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추|晚秋|Late Autumn |2011

진한 연애끝에 감옥살이를 시작했던 여자의 머리와 마음속에는 
7년 전 멈춘 사랑이 현재처럼 남아있었을 것이다.
그 사랑을 완전히 접고서야 
다른 사람을 위한 빈자리가 열릴 수 있었던 건 당연하겠지.

연애사업(진짜 사업) 절정기에 이른 남자는
깐깐한 도전쯤으로 생각했을텐데
그의 몰입은 좀 설득력이 없었다.

그 짧은 시간의 사랑이 여자에게 남긴 것은 
기다림의 희망이지만
남자는 어떤 지 알 수가 없다.
남자의 현재는 너무도 변수가 많기에.
어쩌면 현재가 있기나 한 건지도 모르겠고.

이 모호하고 은은한 희망의 결말은
강렬하지 않았다.
가장 강렬한 연애의 현장도 
입만 빌려준
결국 진실은 알 수 없던 거리의 연인들.
그나마 그들의 끝도 
닿을 듯 했지만 가까워지지 못한 채 끝이 났었다.

그래서...
좀 미안하지만 한 숨 잤숑^^

묘한 여자 탕웨이.
색계에서는 화장을 할수록 앳띤 얼굴이 드러나던데
그 사이 여인의 얼굴이 되어 있었다.
여기서도 화장끼없는 얼굴이 
더 아름답다.
여러가지 표정이 숨어있는 매력적인 얼굴.
매 장면 성실함이 묻어나던 현빈에게도 박수.
어느 한국영화전문 외국기자는 
영어대사에 한소리하던데
대사의 문제라기보다는 
감독이 정한 톤의 문제인 것 같았다.
좀 신파 같아도
남들 연애에 변사 노릇 하던 장면에서 
탕웨이가 그렇게 웅변하지 말고 슬슬 밀려들어왔으면 좋았겠다 싶었는데.

조조라 11시 넘어서 극장을 나서는데
어제까지 낮동안은 화창하던 하늘이더니
오늘을 흐린 하늘에 쌀쌀한 기운.
짧은 길을 걸으면서 
하루치 늦가을을 느꼈다.  

추신:깜빡했다. 마지막 장면의 탕웨이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황지우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에
내가 미리 가 너를 기다리는 동안
다가오는 모든 발자국은
내 가슴에 쿵쿵거린다
바스락거리는 나뭇잎 하나도 다 내게 온다
기다려본 적이 있는 사람은 안다
세상에서 기다리는 일처럼 가슴애리는 일 있을까
네가 오기로 한 그 자리, 내가 미리 와 있는 이곳에서
문을 열고 들어오는 모든 사람이
너였다가
너였다가, 너일 것이었다가 
다시 문이 닫힌다
사랑하는 이여
오지 않는 너를 기다리며
마침내 나는 너에게 간다
아주 먼데서 나는 너에게 가고
아주 오랜 세월을 다하여 너는 지금 오고 있다
아주 먼데서 지금도 천천히 오고 있는 너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도 가고 있다
남들이 열고 들어오는 문을 통해
내 가슴에 쿵쿵거리는 모든 발자국 따라
너를 기다리는 동안 나는 너에게 가고 있다

그렇게 기다리다가 그녀는 그에게 인사를 했었다.
그를 처음 만나기 전의 7년 보다는 짧은 2년 이었지만
그 공간속에서 그녀는 그를 향해다가가며
이전의 그녀를 되찾았던 모양이다.
기다림이 가고 있는 것이라는 황지우의 시에서
희망이 느껴진다.

볼 때와 달리 
보고나서 시간이 지날수록 나 몰래 남아있던 여운이 서서히 올라오는 것 같은 영화, 만추.
그래...
가을은 모든 것이 익어 성숙한 계절이니까...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A Fish Called Wanda|1988

두고두고 기억나는 코미디의 고전-으하하!


내 기억 속 헐리웃의 황금기 80년대의 코미디.
어지간하면 실패하지 않을 영화를 만들어내던 꿈의 공장의 히트작 중 하나다.
지금 보면 은행강도질도 좀 어설픈 것 같고
마지막에 오토가 신발벗고 도망가지 않은 것도 이상하고
아치가 버벅대는 몇몇 장면도 의아하지만
사실 이렇게 여러 번 보고서도 또 생각날만한 재미있는 캐릭터 코미디다.

