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클 샌델|정의 특강

작년에 책소문을 듣고 찾아보다가 우연히 발견했던 마이클 샌델의 특강 사이트.
인문학 강의가 설레임을 준다는 거 처음 깨닫는 소중한 충격의 순간이었지만
5회쯤 가면서 개념어들 때문에 머리에 쥐가 나기 시작,
결국 일주일간의 버닝으로 끝났었다.

그러던 그 특강이 EBS의 전파를 탔다.
몇번 놓치긴 했지만 즐거웠던 시청시간.
눈을 반짝반짝하면서 열심히 의견을 밝히는 학생들과
대답을 정리하고 논지로 이끄는 교수의 바람직한 모습을 잘 보여주기도 했다.
사실 내가 묻고 싶었던 '삶에서 왜 정의를 생각해야 하는가'하는 질문에
마이클 샌델은 아무 근거도 들어주지 않고 당연히 '그렇다'고 답해버렸기 때문에
여전히 궁금하지만. 답은 제가 찾아봅지요^^

처음엔 각각의 상황에 대한 현실적인 접근이 신선했고
이따금 등장하는 머리밝고 눈밝은 친구들의 소신있는 발언도 볼만했다.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첫 특강부터 왠지 마이클샌델이 유태인일 것 같은 감이 왔는데
정말, 똑똑한 미국인들은 예외가 없는 것 같다.
다행인 건 이들의 명석함은 인류의 기준을 꿰뚫고 있기에
그 안에 촘스키도 있고, 마이클 샌델도 있다는 사실.
촘스키에 비하면 마이클 샌델은 제도권에서도 불편해 하지 않을 만한 온화함이 있다.
은근 지나치게 엄격한 것 같기도 하지만.

무려 17년간 계속됐다는 그의 정치철학강좌가
아마도 커트 보네거트의 책에 등장했던
재벌하버드신입생들로 하여금 한번쯤 재산기부를 시도하게 만드는
바로 그 수업인 것만 같다.

하지만 방송을 본 뒤 나에게 가장 인상깊게 남는 부분은 정의에 대한 정의(^^)보다는
'토론'이라는 것의 모델을 만나게 되었다는 점이다.
내가 본 토론이라는 것은
상대의 주장을 반박함으로써 자신의 주장을 펼지는 것이었다.
이건 하나가 옳으면 하나가 반드시 틀리다는 흑백논리에 기반하고 있기에,
매우 공격적일 수 밖에 없고
불행이도 기술없는 토론자들은 개싸움을 하다 들어갔었다.

하지만 Justice 특강은 달랐다.
학생들은 다른 사람의 논리를 반박하기보다는 자신의 주장에 더 무게 중심을 두었다.
대답을 잘 이끌어낼 수 있는 질문을 던지고
대답을 주제와 연결되도록 정리하는 것이 마이클 샌델의 역할이었고.
각자의 주장에 항상 어떤 논리적인 근거가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끔은 그냥 자기는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이 근거의 전부였지만,
누구도 말이 안된다, 논리적이지 않다고 지적하지 않았다.
그저, 전 토론자의 발표에 이어 자신의 이견을 충분히 설명하려 노력했을 뿐이다.
각자가 자신의 주장에 공을 들이며 얘기하고
듣는 사람은 더 마음에 끌리는 주장에 설득되거나
아니면 공감하는 내용에 더 강한 근거와 믿음을 가지게 되면서
그저 듣는 것 만으로 적극적으로 토론에 참여하게 되는 것이다.

