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험한 상견례|Meet the In-Laws|2011


위험한 상견례|성공적인 만남이라고 생각해.
웃음코드로 심은 대사들보다 한껏 멋부린 고풍(^^)스런 복장과 80년대식 설정에
오히려 빵 터졌다^^


송새벽이 관람동기의 100%였으나
초반의 송새벽, 예상 외의 이시영의 초반부,
대박 복병 정승화의 중반부,
두 아버지와 김수미의 후반부에 박수.
꿀꿀함을 달래줄 한방 웃음을 기대했지만
어쩐지 가문의 영광을 뒤잇는 스타일의 코미디여서
웃음도 기대이하, 약간의 지루함도...
중간쯤에 포스가 장난아닌 수퍼아줌마가 등장해서
강렬한 한방을 날렸는데,
영화정보를 보니 김선영이란다.
뮤지컬 여왕 김선영이 그러고 나왔단 말인가...헉.
그렇다면 앞으로 영화나 드라마에서도 볼 일이 많아지겠네.


몇 번 안되지만 볼 때 마다 감탄하게 되는 정승화
자주봐요, 쫌~~

남자|김인문


부고(http://media.daum.net/entertain/enews/view?newsid=20110425193413116).
마지막 본 건 
좀 불편하신 것은 같아도 
새 영화를 함께 찍는 장애인 후배들과 아침프로그램에서 즐거워하시던 모습인데...
예쁜 사진이 기사와 함께 있어 눈물이 났다.


오래 기억될 배우이자, 참 고운 얼굴로 삶을 마무리 하신 예쁜 어른으로 남을 것 같다.
나의 남자갤러리 2호의 주인공.
좋은 곳 가셨을 거니까, 거기서 내내 평안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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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배우를 두번이나 즐겁게 봤다.
011광고와 드라마 천생연분.
내가 무척 좋아하는 배우들을 나이순서대로 나열하자면 아마 김인문과 신구가 맨 꼭대기일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김인문은 부잣집 아들과 연애하던 딸 때문에 부잣집에 불려간 가난한 아버지였는데, 홍차봉지를 뜯어서 찻잔에 쏟다가 비웃음을 당하는 장면에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함 없는 이 배우는 모진 말까지도 순하게 만드는, 그러면서도 무시할 수 없는 무게가 있는 그런, 아주 묘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전원일기의 최불암을 두고 한국의 아버지라고 하지만 사실 그는 너무나 이상적이다. 비굴해져야만 하는 상황에는 처할 일도 없는 그런 넉넉한 어른. 인자한 모습, 가난해도 당당한, 그래서 정말 저런 사람이 아버지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현실과는 좀 떨어진 듯한 느낌.
김인문이 보여주는 아버지는 속을 다 내놓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전형적인 한국의 아버지이지만, 그러면서도 거칠게 몰아부치지는 않고, 가끔 욕을 하거나 큰소리를 내도 그게 행패로 보이는 적은 거의 없이 강한 의사표현으로만 전달되곤 한다는 점에서는 이상적이기도 하다.

사실 생각해보면 김인문의 아버지는 늘 어딘가 불쌍했다.
가진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고 그러면서 자식들한테 미안해 하고, 뭐라도 도움이 되어볼까 하면 그게 꼬여서 더 큰 폐를 끼치기도 하고. 해줄거 해주면서도 큰소리 한번 못친다. 주면서도 더 늘 충분히는 못주기때문에 그걸 더 미안해 한다. 옆에 드센 마누라라도 있을 때는 더 불쌍해지는데, 내 기억에 늘 '김인문의 마누라'는 좀 억센 편이었다.

나는 원래, 착하기 때문에 남을 더 힘들게하는 사람은 매우 싫어하지만, 김인문은 짜증스러운 적이 없었다. 이유를 생각해보니까, 우선 속을 잘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왜곡해서 역정을 내지도 않고, 또, 어쩌다 드러난 속을 숨기려고 오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할말 없으면 가만히나 있지..싶을 때 가만히라도 있어 주는 정말 보기 드문 사람이다.
장담하는데, 로즈마리의 장항선역을 김인문이 했다면 절대 그렇게 짜증나지 않았을 것이다(그게 장항선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괜찮아유-가 언제 튀어나와도 잘 어울릴 것 같은 모습이지만, 그 한결같아보이는 표정에 많은 감정들을 녹여내는 김인문이 참 좋다. 내년에도 라이타를 켜라 같은 장면을 또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진을 찾으려고 검색을 했더니 정말 몇장 안나온다. 프로필도 마찬가지고.
한때 김인문과 신구 연합 팬클럽을 만들까 생각했었는데, 내가 나를 믿을 수 없어서 포기했었다. 자료도 없기도 하고.
어디 숨어있는 부지런한 팬 없을까......

