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하하夏夏夏|2010

이 참...홍상수 특유의 적당한 헬렐레 씬?

웃음소리 하하하인 줄 알았다.
보는 내내 풋, 큭, 낄낄, 하하..가 반복되었기에.
예전엔 그 웃긴 애정행각의 한복판에서 정색하는 남녀들로 웃음을 주더니
이젠 아예 시간을 지나
아름다운 추억으로 정리까지 해준다.
그렇게 되었을지라도
없어 허전한 것보다는 있어 행복했다-에 공감하게 만드는.

진짜 가이드같았던 문소리.
어쩌면 어중간한 사투리까지도.
좀 더 많이 등장한 유준상도 좋았고,
윤여정도 참 그녀다웠다.

하지만, 백미는 김강우^^
늘 안정감 있으면서 에너지의 기운도 슬쩍.
멋있었다.

연극|커튼콜의 유령|2010


배우들의 매력이 물씬 풍기던 오랜만의 연극.
제목에서 나오듯 커튼콜이 꽤 중요해서 
관객과의 호흡에 따라 더 폭발적인 분위기가 될 수도 있었는데, 
역시 원정공연에서의 한계가 좀 있긴한 듯.
갑자기 이승만의 멘트가 흘러나와 시대가 헷갈리던데.
뭘까, 그 전날 훌훌털고 떠난 유령들의 승천(^^)은.

쾌락|Le Plaisir|House Of Pleasure|1952

가면|Mask

가면을 쓰고 무도장을 찾아다니며 죽도록 춤추는 노인은
자신의 몸과 친해지지 못한 아름다운 사람들의 노년을 보여주는 것 같았다.
늘 사람들의 시선을 받는 미모의 주인공이 스스로의 노화를 인정하지 못해 생길 법한.
아내는 인정하고 남편은 가면속에서나마 즐겁다.
아무도 불행하지 않은데
불행해보인다.
특히 즐거운 파티가 끝난 뒤 잠나라 딴 세상을 헤매는 무방비상태의 남편의 얼굴은
너무나도 추해보였다.
지금은 얼굴 뿐이지만 언젠가는 근육도 신체도 수술이 될 지 모른다.
그 속에서 평생노동이 새겨진 몸의 품위란 사라지겠지.
이래서 철학자들은 끊임없이 미를 추구하는 것일까.



텔리에 부인의 집|Mme Tellier

사교와 연애와 섹스와 친교, 싸움까지 없는 게 없이 다 일어나는 텔리에 부인의 집.
조카성년식에 초대받은 텔리에 부인은 데리고 있는 `아가씨`들을 데리고 집을 비운다.
문닫은 것에 당황하고 분개하며 바보같은 싸움으로까지 이어지는데
감독의 일갈은 웃기면서 통쾌하다.
저렇게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라거나, 너무 심심해서 싸우게 됐다거나.
못마땅한 사람들의 눈에는 절대 감춰지지 않는 `천한 것들`의 모양새였지만
성스러운 의식에서 흘린 눈물로 사람들을 전염시키기도 하고
다시 돌아온 일터에서 다시 활기를 보여주는 그들의 모습이
여과지 같아 보였다.
하지만 여전히 강단있어 보이는 씩씩한 처자들.

모델|Le Modéle

3개월 짜리 짧은 유효기간의 정열적인 사랑에 빠졌던 화가는
미친듯한 열정에 몸부림치던 모델의 결단으로, 그녀와 결혼-
조건으로는 완벽하게도 미인아내, 돈과 명성을 한꺼번에 거머쥔 화가.
그래서 행복하냐는 질문에
행복이 늘 즐거운 건 아니라는 답이 기억에 남는다.

로나의 침묵|The Silence of Lorna|2008

시작일 것 같았지만 끝이 나버린......

참 평화롭고 팍팍한 삶의 한 복판을 살아가는 그녀이기에 뭐라 할 말이 없었다.
하지만, 변함없게도 표현없이 스스로의 삶을 향해 걸어 들어가는 찬찬한 모습이 늦가을 같은 온도로
싸아하게 남았다.
몸의 가난이 불러온 마음의 가난속에서 엇갈린, 안타까운 사랑의 짝대기가 불러온 비극.
그녀가 처음 벨기에에 왔을 때 그랬든 폐허같은 집에서 다시 잘 시작할 수 있길.
수다도 없고 선동하는 음악도 없는 영화들을 볼 때 느끼는 적막감이
가끔 머릿속에 쉼표를 찍어주고 간다.
쓸쓸한 생각의 시간.

더콘서트|The Concert|2009

음악영화라기에 소리 때문에 보러갔고
차이코프스키 바이올린 협주곡 좋았고
바이올리니스트 여배우 이쁘다.

좌충우돌 꼴찌들의 반란-얼마나 지겨울 수 있는지 확실히 보여주고,
설마 웃기라고 만든 것인지 미심쩍은 코미디 구조.
러시아에는 길바닥 한바닥 돌면
연습 한 번 없이 큰 무대에 올라도
폭풍의 감동을 일으키는 숨은 실력자가 쌔고쌨다는
민족차별주의적 영화.

음악만을 두고 보자면
오이스트라후의 실황공연 한 번 듣는 것이
좋은 대안.
얘기하다보니 이상하게 애 화가 나지?

이층의 악당|2010


영화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은 베스트 포스터
데뷔시절의 강혜정을 닮아서 반가운 매력소녀도 함께

달콤살벌한 연인때도 그랬지만
다채로운 범법자의 내면이 펼쳐지는 것 같다.
도덕이 우위에 서고 법이 그 발치로 물러나는 느낌이랄까.
사실 마구 죽여대던(본인은 다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지만) 살벌한 그녀에 비하자면
뭐 이 정도는 애교이긴 한데
암튼 만나기 힘들어도 있으면 참 좋겠는
다양한 천생연분 탐구생활이랄까.
첫 영화의 파격이 워낙 발칙했고
박용우의 그 초단위로 들락거리는 감정연기가 강렬했던 터라
그때 만큼의 신선함은 아니었지만
즐거운 두 시간이었다.
오랫만에 한석규와 김혜수를 보고 웃을 수 있었으니
그 기쁨이 제일 클지도^^
근데 이상하지.
독특한 천생연분-웃긴데
어딘가 쓸쓸함이 전해져오는 것도 같다.
김혜수의 파워인가...
영화와 달리 한석규 스틸만 보면 절대 코미디 같지 않은데
유일하게 스틸조차 정복한 명장면-엄마손파이 봉지가 마약에 등극하신듯^^
발랄한 리듬을 이끌고 간 김혜수-타짜 이후의 김혜수는 김혜수2
코미디 와중에 한번 돌아보게 되는 순간.
내가 죽을 것 처럼 힘들어서 손을 내민 단 한 사람이
같은 순간에 똑같이 죽도록 힘들 수도 있다는
대단한 배려의 씨앗......

실크로드를 타고 스페인 가는 법


훌쩍 떠난다는 것은 이제 일상의 반대말이다. 가끔은 꿈이라는 뜻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일단 발걸음을 옮길 때는 되도록 제자리에서 멀리, 사람의 기척으로부터도 멀리 나서고 싶어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 네 사람의 여행일기가 묶인 네 권의 책이 있다. <서역의 달은 서쪽으로 흘러간다/김영현>, <모독/박완서>, <사막의 태양/최수철>, <들끓는 사랑/김혜순>.
 어느 제목 하나도 기행문 같지는 않은 이 책들은, 문단에서 주목받는 네 명의 작가가 디뎠던 먼 나라에 대한 얘기들이다.

세상의 일부임을 사랑하게 되다

‘모든 일에 시시하고 심드렁해져 있’던 40대 초반의 김영현은 마지막 남아있던 꿈, ‘막막한 사막'을 찾아 실크로드 여행 길에 오른다.  
처음 중국은 그에게 익숙했던 자본주의의 유년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유적지를 돌아보며, 또 사람들을 만나며 그가 적는 짧은 독백들은 하루하루 마음을 열어 여행지를 느끼게 된 부지런한 여행자로서의 그를 보여준다. 무조건적인 기대도 없고, 사소한 비교도 없이 호흡을 고르게 된 그는, 다른 땅에 사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나름의 사는 법을 자신의 잣대로 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새긴다. ‘그것이야말로 식민지시대 때 남의 민족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미개시했던 침략자들의 잘못된 사고방식과 같은 것'이라는 깨달음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큼직큼직한 그 이국이 그에게 남긴 마지막 감상은 ‘별들'이다. 텐산 산맥의 천지에서 올려다 본 그 ‘우주의 바다'에서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아닌 일부임을 깨달으며, 생에 대한 사랑을 준비하는 소설가가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이 '모독'

이미 네팔을 두 번 다녀온 적이 있는 박완서는 <모독>에서 특유의 문체로 처음가본 티벳과 네팔의 정취를 담담히 또 세세히 쓴다.
생김새가 ‘우리보다 더 우리나라사람 같이 생긴' 티벳 사람들의 나라 티벳은, 종교 색이 그대로 녹아 있는 자연과 사람들을 통해 세상의 시작과 끝을 평화롭게 느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인지 모른다.
전 세계의 불교성지로 추앙 받는 티벳 땅과 그에게는 정감 어린 곳으로 느껴질 만큼 친숙한 아름다운 고산국 네팔의 분위기를 그는 성긴 시선으로, 그러나 꼭꼭 씹어 ‘박완서식 수다’로 적어 놓았다.
그가 말하는 ‘모독’이란 보이는 대로 느껴 쓴 자신의 이야기를 의미함이 아닐까.

태양을 안고 돌아온 이야기

최수철의 이집트여행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매혹과 경이에 사로잡힌 기록이다. 오랜 문명의 발원지이면서 신화 같은 역사를 가진 이집트의 신비는 누구에게도 커다란 환상을 불러일으킬 만 하다.
카이로에서 시작된 그의 기행은 정돈되지 않은 유물에서 느낀 혼돈으로 시작했다. 영혼불멸과 사후세계가 물질적인 집착과 어떤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는 그의 이해는 겸허한 여행자가 아니었다면 놓치고 말았을 신선한 해석이다.
이름만으로도 마음을 사막으로 잡아끄는 도시들-멤피스, 룩소스, 테베와 네크로폴리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를 머물러 돌아온 한달 여정의 끝에서 그는 이집트인들의 현재와 그 속에 위풍 당당히 선 역사의 힘에 깊이 끌려 그들의 태양을 안고 돌아오게 되었노라고 쓰고 있다.