필요한 부분엔 과감하게 과장을 해서
폭소가 터지게 만들어주고
인간이 저러고 싶을까 라는 생각이 들만한 부분은 
탄탄한 캐릭터로 용감하게 뚫고 나가며 한방을 선사한다.

외국어만 들으면 인사불성 흥분상태인 완다,
불타는 질투심으로 애인의 꽃뱀행각을 가까스로 버텨내는 무식컴플렉스환자 오토,
무료한 삶에 사기로 다가온 여인과 알찬 로맨스를 꿈꾸는 순수중년 아치,
버림받는 격렬애인 조지,
살인계획은 냉정하게 세우면서 동물의 죽음에 무너지는 켄.
어떤 둘이 만나 건 조화로운 배우들의 앙상블이 일품이었다.
특히 내가 제일 좋아했던 커플은 오토와 켄^^
게이인 척 굴면서, 켄을 놀리고, 고문하는 오토는
참 치졸한 짓만 골라하는 찌질함의 진수를 보여준다.

케빈 클라인이라는 배우를 처음 알게 된 게 바로 이 영화.
'꽃미남'도 그다지 '호남형'도 아니었는데 
진지하면서도 웃긴 코믹연기를 하는 와중에 탄탄함이 배어나오는 
신묘한 연기력의 주인공이었다.
주인공인 아치는 그 이전에도 그 이후에도 본 적 없는데
크레딧에 각본으로 나와있다.
예전엔 헐리웃도 겸업 가능했었나 봐^^
근데 오토는 하고 많은 직업 중 왜 법무장관이 됐다는 거지? 것도 남아프리카에서.
암튼 뜬금없는 후일담 자막이 약간은 옥의 티.
저가 타이틀이라 그런지 달랑 영화만 들어있다.
하지만 국내구입가능하다는 게 어디인가~!

뜨거운 고문의 순간ㅋㅋ

소셜네트워크|Social Network|2010


성공하고 나면 너그러워지는 걸까?
아님 어차피 재판결과가 있어 상관없다고 생각했을까?
기분 나쁠 수도 있었는데
이후에 방송출연까지 했었다는 주커버그.
재능과 열정과 젊음의 성공신화이지만
어쩐지 그가 부럽지는 않다.

모든 사람이 꼭 친구가 있어야만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고
가진 것도 친구도 없는 사람도 엄연히 있으니
꼭 이 사람이 단 하나의 친구를 잃었다는 사실을 동정해서는 아니다.
게다가 단 하나 뿐이었다는 그 실제의 친구도
결국 증오까진 아니더라도 갈라서고 말았으니
얼굴은 모를지언정 이럴 때조차 그와 페이스북을 함께하는 온라인 친구들과
사연을 알고 등돌리는 오프라인 친구들을 놓고
무조건 누가 더 진실되다, 가치있는 관계다 단언할 수도 없는 노릇.
그처럼 자기 세계를 만들어낼만큼 자기세상을 꿈꾸는 사람에겐
그의 얼굴 앞에서 차가운 비난을 퍼부으며 음모론을 들먹거리는 관계보다는
가끔 홈페이지에 들러 짤막한 위로라도 한 마디 건네주는 온라인 친구가
더 큰 위안이 될지 모르는 일이다.

그가 만들어 낸 것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열광을 받는가는 명확하니
그 가치는 새삼 따질 필요가 없겠지만
그가 가지고 있다는 부가
그 가치를 활용하고 있는 사람들이 기꺼이 치른 대가가 아닌 것은 분명하기에
대체 그 돈은 무엇을 목적으로 지불된 건지 도통 모르겠다.
그가 느낄 수 있는 기쁨이란-내 사고의 한도로는,
창조주처럼 자신이 창조한 세상에서
행복해하는 인간들을 바라보는 흐뭇함 정도 밖에 생각해낼 수가 없고,
나라면 천국을 만들어 놓고 흡족해하면서 또 이걸 어떻게 바꿔 사랑받을까를 고민하느니,
그 공짜천국에서 그냥 신나게 놀기만 하는 게 더 신날 것 같은데.