***아마 탤런트 중에 새끼꼬기 경연대회를 한다면 김인문이 1등 일 거라고 확신한다.

내가 본 드라마 & 영화

수탉(1990): 기를 못펴고 사는 중년남자가 우연히 트럭에 태운 예쁜 처녀 덕에 잠시 기사는 내용이었다. 최유라가 상대역이었고 아마 신인상 받았을 거다.

대추나무 사랑걸렸네:(1990~아직도 하는 걸로 알고있다): 여기서는 시골에서 바람이 좀 든 아저씨로 나왔는데, 이전과는 많이 다른 역할을 하던 대로 편하게 소화해서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캐릭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나머지 드라마들도 무지 많을텐데 프로필이 제대로 없고, 안보고 쓸 기억력은 안되므로===  

달마야 놀자(2001): 권위의식과 권위의 차이란 무엇인가를 확실히 보여주는 큰스님. 야단 한번, 설교 한번 없이 불량배들을 다스리는 카리스마를 보라. 역할 자체가 멋지기도 했지만 김인문이었기에 친근하면서도 정말 큰어른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 스님 밑에 있는 동자승이니까 축구선수를 꿈꿀 수도 있었겠지^^  

라이타를 켜라(2002): 아침부터 김승우를 작살내는 장면이 있는데, 내 생각에는 그 영화에서 재미있었던 두 장면 중 하나였다(하나는 박영규가 뭐라하는 장면이었는데 대사를 까먹었다).

해적, 디스코왕되다(2002): 임창정의 아버지, 똥지겟군인데, 쓰레기차 피하다가 똥지게에 치이나, 아무튼 정말 재수없게 다쳐서 내내 누워계신다. 김인문의 역할상 직업으로서는 거의 최고봉이 아니었나 싶다.

바람난 가족(2003):멋쟁이 바람쟁이 시아버지. 암으로 죽으면서도 마실 거 피울 거 별로 조심안하고 속편하게, 몸만 좀 아프다가 돌아가신다. 여기서는 윤여정과 김인문 모두 약간의 노출신이 있었는데, 헐리웃에서도 케시 베이츠의 누드를 가지고 난리치는 마당에 정말 대단한 열정이라 생각되었다.

*******우연히 발견한 재미난 기사*******
 개그맨보다 더 웃기는 김인문
올해 환갑을 맞은 연기자 김인문씨는 어느 배우보다 유쾌한 성격을 가진 인물입니다.
“야, 너 한 2박 3일 시간 있냐” 자신의 연기자 데뷔 시절 얘기를 하려면 2박 3일은 있어야 한다며 이렇게 말을 시작한 김인문씨. 
“상면이 형이 딱한마디 하던데요. ‘죽인다’고.” 
강성진은 ‘달마야놀자’에 함께 출연한 박상면이 김인문씨를 두고 한 말을 전해 주었는데, 그 말이 정녕 맞는 말인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경상도 전라도 사투리가 드라마의 맛을 살리는 조미료 역할을 하지만 70년대는 엄격히 규제가 됐습니다. 국민화합을 위한다는 명분이었죠. 김인문씨는 우리나라 드라마 사상 처음으로 사투리 연기를 한 사람. 1973년 KBS 드라마 ‘어머니’에서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해 백상대상 신인연기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의 고향은 경기 김포.

“우리 그냥 친구로 지내.” (선배와 연기하게 돼 부담스럽다는 강성진의 말에), 
“하루에 몇번 전화할건데?” (휴대전화번호를 묻는 기자에게) 
그와의 대화는 즐겁기 짝이 없습니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입력시간 2001/07/11 16:38

상상만 해도 웃음을 참을 수가 없는 저 빛나는 유머감각~!