도냐 끼호타와 판자의 재미난 모험여행  

한 시인이 중학생 딸을 데리고 스페인으로 향한다. 값싼 항공권 덕에 28시간이나 걸린 ‘공중철마'안에서 무료함을 달래던 그녀는 중세 기사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마침내 ‘돌아'버린 ‘돈끼호테'를 떠올렸다가 그처럼 ‘도냐 끼호타’라고 자신의 이름을 짓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어린 딸을 ‘판쵸'아닌 ‘판자'로 삼아 여행을 시작한다.
도냐 끼호다의 스페인은 가만히 있는 적이 한번도 없다. 가우디의 아파트, 고야와 피카소의 그림, 플라맹고, 알타미라 동굴, 거기다 열정적인 거리의 연인들까지, 셀 수도 없이 많은 스페인의 얼굴들이 불쑥불쑥 솟아 그녀와 판자를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귀신 들'게 만들어 버린다.
그 ‘스페인의 태양과 끓어오르던’ 풍경들 때문에 결국 도냐 끼호다는 ‘머리를 산발'한 채 고향으로 돌아왔다.
시인 김혜순의 여행기, <들끓는 사랑>-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이 엉뚱한 가이드는 종횡무진 재미 가득한 모험여행으로 독자를 이끈다.

이  네 권의 책은 작가들의 글만큼이나 생생한 사진들이 읽는 사람의 시선을 잡아 끌면서, 대륙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실크로드로 시작해 티벳과 네팔을 지나 이집트 사막의 바람과 함께 스페인의 열정을 느끼는 색다른 여정으로 안내한다. 각기 다른 정서와 눈으로 적어간 여행기들은 훌쩍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짧은 경구를 들려준다, 여행의 감동이란 그 감동을 준비한 사람의 몫이라고.

<서역의 달은 서쪽으로 흘러간다/김영현>, <모독(모독)/박완서>,
<사막의 태양/최수철>, <들끓는 사랑/김혜순>.
출 판 사 : 학 고 재



그림 속으로 들어간 유럽 미술관|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1,2/이주헌/학고재

미술관은 우리에겐 그리 대중적이지 않은 장소다.  대중적일 수 있는 곳이지만 대중들이 선택하지 않는다. 미술관이 없이 철철이 바뀌는 전시장이나, 고증자료의 무게로 박물관에 자리한 옛 그림들의 구경꾼이기가 십상인 우리들의 미술관 이미지는 중세유럽의 성당 같은, 아름답고 견고한 외장으로 기억되는 `건물’ 같다.

이주헌이라는 미술평론가는 그런 우리의 손을 잡고 거리를 좁혀 박물관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그림을 보다가, 그림을 그리다가, 이제 그림만을 생각하는 직업을 가진 그는 50일 동안 부지런히 유럽 박물관을 돌면서 감상을 즐긴다. .
그는 출발에 앞서 ‘유럽의 주요 미술관을 일목요연하게 개괄한 뒤 한 사람의 한국인 미술평론가로서 유럽미술의 특질을 주체적 시각으로 조망’했음을 큰소리로 밝히고, ‘우리의 감성과 언어로 해석해 보려 노력’했다고 자부한다.

이제 미술관에 들어서는 그는 평론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는 좀 다른 냄새를 풍기려고 한다. 영국의 테이트 미술관 뒤에 ‘관능의 그림자’를 달아 제목으로 붙여놓더니, 대영 박물관에서는 혼백들과 대화를 나누는 척 한다. 의도가 빤히 보이건 말 건을 떠나 같은 얘기라도 재미있게 해주겠다고 마음먹은 태를 확실히 낸다. 따라다니는 사람으로서는 공감을 안 하더라도 새롭게 느낄 수 있는 얘기들이다.

이주헌은 감탄을 잘한다. 여행을 다니는 누구나 감탄이 쉽지만 그의 것은 느낌표가 요란하게 따라붙지도 않고, 또 논리적이다.  그래서 수도 없이 ‘최고의 작가’를 거론하고 `천재’를 들먹거려도, 그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지금껏 이름이나마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훌륭하고 위대한 작가였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가 정리한 ‘사람은 경험을 최고로 신뢰하되 그 경험도 근본적으로는 그의 지력에 크게 영향 받는다’는 명제가 있다. ‘아는 것이 힘이다’와 ‘백문이 불여일견’을 합친 것인데, 원래의 것보다 표현은 좀 복잡해졌지만 생각의 단계는 더 짧게 정리가 된다. .
그래서 그는 아는 것이 모자라는 우리들에게 피카소의 어록을 보여주며 특이함 이상이 아니었던 피카소가 천재였다는 데에 동의하게 만들고 '뒤러'라는 작가가 그린 어느 독일인의 초상에서 '이항복의 초상'이 주던 느낌을 잡아 시대의 격변이라는 비슷한 느낌을 잡아내게도 한다. 이렇게 걸어다니면서 만나는 여러 미술관의 그림들은 그의 조단조단한 얘기들과 함께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 나타나는 듯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 이런 부분들이 그가 문두에서 밝힌 시선에 대한 결심이 반영된 부분일 것이다. 많은 숫자가 번역서인 서양 미술관계사를 통해 ‘여지껏 남의 눈으로 유럽미술을 보아왔다’는 것을 깨달은 이주헌은 `이제는 우리의 눈으로 보고 우리의 식성대로 판단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눈 만큼은 주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마음먹고 보편성이라는 아주 도량이 넓은 그릇에 기대어 그림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림을 감상하는 것보다 그림을 통해 작가의 영혼을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 것도 아마 공감에서 오는 이해가 보편성에 이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주헌이 밝히는 이 책의 의미가 하나 더 있다. 이 책이 ‘가족여행의 기록’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는 ‘목적이 분명한 여행의 경우 가족이 함께 가는 것은 인생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헤쳐 나가는 가장 가까운 인간들 사이의 팀웍 다지기에 특별히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면서 ‘함께 곤경을 겪고 함께 격려하고 같은 목표를 나누다 보면 가족 간의 이해와 유대는 더욱 돈독해 질 수밖에 없다’고, 최근 새로운 바람으로 불어오는 테마여행겸 가족여행을 아주 실속 있게 다녀온 한 사람으로서 멋진 소감을 밝힌다.

가족들이 함께 갖는 여행이야기가 간간이 끼어 들어 좀 더 편안히 유명작품들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이주헌의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은 마치 미술관이 그대로 화폭에 들어 있는 것 같다.
처음에 그가 일러준 대로 그 화폭을 들여다보면 이 책을 덮을 무렵 그의 아들 ‘땡이’처럼 ‘무용화가’를 꿈꾸게 될지 모른다.

부당거래|2010


먹이사슬의 재구성
(진짜 경찰청장 같은 특별출연 이춘연-근데 청렴강직한 분위기는 아님^^)
여기까진 말 몇 마디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우아한 인생들
(물론 왕언니는 발랄한 방문 한번으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셔^^)
추신:저도 한잔 받아보고 싶습니다, 그 특이한 맥주!
여기서부터는 몸 좀 팔고 비위 좀 상해야되는 땀 좀 내는 인생들:
완벽한 인텔리 외장과 스펙에도 인간자체가 양아치인 검사 주양
자질과 재능은 있지만 얄팍한 반성밖에 할 줄 모르는 반장 최철기    
야누스-민간인들의 구토의 대상
(더한 것들 있는 거 알지만, 당당히 억울해할 입장도 아닐테니...)

흔히 경제력의 피라미드를 그리지만
부당거래를 보고 있자니 양심의 피라미드가 떠올랐다.
세상이 망하지 않고 돌아가는 것은 불공정하게도
맨 아랫칸 약자들의 양심이 세상을 받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영화속의 인물들은 힘없고 빽없는 순서대로 죽으며
그리고 흔히들 '주류'라 부르는 동네에 끈을 단 인물들은 살아남는 것 뿐 아니라 '건재'하다.

영화는 진창속에 구르는 인물들의 사투의 현장이라서
우아하게 말 한 마디로 해결 가능한 신분의 인물들은 모두 잠깐 스치듯 등장할 뿐이다.
사실 보이는 현상대로 민간인들의 일상에서는 존재감 조차 없는 그들이
실은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기도 하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 꼭대기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정전후의 어느 장군들처럼 나라를 위해 목숨바칠 전장에 나가본 적도 없고
그저 벙커에서 사병들을 내보낼 명령만 할 뿐이며
아수라장은 겪은 적도 겪을 일도 없다.
소명없이 총알받이가 되는 사병들이 요행이 살아돌아와 트라우마에 시달릴때도
그들은 그저 하던대로 핏방울이 튀지않은 손에 묻은 피는 볼 필요도 없이 하얀 쌀밥을 먹으면 된다.
각자의 발치에 총알받이로 쓸만한 누군가가 다 있다는 건
그 피라미드가 두툼한 벽돌이 아니라 낱장이 켜켜이 자리잡은 모양임을 의미한다, 슬프게도.

요즘이야말로 검찰이 최고의 직업이란 생각이 든다.
누구에게나 칼을 들 수 있으면서
지들끼리는 절대 껴안아주며
'가오'죽을 일 절대 없는 신의 직장.
잠깐 치부가 드러났지만
비리인간이라 하더라도 어느 누가
검사부모, 검사자식을 진심으로 수치스럽게 생각할 것이며,
별의별 동료를 조폭문화로 감싸안는다고 해서
검사가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직업이 될까.

읽다만 칼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에는
힘은 스스로 자정하거나 제어하는 법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평화가 유지되는 것도 비슷한 수준의 힘이 서로 견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서로의 이익을 위해 싸우더라도 최소한 성실하고 치열해야한다는 숙제가 있는 셈이다.
부당거래는 그저 에라 이 더러운 세상으로 끝나지 않았다.
힘과 권력을 가졌다는 게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성실히 일하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데
쉽게 조급하게 제 몫의 지도를 그려놓고 달려가는
불성실한 직업인들의 세계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했다는 건 퍽 세련되어 보인다.
업종에 관계없이 유난히 직업인, 생활인의 인물들이 많이 등장해서 확실히 대비가 되었던.
처음엔 농담같았던 단결의 힘이 만드는 결말도 좀 투박한 맛은 있지만 확실히 힘이 있다.
그들은 정의고 나발이고, 진실이고 나발이고 보다는
자타공인하는 개새끼를 참을 수 없어 응징한다.
개새끼가 어쩌다 개새끼가 되었는 지, 진실은 뭔지 신경도 안쓴다.
하지만, 왜 그러면 안되는데라는 정서적인 교감,
그리고 혹여 심하게 분노할 관객들의 속터짐을 미리 방지해주는 서비스 정신으로
'쌈빡함'의 여운을 강렬히 남기고야 만 것이다.

새로운 연기열전을 보여준 류승범과 황정민.
사생결단과는 또 다른 조화였다.
특히 능글맞아진 승범-정말 남자가 되어 가는 것 같은데 난 왜 아쉬울까^^
류승완-꽤 여러 편을 봤고, 좋기도 했지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압도하는 영화는 이번이 처음~!
예고편과 포스터가 오히려 유일한 흥행의 걸림돌(^^)이 될 부당거래.
나도 입소문 아니었음 안봤을 거라고~!