입지전적인 성공담에 뒷얘기를 잘 버무린 소셜 네트워크.
흥미로운 소재지만
그걸 이렇게 흥미롭게 다룰 수 있다는 건 굉장한 능력이다.
보는 내내 흥미진진했다.
결국 그는 모든 재판에 다 졌지만
가벼운 마음으로 내줄만한 배상으로 끝났고
그에게는 여전히 페이스북이 있다.
모두에게 해피엔딩^^

친구와 연인사이|No Strings Attached|2011

연애와 섹스를 구분하는게 미국에서 새로운 소재라고 등장했다는 사실이 오히려 신선
-하나 이런 건 누가봐도 연애씬

포르노그라픽어페어에서 이미 몇 년 전 화제를 일으킨 소재였으니 
그닥 새로울 것은 없었던 이야기지만
애쉬튼 커쳐의 발랄버전은 또 다른 기대를 불러일으키기 충분. 
게다가 예전에 즐겨보던 아담한 코미디의 장인 이반 라이트만 감독~
이토록 쿨한 처자의 연애못하는 깊은 사연이 
21세기를 바라보는 이 시점에서도 아직 불안감이라는 것이 참으로 안타깝지만
두 남녀를 즐기는 것으로도 2시간은 즐겁게 흘러갔다.
톰의 일터에서 처음에 뮤직비디오인지 드라마인지를 찍던 감독으로 
이반 라이트만 특별출연^^
아직도 레옹의 마틸다가 강렬하지만 
그러는 동안에도 부쩍 자란 나탈리 포트만 덕에 블랙스완 기대만발 중.



애쉬튼 커쳐를 생각하면 떠오르는 첫번째 이미지.
아메리칸 파이류의 껄렁한 바보청년들 퍼레이드의 맨 앞자리용 배우.
하지만 이게 다 였다면 
애쉬튼 커쳐가 이렇게 로맨스에서 환영받는 배우가 되지는 못했을 것이다.



흥분하면 얼굴 전체가 새빨개지는 개성있는 표현력(^^)도 그렇지만
이 진지함이라고는 없어보이는 청년이 이렇게 깜찍한 이벤트를 벌일 때는 
어딘가 어설퍼서 더 진심이 느껴지고,
삐진 것 같은 얼굴로 떠난 상대를 원망할땐 그 상처가 더 깊어보인다.
소년의 첫사랑 같은 풋풋한 열정의 매력이랄까.
같이 사는 데미 무어는 어쩜 속 터질지 몰라도
영화관의 관객으로서는 보기에 충분히 즐거운.



또 하나의 반가움 케빈 클라인-대체 얼마만인지.
안 그래도 얼마전 염가세일 '완다라는 이름의 물고기'를 샀는데.
이렇게 시간이 많이 흘렀던가 싶다.
정신못차린 짜증나는 아빠-남의 아빠라 귀여웠다^^

연극|오이디푸스|국립극단

 
비극과 세익스피어소포클레스의 무게가 동시에 내려앉다 

신의 존재를 믿는 나로서는 
이런 잔인한 신의 묘사가 인간이 할 수 있는 저항의 최대치로 다가온다.
인간이 납득할 수 없는 이유로 간택된 불운종결자 오이디푸스.
이 비극이 더욱 처절한 것은 
그의 예고된 비극을 막기 위해
모든 인간들이 부단히 노력했기 때문이다.
그 노력에도 불구하고 
인간들은 그 불운의 굴레에서 조금도 벗어나지 못했으며
다만 그들의 노력으로 인해 
자신들의 죄 하나씩을 더했을 뿐이다.
게다가 신은
극복하려는 인간의 노력을 비웃듯
재앙으로 불운의 시작을 예고하고 
인간들로 하여금 자신들의 손으로 오랜 불운을 불러오게 만든다.

이런 비극이라면
조종하는 신이 더 나쁘다-는 결론을 내릴 수 밖에 없다.
세익스피어소포클레스는 어쩌자고 
이런 비극의 주인공을 탄생시킨 것일까.
노려하면 할수록 죄가 더해지는 운명.
게다가 앞으로 누가 나타난다 해도
이 이상이 힘들 엄청난 저주의 강도.

외면하고 싶은 비극은
세익스피어소포클레스와 비극의 무게를 단단히 짊어지고
국립극단의 무대에서 재현되었다.