그래도 서태지

좀 쇼킹하긴 했다-아니 실은 첫날은 나도 이상할만큼  꽤 심난했다.
서태지의 음악을 본격적으로 즐긴 게 컴백 이후라
공연도 이제껏 서태지심포니와 버뮤다콘서트 밖에 보질 않아
골수팬이라 하기 부끄러운 스펙이니
심난한 내가 웃길 정도.

자세한 개인사는 별로 알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면서도
인터넷 뉴스를 점령해버린 타이틀을 다 피해가진 못해서 
호기심에 몇개 클릭해보고는 있지만
글쎄.
이지아 조차도 별로 비난하고 싶은 생각은 안든다.
해피엔딩이 아닌 마당에야 모두에게 상처가 되었을 것은 분명하니.

지난 주였나,
나는 가수다를 보다가 박혜진의 멘트에 뜨악했었다.
'국민여러분'이라고?
내가 대한민국 국민이라서 니네 프로를 보는게 아니라
TV가 있고 관심이 있어 보는 '시청자'라구.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는 걸 '국민적'관심으로 과장하고 싶긴 하겠지만
내가 우리 엄마 딸이라서 월급받는 게 아닌 것 처럼
사람들은 여러가지 역할을 산단 말이다.

그러니까 대국민해명 같은 건
서태지 기사 덕분에 묻혀버린 BBK김경준 회유사건의 수혜자인 MB나
같은 날 금산분리법을 없애기로 합의한 국회의원들 같이
'국민'을 달고 사는 사람이 해야하는 거라구. 
(이걸로 MB는 서태지에게도 미운털. 
하필 같은 법무법인이라니-태지야, 변호사 잘 못 골랐다).

첫날 철렁했던 것은
서태지의 노래가 전과 똑같이 들릴까 였는데
오늘 들어보니
똑.같.다.
이로써 나에게 서태지는 나의 흥을 끌어내주는 음악의 존재였음을 다시 확인했다.

처음의 충격이 가신 지금은 오히려 서태지가
하루 세번 방부제와 보톡스를 장기복용하는 외계인이 아니라
의지하고 싶을만큼 외롭기도 했고
세상을 잊고 사랑도 한
'사람'같아서 좋다.

변함없이 잘 자라줘.
그리고 들려줘.
나는 내 흥이 정말 소중하거든.




발레|왕자호동|국립발레단|2011

국립발레단 왕자호동
오늘 호동: 송정빈, 오늘 낙랑:이은원


늘 기대를 갖게 하는 국립발레단의 공연.
시작 1분은 그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다.
흥분의 북소리 덕분에 무용 한 쪽 안보고도 박수가 터졌으니깐.
하지만.
군무가 펼쳐지는 동안도 사라지지 않던 그래픽 뒷화면은 오히려 무대를 더 휑해 보이게 했다.
무대가 그렇게 넓은지 오늘 처음 안 것 같아.
발레가 넌버벌 퍼포먼스 중 하나라는 것도 새삼 깨달았고^^.

넌버벌마샬 퍼포먼스 왕자호동.
아마도 음악과 안무 때문일 것이다.
각도가 안맞는 군인들의 군무는 군기 빠져보일 수 밖에 없었고,
누구의 문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따금 음악과 동작이 어우려지는 게 아니라
춤이 음악의 박자를 맞추느라 쫓겨가는 것처럼 보였다.
바뀌는 장면마다의 변화는 있지만 한 장면에서는 계속 재생되는 것 같던 단조로운 음악,
사랑에 빠진 때나, 전쟁때나 템포만 다를 뿐 비슷하게 이어지는 춤.
게다가 솔로들의 하이라이트가 죄다 빙빙돌기-물론 쉬워보이지는 않지만
나는 점프매니아라서 말이지.
많이 실망했다구.
게다가 호동이 떠난 뒤 낙랑에게 지분대는 필대의 춤이
폭력적으로 연출된 것도 불만이다.
춤으로 표현하기에는 구애가 훨씬 아름다웠을텐데
여기가 정말 무슨 성추행의 왕국이니.

