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층의 악당|2010


영화와 가장 잘 어울리는 것 같은 베스트 포스터
데뷔시절의 강혜정을 닮아서 반가운 매력소녀도 함께

달콤살벌한 연인때도 그랬지만
다채로운 범법자의 내면이 펼쳐지는 것 같다.
도덕이 우위에 서고 법이 그 발치로 물러나는 느낌이랄까.
사실 마구 죽여대던(본인은 다 피치못할 사정이 있었지만) 살벌한 그녀에 비하자면
뭐 이 정도는 애교이긴 한데
암튼 만나기 힘들어도 있으면 참 좋겠는
다양한 천생연분 탐구생활이랄까.
첫 영화의 파격이 워낙 발칙했고
박용우의 그 초단위로 들락거리는 감정연기가 강렬했던 터라
그때 만큼의 신선함은 아니었지만
즐거운 두 시간이었다.
오랫만에 한석규와 김혜수를 보고 웃을 수 있었으니
그 기쁨이 제일 클지도^^
근데 이상하지.
독특한 천생연분-웃긴데
어딘가 쓸쓸함이 전해져오는 것도 같다.
김혜수의 파워인가...
영화와 달리 한석규 스틸만 보면 절대 코미디 같지 않은데
유일하게 스틸조차 정복한 명장면-엄마손파이 봉지가 마약에 등극하신듯^^
발랄한 리듬을 이끌고 간 김혜수-타짜 이후의 김혜수는 김혜수2
코미디 와중에 한번 돌아보게 되는 순간.
내가 죽을 것 처럼 힘들어서 손을 내민 단 한 사람이
같은 순간에 똑같이 죽도록 힘들 수도 있다는
대단한 배려의 씨앗......

실크로드를 타고 스페인 가는 법


훌쩍 떠난다는 것은 이제 일상의 반대말이다. 가끔은 꿈이라는 뜻이 되기도 한다. 그러니, 일단 발걸음을 옮길 때는 되도록 제자리에서 멀리, 사람의 기척으로부터도 멀리 나서고 싶어하는 것이 당연하다.  
여기, 네 사람의 여행일기가 묶인 네 권의 책이 있다. <서역의 달은 서쪽으로 흘러간다/김영현>, <모독/박완서>, <사막의 태양/최수철>, <들끓는 사랑/김혜순>.
 어느 제목 하나도 기행문 같지는 않은 이 책들은, 문단에서 주목받는 네 명의 작가가 디뎠던 먼 나라에 대한 얘기들이다.

세상의 일부임을 사랑하게 되다

‘모든 일에 시시하고 심드렁해져 있’던 40대 초반의 김영현은 마지막 남아있던 꿈, ‘막막한 사막'을 찾아 실크로드 여행 길에 오른다.  
처음 중국은 그에게 익숙했던 자본주의의 유년을 보여준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 유적지를 돌아보며, 또 사람들을 만나며 그가 적는 짧은 독백들은 하루하루 마음을 열어 여행지를 느끼게 된 부지런한 여행자로서의 그를 보여준다. 무조건적인 기대도 없고, 사소한 비교도 없이 호흡을 고르게 된 그는, 다른 땅에 사는 사람들이 갖고 있는 나름의 사는 법을 자신의 잣대로 재서는 안 된다는 것을 새긴다. ‘그것이야말로 식민지시대 때 남의 민족이 살아가는 삶의 방식을 미개시했던 침략자들의 잘못된 사고방식과 같은 것'이라는 깨달음 때문이다.
 하지만, 모든 것이 큼직큼직한 그 이국이 그에게 남긴 마지막 감상은 ‘별들'이다. 텐산 산맥의 천지에서 올려다 본 그 ‘우주의 바다'에서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아닌 일부임을 깨달으며, 생에 대한 사랑을 준비하는 소설가가 된다.