기울어진 무대는 보는 내내 뭔가의 암시인듯 위태로움을 전하고
리듬으로만 이루어진 음악의 효과는 
라이브무대에서 공기처럼 섞여 비극의 간극을 이끌어준다. 
벽에 매달려 있던 시민들과 그 뒤로 보이는 재앙속 인간들의 모습,
마지막 오이디푸스가 눈을 잃는 장면과 그의 마지막의 암시는 
무대회전 한번 없이도 
훤히 드러난 한세트의 무대가 좁아보이지 않게
놀라운 효과를 보여주었다.
내가 안 보는 사이 연극은 이렇게 까지 근사해지고 있었다......

자막스크린 덕에 세익스피어소포클레스의 대사들을 읽게 되었는데
예전에 약간의 허영심으로 샀던 세익스피어의 희곡집에서는 느껴지지 않았던 감정들이
연극무대의 공기를 타고 그대로 전해지는 것 같았다.
남들이 명언처럼 인용을 해도 그다지 멋있게 들리지 조차 않았었는데.

그러나 감동의 끝은 역시 배우들이 장식했다.
커튼콜 때까지 감정을 추스르지 못하던 서이숙.
독특한 음성으로 등장부터 집중하게 만드는 배우였지만
이 비극의 시작과 끝을 지켜본 증인이자
사실 오이디푸스보다 더한 비극의 주인공인 요카스타의 절규가
그녀가 아니었다면 이렇게나 깊었을까.
남편에게서 남편을 낳고 자식에게 자식을 낳아준 그녀의 비극이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동침한 오이디푸스의 비극보다 더하게 느껴질 수 밖에 없었다.
커튼콜 때 그녀가 무대앞으로 나선 순간
그녀의 감정처럼 남아있던 내눈물도 툭.
커튼콜까지 울어보긴 처음이다....
이 배우를 보려고 오늘 짝패 재방송도 봤다는--;;

두번째는 박정자 마마님.
길지 않았지만 짧고 강렬한 한 방에 엄청난 포스를 풍겨주신다.
무대위와 무대밖이 완전히 다른 이 분.
언제나 이름값이 바래지 않는 연기로 그 이름을 유지하고 계신 이 분.
19그리고 90도 다시 보고 싶다.

오랜만의 정동환과 처음보는 이상직도 반갑다.
국립극단 창단공연이라는데 정말 기대가 된다.
어느새 라이브코미디쇼가 주류 같이 되버린 연극 레파토리에
신선함을 더해줄 것 같다.
이 힘찬 에너지의 배우들이 연기하는 고전을 볼 기회가 더 많아졌으면.

참. 국립극단 홈페이지에도 없는 부엉이 인간의 프로필.
대체 누구인지 너무 궁금하다.
부엉이 역할도 그렇게 잘하는데 인간역할은 더 잘 하겠지?
가장 인상깊었던 건
주인공들의 대사가 계속되던 순간에도 끊임없이
부엉이 묘사에 충실하던 성실함과 열정.
다음에 인간으로 나올때도 꼭 보러갈게요!

두번째의 오이디푸스:
지각을 했다. 좀 기다리고 쉬는 시간에 입장할 줄 알았는데, 쉬는 시간이 없댄다.
(지난 번엔 어땠는지 전혀 기억이 안났음)
그리고 중간입장은 예매좌석이 아니라 무조건 객석2층(실지론 3층), 안내받은 자리로만 가능.
들여보내주는 게 어디냐....
밖에서 TV로 보다가 조명이 어두워진 틈을 타서 뒷자리로 안내받았다.
명동극장의 장점을 하나 알았는데 윗층 뒷자리 조차도
참 잘보이더라는 것.

오이디푸스가 세익스피어 원작인 줄 알고 있었는데 아니었다--;;
처음 볼 땐 생각하지 못했는데
동반관객의 의문.
새인간은 연극배우인가?
그러고보니 무용수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면 그 분이 사람으로 나오는 연극은
볼 수 없을지도...
(기사에서 무용가 이경은이라는 이름을 찾다)

참, 영어자막은 명동극장 모든 연극에 나오는 것은 아니라고 했다.