오늘의 폭소포인트1. 노골적인 소품 침대.
침대씬들이야 옛날 드라마에서 촛불하나가 휘리릭 해도 
보는 사람들은 므흣하기 충분한데
굳이 침대 위에서 엎치락 뒤치락을 했어야 했을까.
그 위에서는 무용수들조차 편해보이지 않더구만.
(첫날밤에 신부 치마로 몸을 가려주는 신랑을 보는 관객의 안타까움)

오늘의 폭소포인트2.
외국발레에 부모가 등장하는 건 적극적인 방해꾼일때 뿐인데
우리나라 정서이다보니 지들이 좋다는 애들의 연애를 '허락'하는 장면에서
아버지왕이 등장해 뻘쭘하게 손으로 대사같은 몸짓만(춤이 아니다) 하고 들어간다.

안내책을 사지 않아서 더 모르겠는데
중간에 파란 띠옷의 처자들은 뭐하는 사람들인지,
염소(하얗고 작은 뿔이 있던데 아님 말구)의 역할은 뭔지,
두 마리 포유동물(큰 뿔 사슴인가-옷은 멋있었다)의 므흣한 춤은 무엇인지.
해설에 빠진 부분들은 모두 미스테리.

오늘은 의상도 약간 미스테리.
군무의상은 다 멋있었는데
이상하게 왕자와 공주옷만 초라했다.
아무리 빤짝이를 붙였어도.
그리고 신녀들 옷은 꽤나 착 감기는 천 같았는데도
어째 옷에 사람들이 갖혀있는 것 처럼 보일만큼
동작에 방해가 되는 것 같았다.
시녀들이 베개를 앞에 차고 나왔을 땐 기모노 베개를 앞으로 돌린 것 같았고,
게다가 병사들? 군인들? 중 한무리는 소림사 복장이어서,
호동의 한자 편지까지 합쳐보면 영락없는 중국발레같았다.
그나마 한국적인 느낌을 살릴 수 있는 게
의상이나 소품일 것 같은데.

어쩐지 지젤 때와 달리 늦게까지 표가 남아있더라니.
우리 왕자호동은 아직 성장기였던 게로군요.

앗 깜빡. 오늘 나의 박수는 필대에게로.
이름이 안나와서 모르겠지만
파워풀한 초반 점프가 인상적이었다.
워낙 남자무용수들이 많은 공연인데
큰 체격 덕에 더 멋있어 보이기도 했구...

폴루이스 피아노독주회|2011



내가 생각하는 슈베르트는 고요와 사색-말이 좋아 사색이고 실은 불면증퇴치에 강력한 효과를 발휘하는ㅎ-이었다.
그런데 폴루이스의 슈베르트는 무척이나 드라마틱한-내 식대로는 좀 야한-음악이었다.
하긴, 방랑자 같은 곡은 생각해본다면 사색적인 분위기라 하더라도 슈베르트가 조용하기만 한건 아니었는데.
때로는 힘 있게, 때로는 사근사근하게 들려준 폴루이스.
피아노 소리가 좀 다채롭게 느껴지기도.
선곡을 보더라도 그의 슈베르트는 내 이미지와는 많이 다르긴 했지만
이런 곡들을 골라 낸 그를 통해 슈베르트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다.
폴루이스의 베토벤도 이렇게 드라마틱 할까.

드문 슈베르트 연주라 성남아트센터까지 찾아갔는데.
솔직히 공연장은 좀 실망이었다.
일단 왕복 3시간에 달하는 거리는 그렇다 치더라도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숨겨진 지하보도를 찾느라 좀 헷갈렸고,
(요즘 세상에 횡단보도가 아닌 지하도--;;)
산을 긁으면서 지었는지 세로로 배치(방문자 입장에서)된 건물들도 찾기 불편했다.
콘서트홀은 맨 뒤였는데 '빛의 계단'이고 뭐고
쪽 펴서 굴러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손가락 보는 재미에 내가 좋아하는 2층 사이드좌석은 반듯하게 1층 관람석을 향해 있어
무대를 향해 정확히 목을 돌려줘야만 했다.
거기다가 여유공간도 없이 바로 앞에 난간이 보이는 바람에
철창사이로 연주자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새로 지은 공연장일텐데 관람객과 공연을 위한 배려는 
90년대에 지어진 예술의 전당은 커녕 세종문화회관만도 못한 것 같다.  
3년 전 아람누리같은 어수선하고 소란스런 분위기.
뭐, 이건 시간이 좀 지나면 나아지겠지만.

