 남은 그리움은
그동안의 욕심으로
자식들의 가슴에 남긴 상처만큼 방치된 후에 보상받는 셈이니
그걸 억울해하기만 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아직도 TV손자병법의 고단한 과장의 이미지가 강하게 남은
오현경의 무대를 꼭 보고 싶었다.
'기집'들이 소용없는 이유로
안보는데서 절에 시주나 하고
남편 담배나 훔쳐피우고
뭐라 나무라면
서럽다고 목이나 매는 쓰잘데기 없는 인간이라는 기막힌 대사를
어쩌면 그렇게 그럴싸하게 하던지.
게다가 마지막 단 두줄의 대사로 울컥하게 만들던
역시 굉장한 무대인간.
나쁜 아버지로서 당당했던 것만큼이나
버려진 뒤 담담하게 받아들이던 그 모습은
연민의 모습 그대로 남았다.

가장 거리를 두고 싶어지는 인물.
동생들의 어머니였던 큰아들이다.
좋은 게 좋은 거라는 생각으로
이리저리 다독이지만
자신을 위해 치열하게 가슴아파보지 않은 사람은
누구를 진정으로 사랑하고
누구를 진정으로 이해하기도 힘들어보였다.
그러나 세상은 그들의 힘으로 많은 부분 지탱되니
모두에게 마음의 빚을 지우는 사람이기도 하다.

조금 느린 박자의 연극.
가족의 화해라는 익숙한 소재지만
그 화해가 부당함에 대한 저항이었다는 점에서
새로운 힘이 느껴지는 극이었다.
그 저항이 아니었다면
늙은 아버지는 꼬부랑 저승길의 주인공이 되었을 것이고
또 '그리움'이란 것도 영영 몰랐을테니.
오르막 무대에서 배우들이 움직일때
왼쪽벽으로 그림자가 져서
수묵화같은 느낌이 들었다.

많이 웃기도 하고
그 시절을 기억하시는 듯한 관객들의 조용한 수다가 뒤섞여
좋은 분위기였다.

어울림극장-참 좋은 공연장이던데
연극하기엔 너무 커서 빈자리가 많았다.
새라새정도였다면
꽉찬 객석의 박수를 받았을텐데.

아, 참. 특이했던 거.
절에서 맡기고 간 처자가 처음 등장하던 차림이
'내일은 왕님'에서 이치이 토야-사사야 유우 버전 '되돌이고개' 의상처럼 보였다.
슬쩍 그 의상에 오현경의 '되돌이고개'가 겹쳐지기도 하던...

DVD|이층의 악당

본편
손재곤 감독과 김혜수의 성실한 코멘터리.
항상 배우들은
화면을 보면서 얼마나 힘들고 아팠는지, 얼마나 추웠는지, 얼마나 더웠는지 등등
열악한 촬영환경때문에 고생한 얘기를 계속 늘어놓으면서
듣는 사람을 지겹게 만드는 경향이 있는데
김혜수는 그나마 적은 편.

서플먼트
꽤 부실하다.
메이킹과 예고편 뿐.
한석규의 인터뷰를 보면 굉장히 효율적인 촬영이었다는데
아마도 그래서 부스러기(?)과에 속하는 서플이 휑한지.
이원상의 인터뷰쯤은 있을 줄 알았는데.
촬영장의 활력소였다는 김혜수는
리허설이 끝나자 마자 장난모드로 금새 돌아서던데
몰입과 이완의 시간이 참 적게 걸리는 배우구나 싶었다.
이층의 악당에서의 연주는 타짜 이후로 가장 볼만한 캐릭터.