외과의사 봉달희|2007

뒤늦게 하나 얻어걸린 사진

나와 비슷한 점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오지랖 달희 씨.
첫 회 이요원의 표정은 몇 번을 돌려봐도 감탄이다.
어쩌면 그렇게 장면 하나하나 무식하고 의욕만 가득한 착한 의사를 잘 표현했을까.
병원 내 끼리끼리 문화라든가
경력 없는 의사를 은근히 깔보는 간호사
좀 만 아프면 암이냐고 묻는 환자들까지
빠지는 얘기 없이 촘촘하게 시작하던 이야기는 교과서 감이다.
달달 외운다고 100점 받는다는 보장은 없지만^^
 
사람 사는 세상은 같기도 하고 다르기도 한데 그게 관계에 따라서 라는 것을
분명히 보여주던 의사들의 성장기, 외과의사 봉달희.
주인공은 넘버쓰리 봉달희였지만
안중근도, 이건욱도, 조문경도, 조아라도, 이민우도, 박재범도
마지막 회까지 쑥쑥 자라며 막을 내렸다.

사람의 체온처럼
다들 그 정도는 양심이 있고
그 정도는 정직하며
그 정도는 성실한 사람들이기에
다른 사람들의 괴로워하는 눈빛에서 자기가 겪었던 아픔을 보고
자기에게 위로가 되었던 똑같은 위로를 건넬 수도 있고
니가 아니라 내 탓이라고 당당히 말해줄 수도 있다
이런 위로는 계속 돌고 돌 것이다
아무도 안 믿는 발뺌을 하는 기가 막힌 뻔뻔함에 지친 사람들에게 잠시의 위로가 되는
그래서 믿고 싶은 사람들이다.

새로운 것을 알게 된다는 것이 아집이 두터워지는 게 아니라
남의 아픔을 통해 자기 아픔을 들여다보며 조금 더 상처를 덜도록 성장하는 것이라는 
보기 흐뭇한 의사들의 성장기.
 
조문경-이건욱, 봉달희-안중근, 박재범-조아라 커플의 세가지 로맨스도 이뻤다.
상황으로만 보면 남의 자식을 가지고 결혼한, 욕먹기 딱 좋은 상황의 조문경이지만
파양된 안중근의 절규로
키우던 자식을 내치는 것의 잔인함과 냉정함을 생각하게 하면서
묘하게 그녀의 당당함에 점점 더 설득됐었다
나중엔, 원흉은 나라 하더라도
상처받은 첫사랑을 되새김질 하게 만들고
실패한 결혼은 인정하며
이 모든 것을 법정에서 확인하게 만들고,
이 모든 힘든 상황을 혼자 겪게 만들어 미웠을 이건욱에게 애원하는
그 사랑이 깊어 보이기까지
내겐 이 커플이 가장 든든해 보였다.
오래 기억하고 싶은 좋은 사람을 짧게 만나 그보다는 길게 설레고 행복했다.’는 달희의 독백으로 연인도 합격인 듯하나, 역시 이건욱은 남편의 로망
전부터도 연기잘하는 배우라고 생각하긴 했었지만
여기서의 오윤아는 정말 조문경이었다
조문경을 보면 예쁜 여자들은 다 무식하다는 생각은
페미니스트를 가장한 골방족들의 음해라는 생각이^^

버럭중근이라는 애칭과 달리 난 여기서 웃는 이범수의 매력을 처음 알았다
어쩌면 그렇게 환하게 웃는 지
모든 사람이 찡그린 것 보다야 웃는 얼굴이 예쁘다지만
사실 정말 예쁘게 웃는 얼굴은 그렇게 많지 않다, 이범수처럼.
안중근의 매력은 나중에 인간적인 한계를 보이고 인정한 것을 포함해서
꽤나 고지식하다는 것
그런데 약은 척하지 않는 심지가 있어 돋보인다
남자친구라도 그렇다.
좋아해서 뭐든 좋게 봐주는 사람보다는
공들여 나를 보면서 내가 노력한 부분을 정확히 인정해주는 사람이 더 좋지 않을까
그래서
좀 거칠었지만 사망자컨퍼런스에서의 강렬한 한방은 더 멋있었다
강력한 절망에 빠진 달희에겐
너는 잘못한 게 없어, 니 잘못이 아니야류의 적당한 사실적 위안보다
적극적으로 몰아세우는 대체 니가 잘못한 게 뭐야?’가 더 약발이 있었을 것이다
성실한 달희는 변명 때문이 아니라
그 질문에 답하려고 정말 열심히 생각해 봤을 거니까.
정직하고 성실한 사람에 한해 큰 맘 먹고 하면 뿌리 깊은 위안이 될.
 