꾿빠이, 이상|김연수

그러나 과연 우리가 의지를 가지고 맞선다고 할 때, 맞서는 그 대상을 일러 운명이라고 말할 수 있을까? 한번이라도 전기를 써본 사람이라면 우리의 의지가 맞서는 그 대상이 아니라, 바로 우리의 의지 자체가 운명이라는 사실을 인정해야만 할 것이다. 끊임없이 남빛의 바다를 하얀 물보라로 바꾸는 뱃길에서는 아무리 해도 당장 대양의 권태로운 푸른빛이 보이지 않듯이 인간의 의지 역시 삶의 여러 굴곡 중 하나일지 모른다. 때로 파도가 치고 남빛 대양의 한켠이 하얀 물보라로 부서질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그것은 사소한 부분일 뿐이다. 운명은 마지막 순간에 이르러서야 자신의 진짜 얼굴을 보여줄 뿐이다. 운명은 논리적으로 인간의 의지에 맞서지 않는다. 다만 마지막 한순간에 모든 것을 보여준다.

플로베르의 앵무새라는 소설을 읽은 적이 있는데, 일단 내가 플로베르를 몰랐기에 신선함만을 느끼며 읽었었다.
이상의 작품을 잘 모르긴 마찬가지지만 그래도 알 것같은 생각에 더 흥미진진했던 김연수의 '이상을 찾아서'.
이상의 데드마스크와 유고의 존재에 매혹된 기자 김연화의 이야기가 하나, 이상의 인생을 살려했던 서혁민의 이야기가 하나, 이상에 매료되어 정체성의 끌림까지 믿어의심치 않았던 문학비평가 피터 조의 이야기가 이어져 있다.
다 읽고 나면 이 이야기들이 정말 이상일 것만 같다.
김연화와 피터 조가 바로 김연수이고, 서혁민은 김연수가 자기 주장에 설득력을 불어넣으려 찾아냈을 것만 같은 인물같이 느껴진다.
천재의 인생을 향했던 야심가 이상.
그럼에도 마음에 드는 시를 한편 만났다.


지비(紙碑) 2

안해는 정말 조류(鳥類)였던가 보다 안해가 그렇게 수척하고 가벼워졌는데도 날으지 못한 것은 그 손가락에 낑기웠던 반지 때문이다 오후에는 늘 분(粉)을 바를 때 벽(壁) 한 겹 걸러서 나는 조롱(鳥籠)을 느낀다 얼마 안 가서 없어질 때까지 그 파르스레한 주둥이로 한 번도 쌀알을 쪼으려들지 않았다 또 가끔 미닫이를 열고 창공(蒼空)을 쳐다보면서도 고운목소리로 지저귀려 들지 않았다 안해는 날을 줄과 죽을 줄이나 알았지 지상(地上)에 발자국을 남기지 않았다 비밀한 발을 늘 버선 신고 남에게 안보이다가 어느날 정말 안해는 없어졌다 그제야 처음 방안에 조분(鳥糞) 내음새가 풍기고 날개 퍼득이던 상처가 도배 위에 은근하다 헤뜨러진 깃부시러기를 쓸어 모으면서 나는 세상에도 이상스러운 것을 얻었다 산탄(散彈) 아아 안해는 조류이면서 염체 닫과 같은 쇠를 삼켰더라 그리고 주저앉았더라 산탄은 녹슬었고 솜털 내음새도 나고 천근 무게더라 아아


바닥이 보이는 감성을 닥닥긁어 휘갈기는 듯한 여관방소설의 가난함에 절대 굴하지 않는 김연수의 야심과 성실이 빛을 발하는 것 같다. 대충이 없는-월간 아람누리에 쓰던 기고문 말고는^^- 김연수가 좋다.

페스티벌|2010

페스티벌|이해영 감독

다른 사람임이 분명할텐데 영화의 느낌은 김씨표류기와 비슷했다.
두 사람이 따로 감독을 하는 이유는 너무 같아서 였던가--;;

반짝이는 웃음과 재미있는 이야기들이 날치알밥처럼 차려지다가
자기만 알고 관객은 모르는 감정의 소용돌이 결말로 마무리.
스틸들을 보고 상상하는 게 더 재미있을 듯.