난 무기력한 음모론을 정말 싫어하지만,
진짜로 저런 일이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을 게 아닐까 우울한데
그런 와중에 가끔 차라리 영화속 현실이 부러워질 때가 있다.
놀라운 외모변신까지 보여준 이성민.
특별히 의로운 검사는 바라지도 않는 내 입장에서.
특별히 몰상식하지 않은 '이 정도' 검사로 보였다.
이 분도 진짜 명품 배운데, 곧 한방 터지고 말 것 같아.
부당거래의 미덕은 흥미진진 스토리 속에
흥미진진 배역들과 흥미진진 배경이 함께 간다는 거다.
대사는 좀 넘치는것 같았지만 무척 사실적이었던 경찰청.
'-사'자 들어가는 직업인이자 생활인인 국선변호사, 검찰수사관도 그렇고.
이젠 얼굴만 봐도 웃기는 송새벽의 귀여운 무릎인사 기타 등등.
그리고 뜻밖의 그림.
이 가난한 가족의 오후 정경을 보는데 불쑥 눈물이 났다.
저 모녀의 고맙습니다-도 그렇고.
몸싸움에서 보여준 액션소질은 그동안 갈고 닦아왔다 치더라도
류승완의 미적감각까지 다시 보였다, 이 동네 장면들은...

****두번째 부당거래 감상
처음 볼땐 몰랐는데 놀라운 음악의 힘을 발견.
뒷부분이 좀 길게 느껴지는 것이 다시 보니 감독판 같은 느낌도 들었다.
편집이 좀 더 날씬해진다면 류승완도 승천하리라~~
엄청난 캐릭터들이 향연이었던 것은 새삼스러울 것 없지만
어디선가 굿펠라스의 냄새가 솔솔-나쁜 놈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그러니 무조건 믿고 흔들리지 마시라는 현실적인 교훈^^

녹색광선|Le Rayon Vert|The Green Ray|1986

왜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우는 지, 그 징징거림이 짜증나기도 했는데
결국 나름의 그 적극적인 노력으로 끝장을 본 바람에 그녀는 행복한 결말의 주인공이 된다.
적당히 시도해보다가 계속 꽝이면 포기하는 게 인지상정인데
결국은 끈질긴 노력에 보상이랄까.

차분히 얘기가 진행되는 동안 서서히 주인공에게 다가가는 카메라,
그녀의 일상을 벗어난 휴가를 일상처럼 담담히 따라가는 이야기.
영화에 등장하는 소설에 흥미가 생긴다.
홍상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는데
내겐 홍상수가 더 재미있는 걸...

알렉산더 멜니코프 피아노 리사이틀


스비아토슬라브 리흐테르라는 이름, 슈베르트와 브람스의 선곡으로도 기대만발이었던 공연.
빈자리가 많았던 것이 의외였다.
또 허둥지둥 도착하는 바람에 자리에 앉자마자 시작된 방랑자환상곡에 깜짝.
리흐테르를 대신한 적도 있다고 해서 비슷한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멜니코프는 리흐테르보다 훨씬 부드럽고 가볍고 화려했다.
리흐테르가 좀 단단한 느낌에 어딘가 사색하는 듯하면서도 씩씩한 방랑자였다면
멜니코프의 방랑자는 햇빛쏟아지는 숲속에서 나뭇잎의 물방울을 튕기기도 하며 걷는
더 자유로운 한량의 느낌이랄까.
강약의 대비가 큰 감성때문에 그랬는지도.
힘차게 내달릴땐 잠시 리흐테르의 CD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들때도 있었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건 소리방울에 싸인 것 같은 영롱한 음색.

어딘가 묵직한 소리로 기억되던 브람스인데 멜니코프의 브람스는 그보다 여린 느낌.
피아노 연주를 들을때면 악기 하나가 오케스트라라는 말이 실감나는 꽉 찬 느낌이 신기했는데
멜니코프의 브람스는 악기 혼자라는 것이 좀 실감났달까. 살짝 허전한 느낌도.

쇼스타코비치는 의외의 발견이었는데
1시간이 넘게 이어지는 연주도 대단했지만
멜니코프와 웬지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오늘의 선곡 중 단연 제옷처럼 들렸던.

정중하게 인사하며 두 곡의 앵콜을 연주한 멜니코프.
좀 깐깐해보이기도 했지만 단정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 같다.
겨울과 가을을 오가다 잠시 가을 날씨로 돌아온 덕에 가을향이 물씬 나는 연주회가 되었다.
겨울이었다해도...따뜻하게 기억되었을 음악이긴 하지만.

라바야데르|유니버설발레단|2010


민망하지 않게 발레리노들의 도약과 점프를 즐길 수 있는 편안한 의상,
코끼리(^^)까지 등장하는 비범한 스케일,
인도라는 독특한 배경.
볼거리 충분한 발레였다.
기백없는 용사 솔로르는 좀 맘에 안드는 캐릭터였지만
발레리노의 매력은 물씬~
직업도 댄서인지라 기대했던 주인공 니키아의 춤은
생각보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가볍고 유연한 움직임은 충분히 멋있었다.
발레줄거리가 좀 구리다고 생각했었는데
여기서는 공주와 댄서의 계급장 뗀 나름 육탄전이 등장한다^^
울고 불고 모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완전한 승리를 위해 싸우며
기죽지 않고 덤벼드는 두 처자들의 역동적인 모습이
독특하게 보였다.
간간이 해설자막이 보였는데
예를 들면 '너를 사랑한다' 다음에 바로 '안됩니다' 다음에 '죽이겠다'의 자막이 뜨는 것.
하하하-이래서 발레는 대사자막을 넣지 않는가 봐.
너무나 저돌적인 스토리가 아닌가~
주인공들 말고 사원에서 일하는 남자가 있었는데(이름 까먹음)
가벼운 건 발레리나 같고 힘찬 점프는 남자같아서
인상 깊었다.
우리나라에 발레단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 놀랍기도.
좋아~

황혼의 빛|ㅣLight in the Dusk|2006

특유의 유머가 사라진 카우리마스키의 영화는 재미없었다.
그런데도 화장실 한 번 안가고 다 본 건 좀 신기하지만.
집념이나 끈기는 없는 적당한 참견의 인연.
가장 현실적이면서 새로운 관계였다고나 할까.
설득력없는 매력의 팜므파탈.
운명적 환타지를 위해 `낯선 여자`에게 더 끌린다는 것 이상의 이유를 찾을 수 없는.
이렇게 만날 것을 왜 그렇게 돌아가야 했을까.
파랑새를 찾아서-인걸까...?

동네살인사건

일하러 가는 동네인 화정에서 어제 변사체가 발견되었다는 뉴스를 들었다.
성폭행 후 살인일 가능성이 있다고 하고 사체는 3개월 쯤 되어 보인다고 한다.
강간살인-슬프게도 처음 듣는 종류의 살인사건은 아니다.

끔찍한 인종청소에도 늘 동원되는 강간살인.
얼마 전엔 성폭행을 하려고 추격하다 피해자를 추락사 하게만든 가해자가 살인에서는 무죄를 선고받았다는 뉴스를 들었는데, 오늘은 16명의 성폭행 가해자인 고교생들을 지적장애가 있는 여중생 피해자가 충분히 반항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불구속입건했다는 뉴스를 봤다.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9&news_seq_no=1006940
http://www.newscham.net/news/view.php?board=news&nid=58903

죽도록 저항해서 죽어도 죽은 사람 책임,
거부를 해도 받아들여지지 않으면 모자라게 저항한 사람의 책임.
전국을 분노하게 만들었던 조두순 사건 재판 얘기까지 더하니 할 말이 없다.
http://mbn.mk.co.kr/pages/news/newsView.php?category=mbn00009&news_seq_no=1006940

참 병신 검찰이다.
대한민국의 모든 교육제도를 우수하게 통과한 선택받은 사람들의 결정과 처신이
대한민국의 교육제도가 병맛이라는 현실을 온몸으로 증거한다.
그들에게 부족한 많은 것 중 하나-철학이다.
아이를 낳지 않는 건,
어쩌면 생각보다 복잡한 사회저항운동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보호받지 못하는 세상에서 스스로 소멸을 선택하는 것 이상 간편한 저항은 없으니까.


고양이 요람|Cat's Cradle|커트 보네거트

"생각해봐요." 브리드 박사가 말했다.
"스물여섯 사람이 그의 양심에 올라타고 있었소!"
"마음이 비틀거리겠죠."
-스물여섯명을 살해한 어느 사형수에 대한 이야기

"그러나 원자폭탄 같은 걸 만드는 걸 거든 사람이 도대체 어떻게 무죄한 사람일 수 있겠소? 또 세상에서 가장 마음씨 곱고 아름다운 여인이 사랑과 이해의 부족으로 죽어가고 있을 때 어떻게든 해보려고 노력도 하지 않는 사람을 어떻게 착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겠소?"
..."이따금 그가 죽은 채로 태어난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어요. 살아있는 것들에 그렇게 무관심한 사람은 만난 적이 없소. 가끔 나는 그것이 바로 세계의 문제라고 생각해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들 중에 돌처럼 차갑게 죽어있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것 말이오."

"그 더러운 개자식들이 저희들이 죽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나 알았을까!" 그가 흐느끼며 말했다.
-생명을 희생자의 숫자가 아닌 인생으로 바라보게 하는 재키의 절규

보코논에 따르면 랭-랭이란 자신의 삶을 예로 보여줌으로써 사색의 궤도를 줄여서 사람들로 하여금 그 궤도에서 이탈하여 어리석은 짓을 저지르게 만드는 사람이다......특히 내 귀여운 고양이에게 한 짓을 본 뒤로는, 허무주의는 내가 취할 태도가 아니었다.
누군가 혹은 무언가가 내가 허무주의자가 되는 것을 원치 않고 있었다. 그 사상에 미혹되지 않게 하는 것이 크랩스의 사명이었다. 알았든 몰랐든 잘했소, 크랩스 씨.

근육은 바벨이나 스프링기구를 사용하지 않고도 키울 수 있으며, 단순히 한 조의 근육을 다른 한 조와 경쟁시키는 것만으로도 키울 수 있다는 것이 찰스 애틀러스의 믿음이었다.
좋은 사회는 선과 악을 경쟁시키는 것으로만, 그리고 둘 사이의 긴장을 늘 높게 유지하는 것으로만 건설될 수 있다는것이 보코논의 믿음이었다.
...'파파'가 나쁘지 않다면
어떻게 사악한 보코논 노인이
조금이라도, 조금이라도 착하게 보일 수 있겠나.

뉴트의 그림은 작고 시커먼 사마귀들이 할퀴어 놓은 것만 같았다....그 자국들은 거미그물 같은 모습을 만들었는데 나는 그것이 달도 없는 캄캄한 밬에 말리려고 걸어놓은, 인간의 부질없음으로 짠 끈끈한 그물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아이들이 자라서 미치더라도 놀라운 일은 아니죠. 고양이 요람이라는 게 두 손 사이의 X자들에 불과한데도 어린애들은 그런 X자들을 보고 또 보고 하는데.......빌어먹을 고양이도 없고, 빌어먹을 요람도 없으니까요."

"그 사람은 무엇때문에 추방된 겁니까?
"그 사람 스스로 생각해낸 거요. 그는 메케이브에게 자신을 추방하고 자기 종교도 불법화하라고 부탁했지. 인민의 신앙생활을 좀 더 열렬하고 짜릿하게 만들기 위해서였소. 덧붙이자면, 그는 그 일에 관해서 짧은 시를 하나 지었소."
...하여, 나는 정치여 안녕 했다네.
그러면서 그 이유를 이렇게 댔지.
정말로 좋은 종교는
반역이 되어야 하는 거라고.