왜 한석규는 언제나 '젠틀'의 이미지가 따라다니는지 궁금했다.
'아들과 딸' 빼면 재벌이어도 비행재벌, 형사여도 비리형사나 비행형사,
사기꾼에, 제비가 더 많았는데.
여기서의 창인을 보면 좀 답이 나온다.
막장같아 보여도 최소한 어느 바닥까지는 내려가지 않는
그래서 인간이라는 존재에 오히려 가느다란 희망을 준다고나 할까.
그런데.
바로 이 얘기를 똑같이 한석규가 인터뷰에서 하고 있었다.
그 순간, 이게 바로 한석규의 연기의 틀처럼 보이는 그것이구나를 깨달았다.
한석규는 나쁜 놈이지만 한편으로는 나빠져봤자인 박창인이 진폭이 큰 인물이라고 했다.
맞는 것 같긴한데 보는 입장에서는 그 큰 진폭을 느낄 수 없다.
한석규는 격렬한 분노나 망가짐에 있어서도 자신의 틀을 넘지 않는다.
가끔은 그런 것도 보고 싶은게 관객의 마음이지만,
한석규에게는 인생관하고도 연결이 되는 큰 변화 일지도.

하지만
혼자 있을 때, 순간의 무너지는 감정이라든가,
차마 표현은 하지 않더라도, 어느 순간 지나가는 강렬한 해방된 감정같은 것도
표현하는 일을 하는 배우니까
때로는 드러내줘야 하지 않을까.

다시 보면서 웃긴 부분이 바뀌었다.
기운이 빠져 봉지냄새조차 매가리없이 맡는 사실적인 엄마손파이장면은
측은해보이기까지 했다.
이번에 가장 많이 웃은 건 연주의 전화공세에 대처하는 장면.
이렇게 비슷한 상황이 반복되는 몽타쥬에서
정확하게 게이지를 올려가며 감정을 표현하는 건
정말 한석규의 전매특허라 할만하다.
변함없이 웃긴 건 주민등록번호 장면인데
처음 볼땐 애드립감으로 웃었다면
이번엔 어딘가 처절해보이기도^^
오랜만에 돌려보고 싶은 장면이 풍성한 한석규의 영화.

처음 보는 건데 이런 등급이 케이스뒷면에 나와 있다.

케이스 등급                                  나의 생각
주제(유해성): 다소 높음               전혀 유해하지 않음
선정성: 다소 높음                         기대하면 완전실망ㅋㅋ
폭력성: 다소 높음                         보통 같긴 한데 폭력성은 없을수록 좋으니 통과
공포: 보통                                    이것도 기대하면 실망
약물: 보통                                    뭘 말하는 건지 모르겠음....아, 연주가 알콜중독
대사(저속성): 다소 높음              욕이 좀 나오는 건 사실
모방위험: 다소 높음                     그렇군.

이것은 왜 청춘이 아니란 말인가|엄기호

솔직히 말해 스펙은 이 잉여인간의 시대에 '자기관리'라는 도깨비 방망이로 탈락시킬 놈을 찾기 위해 강조되고 있다. 청년실업문제를 해결할 의사도 능력도 없는 시장의 무능을 '자유'의 이름으로 개인의 무능으로 돌려버린 것이 바로 스펙의 실체이다...체제는 완벽하게 승리하였다. 청춘을 자학하는 잉여로 만들어서 말이다. 자기를 계발하는 주체의 이면은  자학하는 주체이다.