베스트 커플 1위:중년의 희망이랄까 ㅎㅎ

베스트커플2: 
그게 누구든 깊이 사랑해본 남자이니 좋은 애인이 될거라 믿어
(사실 얼마나 사랑하는 지가 안나온 게 좀 문제...)

무아지경 승범
귀여운 달수씨

엘 시크레토 : 비밀의 눈동자|The Secret in Their Eyes|2009

엘 시크레토 : 비밀의 눈동자

하나의 사랑이 처참하게 짓밟힌 시간에 싹트는 수줍고 기나긴 사랑의 이야기.
그 긴 사랑으로 다른 사람의 빼앗긴 사랑의 기억까지 더듬어가는 촘촘한 사랑이야기다.
시작부터 끝까지 집중해서 봤다.
유머와 대사감이 살아있으면서
손짓하나, 의미없을 것 같은 말 한마디까지
관객에게 열심히 말을 걸어오는
정성가득한 영화.

사형과 개인적인 복수 둘 다 찬성할 수는 없지만
맺힌 한이 정말 그렇게하는 것으로 풀린다면
사형보다는 복수다.
누구하나는 만족시키며, 애꿎게 남의 손에 억지로 피묻히지 않아도 되니.

쿠바의 연인|Novio Cubano|Cuban Boyfriend|2011

쿠바남자친구와 정호현=쿠바의 연인

용기있는 자만이 사랑을 얻는다?
그들의 삶에도 끊임없이 비바람이 불겠지만 사랑의 기억은 든든한 추억으로 남겠지.
발칙한 연애물이기만 한듯 광고하고 있지만
미쳐가는 자본주의의 한국과 반대끝에서 숨구멍이 틀어막힌 사회주의의 쿠바는
사람의 머릿속에서 한때 혁신이었던 것들이
어느 순간 인간을 믿지못하고 가진 것을 지키려고만 할 때
얼만큼의 불행이 될 수 있는 지를 보여준다.
그런 점에서 완전히 다른 체제의 두 사회지만 닮았다.
크레딧에 영화음악과 인트로가 오리엘비스의 작품으로 나온다.
음악 무척 좋았는데 깜짝 놀람.

소비하는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짚어주던 오리엘비스의 말이 기억에 남는다.
연애얘기와 어울리며 더 밀착형 이야기가 된 점도 있지만
연애가 없는, 원래 감독이 생각했던 얘기들은 어땠을까도 궁금해지는 재미있는 영화였다.
하고 싶은 얘기를 참 잘 알아듣게 얘기하는 재주가 있는 사람인 것 같다, 이 감독은.

이 배가 등장할때마다 재미있는 장면들이 펼쳐진다.
하지만 다른 생각이 들기도 했다.
누가봐도 운명같은 애인을 만났는데 
그 애인이 우리얘기로 영화를 찍고 싶어한다면...
난 반길 수 없을 것 같은데.
그런 점에서 오리엘비스가 아티스트라는 건 
참 운 좋은 운명이었던 듯.


웨딩드레스|2010

 웨딩드레스의 쿨하면서 귀여운 커플

보기 전에 편견이 있었다.
시한부 엄마와 어린 딸. 멜로가 없다 뿐 이지 어쩐지 많이 본 얘기일것만 같던.

그런데,
예상치 않게,
느닷없이,
여러 번 눈물이 떨어졌다.
어른들의 생각으로는 비현실적으로 보이는 아이지만,
사실 저런 아이, 본것 같기도 하다.

엄마와 딸이라는 전형적인 신파관계를 로맨스풍으로 그려내
서로를 위해 바라는 모습이 되어주려고 노력하는 연인같이 그려낸 것이 좋았다.
자연스럽고, 이따금은 진짜 엄마같기도 했던 송윤아,
거침없는 내면연기의 김향기도 이쁘다.
(근데 이런 애기들을 보자면 좀 소름이...)
피를 넘어 관계의 애정을 보여준 전미선과 전신 오열이 인상깊던 김명국도.

지켜보고 있을지 모를 고은을 위한
씩씩한 소라의 엔딩.
혹시 엄마라면 이 엔딩이 참 흐뭇하겠다.