호랑이는 사냥해야 하고
새는 날아야 한다.
인간은 앉아서 "왜, 왜, 왜?"하고 궁금해해야 한다.
호랑이는 자야 하고
새는 내려앉아야 하고
인간은 자신에게 알았노라고 말해야 한다.

나는 내가 대장이 되기로 동의함으로써 프랭크에게 자기가 그 무엇보다도 하고 싶어 하는 것을 할 자유를 주었음을 분한 마음으로 깨달아야 했다. 자기 아버지가 했던 것, 그러니까 인간적인 의무는 회피한 채 명예와 물질적 쾌락을 누릴 자유 말이다.

...나는 천년 왕국은 권력의 자리에 성자가 있는 것만으는 충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거기에는 모두가 먹을 좋은 것들이 충족해야 하고, 모든 사람이 살 근사한 집도 많아야 하고, 모두를 위해 좋은 학교들과 좋은 위생과 유쾌한 시간이 있어야 하고, 모두가 원하는 일을 할 수 있는 직장이 있어야 할 것이었다. 그것들은 보코논과 내가 제공할 수 없는 것들이었다.
그러므노, 선과 악은 이후로도 계속 따로 지내야 했다.

"나도 자리를 샀어. 누나가 그 바람둥이 남편을 산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뉴트가 그 러시아 난쟁이와 케이프코드에서 보낼 한 주를 산 것과 똑같은 방법으로!"
...미합중국과 소비에트사회주의공화국연방도 그걸 가진 것이 분명했다. 미국은 인디애나폴리스에 당연하게도 전기울타리와 독일산 세퍼드들로 둘러싸여있는 공장을 소유한 앤젤라의 남편을 통해 입수했다. 소련은 뉴트의 연인, 우크라이나 발레단의 애교있는 매춘부를 징카를 통해 입수했다.
-그들에게는 인생 최고의 절실함이었지만, 남이 볼 땐 인류의 멸망과 비교할 수 없는 이런 이유들로 과학자의 3남매는 아이스9을 거래했다.  
만약 우리가 산로렌조의 1백명의 죽은 아이들에게 진심으로 조의를 표하고자 한다면 그들을 죽인 것, 즉 모든 인간의 어리석음과 사악함을 경멸하는 것이 이 날을 보내는 가장 좋은 길이라는 것입니다.

무언가를 알려고 열심히 노력해서 그것을 알고서도 전보다 현명해지지 않은 사람을 조심하라. 그런 사람은 그처럼 어렵게 무지를 손에 넣지 않고도 무지한 사람들에 대해 살인적인 원한에 차 있기 때문이다.

현실에 대해 거짓말을 할 절실한 필요성과 현실에 대해 거짓말하는 것의 가슴 아픈 불가능성 말이다.
난쟁이, 난쟁이, 난쟁이, 얼마나 우아하게 걸으며 윙크하는가.
그는 사람은 자신이 희망하고 생각하는 것만큼 크다는 것을 아는 것이다.

약국잡화점들을 사들이는 자가 세계를 지배한다.
약국잡화점 체인과 식료품점 체인과 가스실 체인과 범국민적인 게임을 가지고 우리의 공화국을 시작하자. 그 다음에 우리의 헌법을 쓸 수 있다.

모든 종교는 바신을 포함해 거짓에 기반한다는
나름 양심적인 보코논교의 등장.
절망에 빠진 신도들을 이끄는 보코논은 책임감도 소명의식도 없었으며
그 자신이 유희로 조각상이 되기를 선택하듯 사람들의 선택을 대신 결정했다.

산로렌조공화국을 무대로 종교지도자와 독재자, 순수과학자 등
다양한 지도계층들의 '순수한'의도와 노력이 만드는 거대한 재앙에,
악의적이지 않더라도 나빴던 자신의 행위에 대한 성찰 없는 유죄선포.
인상깊은 연설을 했던 민턴대사와 그의 아내는
거짓말장이 세상에서 멸종되어가는 정직한 사람들 처럼 우아하게
'살아남으려 발버둥치치 않기'를 선택해 죽어갔다.
'원형극장의 관객들'처럼 모여있다가 아이스9을 삼킨 군중들의 모습은
읽는 것만으로도 충격.

다양한 등장인물들이 하나씩 화두를 던지고 가는 놀라운 인물열전도 그렇지만,
가상의 정치, 종교와 문명을 망라한 판이 큰 풍자에도 입이 떡 벌어진다.
페이지가 잘 안넘어가던 전반부에 비해, 중반부터는 스릴만점.
굉장하고 재미나는 이 분을 참 늦게도 만났네.....

마담 드|Madame De..., |1953


연애하는 여자, 익명의 마담 드, 같은 귀걸이를 세 번 사게 되는 장군의 아내.
처음부터 결혼선물이라는 의미있는 물건이었지만
그것은 아쉽기는 할 지언정 내다팔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지만
연애와 상처와 자신의 굴레의 한계를 깨달은 뒤
다른 모든 것을 버려서라도 얻고 싶은 간절함이 생긴 뒤에
그녀는 자립적으로 귀걸이의 주인이 된다.
거짓말의 형벌로는 좀 가혹하다 싶지만
그 거짓으로 다친 진심의 상처를 생각하라는 뜻일까.
그녀 나름의 성취는 행복한 결말로 끝나지 못한다.
가장 열심히 움직이고 모든 것의 원인이었던 그녀만이 불행해진다는 것이
자연스런 귀결일지도 모르겠지만.

스캔들이 부끄러워 여행가겠다는 아내에게
거짓결혼이라는 생각이 거짓이라며
곁에 있어주기를 부탁하는 남편.
허위일지는 몰라도
서로의 명예를 지켜주고 싶어하는 진심이 있는 한
나쁜 결혼은 아닐지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모든 애정도 거짓말 앞에서는 생명을 다 했다.
비밀이 맞물려 어쩔 수 없이 넘어갈 것 같았던 상황에서
남편은 비밀을 지킨 채로 당당하지만
아내는 결국 만천하에 까발려진다.
정확히 알 수 없던 그녀의 거짓말 동기는
일견 대접받는 것 같아도 어쩔 수 없었던 그 시절의 반영인 걸까.

세번째 마크 오퓔스의 영화는 두드러진 화면구성이 매력적이었다.
댄스장면이 계속 연결되면서 드레스가 바뀌다가 처음의 드레스로 돌아오는 동안,
그들의 댄스데이트는 4일-2일-24시간동안의 아쉬움을 토로하는 남자의 대사로 이어지고
`항상 마지막까지 춤춘다는` 악단의 불평까지 잘 버무려진다.
창밖으로 날리는 편지조각들이 눈이 되면서,
시간의 경과를 보여주는 것도 신선했다.
달랑 본 세 편에 공통적으로 등장하는 기차역과 기차는
미지의 여인...에서는 특색있는 데이트장소였던 놀이공원의 여행열차와
연인과 아들과의 예기치 않은 이별을 하게되는 공간으로 시작과 끝을 보여주었고,
탐욕에서는 전혀 다른 두 세상을 이어주는 공간,
마담 드에서는 두 번 다 뜻대로 되지 않는 연애에 지친 연인들의 이별장소였다.

슬픔은 다 상상일 뿐이야-
실연한 아내를 뒤로하는 말로는 괜찮았던.

미지의 여인에게서 온 편지|Letter From An Unknown Woman|1948

길들여지지 않은 야생의 열정을 수줍음에 덮고 있다가
미끼(?)를 만나면 폭발질주를 시작하는'시골처녀'들의 왕언니(^^)
 
도시의 `시골처녀` 리자는
얼핏 엘비라 마디간이나 테스를 떠올리게 하지만
매달리지 않고,
새로운 끈이 없이는 쥔 끈을 놓지 않는 가련함을 떨치고
쿨~한 도시스러움을 보여준다.

가진 것을 버리는 것은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처음으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는 여자가 되고 싶었으며,
오랜 연정의 기억에 홀대받은 자신의 자존심을 지켜낸
씩씩한 `현대여성`.
제대로 엿먹이기 위해 욕망을 희생시켰다고 할 수 있을까 ㅎ ㅎ  

짝사랑영화의 고전이 아닐까 싶은.  
지금의 이야기로 옮겨온대도 어색하지 않을 법한.
몇몇 연극세트 같은 장면도 있었지만
60년도 더 된 옛날 로맨스영화에서 보리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던
화면의 짜임이 놀라웠다.
색다른 로맨스영화라길래 냅다 지른 Max Ophüls 3부작.
예상만큼의 만족^^

차라리 이것도 없는 게 나을지도

천안함 의혹에 대한 언론검증이라는 것이 있었고,
그 결과, 가장 결정적인척 하던 버블제트가 없었다는 공식발표가 났다.
그런데...
이 기사에 있는 그대로
"언론검증위원회의 발표 내용은 충격적이었지만,
그 내용을 접하는 언론의 태도는 더욱 충격이었다."
하지만 종이 신문을 보지 않는 현재로 봐서는
포탈들에게도 화살표를 돌려야 하겠지.

http://www.mediatoday.co.kr/news/articleView.html?idxno=91233

안젤리나 졸리네 애기들 따라다니는 파파라치만큼도 성실하지 못한 쪼다같은 직업정신.
목숨 걸 일도 아닌데 참 쉽게들 사리시네.
한때는 기자라는 직업도 꽤 멋지고 존경스런 직업이었는데,

마더나이트|Mother Night|커트 보네거트

나는 이 책을 내가 아는 단 한 사람에게 바치고 싶다.
..자신의 악행이 널리 알려졌음에도 스스로에게 다음과 같이 말할 수 있는 사람이면 된다. "나의 깊은 내면에는 아주 선한 나, 진짜 나, 천국에서 만들어진 내가 감춰져 있다".
..그러나 이 책을 헌정할 만한 단 한 사람의 이름은 떠오르지 않는다. 나 자신의 이름밖에는.
그러니 나는 다음과 같은 헌사로 나 자신에게 경의를 표하고자 한다.
이 책을 하워드W.캠벨 2세에게 바치노라. 그는 너무나 공공연하게 악에 봉사하고 너무나 은밀하게 선에 봉사했다. 이것은 그의 시대가 낳은 범죄였다.
 
미합중국 육군과 해군에 소속된 군인, 그리고 공화주의 정부와 공작에 종사하는 이들의
사기와 신념과 용기를 훼손하기 위해 적과 공모한 죄,
국민에게 언론의 자유를 허락한 국가는 애국가의 가면을 쓴 적에게 취약하다는 믿음에 기초하여
언론과 출판의 자유에 편승하고 그 권리를 이용 및 남용하여 반국가적인 사상을 유포한 죄,
정직한 비판인양 가장하여 공화주의 정부의 적절한 기능을 방해하고 훼손하고 분쇄하고 파괴하려 한 죄,
미합중국 육군과 해군에 소속된 군인과 국민의 신념과 용기를 꺾어 정부를 취약하게 만들어서
외부의 무장세력과 내부의 반역으로부터 국가와 국민을 수호할 정부의 힘을 약화시키려 한 죄.