이 프로그램을 보기 전까지는 바람직한 토론문화라는 것이 감이 오지 않았다.
토론의 목적은 이기고 지는 싸움이 아니라
좋은 결과를 끌어내기 위한 과정이라는 공감할만한 의견은 들었지만
어디서도 그런 토론을 본 적이 없기에.
정의의 붐을 일으켰다는 것 말고도 내겐 그런 토론의 장을 구경시켜줬다는 점에서
인상깊은 시간이었다. 두고두고 구경해볼만한.
아, 하나 더. 존 롤스(John Rawls)라는 흥미로운 철학자의 소개도.

http://www.justiceharvard.org/

다우트|Doubt|



요즘 DVD 빌려보는 재미 중의 하나가 특별영상과 코멘터리다.
대여용에도 빠지지 않는 특별추가분들.
여기서는  역시 메릴마마의 놀라운 연기력에 대한 칭송이 대부분이다.
하지만 내가 즐거웠던 건 대배우다웠던 그녀의 밝은 눈이다.
질문자가 이런 질문을 했다.
"의상이나 설정이 인물의 개성을 드러내는 중요한 도구인데 수녀복이라는 제한 때문에 불가능하지 않았나요?
메릴마마의 대답은 이랬다.
"처음에 수녀복 착용 때문에 수녀들과 이야기를 하는데 알고보니 같은 방식으로 수녀복을 입는 사람은 하나도 없었어요. 모자챙을 조인다든다 묵주를 더 늘어뜨린다던가. 재미있는 건 전부 다 자기 방식이 맞는거라고 했어요."

여기서의 의심은 물론 사실로 드러난 것이 진실인지에 대한 것이다.
사실을 진실로 받아들이는데에 주관은 강하게 개입하며
그 주관을 판단하는데에는 협의된 기준이 또 필요하다.
무엇이 옳은 것인지를 판단하기는 너무나 어려웠다.
그리고 그들은 모두 상처입은 사람들 같았고.
나는 선의와 악의가 섞인 호의를 베풀었고
상대는 그것을 전적으로 선의로 받아들이며 애정을 보인다.
이 관계를 바람직하지 않게 생각하는 누군가가
내 약점(어쩌면 오해를 풀지 못한 실수)을 부당하게 이용해서 나를 협박한다.
나는 아무 것도 잃지 않지만 떠나야 하고
내 호의의 상대는 절망에 빠지며
나를 협박한 사람은 자신의 부당한 수단에 후회하며 혼란에 빠진다.

늘 괴로움은 양심의 크기에 비례하지만
자신의 인생에 대한 성실함도 그에 비례한다고 믿고 싶은 1인.  

멋진 신세계|올더스 헉슬리

하지만 저 친구에게 조금이나마 지각이 있다면 그에게 내리는 벌은 실상 보상이라는 것을 깨달을텐데. 그는 어떤 섬으로 전출될 것이다. 다시 말해서 이 세상에서 발견할 수 있는 것 중에 가장 재미있는 남녀들을 만날 수 있는 장소로 가게 되는 거야. 어떤 이유로 지나치게 자의식이 강해서 공동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인간들이 있는 곳이야. 정통에 만족하지 않고 나름대로 독특한 사상을 가진 인간들이지. 한마디로 말해서 지나치게 인간다운 인간들이야.
...행복이란 아주 귀찮은 주인이야-타인의 행복은 더욱 그렇더군. 사람이 행복을 아무 말없이 받아들이도록 훈련되지 않은 경우에는 진리보다도 더 섬기기 어려운 주인이야.
...일찌기 포드님 시대에는..과학이 무한히 발달되도록 허용해도 된다고 상상했던 모양이야. 지식은 지고의 선이었고 진리는 최고의 가치였지. 그 밖의 것은 모두 이차적이고 부수적인 것이었어. 물론 당시에도 사상은 변하고 있었어. 포드 님 자신도 진리와 미로부터 쾌적과 행복으로 중요성을 이전시키는 데 지대한 공헌을 하셨던 것이야. 대량생산이라는 것이 그러한 변화를 요구했던 것이지. 보편적 행복이 바퀴를 계속 회전시키는 것이니까. 진리와 미는 그럴 힘이 없어. 물론 대중이 정권을 잡을 때마다 중요시되는 것은 진리와 미보다는 행복이었어...그러니까 9년 전쟁까지도 그랬단 말일세. 그 전쟁이 인간의 성향과 추세를 바꿔놓고 말았던 것이지. 저 폭탄이 바로 주변에서 윙윙거리며 투하되는 마당에 진리나 미나 지식이 무슨 소용이 있었겠나?
..그 이후부터 우리는 계속 과학을 통제하고 있는 형편이지. 물론 진리를 위해서는 바람직한 것이 아니었지. 그러나 행복에게는 매우 유리한 것이었어. 인간에겐 무상으로 얻을 수 있는 것이라곤 하나도 없는 걸세. 행복도 대가를 치러야 하는 거야.