글을 쓴다는 것이 '모독'

이미 네팔을 두 번 다녀온 적이 있는 박완서는 <모독>에서 특유의 문체로 처음가본 티벳과 네팔의 정취를 담담히 또 세세히 쓴다.
생김새가 ‘우리보다 더 우리나라사람 같이 생긴' 티벳 사람들의 나라 티벳은, 종교 색이 그대로 녹아 있는 자연과 사람들을 통해 세상의 시작과 끝을 평화롭게 느껴볼 수 있는 가장 좋은 장소인지 모른다.
전 세계의 불교성지로 추앙 받는 티벳 땅과 그에게는 정감 어린 곳으로 느껴질 만큼 친숙한 아름다운 고산국 네팔의 분위기를 그는 성긴 시선으로, 그러나 꼭꼭 씹어 ‘박완서식 수다’로 적어 놓았다.
그가 말하는 ‘모독’이란 보이는 대로 느껴 쓴 자신의 이야기를 의미함이 아닐까.

태양을 안고 돌아온 이야기

최수철의 이집트여행기는 처음부터 끝까지 매혹과 경이에 사로잡힌 기록이다. 오랜 문명의 발원지이면서 신화 같은 역사를 가진 이집트의 신비는 누구에게도 커다란 환상을 불러일으킬 만 하다.
카이로에서 시작된 그의 기행은 정돈되지 않은 유물에서 느낀 혼돈으로 시작했다. 영혼불멸과 사후세계가 물질적인 집착과 어떤 통로로 연결되어 있다는 그의 이해는 겸허한 여행자가 아니었다면 놓치고 말았을 신선한 해석이다.
이름만으로도 마음을 사막으로 잡아끄는 도시들-멤피스, 룩소스, 테베와 네크로폴리스 그리고 알렉산드리아를 머물러 돌아온 한달 여정의 끝에서 그는 이집트인들의 현재와 그 속에 위풍 당당히 선 역사의 힘에 깊이 끌려 그들의 태양을 안고 돌아오게 되었노라고 쓰고 있다.

도냐 끼호타와 판자의 재미난 모험여행  

한 시인이 중학생 딸을 데리고 스페인으로 향한다. 값싼 항공권 덕에 28시간이나 걸린 ‘공중철마'안에서 무료함을 달래던 그녀는 중세 기사에 대한 환상에 사로잡혀 마침내 ‘돌아'버린 ‘돈끼호테'를 떠올렸다가 그처럼 ‘도냐 끼호타’라고 자신의 이름을 짓는다. 그리고는 자신의 어린 딸을 ‘판쵸'아닌 ‘판자'로 삼아 여행을 시작한다.
도냐 끼호다의 스페인은 가만히 있는 적이 한번도 없다. 가우디의 아파트, 고야와 피카소의 그림, 플라맹고, 알타미라 동굴, 거기다 열정적인 거리의 연인들까지, 셀 수도 없이 많은 스페인의 얼굴들이 불쑥불쑥 솟아 그녀와 판자를 스페인이라는 나라에 ‘귀신 들'게 만들어 버린다.
그 ‘스페인의 태양과 끓어오르던’ 풍경들 때문에 결국 도냐 끼호다는 ‘머리를 산발'한 채 고향으로 돌아왔다.
시인 김혜순의 여행기, <들끓는 사랑>- 마지막 장을 넘길 때까지 이 엉뚱한 가이드는 종횡무진 재미 가득한 모험여행으로 독자를 이끈다.

이  네 권의 책은 작가들의 글만큼이나 생생한 사진들이 읽는 사람의 시선을 잡아 끌면서, 대륙의 정취를 물씬 풍기는 실크로드로 시작해 티벳과 네팔을 지나 이집트 사막의 바람과 함께 스페인의 열정을 느끼는 색다른 여정으로 안내한다. 각기 다른 정서와 눈으로 적어간 여행기들은 훌쩍 떠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에게 짧은 경구를 들려준다, 여행의 감동이란 그 감동을 준비한 사람의 몫이라고.

<서역의 달은 서쪽으로 흘러간다/김영현>, <모독(모독)/박완서>,
<사막의 태양/최수철>, <들끓는 사랑/김혜순>.
출 판 사 : 학 고 재



그림 속으로 들어간 유럽 미술관|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1,2/이주헌/학고재

미술관은 우리에겐 그리 대중적이지 않은 장소다.  대중적일 수 있는 곳이지만 대중들이 선택하지 않는다. 미술관이 없이 철철이 바뀌는 전시장이나, 고증자료의 무게로 박물관에 자리한 옛 그림들의 구경꾼이기가 십상인 우리들의 미술관 이미지는 중세유럽의 성당 같은, 아름답고 견고한 외장으로 기억되는 `건물’ 같다.