-하지만 지금은 자네가 간첩이든 아니든 신경쓰지 않는다네. 그 이유를 아는가?
...자네가 우리 독일에 봉사한 것만큼 적에게 봉사하지는 못했을 거라 생각하기 때문일세.

도덕적 재무장운동은 절대적인 정직, 절대적인 순수, 절대적인 이타심, 절대적인 사랑을 믿는 겁니다.

존스는 완전히 미치지 않았다. 전형적인 전체주의 사고에서 당황스러운 점은 사고기계를 돌리는 어느 톱니바퀴든 그 원주 위에는 제멋대로 갈려버린 톱니 말고도 갈리지 않고 멀쩡하게 남아 제대로 작동하는 톱니도 있다는 것이다.
...톱니바퀴의 톱니를 일부러 갈아버린다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정보를 일부러 무시한다는 뜻이다.
바로 그런 이유에서 존스, 킬러신부, 크랩타우어 부회장, 흑인지도자로 이루어진 말도 안되는 가족이 비교적 조화롭게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것은 또한 나의 장인이 하나의 마음으로 여자 노예에겐 냉담하고 푸른색 화병에는 지극정성를 쏟을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은 또한 아우슈비츠의 지휘관 루돌프 헤스가 확성기를 통해 위대한 음악돠 시체운반원 소집 명령을 번갈아 내보낼 수 있었던 이유이기도 하다.
그것은 또한 나치 독일이 문명과 광견병 사이의 중요한 차이를 이해하지 못한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내 사고기계의 톱니를 일부러망가뜨린 적은 없다. 단 한번도 스스로에게 "나는 이 사실을 외면해도 된다"고 말한 적이 없다.

악이 어디 있는 줄 아는가? 그건 무조건 적을 증오하고, 신을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신과 함께 적을 증오하고 싶어하는 모든 사람의 마음속에 잇다. 그 때문에 사람들은 온갖 추악함에 이끌리는 것이다. 남을 처형하고, 비방하고, 즐겁게 웃으면서 전쟁을 벌이는 것도 백치 같은 그런 마음 때문이다.

아이들은 가능하다면 태어난 순간부터 실제 인간과 실제 사회를 통해 실험을 해야합니다. 만일 이런저런 이유로 그런 재료를 이용할 수 없다면, 그때 장난감을 이용해야 합니다.
...우리 아이들의 장난감에는 조화로운 면이 전혀 없어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아이들은 평화와 질서를 기대하고 자라나 산 채로 잡아먹힐 것입니다.
아이들의 공격성해소라는 면에도 나는 반대하는 입장입니다. 아이들은 나중에 성인세계에서 분출할 수 있도록 모든 공격성을 잘 품고 있을 필요가 있습니다. 역사 속의 위대한 인물들 중에서 어린시절에 안전밸브가 꽉 잠겨 속을 부글부글 끓이지 않았던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선전선동의 가능성을 발견하고 그 힘을 만천하에 떨친 나치세력의 한 복판에 숨겨져 있었던 하워드 W.캠벨 2세의 전기-물론 가상의 인물이다.
이 인물의 폐해에 대해선 역시 가상의 편집자의 글(그가 작가였다는 말은 예술상의 필요만으로도 거짓말을 할 자격, 다시 말해 거짓말을 하고도 보복을 당하지 않을 면죄부가 주어진다는 뜻이다)이 잘 소개하고 있고,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괴벨스 이상으로 업적을 평가받는 나치선전요원이었던 동시에 유일하게 임무를 완수하고도 살아남은 유능한 미국 스파이라는 또 하나의 동아줄을 잡고 있었기에 그는 그 혼란과 학살의 시기에 누구도 누릴 수 없는 자유를 만끽하기도 했다.

자신만이 인정하던 그 '선함'을 증명하기 위해 자살에 까지 이르는 그의 마지막 선택은
스스로에 대한 자신의 생각이 옳았음과, 최소한 존엄을 증명하기 위해 노력이라도 하는 악인을
어떻게 심판할 것인가를 고민하게 한다.
한때 충성스런 장세동과, 그런 가신을 거느린 전두환의 '능력'이
그들의 악행-이란 말이 작게 느껴질 정도로 거대한 만행-을 너머 사람들의 관심을 끌던 시절이 있었고,
여전히 박정희가 넘버원 지도자라는 설문조사가 나오니 말이다.
 
남의 고통을 즐기는 악당은
자신의 범죄희생자들을 제외한 모든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영향을 미치지 못하는
사이코패스뿐이다. 기록을 남기긴 하지만 결국 그들은 제거되고 잊혀진다.
그럴듯한 명분을 내세우며 자기자신을 합리화시켜 스스로도 믿게 만들고
심지어 시대정신까지 애곡하는 야심가 악당이야말로
말 그대로 '공공의 적'인 것이다.
나쁜 놈은 자신의 나쁨을 과시하며
늘 잔머리와 눈알을 동시에 굴리면서 남을 괴롭힐 궁리를 할 거라는 건
얼마나 순진한 '악'의 정의인지.

가지고 싶은 것, 가지고 있는 것을 너머
자기자신을 좀 더 들여다보게 하는 교육이란 정말 요원한 것일까.

어쨌든 흥미롭다, 커트 보네거트.
그래서 세번째로 넘어가는 '고양이 요람'.

마더나이트란 제목은 괴테의 파우스트에서 따온 것으로,
어둠속에서 돌보는 손길이 있는 역설을 의미한다고 한다.

충녀|1972


신기했다.
지금봐도 범상치 않은 이 영화가
그 시절에 만들어졌다는 것보다
그 시절에 흥행했다는 것이.

인물들은 아무렇지도 않게 얘기하는데
대사들은 섬뜩하기도 하고 재미있기도 하다.
독특한 화면들도 신기했지만
당돌함과 백치미가 기묘하게 섞인 어린 윤여정의 얼굴이 정말 특별했다.
배두나와 문근영이 한 사람 속에 있는 느낌이랄까?
의외로 재미있어서 신선했던 '옛날 영화'.

우연히 등장한 재앙의 상징-설치류^^

업클로스앤퍼스널|Up close and Personal|1996

꽃중년들의 미모가 찬란하게 타오르던^^

요즘 같은 때 이 영화를 다시 보니 참 별 생각이 다 들었다.
처음 봤을 땐
좋아하는 미쉘파이퍼의 매력과
금발바보를 새사람으로 조각해내는
(다시보니 학력위조에 경력조작에 참 골고루 했더군...)
비위상하는 러브스토리의 충돌로 그저그런 영화라는 인상이었는데도
이따금 그냥 남의 로맨스수혈이라도 필요한 꿀꿀하고 한가한 때면
가끔 생각이 나기도 하는 묘한 영화가 됐다.
성공한 남자 옆의 여자는 남자의 성공과 함께 행복해질 수가 있는데
(흔한 스토리는 성공전의 과거까지 묻어버리고 싶은 남자들의 배신이지만ㅎ)
성공한 여자 옆의 남자는 왜 항상 자신을 증명 못해 안달하며 불행해질까.
심지어 그녀의 사기행각을 묻어가며 그녀의 성공을 열심히 밀어준 이 남자 조차도.
딱하게스리...

이만수의 미국구단체험기도 그렇고
언젠가 'Someone you know'보다 'Someone knows you'가 중요하다는
미쿡의 취업추천풍토를 들기도 했기에
전처럼 '비위상하는' 스토리는 아닌데
마침 불거져주신 장관딸스토리가 떠오르면서
어디까지일까-를 생각하게 되는 것이다.

나의 불쌍한 도덕관과
폭좁은 업무능력평가방식의 한계는  
'기회의 평등'이라는 글자 그대로의 뜻에 집착하게 만든다.
'능력'이라는 것은 또 어디까지 일까-도.

우연히 TV에서 아웃어브아프리카의 끝자락을 보다가
생각난 김에 돌린 DVD.
하룻밤에 두번이나,
죽는 로버트 레드포드를 보다니^^
 

U17 월드컵

숙취로 본의 아니게 일찍일어 났다가 우연히 발견한 여자축구.
내가 보기 시작한 무렵은 후반 끝무렵.
녹화인줄 알았더니 생중계라기에 결과나 보자 싶어 시청.
청소년부는 아동보호 차원에서 연장전을 없애고 그냥 승부차기를 하게 하는 게 어떨까 싶을 정도로
일본이나 한국이나 선수들이 어마어마하게 힘들어 보였다.
하이라이트에서는 그렇게나 멋진 슛을 보여주던 선수들인데.
결국 승부차기로 이기고 시상식을 보는데...
난 정말 이 발랄한 소녀들이 부러워졌다.
사진 모두 www.fifa.com

이겨도 울고 져도 울고.
헝그리정신에 푹 절여져 `한`없는 운동은 없다는 걸 늘 보여주던 안타까운 광경은 사라지고,
월드컵우승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건지 나보다 훨씬 잘 알만한 전문가들께서
경기 끝나자 활짝 웃으며 신나게 우승을 즐기고 있었다.
게다가 감격의 도가니에 빠져 실신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3관왕의 여민지까지.
더 보기 좋았던 건,
준우승 일본팀이 입장할 때, 즐겁게 반겨주던 모습이었는데
원래 서로들 장난치고 잘 논다고 캐스터가 얘기를 덧붙였다.

그래, 구질구질한 눈물따위는 늙수레 시청자가 촌스럽게 흘려줄테니
언제까지나 밝고 명랑하게 질주하시게들~

요즘처럼 단체전신성형미인들의 등장으로 어지러운 때에는
민낯 축구소녀들이 아이돌보다 더 이쁘더라.