한국의 가족이 위기에 빠진 이유는 '가족'이라는 이름으로 서로에게 '노동'을 하지 않고 그저 쉬려고만 하기 때문이다...모두가 편히 쉬려고만 할 때 그들이 쉬기 위해서 집을 편안하게 만들고 그들의 정서를 돌봐주는 일은 순전히 엄마의 몫이었다. 그러니까 감정노동을 하는 '노동자'는 엄마 뿐이다...지금까지는 일방적으로 어머니가 감정노동을 수행하면서 가족을 떠받쳐왔다. 이런 점에서 감정노동은 가장 착취적이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의 감정노동에만 의존하는 가족에는 어머니를 착취하는 과정에서 필연적으로 어머니의 한탄과 같은 문제가 끊이지 않고 발생한다. 중산층의 세련된 엄마들이야 그것이 자신이 수행하는 전문가적인 '매니지먼트'라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나머지 엄마들에게는 오로지 자신만이 일방적으로 희생하는 해도 해도 끝이 없는 '밑 빠진 독에 물붓기'이다. 다른 가족들이 감당해야 하는 감정노동은 엄마의 한탄을 들어주는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무한대의 인내심을 요구하는 너무나 피곤한 일이다. 어머니가 있으면 있는대로 어머니와 자식들간의 신경전이 끊이지 않고, 어머니가 없으면 가족 자체가 깨지고 만다. 따라서 감정노동이 민주화되지 않는 이상 가족간의 문제는 사라질 수가 없다.

우리는 이미 민주화가 자유를 가져다 주지 않는다는 것을 안다. 어찌되었건 한국은 민주화가 되었지만 내가 자라오는 동안 자유는 없었다. 우리에게 자유란 정치적인 것이 아니라 경제적인 것이다. 부자인 아이들은 하루 종일 책상머리에만 앉아있을 수 있으니 좋은 성적을 맞은 수 있다. 그들도 절약이라는 것을 배우지만 '살 수 없는 것'은 존재하지 않는다. 중산층의 아이들은 자신이 노력하면 어쩌면 삼성맨이 될 수 있다는 알지만 삼성의 CEO가 되지 못한다는 것도 안다. 가난한 아이들은 대를 물려 내려온 가난함이 자신의 것이 되리라는 것을 안다. 우리 세대의 자유란 그리고 지금 통용되는 자유란 '계층적, 경제적 차등에 따른 제한된 선택의 자유'라고 말할 수 있다. 경제적으로 나뉘는 계층에 따라 선택할 수 있는 폭이 달라지는 것이다. 우리가 원하는 자유란 자신이 속한 계층이 무언가를 선택할 수 있는 경우의 수가 많아지는 것이다. _자은

변영주의 어떤 글에서 이십대에 대한 가장 따뜻한 시선이라는 짧은 감상을 봤다.
하지만 엄기호의 설명대로라면 이 책은 따뜻한 시선이라기 보다는
정확한 기록이 맞을 것이다.
이 성실한 청년들이 스스로를 잉여로 자책하며 청춘을 탕진한다는 사실이
많이 측은하기도 하면서
한편으로는 이 책속의 청년들이 아닌 다른 20대도 이렇게나 성실할까
의심을 지우지 못하며
환영하지 않는데도 슬슬 자라는
나의 꼰대근성을 확인한다.
가르치려 드는 사람-꼰대.
참 정확한 정의다.

늙고도 철 없음은 때로는 자랑스럽게 말하면서,
청춘들의 청춘활용에는 모두가 부정적이라는 게 부당하다고 느끼면서도,
이따금 긴장이 풀린 근육들 사이로
요즘 애들은...류의 말이 비져나올때 우울해진다. 
가진 거라고는 돈밖에 없고
그 과정도 범법으로 얼룩진 소수의 절대권력 늙은이들이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젊음을 질시해 
청년들을 허망한 스펙경쟁에 몰아 놓고 즐길 틈을 주지 않는 것 같다는 것이 
언젠가 느꼈던 음모이론이기도 하지만.

pronunciation / i / and / I /

         / i / and / I /
tongue          forward
                higher high
lip             spread neutral
mid-T firm        relaxed
                 eat           it
                 seek        sick
                 least        list
                 reach      rich
                 heel         hill
                 leave       live


/ i /:
Please have a seat. 
He's a real team player. (He works well in groups, unselfish, thinks of others) 
Making ends meet isnt always easy. (paying the bills, covering expenses) 

/ I /:                          
I miss him.
Click on the link. 
Give me a ring some time. (call me) 
He's going to flip his lid. (get very ang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