U17 월드컵

숙취로 본의 아니게 일찍일어 났다가 우연히 발견한 여자축구.
내가 보기 시작한 무렵은 후반 끝무렵.
녹화인줄 알았더니 생중계라기에 결과나 보자 싶어 시청.
청소년부는 아동보호 차원에서 연장전을 없애고 그냥 승부차기를 하게 하는 게 어떨까 싶을 정도로
일본이나 한국이나 선수들이 어마어마하게 힘들어 보였다.
하이라이트에서는 그렇게나 멋진 슛을 보여주던 선수들인데.
결국 승부차기로 이기고 시상식을 보는데...
난 정말 이 발랄한 소녀들이 부러워졌다.
사진 모두 www.fifa.com

이겨도 울고 져도 울고.
헝그리정신에 푹 절여져 `한`없는 운동은 없다는 걸 늘 보여주던 안타까운 광경은 사라지고,
월드컵우승이 얼마나 어마어마한 건지 나보다 훨씬 잘 알만한 전문가들께서
경기 끝나자 활짝 웃으며 신나게 우승을 즐기고 있었다.
게다가 감격의 도가니에 빠져 실신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것 같은 3관왕의 여민지까지.
더 보기 좋았던 건,
준우승 일본팀이 입장할 때, 즐겁게 반겨주던 모습이었는데
원래 서로들 장난치고 잘 논다고 캐스터가 얘기를 덧붙였다.

그래, 구질구질한 눈물따위는 늙수레 시청자가 촌스럽게 흘려줄테니
언제까지나 밝고 명랑하게 질주하시게들~

요즘처럼 단체전신성형미인들의 등장으로 어지러운 때에는
민낯 축구소녀들이 아이돌보다 더 이쁘더라.

발레|라이몬다|국립발레단


정지동작이 많아 주인공들이 특히 어려웠을 것 같은 공연.
몸을 도구로 하는 표현의 최전방예술에서 내면연기를 해야하는 것 같달까.
그러다보니 초초특급일 것같은 무용수들의 연기를 보면서도
흔들릴까 조마조마 하기도 했던.
볼쇼이발레단원들이 주연을 맡은 오늘의 출연진.
솔직히 라이몬다보다는 1막에서 솔로를 하던-아마도 박슬기?-가볍고 발랄한 무용수가 더 인상깊었지만,
발레리노의 도약만큼은 정말 높이가 달랐다.
꽤 오래 이어지던 커튼콜에 단장과 안무가까지 무대에 등장했다.
매번 수정을 하기도 하겠지만
이렇게 한번 완성한 작품을 두고두고 여러가지 모습으로 감상할 수 있는 예술가는
참 행복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백조의 호수처럼 여기도 파티를 빙자한 다양한 춤들이 등장하는데
오늘 인상깊었던 건 얼마전 짧은 젬베공연에서 봤던 것에 견줘 흥이 절대 덜하지 않은
아프리카 댄스.
멋있었다.
지난 번에도 느꼈지만
참 이쁜 의상도.
예복으로 입기에도 손색이 없을 듯.
게다가 오늘은 무대장치부터
옷감을 활용한 것이 더 화려하고 분위기 있어보였고
긴 드레스의 아가씨들은 치렁한 치맛자락으로 배경의 일부가 되기도 했다.

그런데 왜 항상 공주를 괴롭히는 유혹자는 늘 유색인종-아마도 무어인?-일까.
오페라도 그렇지만 발레 역시 구태의연한 설정과 스토리는 쫌 후지긴 하다.
클래식에 혁명을^^

영화애인 정성일

정성일의 책 발간 소식을 듣고
아주 오랜만에 그의 글을 읽었다, 열 시간 여에 걸쳐.
공부 머리가 아니라 엉덩이로 하는 거라는 이외수의 광고에 심히 공감하던 나로선
내 엉덩이의 능력에 희망이 생기기도 하는 순간이다^^

두뇌와 심장은 거리 만큼이나 독립적이라고 믿던 시절에
그의 평론은 어느 순간 이별할 수 밖에 없는 존재였다.
영화를 좋아하는 사람들이
영화제작현장이 아닌 평론가를 목표로 삼게까지 만들었던 그의 파워는
처음에 강렬했던 만큼
곧 지치게도 만들었기 때문이다.
이 사람은 과연 영화를 보며 울거나 웃기는 할까?
라는 것이 나의 개인적인 고별사였다.
내게 시청각적인 자극-예술이라고 할 수 있겠지만, 뭘 예술이라 불러야할 지 아직 결정을 못했기에-이란
심장의 영역이었기에.