발레|라이몬다|국립발레단


정지동작이 많아 주인공들이 특히 어려웠을 것 같은 공연.
몸을 도구로 하는 표현의 최전방예술에서 내면연기를 해야하는 것 같달까.
그러다보니 초초특급일 것같은 무용수들의 연기를 보면서도
흔들릴까 조마조마 하기도 했던.
볼쇼이발레단원들이 주연을 맡은 오늘의 출연진.
솔직히 라이몬다보다는 1막에서 솔로를 하던-아마도 박슬기?-가볍고 발랄한 무용수가 더 인상깊었지만,
발레리노의 도약만큼은 정말 높이가 달랐다.
꽤 오래 이어지던 커튼콜에 단장과 안무가까지 무대에 등장했다.
매번 수정을 하기도 하겠지만
이렇게 한번 완성한 작품을 두고두고 여러가지 모습으로 감상할 수 있는 예술가는
참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조의 호수처럼 여기도 파티를 빙자한 다양한 춤들이 등장하는데
오늘 인상깊었던 건 얼마전 짧은 젬베공연에서 봤던 것에 견줘 흥이 절대 덜하지 않은
아프리카 댄스.
멋있었다.
지난 번에도 느꼈지만
참 이쁜 의상도.
예복으로 입기에도 손색이 없을 듯.
게다가 오늘은 무대장치부터
옷감을 활용한 것이 더 화려하고 분위기 있어보였고
긴 드레스의 아가씨들은 치렁한 치맛자락으로 배경의 일부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왜 항상 공주를 괴롭히는 유혹자는 늘 유색인종-아마도 무어인?-일까.
오페라도 그렇지만 발레 역시 구태의연한 설정과 스토리는 쫌 후지긴 하다.
클래식에 혁명을^^

영화애인 정성일

정성일의 책 발간 소식을 듣고
아주 오랜만에 그의 글을 읽었다, 열 시간 여에 걸쳐.
공부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거라는 이외수의 광고에 심히 공감하던 나로선
내 엉덩이의 능력에 희망이 생기기도 하는 순간이다^^

두뇌와 심장은 거리 만큼이나 독립적이라고 믿던 시절에
그의 평론은 어느 순간 이별할 수 밖에 없는 존재였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영화제작현장이 아닌 평론가를 목표로 삼게까지 만들었던 그의 파워는
처음에 강렬했던 만큼
곧 지치게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과연 영화를 보며 울거나 웃기는 할까?
라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고별사였다.
내게 시청각적인 자극-예술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뭘 예술이라 불러야할 지 아직 결정을 못했기에-이란
심장의 영역이었기에.

긴 단절기를 지나고
그 동안, 그의 인용습관과 어려운 어휘들만 쉽게 베끼고 있는
감동도, 자극도, 성의도 없는 프로들의 글에 지치기도 한 와중에
그의 글에 다시금 흥미가 생겼다.
길고 복잡한 그의 글은 여전한데
전처럼 지치지 않는다.
내가 정성일만큼 영화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였음을 알고 나니
그의 열렬한 애정행각이
많은 깨달음을 준다.

씨네21에 정윤철감독과의 대화가 실려있었는데 그 중에서 흥미로운 대목이 많이 등장했다.
엉덩이 능력확인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터뷰. 정성일도 정성일 이지만 정윤철도 대단하다.
임시 스토킹이라도 한 듯 별얘기가 다나온다. 게다가 읽기 좋은 글솜씨까지.
이렇듯 성의를 다하는데 어찌 보는 즐거움이 없을소냐...)

정윤철: '키노' 마지막 호에 이런 내용의 글을 썼다. `사람들은 우리가 어렵다고 한다, 그렇지만 대가들에 관한 글을 쓰며 어찌 어렵지 않을 수 있는가, 우리는 그런 글들을 쓸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하지만 영화가 어렵고 위대하다고 하여 그걸 해석하는 글조차 어려울 필요가 있는지.

정성일: 거기에 관해선 항상 인용하는 아도르노를 인용하고 싶다. ‘자본주의는 지식을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지식을 간단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점점 사고를 마비시키고 논리 자체를 무시한다. 결정적으로 말하자면 철학은 점점 광고 카피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아도르노는 내 글을 읽는 것은 사유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나는 아도르노처럼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그 태도는 배우고 싶다.

이 대목은 내가 정성일 읽기를 포기하던 무렵에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부분이지만, 지금은 납득이 되는 열애자의 충고.

정윤철: 질문을 마저 하자면 결국 비평도 대중성과 심도있는 분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건 불가능한가. 그런 시대도 이미 끝난 건가?

정성일: 나는 영화에서의 대중성이라는 문제를 다른 판본으로 말하자면 상품성이라고 생각한다. 둘은 같은 말의 말장난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영화가 대중성을 껴안는 한편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위해서 나아가던 시대는 영화의 고전주의시대였다(3,40년대). 예를 들면 우리는 고전주의 회화를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인상주의를 통과하며 그림에서 형상이 부서졌고, 그림은 보는 이에게 교양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소통을 하고 싶다고 고전주의 그림을 그린다면 그것은 퇴행이다. 영화는 계속 앞으로 가고 있는 거다. 그 100년이라는 역사를 왜 무효화시키려고 하는가. 영화도 관객에게 교양과 역사에 대한 이해와 시네마테크적인 경험과 영화에 대한 지식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관객은 게으르게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즉각적으로 자기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영화를 원시적인 상태로 돌려보내는 거다. 영화는 고전주의 시대를 통과했고, 이제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가능성의 길을 가고 있다. 그것을 왜 퇴행적으로 만들어야 하는가, 심지어 감독들이 왜 자꾸 고개를 뒤로 돌려 그런 퇴행을 바라보는가. 나는 거기에 대해서 분개하는 쪽이다.


아마 이 대목이 내가 지금 정성일의 글을 다시 읽고 싶어진 이유인 것 같다.

너도나도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펼칠 수 있게 된 이 시점에
하필 평론가 혹은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함량미달이 두드러지는 모순된 상황에서
지금이 90년대의 반발이고 곧 이 상황에 대한 반발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그의 예언(기대?)이
내게도 희망적으로 들린다.
사실 그래.
망해 고꾸라질 것 같은데 어떻게 잘들 꾸려나가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참 멋지기도 하다.

그리하여....정성일의 평론집을 향한다.
벌써 2쇄라는 걸 보니 역시 난, 은근 유행 타^^

굿모닝 프레지던트|Good Morning President|2009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을 대신 선택하고 이거나 그거나 그게 그게 아니었을까 후회했는데
극장에서 안보길 잘했다.
개성만 있고 역사는 없는 장진의 인물들.
엔딩의 고두심의 등장이 무색하게 누군가의 아버지로만 끝나는 나레이션의 무신경함까지.
레벨도 안맞는 환타지-이런 대통령이 있는 세상이라면서 토론회의 무력개싸움은 또 뭐야.
설마 떡볶이가 모든 걸 채워줄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남기고픈 한마디,
헐...

시라노;연애조작단|2010

시라노와 이어지는 깔끔한 연결에서 정석을 벗어나지 않는 바른연애강습까지
믿음직한 김현석의 개운하고 귀여운 로맨틱코미디의 탄생.
처음부터 끝까지 하.하.하.
유일한 흠이라면 촌빨날리는 포스터?!

최다니엘로서도 연기변신이었는데 송새벽의 캐릭터와 겹치는 바람에 내내 비교가 됐다.
조연이었지만 밀도로는 누구에게도 뒤지 않던 송새벽의 2연타.
청년, 보는 재미가 있구랴~
좀 오바스럽기는 했어도 감각있는 조연을 보여준 김지영.
우생순에서도 좋았는데 영화에서 더 자주 봐요~
후자도 아닌 주제에..핫핫핫!
코믹의 달인 시절 권해효의 묵직한 재림!
빵빵 터지는 우정출연들 덕에
네 명의 주연들이 좀 머쓱하겠다...
이쁘고 사랑스러운 미모에 심술인지
가끔 등장하던 안티컷들까지 생각하면 말야^^ ㅎ

신이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God Bless you, Mr. Rosewater|커트 보네거트|Kurt Vonnegut Jr.

트라우트와 포르노의 공통점은 섹스가 아니라 어처구니없이 관대한 세계에 대한 환상이라는 점을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실비아의 병을 가리키는 '사마리안실조증'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는데, 그 뜻은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의 고통에 대한 히스테리성 무관심'이었다....사마리안실조증은 과도하게 활성화된 양심을 마음의 다른 부분이 억압하는 증상이다.. 양심은 다른 모든 심리 기능에 "너희 모두 내 지시를 따라야 해!"라고 날카롭게 소리를 지른다. 다른 심리 기능은 양심의 지시를 따르기 위해 한동안 노력하지만, 양심은 화를 가라앉히지 않고 계속 소리 지르고, 양심이 요구하는 헌신적인 행동을 해도 외부세계는 눈곱만큼도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들은 마침내 반란을 일으킨다. 포획한 양심을 비밀 감옥에 가두고, 그 어두운 지하 감옥 위에 무거운 뚜껑을 덮는다. 그들은 더 이상 양심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달콤한 침묵속에서 심리적 기능들은 새로운 지도자를 물색한다. 양심의 입을 막을 때마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지도자, 바로 사리사욕이 등장한다. 그러나 사리사욕은 그들에게 깃발 하나를 주고 잘 보이는 곳에 소중히 걸어두게 한다. 검은 바탕에 하얀 해골과 두 개의 넙다리뼈를 교차시킨 그림 밑에 "널 지옥으로 보내주겠다. 각오하라!"는 글자가 적힌 해적기이다.  

사랑은 저만의 만족을 구하고
저만의 기쁨에 남들을 묶는다.../블레이크

만약 엘리엇이 상대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려 한다면, 구체적인 사람을 구체적인 이유로 사랑하려는 우리 같은 사람은 새 단어를 찾는 게 나을거다...예를 들어 난 아내를 우리의 청소부보다 더 많이 사랑했는데, 그 때문에 우리 시대에 가장 무시무시한 죄악인 차별을 범한 것 같은 죄의식이 드는구나.

-엘리엇이 도시의 모든 남자화장실에 똑같은 글을 쓰고 다닌다고요.
-그게 뭐였는지 기억나시오?
-네. '사랑받지 않고 잊히고 싶다면, 이성적으로 행동하라.'였어요.

-...당신들은 내가 상속받은 것을 관리하죠? 내가 아무것도 안하고 번 돈을?
-그렇다네....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고 돈은 그 고통을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나한테는 내가 쓸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이 있고요. 나는 괜찮은 음식과 옷과 거처를 사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
-...우리가 뒤를 봐주는 젊은이 가운데 해마다 적어도 한 명은 우리 사무실에 찾아와 자신의 돈을 나눠주고 싶다고 말하지. 주로 어느 명문대에서 일 년을 마친 젊은이라네. 개학의 첫 해는 파란만장하지! 젊은이는 세상에 고통받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돼. 그리고 수많은재벌이 엄청난 범죄와 결부되어 있다는 것도. 그는 저도 모르게 기독교적 양심에 사로잡힌다네...그는 혼란에 빠지고, 눈물을 흘리고, 화를 낸다네! 그리고 축 처진 목소리로 자신이 얼마만큼의 재산을 갖고 있는지 묻는다네. 액수를 얘기해주면 그는 부끄러워 어찌할 줄을 모르지. 그의 재산은 스카치테이프나 아스피린이나 인부의 덧바지에 기반한 것인데, 자네의 경우는 빗자루지. 그렇게 정직하고 유익한 사업으로 벌어들인 거라도 젊은이는 그걸 생각할 여유가 없다네. 자넨 막 하버드에서 일년을 공부했지?
-네.
-하버드는 훌륭한 대학이지. 하지만 하버드가 어떤 젊은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볼 때, 난 '어떻게 대학이란 곳에서 역사를 안 가르치고, 동정심을 먼저 가르친단 말인가?'라고 자문하게 된다네. 친애하는 번틀라인 군, 역사는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는 확실히 말해준다네. 재산 기부는 무익하고 파괴적인 행위라는 것, 그건 가난한 사람들을 풍족하거나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응성받이로 만든다는 것! 그리고 기부자와 그의 후손들은 징징짜는 가난뱅이와 똑같게 된다네.  
-자네처럼 막대한 재산을 소유한다는 것은 정말 황홀하지만 드문 기적이라네...자넨 그것을 손쉽게 얻었으니 그게 어떤 것인지 알 기회도 없었을 테지...그 돈 때문에 자넨 특별한 거야...자네가 전 재산을 기부한다면 완전히 평범한 사람이 되겠지? 자네가 천재라면 또 모르지만. 번틀라인 군, 자넨 천재인가?
-아뇨.
-음, 그리고 자가 천재든 아니든, 돈이 없으면 훨씬 더 불편하고 부자유스러워질 걸세. 게다가 자넨 후손까지도 답답하고 짜증나는 삶으로 떨어뜨리려 하고 있다네. 그건 어느 어리석은 조상이 재산을 갖다버리지만 않았다면 부유하고 자유롭게 살 수도 있었던 사람들의 전형적인 삶이지....  