이주헌이라는 미술평론가는 그런 우리의 손을 잡고 거리를 좁혀 박물관으로 데리고 들어간다. 그림을 보다가, 그림을 그리다가, 이제 그림만을 생각하는 직업을 가진 그는 50일 동안 부지런히 유럽 박물관을 돌면서 감상을 즐긴다. .
그는 출발에 앞서 ‘유럽의 주요 미술관을 일목요연하게 개괄한 뒤 한 사람의 한국인 미술평론가로서 유럽미술의 특질을 주체적 시각으로 조망’했음을 큰소리로 밝히고, ‘우리의 감성과 언어로 해석해 보려 노력’했다고 자부한다.

이제 미술관에 들어서는 그는 평론가라는 직업을 가진 사람들과는 좀 다른 냄새를 풍기려고 한다. 영국의 테이트 미술관 뒤에 ‘관능의 그림자’를 달아 제목으로 붙여놓더니, 대영 박물관에서는 혼백들과 대화를 나누는 척 한다. 의도가 빤히 보이건 말 건을 떠나 같은 얘기라도 재미있게 해주겠다고 마음먹은 태를 확실히 낸다. 따라다니는 사람으로서는 공감을 안 하더라도 새롭게 느낄 수 있는 얘기들이다.

이주헌은 감탄을 잘한다. 여행을 다니는 누구나 감탄이 쉽지만 그의 것은 느낌표가 요란하게 따라붙지도 않고, 또 논리적이다.  그래서 수도 없이 ‘최고의 작가’를 거론하고 `천재’를 들먹거려도, 그의 설명을 따라가다 보면, 우리가 지금껏 이름이나마 기억하고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훌륭하고 위대한 작가였는지를 새삼 깨닫게 되는 것이다.    

그가 정리한 ‘사람은 경험을 최고로 신뢰하되 그 경험도 근본적으로는 그의 지력에 크게 영향 받는다’는 명제가 있다. ‘아는 것이 힘이다’와 ‘백문이 불여일견’을 합친 것인데, 원래의 것보다 표현은 좀 복잡해졌지만 생각의 단계는 더 짧게 정리가 된다. .
그래서 그는 아는 것이 모자라는 우리들에게 피카소의 어록을 보여주며 특이함 이상이 아니었던 피카소가 천재였다는 데에 동의하게 만들고 '뒤러'라는 작가가 그린 어느 독일인의 초상에서 '이항복의 초상'이 주던 느낌을 잡아 시대의 격변이라는 비슷한 느낌을 잡아내게도 한다. 이렇게 걸어다니면서 만나는 여러 미술관의 그림들은 그의 조단조단한 얘기들과 함께 가장 잘 어울리는 옷을 입고 나타나는 듯이 느껴지기도 한다.

아마 이런 부분들이 그가 문두에서 밝힌 시선에 대한 결심이 반영된 부분일 것이다. 많은 숫자가 번역서인 서양 미술관계사를 통해 ‘여지껏 남의 눈으로 유럽미술을 보아왔다’는 것을 깨달은 이주헌은 `이제는 우리의 눈으로 보고 우리의 식성대로 판단할 필요가 있’기 때문에 ‘우리의 눈 만큼은 주체화할 필요가 있다’고 마음먹고 보편성이라는 아주 도량이 넓은 그릇에 기대어 그림을 바라보는 모습을 보여준다. 그림을 감상하는 것보다 그림을 통해 작가의 영혼을 만나고 있다는 생각이 자주 드는 것도 아마 공감에서 오는 이해가 보편성에 이르기 때문일 것이다.