긴 단절기를 지나고
그 동안, 그의 인용습관과 어려운 어휘들만 쉽게 베끼고 있는
감동도, 자극도, 성의도 없는 프로들의 글에 지치기도 한 와중에
그의 글에 다시금 흥미가 생겼다.
길고 복잡한 그의 글은 여전한데
전처럼 지치지 않는다.
내가 정성일만큼 영화를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이 결정적인 차이였음을 알고 나니
그의 열렬한 애정행각이
많은 깨달음을 준다.

씨네21에 정윤철감독과의 대화가 실려있었는데 그 중에서 흥미로운 대목이 많이 등장했다.
엉덩이 능력확인에 지대한 공헌을 한 인터뷰. 정성일도 정성일 이지만 정윤철도 대단하다.
임시 스토킹이라도 한 듯 별얘기가 다나온다. 게다가 읽기 좋은 글솜씨까지.
이렇듯 성의를 다하는데 어찌 보는 즐거움이 없을소냐...)

정윤철: '키노' 마지막 호에 이런 내용의 글을 썼다. `사람들은 우리가 어렵다고 한다, 그렇지만 대가들에 관한 글을 쓰며 어찌 어렵지 않을 수 있는가, 우리는 그런 글들을 쓸 수 있어 영광이었다고.` 하지만 영화가 어렵고 위대하다고 하여 그걸 해석하는 글조차 어려울 필요가 있는지.

정성일: 거기에 관해선 항상 인용하는 아도르노를 인용하고 싶다. ‘자본주의는 지식을 상품으로 만들기 위해 지식을 간단하게 만든다. 그러면서 점점 사고를 마비시키고 논리 자체를 무시한다. 결정적으로 말하자면 철학은 점점 광고 카피가 되어가고 있다.‘ 그런데 아도르노는 내 글을 읽는 것은 사유하는 시간이라고 했다. 나는 아도르노처럼 글을 쓰지는 못하지만 그 태도는 배우고 싶다.

이 대목은 내가 정성일 읽기를 포기하던 무렵에 이해하고 싶지 않았던 부분이지만, 지금은 납득이 되는 열애자의 충고.

정윤철: 질문을 마저 하자면 결국 비평도 대중성과 심도있는 분석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잡는 건 불가능한가. 그런 시대도 이미 끝난 건가?

정성일: 나는 영화에서의 대중성이라는 문제를 다른 판본으로 말하자면 상품성이라고 생각한다. 둘은 같은 말의 말장난이라고 생각하는 쪽이다. 영화가 대중성을 껴안는 한편으로 새로운 가능성을 위해서 나아가던 시대는 영화의 고전주의시대였다(3,40년대). 예를 들면 우리는 고전주의 회화를 납득할 수 있다. 그러나 인상주의를 통과하며 그림에서 형상이 부서졌고, 그림은 보는 이에게 교양을 요구하게 되었다. 그런데 지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소통을 하고 싶다고 고전주의 그림을 그린다면 그것은 퇴행이다. 영화는 계속 앞으로 가고 있는 거다. 그 100년이라는 역사를 왜 무효화시키려고 하는가. 영화도 관객에게 교양과 역사에 대한 이해와 시네마테크적인 경험과 영화에 대한 지식을 요구하고 있다. 그런데 관객은 게으르게 어떤 노력도 기울이지 않고 즉각적으로 자기가 알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것은 영화를 원시적인 상태로 돌려보내는 거다. 영화는 고전주의 시대를 통과했고, 이제는 영화가 가지고 있는 여러가지 가능성의 길을 가고 있다. 그것을 왜 퇴행적으로 만들어야 하는가, 심지어 감독들이 왜 자꾸 고개를 뒤로 돌려 그런 퇴행을 바라보는가. 나는 거기에 대해서 분개하는 쪽이다.


아마 이 대목이 내가 지금 정성일의 글을 다시 읽고 싶어진 이유인 것 같다.

너도나도 영화에 대한 이야기를 펼칠 수 있게 된 이 시점에
하필 평론가 혹은 전문가라는 사람들의 함량미달이 두드러지는 모순된 상황에서
지금이 90년대의 반발이고 곧 이 상황에 대한 반발이 다시 일어날 것이라는 그의 예언(기대?)이
내게도 희망적으로 들린다.
사실 그래.
망해 고꾸라질 것 같은데 어떻게 잘들 꾸려나가니까.
그래서 사람들이 참 멋지기도 하다.