드라마를 보면서 자막 보여주는여배우라는 생각을 하게 만든 달희 엄마 김해숙.
달희가 울릉도로 내려가겠다고 결심하고 집을 나서다 응급환자를 보게 되는 장면이 있는데
그때 이 엄마의 표정은 단계 별로 선명하게
징글징글한 년->어머나, 세상에.->이게 내 딸 맞나로 변한다
나중에 이 부분은 대사로 등장하는데
김해숙의 표정이 이 대사를 문장하나하나 다 얼굴로 보여주고 있었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이럴 때 레알 소름?
 
오늘 보니까 니 뼛속까지 의사대
그래 다 죽어가더만 환자 보더니 한 걸음에 달려가고...
난 징그러버 쳐다도 못 보겠더만, 그 피 콸콸 나는 살 속으로 손을 쓰윽 집어넣고
숨넘어가는 환자한테 그 큰 바늘을 눈 하나 꿈쩍 안 하고 찔러가 살려내고...
내 그거 보고 그랬다.
저게 언제 커가 저래 의사가 됐나....
하도 못 먹고 몸이 약해가 다섯 살 까지나 살리나, 열 살 까지 살리나 하면서
큰 병원에도 한 번 못 데려 갔더마는
저게 진짜로 약하디 약한 내 딸 맞나, 저게 언제 커가 저래 의사가 됐나
마 내, 솔직히 아까는 마 어깨가 절래 펴지고 가슴이 쓱 디밀어졌다
내 딸입니다-소리도 치고 싶고
니가 잘 못한 사람 꼭 두 배 만큼만 살리라.”

나중에 달희가 다시 병원 가겠다고 할 때 엄마얼굴로
자기도 의심하는 위안을 딸에게 건낼 때는 좀 부럽기도 했다
우리 엄마는 내가 뒤척이면 일단 짜증을 낼 것이고
의사 같은 직업을 그만둔다고 하면 말 같지도 않은 소리한다고 할 텐데^^
늘 눈빛만으로도 광선을 쏘시던 박근형이
이렇게 얄팍하게 오르락내리락하는 인물을 적나라하게 보여준 것도 무척 새로웠고.
 
일본극을 볼 땐 드라마든 영화든 감독의 자리가 비슷하게 보이는데
유독 우리나라는 영화와 드라마의 차이가 크게 느껴졌었다
튀는 각도, 빙빙 도는 카메라, 짧게 끊어가는 컷, 아주 예쁜 풍경이 아니면
연출의 존재감이 거의 느껴지지 않았으니까.
그런데 외과의사 봉달희는 그런 기술 없이도
처음으로 연출의 존재감이 느껴지던 드라마였다
말 한마디 없이 전해지는 마음의 물결 같은
사람을 담는 시선이 느껴졌다고나 할까.
은근하게 꾸며가는 사이, 조문경이 지켜보던 봉달희와 동건이의 병실풍경처럼
노골적으로 백 마디 대사를 넘는 경제적인(^^) 장면도 있었고
승민이 출생의 비밀이 밝혀지던 화장실 장면처럼
다시 봐도 넘 웃긴 장면들도 있었다
사인의 새 연출자가 되었다는데
중간부터지만 그때의 힘을 다시 보여주면 좋겠다
영 애정 없어 보이던 PPL은 좀 살살 해주시고^^
 
모든 인물들이 설득력 있고 존재감 있어 보고 또 봐도 질리지 않는 드라마
의학 드라마를 처음부터 끝까지 본 건
일본드라마 블랙잭에게 안부를과 봉달희 뿐인데
그렇다고 의학드라마를 좋아하게 된 것 같진 않지만
직업을 다루는 드라마의 매력을 조금 알게 해 주는 것 같다
하고 싶은 일이 뭔지 알고 그것을 위해 정말 열심히 노력하는 성실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뭘 좋아하는 지, 내가 잘 할 수 있는 지를 빨리 찾지 못한 사람들에겐
운명적 사랑만큼이나 판타지스럽기도 하니까.
 