기계와 의약품과 행복을 선택한 사회의 초상.
헨지 조지 식의 경제와 크로포트킨식 협동주의 사회가 이상적으로 펼쳐지고 있으며 확실히 누군가에게는 이상이기도 하다. 다만 그 결정은 경험이 많고 절대선이라 자칭하는 소수에 의해 결정되고 유지될 뿐이다.
욕망을 먼저 실현한 사람이라는 이유로 나의 욕망도 이뤄줄거라 믿으며 그 '성공'한 자의 인생의 품질에는 무조건 관대한 사람들에겐 어쩌면 싱가포르 같은 나라가 이상일 지 모른다.
다행이 싱가포르의 독재자들은 박정희나 전두환 처럼 친일이나 학살을 하지도 않았고, 김정일이나 이건희처럼 자식에게 권력을 세습하지 않는다. 그렇게 경제적인 안정을 이루려 규격인간을 만들어온 결과 최근 이 애국민주독재자들의 고민은 싱가포르국민들의 창의성 부족이라고 한다. 그래서 돈을 들여 창의성센터-정확한 이름은 기억안남--;;-를 지었는데 여기 들어갈만한 국내 인재가 없어 결국 유학하고 있는 재외싱가포르 인재들을 초빙, 하지만 이 창의적인 인재들은 또 창의성이 떨어지는 국내인들과는 일할 수가 없다고 해서 결국 센터가 다 재외인재들로 채워졌다는 다큐멘터리를 본 적이 있다.
뭔가를 선택하는 것이 뭔가를 포기하는 것이라는 말에 오래 사로잡혀 늘 선택할 때는 치열해진다. 하지만 그 포기가 완전한 거부가 아니라  그저 순서 정하기라면 좀 천천히 갈수도 있지 않을까. 수명도 늘어난다는데 말이야.
   
해야하는 일을 시키기 위해 만족을 세뇌시키는 신세계.
참 치밀해서 끔찍한 발상이지만 오히려 그 오랜 세뇌가 있어야만 인간의 영혼이 잠식된다는 것이 한편 희망적이기도 했다.
발아를 통해 대량 생산된 인간들의 사회에서 살인이란 아무것도 아니며, 그렇기 때문에 체재 위협이 오히려 사회자체를 위협하는 큰 어둠이라는 발상도 그렇다. 그곳은 소수가 완벽하게 외면될 수 있는 사회이다-기본적으로 생명조차도 귀하게 여길 근거가 전혀 없기에. 하나의 생명이 별거 아니라면서 체제붕괴를 두려워 하려면, 여럿의 생명을 더 중요하게 여기는 공리주의자이거나 그것이 권력의 피해이기에 반대하는 계급주의자여야 한다. 둘 다 아니므로 나는 패스.
'오히려 여가를 줄수록 불안해한다'는 대목이 걸렸다. 여가란 욕망이 흘러가는 자연스런 방향인데 사실 그로 인해 많은 문제가 생겨난 게 아닐까-싶어서. 이것을 보완할 수 있는 현실적인 방법이 나타나 줄까?