눈에 대한 백과사전|사라 에밀리 미아노

당신이 첼로를 연주한다고 생각해봐요. 당신이 연주하는 음악은 청중 속으로 흘러가지만, 또한 당신 존재의 핵 속으로도 들어갑니다. 왜냐면 어찌되었든 당신은 그 순간 첼로와 조율되어 있기 때문이죠. 음, 이런 생각을 하게 된 건 우리가 하나의 현이라고 여기기 때문입니다. 나는 하나의 현입니다. 우리의 육체적 특징은 수십억 개의 DNA가 작은 음표들처럼 모여서 이루어진 겁니다. 여기에 지리, 배경, 기타 등등의 요소들이 더해져 저마다의 고유한 음역을 형성해나갑니다. 그 다음에는 또 우리가 행동하고 생각하고 선택하는 모든 것이 우리의 정신과 마음에 심리적 차이를 일으키는데, 이 차이들은 필연적으로 우리의 음역을 변경시킵니다. 인생은 여러 현들이 겹겹이 쌓인 층이 맞습니다만, 그렇더라도 가장 기저에 있는 현만은 절대로 바뀌지 않습니다. 이 점이 끈 이론과 사랑과의 연관성을 생각하게 합니다. 나의 개별적 현은 타인의 개별적 현에 공명합니다. 그리고 인생은 가끔 우리에게 우리와 완전히 조화되는 타인을 만나게 해줍니다. 이럴 때 우리는 DNA단계보다 상위에 있는 지배적이며 압도적인 매력에 직면합니다. 그러나 한편, 이 세상에는 우리와 정반대로 보이는 사람들도 살고 있으며, 이 '정 반대의 매력'이 생겨난 건 그들이 자신들 현을 다른 방식으로 조율했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우리는 우리가 되고 싶지 않다고 선택한 사람들에게 더 끌리며, 자신의 현과 닮은 게 거의 없는 현에 따라 우리의 현을 조절합니다. 그럴 때 현과 현은 충돌하게 되고, 그 충돌에서 현들은 함께 소리를 내며 더욱 커다란 풍부함으로 발전합니다. 때문에 사랑에 빠진 당신이 그 감정을 표현하거나 애정을 전시하지 않을 때에도, 당신은 멜로디 속으로 녹아들고 있는 것입니다. 우리는 같은 심포니를 연주하는 연주자들이니까요.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요? 당신 때문에 내 가슴이 이토록 아프다는 걸로 알 수 있습니다. 사람에게 기쁨을 주기란 아주 쉽습니다. 심지어 잘 모르는 사람도 행복하게 해 줄 수 있죠. 하지만 고문처럼 깊은 고통을 주는 아는 사랑하는 사람 뿐입니다. 자신이 알아가는 대상 또는 마음을 뺏으려 애쓰는 대상으로부터   거절당하면 순간적인 분노가 치밀기 보다는 당혹스러움에 빠지게 됩니다. 거기서 비롯된 고통은 놀라울 정도로 아주 날쌔고 강렬합니다. 오늘 난 당신이 얼마나 빨리 내 심장에 날카로운 손톱자국을 낼 수 있는지 새삼 확인했습니다.


그대는 유스테 뮤즈, 한기로 사람을 감염시키는 마귀다. 그대에게 감염된 인간은 발작을 일으키고, 이 신경이 죽어 이빨이 떨어져 나간다. 그대는 거인 위미르의 자손 흐림수르사르, 그대는 얼음조각이다. 그대는 눈의 여인 화이트아웃 때 자신을 드러내지. 남자들을 잠에 빠뜨려 죽이는데, 죽기 전에 남자들은 그대의 모습을 꼭 보아야 한다. 


연금술에서 죽은과 대면하거나 연기하려는 욕구, 또는 극복하려는 욕구는 사물들이 가진 생명력의 고통과 부활과 질문들이라는 상징을 낳는다.


저항: 서로 상반된 힘들이 갈등하며 우주를 항진시키는 하나에 통합되는 것


"내 바람은 당신을 지켜보는 것, 오로지 그 하나입니다"라는 글을. 이 글을 해가 떠오르자마자 발견했다. 누군지는 모르지만 이 글을 쓴 이는, 내가 잠에서 깨기 전이나 어젯밤에 이 글을 써 놓고 갔을 것이다. 거친 눈발을 헤치며 내 창문으로 다가와 장갑 낀 손으로 썼으리라.