이주헌이 밝히는 이 책의 의미가 하나 더 있다. 이 책이 ‘가족여행의 기록’이기도 하다는 것이다. 그는 ‘목적이 분명한 여행의 경우 가족이 함께 가는 것은 인생이라는 거대한 파도를 헤쳐 나가는 가장 가까운 인간들 사이의 팀웍 다지기에 특별히 도움이 되는 것 같다’면서 ‘함께 곤경을 겪고 함께 격려하고 같은 목표를 나누다 보면 가족 간의 이해와 유대는 더욱 돈독해 질 수밖에 없다’고, 최근 새로운 바람으로 불어오는 테마여행겸 가족여행을 아주 실속 있게 다녀온 한 사람으로서 멋진 소감을 밝힌다.

가족들이 함께 갖는 여행이야기가 간간이 끼어 들어 좀 더 편안히 유명작품들을 느낄 수 있게 해주는 이주헌의 ‘50일간의 유럽미술관 체험’은 마치 미술관이 그대로 화폭에 들어 있는 것 같다.
처음에 그가 일러준 대로 그 화폭을 들여다보면 이 책을 덮을 무렵 그의 아들 ‘땡이’처럼 ‘무용화가’를 꿈꾸게 될지 모른다.

부당거래|2010


먹이사슬의 재구성
(진짜 경찰청장 같은 특별출연 이춘연-근데 청렴강직한 분위기는 아님^^)
여기까진 말 몇 마디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우아한 인생들
(물론 왕언니는 발랄한 방문 한번으로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셔^^)
추신:저도 한잔 받아보고 싶습니다, 그 특이한 맥주!
여기서부터는 몸 좀 팔고 비위 좀 상해야되는 땀 좀 내는 인생들:
완벽한 인텔리 외장과 스펙에도 인간자체가 양아치인 검사 주양
자질과 재능은 있지만 얄팍한 반성밖에 할 줄 모르는 반장 최철기    
야누스-민간인들의 구토의 대상
(더한 것들 있는 거 알지만, 당당히 억울해할 입장도 아닐테니...)

흔히 경제력의 피라미드를 그리지만
부당거래를 보고 있자니 양심의 피라미드가 떠올랐다.
세상이 망하지 않고 돌아가는 것은 불공정하게도
맨 아랫칸 약자들의 양심이 세상을 받치고 있는 것이 아닐까-하는.
영화속의 인물들은 힘없고 빽없는 순서대로 죽으며
그리고 흔히들 '주류'라 부르는 동네에 끈을 단 인물들은 살아남는 것 뿐 아니라 '건재'하다.

영화는 진창속에 구르는 인물들의 사투의 현장이라서
우아하게 말 한 마디로 해결 가능한 신분의 인물들은 모두 잠깐 스치듯 등장할 뿐이다.
사실 보이는 현상대로 민간인들의 일상에서는 존재감 조차 없는 그들이
실은 모든 것의 시작이자 끝이기도 하다는 것이 적나라하게 드러난다.
그 꼭대기에 앉아있는 사람들은
정전후의 어느 장군들처럼 나라를 위해 목숨바칠 전장에 나가본 적도 없고
그저 벙커에서 사병들을 내보낼 명령만 할 뿐이며
아수라장은 겪은 적도 겪을 일도 없다.
소명없이 총알받이가 되는 사병들이 요행이 살아돌아와 트라우마에 시달릴때도
그들은 그저 하던대로 핏방울이 튀지않은 손에 묻은 피는 볼 필요도 없이 하얀 쌀밥을 먹으면 된다.
각자의 발치에 총알받이로 쓸만한 누군가가 다 있다는 건
그 피라미드가 두툼한 벽돌이 아니라 낱장이 켜켜이 자리잡은 모양임을 의미한다, 슬프게도.

요즘이야말로 검찰이 최고의 직업이란 생각이 든다.
누구에게나 칼을 들 수 있으면서
지들끼리는 절대 껴안아주며
'가오'죽을 일 절대 없는 신의 직장.
잠깐 치부가 드러났지만
비리인간이라 하더라도 어느 누가
검사부모, 검사자식을 진심으로 수치스럽게 생각할 것이며,
별의별 동료를 조폭문화로 감싸안는다고 해서
검사가 사회적으로 천대받는 직업이 될까.