마이너리티 리포트 같은 영화가 많은 부분 빚지고 있을 것 같은 상당히 충격적인 설정들.
나중에 올더스 헉슬리는 결론을 바꿔 박제가 된 인간의 고립이 아니라 새로운 이상사회를 건설하는 것으로 다시 책을 쓰려고 했다고 한다. 음...그의 노년은 매우 평화로웠나 보다.

검찰관|니꼴라이 고골|조주관|민음사

블랙코미디의 고전 검찰관.
당시에는 얼마나 신선하고 재미있었을지 조금 상상이 간다.
흥행코드 같이도 느껴질만큼 흔해진 블랙코미디지만
잘 짜여진 극을 가끔 만날때 느끼는 즐거움을 생각해본다면.

민음사의 믿음 가는 세계문학전집시리즈의 하나.

굿바이 스바루|덕 파인|김선형|사계절

태양열전지판 제작에 사용된 에너지를 상쇄하는 데는 이후 삼사년 걸린다.
평균적인 미국인은 매년 식량선택만으로 대기에 4톤의 이산화탄소를 더 방출한다.
극도의 무더위는 오히려 태양열 전지판이 작동하는데 그리 효율적이지 못하다. 온도가 섭씨 1도 올라갈때마다 생산량이 0.5%씩 줄어든다.
태양열비행기가 2007년 뉴멕시코 상공을 지나 54시간 연속 비행에 성공했다.
상하이에서 수입한 상품은 로스엔젤레스에 수퍼마켓에 도달할 때까지 1만킬로미터를 여행했다.
독일 사람들은 20년간 합법적으로 식용유 연료로 자동차를 운전하고 있다. (미국과 네델란드는 불법)
가정용수는 미국의 물 사용량 중 1퍼센트밖에 되지 못한다. 관개용수가 39%를 차지한다. 전세계적으로 11억의 사람들이 맑은 물을 공급받지 못한다.
방울뱀의 방울소리는 18미터 거리까지 들린다. 방울뱀들은 귀머거리다.
버지니아의 농부들은 가금류의 배설물을 바이오연료로 시험 사용하고 있다.
해마다 16만 평방킬로미터의 땅에 식물이 사라지고 있다.
농지를 늘리지 않고도 유기농법으로 지금보다 훨씬 많은 세계인구를 먹여살릴 수 있다.
최초의 태양열전지는 1954년 벨연구소에서 개발되었다. 이는 아직도 발전을 하고 있다. 태양열 전지판은 일반적으로 30년 품질보증이 기본이다.
1킬로그램의 옥수수는 콜라1만캔 분량의 당분을 제공할 수 있다. 하지만 인테는 고과당 옥수수 시럽을 처리하는데 곤란을 겪는다. 많은 영양학자들이 이게 비만의 주원인이라고 본다. 사탕수수설탕은 옥수수 시럽보다 훨씬 비싸다.
응고된 염소젖은 집을 페인트칠할 때 초벌용으로 훌륭하다.
에퀴테르는 우리 지갑이야말로 최고의 행동가라는 믿음을 근거로 설립된 단체다.
http://www.equiterre.org


너무너무 웃기다고 해서 샀는데 그렇게 웃기지는 않았다.
도시생활을 하다고 시골로 가서 겪는 어이없는 에피소드들은 이미 익숙하다고나 할까.
이런 얘기들은 항상 남이 겪은 엄청 특이한 경험보다도 내가 겪은 자잘한 일들의 신선함이 더 웃기다.  게다가, 아무래도, 난 뉴욕식 유머를 즐기는 스타일은 아님...

이 책을 읽고 나서 한 가지 변화는 가까운 지역 식품을 사려고 노력한다는 점이다.
생협이 대체 뭐가 다른 지도 알게 되었고.
생협에 대한 유일한 거부감이라면
공동체의식인데 지금도 고민중이다.
조합원등록을 하는 것에 대해서.
그것만 아니라면 얼마든지 생협을 즐겁게 이용할텐데.
폐식용류 연료로 솔깃하게 만든다.
나중에 차를 산다면 참 괜찮을 것 같은 아이디어이긴 한데
매일매일 이 식당 저 식당 구걸을 하러 돌아다녀야 한다는 것이
성격상의 장벽. 그리고...아직 나는 면허도 없으니까 우하하....!