가이아는 자신의 젖가슴에서 흰빛이 도는 달콤한 에센스인 'white snow'를 짜내 은하계를 창조했다. 은하수는 이렇게 창조된 은하들 중 하나다. 스웨덴 사람들은 은하수가 '겨울의 거리'이며 하늘까지 이어져 있다고 믿는다. 고대 스칸디나비아인들에게 은하수는 '유령의 길'이다.


Whimsical
나는 오트라드의 어느 언덕배기 외딴 교회 묘지에 묻혀있다. 하늘에 흐릿한 빗금을 그으며 떨어진 눈이 내 묘비를 감싸는 소리가 들린다. 이젠 더는 춥지 않지만, 넌즈 아일랜드의 나무 아래서 비를 맞으며 내 사랑을 기다렸던 그 날이 떠오른다. 그날 내 몸은 뼛속 낖은 곳까지 냉기에 젖었었다. 골웨이에 살던 시절, 그레타는 더 없이 다정했으며 그 따뜻한 손으로 내 손을 감싸주었다.  시골길을 걷고 있을 때 나는 그녀에게 '오그림의 처녀'를 불러주었다. 하지만, 그녀는 나를 떠났고, 그러자 나는 죽고 싶었다.

도서관 책꽂이를 지나다 겨울스러운 제목-눈에 대한 백과사전-에 끌려 집어들었던 충동 독서용 책.
추리소설이기도 하고 연애소설이기도 하다는 유혹적인 글귀와 달리 추리소설의 서스펜스는 없고, 절절한 연애사도 없지만, 누군가가 모았다는 설정아래 알파벳 순서대로 이어지는 눈과 얼음과 겨울 이야기는 다 읽고 나면 웬지 모를 온기가 느껴진다.
한귀퉁이를 접어둔 대목들만 적어놓으니 그럴싸한 연애소설 같기도 하지만 저 인용구들은 부분부분 끊어지다 이어지던 연애편지의 일부일 뿐.
사랑하는 사람은 깊이 상처를 줄 수 있다는 것-공감한다. 사랑을 잃어 죽고 싶었다던 누군가가 죽어 떠올리는 사랑의 추억이 '기다림'이었다는 것이 옮겨 적으며 느낀 인상적인 구절.

헬로우 고스트|2010


대충의 대박 코미디일거라 생각했는데
오히려 캐스팅대박을 일군 독립영화같았다.
혼자의 삶에 더 집중하고 있는 시선도 그렇고
아기자기한 전개도.
중간이 좀 지루하기도 했지만
마지막의 반전은
깜짝 놀랐다.
생각해보면 여러 번 힌트가 있긴 했는데.
암튼 그래서 즐거웠다.


차태현, 고생많았겠다-몸 빌려주느라^^ 
제일 재미있었던 건 할아버지지만 사진은 요게 젤 귀여운 걸~

이야기 파는 남자|요슈타인 가아더|박종대 옮김

수십장에 달하는 이야기를 쓸 수 있는 작가들이 
단지 아이디어가 부족해 고민한다는 것도 좀 비현실적이지만
-아이디어란 시작할 때만 필요한 게 아니라 
써가는 동안 계속 필요한 것이니까!-
요슈타인 가아더의 작가관도 좀 이상하다는 생각을 하다가.
결국은 이 작가가 그냥 페테르라고 믿기로 했다.
그가 여기에 쓴 여러 이야기들은 
그의 고백처럼 진득하게 붙어앉아 쓰는 재주는 없는 작가가
썩히긴 아까운 이야기들을 
진열대에 올려놓았다고 생각하면서.

요즘처럼 원작을 사서 각색을 하기도 하고
드라마를 소설로 다시 쓰기도 하는 시대에
그걸로 큰 돈 버는 페테르는 그냥 운이 좋달밖에.
그가 얼마나 자신의 이야기에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지는 몰라도
지나치다 보는 풍경, 지나친 사람들에게서
공짜로 소재를 얻는 작가들도 많으니까. 

소재는 그저 시작일 뿐이고
중요한 건 엉덩이힘이라고 믿기에 
넘쳐나는 아이디어를 돈받고 배설하는 페테르는 
작가로서도, 인간적으로도 
매력적으로 느껴지지 않는다. 
하긴 스스로도 작가가 아니라고 했긴 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