당신이 어떤 사람을 알게 됐어. 그런데 아주 깊은 곳에서 뭔가가 그를 지독하게 괴롭혀...바로 ㅡ게 그의 행동을 지배하고, 그에게 비밀이 있다는 걸 그의 눈빛으로 내비치게 만들어...그게 `뛰어`라고 말하면 그는 뛰어. 그게 `훔쳐`라고 말하면 그는 훔치고, `소리쳐`라고 말하면 소리치지. 하지만 그가 일찍 죽지 않는다면, 또는 자기멋대로 다 하고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의 마음속에 있는 그것은 태엽을 감아놓은 장난감처럼 서서히 멈출거야...어느 날 당신들이 함께 일하는데 갑자기 그에게서 그 찰깍소리가 들려...그는 일손을 놓고 차분해지지. 이젠 진짜 바보처럼 보이고, 진짜 즐거워 보여. 그의 눈을 들여다보니, 비밀도 다 사라졌어. 심지어 그는 자기 이름도 즉시 대질 못해. 그는 다시 일을 하지만, 절대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거야. 그를 지독하게 괴롭히던 그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야. 그건 죽었어. 완전히 죽은 거야. 그리고 미친 짓을 하며 살 수 밖에 없었던 인생, 그것 또한 끝이 나는 거야!...이 운 좋은 개자식. 너한테도 그 소리가 났군!

생명체들이 언어를 사용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언어를 사용하면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어는 그들을 훨씬 더 활동적으로 만들었다. 텔레파시로는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 대하여 항상 대화하기 때문에, 모든 정보에 대한 일종의 일반화된 무관심을 낳았다. 그러나 의미 전달이 느리고 협소한 언어를 사용하면 한 번에 한 가지만 생각하게 되므로 계획에 따라 생각하는 것이 가능했다.

...기계의 정교한 발달로 인해 전 세계에 끔찍한 문제가 확산될 수 있는데, 그 문제를 아주 적은 규모로 해결하는 실험이었기 때문이오. 그 문제는 이것이었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때가 되면 거의 모든 사람이 상품, 음식, 서비스, 더 많은 기계를 만들어내는 생산자로서 가치를 잃을 것이고, 경제와 기술분야는 물론이고 어쩌면 의료분야에서도 실용적인 아이디어원천으로서 가치를 잃을 것이오. 따라서 만일 우리가 인간을 인간이기 때문에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근거와 방법을 찾지 못하면, 많은 사람이 종종 제안하듯 그들을 완전히 없애는 게 나을지도 모르오.

-가난해도 진취적인 사람은 지금도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소...
-...가난해도 진취적이고 적극적이라면, 그 후손은 피스콴투잇 같은 유토피아에서 살 수 있겠죠, 하지만 그곳의 정신적인 부패와 어리석음, 무감각과 나태함은 로즈워터 군의 전염병 만큼이나 지독합니다. 가난은 아주 나약한 영혼을 가진 미국인에게도 비교적 가벼운 질병인데 반해, 무익함은 강인한 사람과 나약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든 미국인을 매번 파괴합니다.

-엘리엇이 알아 낸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은 무조건 사랑을 주면 주는 대로 다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새로운 건 한 사람이 오랫동안 그런 사랑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제목에 나오는 `신이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는 두 번 등장한다.
`미친` 엘리엇 로즈워터에게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사람이 건네는 것으로 한 번,
보험판매원인 프레드 로즈워터가 보험고객에게 듣는 것으로 또 한 번.
전혀 다른 상황에서의 같은 인사에서 큰 차이가 느껴진다.

내놓고 교훈적이며 계몽적인 소설로,
작가 스스로도 읽을 사람들이 안 읽을까봐 걱정할 법한 이야기.
권선징악(^^)을 벗어나지 않는 뚝심있는 결말까지
고풍스러운(^^) 만족을 주었다.
새로운 작가와의 즐거운 첫만남.

경계도시


뒤늦게 본 덕에 1, 2편을 연달아 볼 수 있었다.
송두율이라는 인물에 대한 대한민국적 정의에 대한 물음표였던 1편에 비해
2편의 파장은 비교할 수 없을만큼 컸다.
그 합리적인 논지에도 불구하고
과연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이런 논의의 장이 될만한 곳인가 라는 회의가 먼저 들었기 때문에
내내 우울했다.
팔다리를 다 자르고서도 온전히 정체성을 지킬 수 없었던
송두율은 지금도 스스로를 경계인이라 생각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경계인이란 거리두기가 가능한 위치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는 과연 그 고통을 안겨준 대상을 끌어안을만큼의 넉넉한 사유를
지금도 할 수 있을까.

힘있는 자들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그 불합리함을 유지하기 위해 정해놓은 것이라는
우울한 법의 정의를 다시 보는 것보다
태생부터 합의일 수 없었던 규칙조차도
막연한 공포로 맹목하는 순진한 사람들의 모습이 섬뜩했다는 것이 더 충격이다.

도둑을 막기위한 법을 만든다 치자.
이상적이면서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은 도둑질하지 않고도 먹고 살도록
사회의 기반을 닦는 것이지만
세상 어디서나 가장 먼저 나오는 법은 처벌에 관한 것이다.
눈에 보이는 효과도 그렇지만 제일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예방을 위해 격리를 시도한다.
도둑의 이웃, 도둑이 잘 다니는 곳을 자주 다니는 사람, 도둑의 활동지역에 나타난 사람,
도둑과 비밀얘기를 나누는 사람.
행동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간단한 원칙은
이러한 감정적인 의심속에 묻힌다.
왜 그런데서 얼쩡거렸냐는 비난은 필수양념.

전쟁에 치를 떠는 애국자들이
호전적이지 않은 대북자세마다 제동을 거는 것,
이산가족 상봉에 저마다 눈물을 흘리는 것,
이산가족 말고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통일이 아직 국시라는 것.
이 혼란스러운 마당에 이런 영화를 찍는 사람이 있다는 것.
다이나믹 코리아...다...
이미 자멸해버린 실패한 체제이자,
이제는 교과서속에서 학문으로도 대접 못받는 공산주의가
뭐가 그렇게도 위협적이라는 걸까.
공산당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는 그만큼 자신없음을 고백하는 촌스러운 반쪽 민주주의임을
다시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37년만의 방문을 앞두고 설레기만 하던 이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다른 모든 것을 떠나 그의 얼굴이 가장 강렬하다.
아버지의 임종도 못지킨 한에도 불구하고 넘치던 자긍심에서
단 몇 달 사이, 균형까지 틀어졌던 그의 얼굴.
몇 년 사이에 관점의 차이로 바뀔 수 있는 사회적 룰이 망친 개인의 삶이라서 안타깝다.
하지만, 그 불완전한 관점이 이어져 그의 낙인이 지워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낙인의 정체성을 부정할 수 있는 정의는 살아있었을 것 같다.
그것을 누군가의 인생이 완전히 파괴되는 것으로 배우게 된다는 것이
아직은 잔인한 우리의 현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코맥 매카시Cormac McCathy|사피엔스

선량한 주민들을 다스리는 데는 힘쓸 일이 거의 없다. 정말 거의 없다. 그리고 나쁜 인간들은 다스리기가 아예 불가능하다. 아니면 다스릴 수 있다는 얘기는 내가 들어본 적이 없거나.

사람들은 그들에게 닥치는, 그들이 감수할 까닭이 없는 나쁜 일에 관해서는 불평을 늘어놓지만 좋은 일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좋은 일을 겪어도 될 자격이 그들에게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는 전해지고 진실은 무시된다....거짓만 말하고 그것을 잊는다 해도 진실은 남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진실은 여기저기로 움직이지 않으며 때에 따라 달라지지도 않는다. 소금에 소금을 칠 수 없듯이 진실을 더럽힐 수는 없다. 진실은 그것이 진실이기에 더럽힐 수 없는 것이다...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꽤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믿는 게 무엇인지 나는 결코 알 수 없었다.

진리는 언제나 단순하다. 단순해야 한다.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늦게 된다. 그것을 이해할 때는 벌써 늦은 것이다.

마치 어느 야구 선수가 언젠가 내게 말한 것처럼 작은 부상을 입어 몸이 약간 불편한 데도 오히려 더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었던 경우와 같다. 그의 부상은 백 가지 보다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부상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골라서는 안되는 책이었다. 매혹적인 제목에 끌려버린--;;
책겉장에 도배된 칭찬중에서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구성에 대한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숨돌릴 겨를 없이 끌렸다지만 나는 별로.
완벽한 번역이라면 단어사용의 묘미와 문체를 다 살려야 하겠지만
그게 여의치 않다면
나는 작가를 충분히 연구한 자신만만한 번역가의 의역이 좋다.
이 책의 성실한 번역가는
자기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까지 주석으로 달아 변명할만큼 정직한 사람이기는 하나
그 부족한 자신감으로 인하여
어지간한 단어에 다 음을 달아 거기에 주석을 붙였고,
그 결과,
달려야 하는 이야기들은 자꾸 과속방지턱에 살짝살짝 걸려 김이 빠졌다.
번역자가 이 정도면
원서를 읽어봤자 내가 그 속도감을 느낄리는 만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악한 시거,
우연히 시거의 물건에 욕심을 부린 모스,
그들에 말린 보안관 벨,
어떻게 추적해서 어떻게 서로를 찾아내는 지의 과정은 모두 생략된 채
장면으로 바로 뛰어들어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묘한 소설.
하지만
인물 누구에게도 응원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기에
즐거운 긴장은 아니었다.
얼추 읽기에도 이 코맥 매카시라는 작가는 매우 독특한 스타일의 작가인듯.
근데, 여전히 모르겠다.
왜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일까.

Capitalism: A Love Story|2009

팔짱끼고 불량하게 고백하시는 거삼? ㅋㅋ

마이클 무어는 정말 미국을 사랑한다.
미국 밖에서 혹은 미국내의 냉소적인 지식인들이
미국의 천박한 자본주의를 씹고 뜯고 욕하고 침뱉지만
그는 사랑하는 애인과 그 애인을 망치는 적들을 성실히 발라내어
그의 애인을 돌려달라고 열심히 부르짖는다.