읽다만 칼폴라니의 거대한 전환에는
힘은 스스로 자정하거나 제어하는 법이 없다는 말이 나온다.
평화가 유지되는 것도 비슷한 수준의 힘이 서로 견제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런면에서 서로의 이익을 위해 싸우더라도 최소한 성실하고 치열해야한다는 숙제가 있는 셈이다.
부당거래는 그저 에라 이 더러운 세상으로 끝나지 않았다.
힘과 권력을 가졌다는 게 비난의 대상이 아니라
성실히 일하면 원하는 걸 얻을 수 있는데
쉽게 조급하게 제 몫의 지도를 그려놓고 달려가는
불성실한 직업인들의 세계에 대한 정당한 비판을 했다는 건 퍽 세련되어 보인다.
업종에 관계없이 유난히 직업인, 생활인의 인물들이 많이 등장해서 확실히 대비가 되었던.
처음엔 농담같았던 단결의 힘이 만드는 결말도 좀 투박한 맛은 있지만 확실히 힘이 있다.
그들은 정의고 나발이고, 진실이고 나발이고 보다는
자타공인하는 개새끼를 참을 수 없어 응징한다.
개새끼가 어쩌다 개새끼가 되었는 지, 진실은 뭔지 신경도 안쓴다.
하지만, 왜 그러면 안되는데라는 정서적인 교감,
그리고 혹여 심하게 분노할 관객들의 속터짐을 미리 방지해주는 서비스 정신으로
'쌈빡함'의 여운을 강렬히 남기고야 만 것이다.

새로운 연기열전을 보여준 류승범과 황정민.
사생결단과는 또 다른 조화였다.
특히 능글맞아진 승범-정말 남자가 되어 가는 것 같은데 난 왜 아쉬울까^^
류승완-꽤 여러 편을 봤고, 좋기도 했지만,
죽거나 혹은 나쁘거나를 압도하는 영화는 이번이 처음~!
예고편과 포스터가 오히려 유일한 흥행의 걸림돌(^^)이 될 부당거래.
나도 입소문 아니었음 안봤을 거라고~!

난 무기력한 음모론을 정말 싫어하지만,
진짜로 저런 일이 예전에도 있었고
지금도 어디선가 벌어지고 있을 게 아닐까 우울한데
그런 와중에 가끔 차라리 영화속 현실이 부러워질 때가 있다.
놀라운 외모변신까지 보여준 이성민.
특별히 의로운 검사는 바라지도 않는 내 입장에서.
특별히 몰상식하지 않은 '이 정도' 검사로 보였다.
이 분도 진짜 명품 배운데, 곧 한방 터지고 말 것 같아.
부당거래의 미덕은 흥미진진 스토리 속에
흥미진진 배역들과 흥미진진 배경이 함께 간다는 거다.
대사는 좀 넘치는것 같았지만 무척 사실적이었던 경찰청.
'-사'자 들어가는 직업인이자 생활인인 국선변호사, 검찰수사관도 그렇고.
이젠 얼굴만 봐도 웃기는 송새벽의 귀여운 무릎인사 기타 등등.
그리고 뜻밖의 그림.
이 가난한 가족의 오후 정경을 보는데 불쑥 눈물이 났다.
저 모녀의 고맙습니다-도 그렇고.
몸싸움에서 보여준 액션소질은 그동안 갈고 닦아왔다 치더라도
류승완의 미적감각까지 다시 보였다, 이 동네 장면들은...

****두번째 부당거래 감상
처음 볼땐 몰랐는데 놀라운 음악의 힘을 발견.
뒷부분이 좀 길게 느껴지는 것이 다시 보니 감독판 같은 느낌도 들었다.
편집이 좀 더 날씬해진다면 류승완도 승천하리라~~
엄청난 캐릭터들이 향연이었던 것은 새삼스러울 것 없지만
어디선가 굿펠라스의 냄새가 솔솔-나쁜 놈들은 약속을 지키지 않는다는!
그러니 무조건 믿고 흔들리지 마시라는 현실적인 교훈^^

녹색광선|Le Rayon Vert|The Green Ray|1986

왜 만나는 사람마다 붙들고 우는 지, 그 징징거림이 짜증나기도 했는데
결국 나름의 그 적극적인 노력으로 끝장을 본 바람에 그녀는 행복한 결말의 주인공이 된다.
적당히 시도해보다가 계속 꽝이면 포기하는 게 인지상정인데
결국은 끈질긴 노력에 보상이랄까.