이렇게 완벽할 뻔한 드라마였지만 볼 때마다 거슬리는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놀랍게도 봉달희 이요원.
가끔 봉달희는
설정 상 자기보다 덜 안타까와하고 덜 마음 아파할 사람들조차
피곤에 지친 기색이 역력할 때
혼자 발그레한 뺨에 인형속눈썹, 윤기 나는 입술
촌스러운 설정에 맞췄으되 완벽하게 세팅한 머리로 나타난다
정말 몰입을 적극적으로 방해한다
잠 안자면 일주일 가는 강력마스카라인거니
혹시, 믿을 수 없지만 외모 컴플렉스가 있나?
아마도 이런 태도의 문제가
이렇게 대단할 수 있는 연기력에 비해
이요원이 덜 인정받는 이유가 아닐까 생각한다
푸석하게 부은 맨 얼굴의 여배우가 얼마나 근사해 보이는지 모르는 그대는 아직
애송이.
 
두 번째 방해꾼은 협찬이었던 OO스퀘어.
무슨 팩도 거슬리긴 마찬가지였지만
정말, 이렇게 흐름을 끊을 바에야
김은숙 작가처럼 대사 없이 화끈하게 한 번 보여주고 끝나는 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그 회사들이 참 없어 보이더라는.
 
심장병희망드라마 외과의사 봉달희.
왜냐면 달희는 달리고, 달리고, 달리니까!
시즌2가 아니더라도 이런 드라마 일 년에 한편은 봤으면 좋겠다.

PS. 그나저나 방송사들은 그 사진들 갖다가 사람들이 뭘 한다고 그렇게 다 막아놨는지 모르겠네. 맘 먹고 팔아먹을 사람들이라면 설마 그 정도로 포기할까? 니들이 정 그렇게 싫다면 안 써주마, 사진.... 




놀러와 세시봉 콘서트



오랫만에 송창식의 노래를 다시 들었다.
여전한 목청.
무슨 노래를 부르든 슬며시 미소를 머금고 있는 그의 얼굴은
흥겨운 노래엔 흥을 더하고
슬픈 노래일땐 차마 드러내지 않기로 한 깊은 슬픔을 숨기고 있는 것만 같아서
노래를 더 깊게 울린다.
피아졸라의 망각을 들을 때 처음 느꼈던 심금을 울린다는 표현이
송창식의 노래에서도 느껴진다.
노래하는 그의 소리가 심장까지 큰 줄기로 이어져
그 현을 스스로 힘껏 연주해 주는 느낌.
그는 노래를 참 좋아하고 잘하고 즐기고 있는 것 같다.

나란히 앉은 친구들의 모습은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충분한 감동이 전해졌다.
지나고 바라보는 추억이 뭐 겪을때보다 아름답게 기억되는 것이긴 하다지만
이 친구들은 마치 우정의 장인이기라도 한듯
과거와 현재를 소탈하고 따뜻하게 엮을 줄 아는 예술가들 같았다.
음악이 좋아 음악만 생각하며
아마도 선택이 강요된 상황이라면
다른 모든 것을 포기하고 음악을 했을 사람들인데
그런 길을 가다가 뜻이 같은 벗을 만나
오랜 시간 후에도 세월이 녹아있는 기쁨과 슬픔과 추억과 남은 정을
이렇게 어울려 음악으로 나눌 수 있는 그들이
참 멋있고 부럽고 그랬다.

모두가 토를 달지 않는 재능넘치는 조영남의 노래가
한번도 감동적이지 않았던 이유는
그가 음악보다 자신의 재능을 더 사랑하며
자신의 재능을 당연한 사랑에 대한 과시형 구애로 썼기 때문이 아닐까
잠깐 생각했다.

사실 트윈폴리오(오리지날 이름은 튄폴리오라는^^)의 팝송을 그렇게 좋아하지 않지만,
가스펠과 무한 서정가사들로 넘치는 맥빠지는 낭만곡들일 지언정
그들이 즐겁게 불렀기에 흥겨웠고,
나도 기억하고 있는 그들의 노래는 정말 멋졌다.
'애인'이란 곡 좋아하는데 그게 이장희가 만든 노래인진 어제 처음 알았다.
음색도 그렇지만 참 개성있는 음악가였네, 이장희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