그리하여....정성일의 평론집을 향한다.
벌써 2쇄라는 걸 보니 역시 난, 은근 유행 타^^

굿모닝 프레지던트|Good Morning President|2009

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을 대신 선택하고 이거나 그거나 그게 그게 아니었을까 후회했는데
극장에서 안보길 잘했다.
개성만 있고 역사는 없는 장진의 인물들.
엔딩의 고두심의 등장이 무색하게 누군가의 아버지로만 끝나는 나레이션의 무신경함까지.
레벨도 안맞는 환타지-이런 대통령이 있는 세상이라면서 토론회의 무력개싸움은 또 뭐야.
설마 떡볶이가 모든 걸 채워줄거라 생각한 건 아니겠지.
남기고픈 한마디,
헐...

시라노;연애조작단|2010

시라노와 이어지는 깔끔한 연결에서 정석을 벗어나지 않는 바른연애강습까지
믿음직한 김현석의 개운하고 귀여운 로맨틱코미디의 탄생.
처음부터 끝까지 하.하.하.
유일한 흠이라면 촌빨날리는 포스터?!

최다니엘로서도 연기변신이었는데 송새벽의 캐릭터와 겹치는 바람에 내내 비교가 됐다.
조연이었지만 밀도로는 누구에게도 뒤지 않던 송새벽의 2연타.
청년, 보는 재미가 있구랴~
좀 오바스럽기는 했어도 감각있는 조연을 보여준 김지영.
우생순에서도 좋았는데 영화에서 더 자주 봐요~
후자도 아닌 주제에..핫핫핫!
코믹의 달인 시절 권해효의 묵직한 재림!
빵빵 터지는 우정출연들 덕에
네 명의 주연들이 좀 머쓱하겠다...
이쁘고 사랑스러운 미모에 심술인지
가끔 등장하던 안티컷들까지 생각하면 말야^^ ㅎ

신이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God Bless you, Mr. Rosewater|커트 보네거트|Kurt Vonnegut Jr.

트라우트와 포르노의 공통점은 섹스가 아니라 어처구니없이 관대한 세계에 대한 환상이라는 점을 그는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실비아의 병을 가리키는 '사마리안실조증'이라는 신조어를 만들었는데, 그 뜻은 '자신보다 불행한 사람의 고통에 대한 히스테리성 무관심'이었다....사마리안실조증은 과도하게 활성화된 양심을 마음의 다른 부분이 억압하는 증상이다.. 양심은 다른 모든 심리 기능에 "너희 모두 내 지시를 따라야 해!"라고 날카롭게 소리를 지른다. 다른 심리 기능은 양심의 지시를 따르기 위해 한동안 노력하지만, 양심은 화를 가라앉히지 않고 계속 소리 지르고, 양심이 요구하는 헌신적인 행동을 해도 외부세계는 눈곱만큼도 개선되지 않는다는 점을 알게 된다.
그들은 마침내 반란을 일으킨다. 포획한 양심을 비밀 감옥에 가두고, 그 어두운 지하 감옥 위에 무거운 뚜껑을 덮는다. 그들은 더 이상 양심의 소리를 듣지 못한다. 달콤한 침묵속에서 심리적 기능들은 새로운 지도자를 물색한다. 양심의 입을 막을 때마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지도자, 바로 사리사욕이 등장한다. 그러나 사리사욕은 그들에게 깃발 하나를 주고 잘 보이는 곳에 소중히 걸어두게 한다. 검은 바탕에 하얀 해골과 두 개의 넙다리뼈를 교차시킨 그림 밑에 "널 지옥으로 보내주겠다. 각오하라!"는 글자가 적힌 해적기이다.  

사랑은 저만의 만족을 구하고
저만의 기쁨에 남들을 묶는다.../블레이크

만약 엘리엇이 상대가 누구이고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가리지 않고 모든 사람을 사랑하려 한다면, 구체적인 사람을 구체적인 이유로 사랑하려는 우리 같은 사람은 새 단어를 찾는 게 나을거다...예를 들어 난 아내를 우리의 청소부보다 더 많이 사랑했는데, 그 때문에 우리 시대에 가장 무시무시한 죄악인 차별을 범한 것 같은 죄의식이 드는구나.

-엘리엇이 도시의 모든 남자화장실에 똑같은 글을 쓰고 다닌다고요.
-그게 뭐였는지 기억나시오?
-네. '사랑받지 않고 잊히고 싶다면, 이성적으로 행동하라.'였어요.