차분히 얘기가 진행되는 동안 서서히 주인공에게 다가가는 카메라,
그녀의 일상을 벗어난 휴가를 일상처럼 담담히 따라가는 이야기.
영화에 등장하는 소설에 흥미가 생긴다.
홍상수 영화를 떠올리게 한다는데
내겐 홍상수가 더 재미있는 걸...

알렉산더 멜니코프 피아노 리사이틀


스비아토슬라브 리흐테르라는 이름, 슈베르트와 브람스의 선곡으로도 기대만발이었던 공연.
빈자리가 많았던 것이 의외였다.
또 허둥지둥 도착하는 바람에 자리에 앉자마자 시작된 방랑자환상곡에 깜짝.
리흐테르를 대신한 적도 있다고 해서 비슷한 분위기를 기대했는데
멜니코프는 리흐테르보다 훨씬 부드럽고 가볍고 화려했다.
리흐테르가 좀 단단한 느낌에 어딘가 사색하는 듯하면서도 씩씩한 방랑자였다면
멜니코프의 방랑자는 햇빛쏟아지는 숲속에서 나뭇잎의 물방울을 튕기기도 하며 걷는
더 자유로운 한량의 느낌이랄까.
강약의 대비가 큰 감성때문에 그랬는지도.
힘차게 내달릴땐 잠시 리흐테르의 CD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이 들때도 있었지만.
가장 인상깊었던 건 소리방울에 싸인 것 같은 영롱한 음색.

어딘가 묵직한 소리로 기억되던 브람스인데 멜니코프의 브람스는 그보다 여린 느낌.
피아노 연주를 들을때면 악기 하나가 오케스트라라는 말이 실감나는 꽉 찬 느낌이 신기했는데
멜니코프의 브람스는 악기 혼자라는 것이 좀 실감났달까. 살짝 허전한 느낌도.

쇼스타코비치는 의외의 발견이었는데
1시간이 넘게 이어지는 연주도 대단했지만
멜니코프와 웬지 잘 어울리는 느낌이었다.
오늘의 선곡 중 단연 제옷처럼 들렸던.

정중하게 인사하며 두 곡의 앵콜을 연주한 멜니코프.
좀 깐깐해보이기도 했지만 단정한 사람으로 기억될 것 같다.
겨울과 가을을 오가다 잠시 가을 날씨로 돌아온 덕에 가을향이 물씬 나는 연주회가 되었다.
겨울이었다해도...따뜻하게 기억되었을 음악이긴 하지만.

라바야데르|유니버설발레단|2010


민망하지 않게 발레리노들의 도약과 점프를 즐길 수 있는 편안한 의상,
코끼리(^^)까지 등장하는 비범한 스케일,
인도라는 독특한 배경.
볼거리 충분한 발레였다.
기백없는 용사 솔로르는 좀 맘에 안드는 캐릭터였지만
발레리노의 매력은 물씬~
직업도 댄서인지라 기대했던 주인공 니키아의 춤은
생각보다 화려하지 않았지만,
가볍고 유연한 움직임은 충분히 멋있었다.
발레줄거리가 좀 구리다고 생각했었는데
여기서는 공주와 댄서의 계급장 뗀 나름 육탄전이 등장한다^^
울고 불고 모략하는 것에 그치지 않고
완전한 승리를 위해 싸우며
기죽지 않고 덤벼드는 두 처자들의 역동적인 모습이
독특하게 보였다.
간간이 해설자막이 보였는데
예를 들면 '너를 사랑한다' 다음에 바로 '안됩니다' 다음에 '죽이겠다'의 자막이 뜨는 것.
하하하-이래서 발레는 대사자막을 넣지 않는가 봐.
너무나 저돌적인 스토리가 아닌가~
주인공들 말고 사원에서 일하는 남자가 있었는데(이름 까먹음)
가벼운 건 발레리나 같고 힘찬 점프는 남자같아서
인상 깊었다.
우리나라에 발레단이 하나가 아니라는 사실이 새삼 놀랍기도.
좋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