언젠가는 이렇게 살리라 생각했던 삶을 이미 살고 있는 덕 파인씨.
소로우 처럼 몇 년 살다가 다시 뉴욕으로 나와살진 모르겠지만
암튼 덕분에 여러가지 간단 지식을 주워듣게 되었다.
막연한 귀향의 꿈으로 떠나기 전
한번 읽어봄직할 듯.

꼬마 꾸뻬, 인생을 배우다|프랑수아 를로르|강미란|열림원

꼬마 니꼴라나 마르슐랭 까이유를 기대했다가 콰광~!
재미도 감동도 없다.
다만, 뉴스나 다큐멘터리에서는 볼 수 없는
인종차별과 빈부의 격차, 프랑스중산층의 생활상(^^)을 조금 볼 수 있다는 정도.
굳이 이 두꺼운(편집때문이지 결코 내용이 빡빡하지는 않지만) 책을
그것도  굳이 사서 읽을 것 까지는 없었다.
읽다보면 이런 책도 걸리는 거지, 뭐.
자, 기증목록 1호.

TOEIC S/W 99th

내가 이 나이에
이번 겨울 들어 가장 춥다는 날,
돌아온 독감과 함께 전신을 둘둘말고 토익시험을 보러 가게 될 줄이야.
참 알 수 없는 게 인생이라더니...

어릴 땐 아프면 학교도 안 갔었는데(별로 안 아파서 자주 누리던 혜택은 아니지만^^)
나이가 들면 아파도 출근을 하고, 일도 하고,
쉬는 날 이렇게 시험까지 보러 갈 수가 있다.
일어나자 마자 기침으로 시작해서 이틀동안 크리넥스 두통을 다쓰게 만든
참 번잡스런 감기인데
신기하게도 시험보는 동안엔 콧물도 기침도 멈추더라는 것.
놀랍게도 기침과 콧물은 시험종료와 함께 다시 시작되었다^^
방해가 되지 않아 얼마나 다행인지.

전에 본 L/R때는 듣기지문이 좀 웃기다는 것과
(어떨 땐 개그콘서트의 한국어듣기시험과 별 다를 바 없다ㅋ)
머리를 쾅쾅 울리던 무한반복의 쓸데 없는 안내방송의 충격이 새로운 경험이었다면
S/W시험은 수 십 명이 헤드폰을 쓰고 동시에 마구 떠들어대던
(이걸 밖에서 보면 또 얼마나 웃길지...)
장날 분위기가 새로운 발견이었다.
시험연습이고 뭐고 일단 저 산만한 분위기를 잘 극복하는 게 제일 큰 걸림돌일 듯.
그렇게 이 절정의 감기투병 중에 무사히 전형료를 날리지 않는데는 성공했지만
점수는 얼마나 나와주실지...?
마침 시험장소였던 이화여고앞에 소문 난 추어탕집이 있다고 해서
밥이나 먹고 오려고 했는데 일요일은 휴일이다.
한그릇 먹으면 감기가 똑 떨어질 것 같았는데...

어떻게 보면 아프다는 것도 살아있다는 증거인 셈이다.
거슬리는 것이 몸에 들어 왔다고 몸부림들을 치는 거니까.
그저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이왕 내쫓아야할 것들이라면
초장에 들어오지 못하게
몸단속을 잘 하는 것이겠지.
어젠 찬바람이 싫어서 병원도 안 갔는데
얼추 한고비는 넘긴 것 같다.
병원 안가고 감기 나으면
훈련하나 성공한 것 같아 기분이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