분노가 시작이라고는 하지만
요즘은 그 분노에조차도 카스트가 생기는 것 같다.
머나먼 '그 분'들께는 가닿지 못하고
만만히 근처에 서 있는, 비슷한, 혹은 조금 나은 사람들에게
폭탄처럼 터지는 가난한 분노들.
가진 것 두른 것 없어서 생이빨을 대신 뽑은 엠씨몽의 가난한 비겁에는 차라리 동정이 어울린다.
분노는
머리칼 하나 뽑는 고통도 없이 편하게
험한 길은 피해가고 고운 길을 대대손손 이어주는
진짜 적들에게 정조준 되어야 옳지 않나.

은행이 주는 1000달러를 받아들면서,
퇴거명령을 수행하는 직원에게 속을 쏟는 강제철거민들을 대신해
마이클 무어는 그 적들을 찾아가 선전포고를 한다.
아무 법적인 힘은 없겠지만
범죄지역 띠를 두르고
몰수를 하겠다고 빈자루를 들고 덤비는 그의 모습이
그래서 멋있다.
 

사실 너무나 기본적인 거다.
법이라는 합의적인 개념을 편리하게 이용하기 위해 법을 바꾸는 사람들에 맞설 때
그 법의 테두리에서 싸우는 것만이 정의가 아니라는 것은.
그런 법을 만들어 잉여를 위해 착취하는 자본에게
살집을 일터를 생존을 순순히 빼앗겨줄 필요는 없다는 것도.

인상 깊은 대사들이 있었다.
은행강도 말고는 안 해본게 없는데 지금은 못할 것도 없을 것 같다고.
은행은 하는데 왜 나는 하면 안되냐고.
계약같은 건 한 일도 없이 일만 열심히 했을 뿐인데 그 계약의 피해를 왜 우리가 져야 하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얻는 것을 위해 우리는 싸워야 했다고.

미국 이상으로 진창에 구를 준비는 되어 있으면서
그나마 그만큼 번듯이 서지도 못한,
그래서 미국의 자본주의가 악이라면
한국의 자본주의는 그냥 병신이다.
이제 미국의 병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기로 한 마이클 무어의 이야기는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1936년에 이미 노동자들을 용역깡패들에게서 보호하려고 공권력을 투입한 대통령이 있던 나라이기에
그 유산이 아직은 미국을 조금 버티게 해주는 것일까.

애국을 해도 국가는 계급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 유리한 법망조차도 어겨가면서 독과점으로 번 돈으로 기부하는 빌게이츠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상징일 수 없다.
직원들을 죽이고, 세금은 떼먹고 기부하면서
안녕하시냐고 광고하는 삼성은 역겹다.

도움과 격려의 손길은 늘 가까운 곳에서 먼저온다.
애국보다는 범지구적계급연대가 더 현실적인 꿈이 아닐까.

이번엔 극장개봉을 못했는지
생소한 제목에 마이클 무어의 이름을 발견하고 놀랐다.
전과 다르게 이번엔 관객에게 호소하는 마이클 무어를 보면서
전보다 범위가 넓어진 그의 적들의 거대한 힘을 느꼈다.
농노보험까지 들고 있다는 미국의 기업들.
참 니들 보통이 아니긴 하다....

도쿄|2008


Interior Design
꿈을 펼치는 사람 옆에서 구박은 받지만 성실히 살고 싶어하던 히로코가
자신의 꿈을 이루는 이야기.
장편이었던 수면의 과학보다 차분하면서도
재미있었던.

Merde
어느 미친 이방인을 바라보는 시선.
불편함과 공포가 이유라 하더라도
그런 이유로 무한제제가 합당할까?
도쿄까지 와서도 하수구에 출몰하는
개고생 전담배우 드니 라방에게 박수를.
라방 오라방 여전하신 포스^^

흔들리는 도쿄
가장 지루한 봉준호 영화가 단편이라니 ㅋㅋ....
그것도 미셀 공드리나 레오 카락스처럼 '-스러운' 느낌 조차 없던 밋밋한...
김씨표류기같던 엔딩까지도.

노다메 칸타빌레 Vol.1|のだめカンタービレ|2009

애처롭도록 높이 솟은 광대뼈 언덕이 그나마 희미하게 보이는--;;


그렇게 열광했던 노다메-내 그간 너를 위해 해준 것이 없어 미안했는데
그나마 이렇게라도 기회를 주는구나^^
DVD라도 사고 싶었지만,
비싼 건 둘째치더라도
한글자막도 없는 정품이라니 너무 상징적이기만 하잖아.
차이코프스키와 슈만도 좋았고
큰 화면에서 보는 유럽도 좋긴 했지만
가장 큰 의미는
아무래도 빚을 갚는 것이었어--;;
하지만 그렇게 궁금한 예고편을 남기고
2부 개봉예정은 잡지도 않아버리면
사람들이 다시 어둠의 경로를 찾게 되지 않을까.
지금 꾹 참고 있지만, 나도 좀 힘들군...
제발 한번 더 빚을 갚을 기회를 주기 바래,
어서~

큰 화면에서도 기죽지 않는 노다메 필살기
첫등장부터 콕 찍었는데 유럽편을 거쳐 영화까지 엄선된(^^) 쿠로킹

탈주|2009

시작은 도발이었지만 결국은 지능적인 탈영방지캠페인^^


람보류의 영화들이 자주 욕먹는 항목인
총을 몇 발을 맞든, 필요한 동안은 죽지 않는 주인공,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심지어 경찰이 손만 뻗으면 잡힐 것 같은 거리에서도
총맞은 다리로 도주에 성공하는 주인공,
언제나 삽질하는 조연들의 총질과
언제나 명중하는 주인공의 총질.
결말이 짜잔하고 나타나기 전까지
주인공들의 모든 도발은 성공.

이건 예산이 적다 많다의 문제는 아니다.
혹시
독립영화는 원래 관객이 적다는
든든하도록 절망적인 환경에서
만들기만 하면
그래도 애정어린 격려를 보내는 이들하고만 친하게 지내는 동안
그 관대함에 길들여진
위험한 무성의가 아닐까.
 
욕의 방향이 군대만을 향하며
영화 속 '-설'일 것 같았던 얘기들이
영화 이후 놀랍게도 사실로 뉴스를 탔다.
그래서 끊임없이 남과 다른 관심사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별로 딱지 붙이면서 보고 싶진 않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도 같으니깐!)
좀 아쉬웠다.
뭐, 상업영화들이 이보다 엉성하면서도
이보다는 돈벌이를 잘 할 상황을 생각해보면
좀 억울하긴 하겠지만,
반대로,
뚝심있는 관심사를 가진 사람에 대해
역으로 더 큰 기대를 갖는 관객이 있을수도 있다는 것까지
신경써 줄 그날이 오기를 바랄 뿐...
진이한은 영화가 훨씬 나았다, 드라마와는 비교도 안될만큼.

EDIF|위대한 침묵|Into Great Silence


왜 고행과 수도에는 항상 '침묵'과정이 있는지 알겠다.
지켜보는 것 조차도 어렵다..정말.
그들이 대화하는 잠시 그 경건함이 평범함으로 바뀌는 순간을 보고 나니
침묵은
경건해지고 싶은 인간들이 깨달은 마지막 통과의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욕망의 가장 손쉬운 발산.
아마 굳게 다문 입술을 다스리는 그들은
그 욕망을 승화시키는 방법도 배우고 있으리라.
어찌보면
절대의 사랑을 일찍 깨달아
영혼까지 닦는데 인생을 다 써버리겠다는
또 다른 이기적 결심의 주인공들일 뿐인데,
해를 끼치지 않는다는 것,
욕망으로부터의 자유를 사는 본보기로서
어느 순간 누구나의 삶에 크게 다가간다는 것이
과연 그들에 삶에 대한 합당한 평가인지......
사계절을 나는 그들의 일상은
텃밭을 가꾸며 사는 시골노인들의 일상과 다르지 않았다.
그리고 카메라를 응시하는 주름진 얼굴의 수도사들도
그 노인들과 다르지 않았다.
얼굴은 삶을 따라가며,
그 삶의 흔적은
어디, 무엇이 아닌
어떻게에 있는 것임을 살짝 일러주고 간다.
보기에는 무척 기나긴 시간이기는 하지만--;;

EIDF|Sicko|2007


보통은 낄낄거리다가 마지막에 정리 좀 하는 것이 마이클 무어영화에 대한 보통 나의 태도이지만,
이번에 좀 눈물이 났다. 그들에게 필요한 것은 자신의 삶을 부정하지 않아도 될만큼의 치료였을 뿐인데.
 
무상급식 때문에
자유주의 미국의 맹방 혹은 호구인 대한민국에서도
이젠 낯설지 않은 사회주의 논의.
공산주의가 뿔달린 공산당의 사상이라서가 아니라,
그 우아한 목적은 현실적으로 실패하고
최악의 억압수단으로 전락해 처절히 패배했듯,
이젠 더 증명할 필요도 없이 우월한 제도로 인정받은 민주주의도,
누구네 집에서 빌려왔든
좋은 것을 잘 먹여 키우면 되는 것이다.

이따금 무어의 영화속에 등장하는 미국시민들의 순진함과 무지함이
아마도 안티 마이클무어 세력의 힘이 아닐까 짐작은 되지만,
사실 미국의 힘은
이렇게 미국을 사랑하고
사랑을 열렬히 표현하는
개별적 애국자들에게 있다고 본다.
수사로 치장하며 연기하는 상원의원들보다는
사람들의 삶에 직접적인 희망과 변화를 주니까.
그의 블랙유머가 냉소적으로 보일진 몰라도
냉소주의자는 이렇게 돌아다니지 않는다, 팔짱을 끼고 바라볼 뿐.
호기심 많은 낭만적 애국주의자랄까..?

과감한 과장과 편집을 쓰면서도
슬프고 분한 상황의 본질을 흐리지 않으며,
사람들의 집중력을 꼭 잡아두는 그의 유머감각도 여전하다.
이제 몇 편의 다큐를 통해 그는
그의 이름을 빌려 보험사 CEO에게 당당히 요구하는
생활속의 후계자까지 탄생시키지 않았나, 하하하^^

정말 구석구석 어디하나 돈에서 자유롭지 않은
자본주의 순수혈통이자 병폐의 전시장인 미국에서 나고 자라
촘스키와 하워드진이 끊임없이 비판하는
부실한 시스템의 교육을 받았는데도
911테러현장에서 망설임 없이 뛰어들고,
미국민으로서의 자의식과잉으로 보일 때도 있지만,
진심으로 전세계 재난과 재앙의 희생자들에게 선한 마음을 보내는
정의로운 개개인들의 맥이 끊기지 않는 것도 신기하다.

그래서 공식적으로는
"정의가 이긴다"거나 "착하면 복을 받는다"라는
냉소주의자들의 반찬 같은 명제가
계속 존재하기를 바란다.
그런 정의로운 국가나 조직은 영영 세상에 없을 지 몰라도
그래야
그 명제가 거짓인 현실에서
그 좌절에 똑같이 분노하며
참을 이루려고 노력하는
아름답고 부지런한 사람들이 또 태어날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