-...당신들은 내가 상속받은 것을 관리하죠? 내가 아무것도 안하고 번 돈을?
-그렇다네....
-이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고 돈은 그 고통을 줄이는데 큰 도움이 됩니다. 나한테는 내가 쓸 수 있는 것보다 훨씬 많은 돈이 있고요. 나는 괜찮은 음식과 옷과 거처를 사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싶습니다, 지금 당장.
-...우리가 뒤를 봐주는 젊은이 가운데 해마다 적어도 한 명은 우리 사무실에 찾아와 자신의 돈을 나눠주고 싶다고 말하지. 주로 어느 명문대에서 일 년을 마친 젊은이라네. 개학의 첫 해는 파란만장하지! 젊은이는 세상에 고통받는 사람이 너무 많다는 걸 알게 돼. 그리고 수많은재벌이 엄청난 범죄와 결부되어 있다는 것도. 그는 저도 모르게 기독교적 양심에 사로잡힌다네...그는 혼란에 빠지고, 눈물을 흘리고, 화를 낸다네! 그리고 축 처진 목소리로 자신이 얼마만큼의 재산을 갖고 있는지 묻는다네. 액수를 얘기해주면 그는 부끄러워 어찌할 줄을 모르지. 그의 재산은 스카치테이프나 아스피린이나 인부의 덧바지에 기반한 것인데, 자네의 경우는 빗자루지. 그렇게 정직하고 유익한 사업으로 벌어들인 거라도 젊은이는 그걸 생각할 여유가 없다네. 자넨 막 하버드에서 일년을 공부했지?
-네.
-하버드는 훌륭한 대학이지. 하지만 하버드가 어떤 젊은이에게 미치는 영향을 볼 때, 난 '어떻게 대학이란 곳에서 역사를 안 가르치고, 동정심을 먼저 가르친단 말인가?'라고 자문하게 된다네. 친애하는 번틀라인 군, 역사는 다른 건 몰라도 이것 하나는 확실히 말해준다네. 재산 기부는 무익하고 파괴적인 행위라는 것, 그건 가난한 사람들을 풍족하거나 편안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 응성받이로 만든다는 것! 그리고 기부자와 그의 후손들은 징징짜는 가난뱅이와 똑같게 된다네.  
-자네처럼 막대한 재산을 소유한다는 것은 정말 황홀하지만 드문 기적이라네...자넨 그것을 손쉽게 얻었으니 그게 어떤 것인지 알 기회도 없었을 테지...그 돈 때문에 자넨 특별한 거야...자네가 전 재산을 기부한다면 완전히 평범한 사람이 되겠지? 자네가 천재라면 또 모르지만. 번틀라인 군, 자넨 천재인가?
-아뇨.
-음, 그리고 자가 천재든 아니든, 돈이 없으면 훨씬 더 불편하고 부자유스러워질 걸세. 게다가 자넨 후손까지도 답답하고 짜증나는 삶으로 떨어뜨리려 하고 있다네. 그건 어느 어리석은 조상이 재산을 갖다버리지만 않았다면 부유하고 자유롭게 살 수도 있었던 사람들의 전형적인 삶이지....  

당신이 어떤 사람을 알게 됐어. 그런데 아주 깊은 곳에서 뭔가가 그를 지독하게 괴롭혀...바로 ㅡ게 그의 행동을 지배하고, 그에게 비밀이 있다는 걸 그의 눈빛으로 내비치게 만들어...그게 `뛰어`라고 말하면 그는 뛰어. 그게 `훔쳐`라고 말하면 그는 훔치고, `소리쳐`라고 말하면 소리치지. 하지만 그가 일찍 죽지 않는다면, 또는 자기멋대로 다 하고도 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면, 그의 마음속에 있는 그것은 태엽을 감아놓은 장난감처럼 서서히 멈출거야...어느 날 당신들이 함께 일하는데 갑자기 그에게서 그 찰깍소리가 들려...그는 일손을 놓고 차분해지지. 이젠 진짜 바보처럼 보이고, 진짜 즐거워 보여. 그의 눈을 들여다보니, 비밀도 다 사라졌어. 심지어 그는 자기 이름도 즉시 대질 못해. 그는 다시 일을 하지만, 절대 이전으로 돌아가지 않을거야. 그를 지독하게 괴롭히던 그건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을 거야. 그건 죽었어. 완전히 죽은 거야. 그리고 미친 짓을 하며 살 수 밖에 없었던 인생, 그것 또한 끝이 나는 거야!...이 운 좋은 개자식. 너한테도 그 소리가 났군!

생명체들이 언어를 사용하고 싶어하는 이유는, 언어를 사용하면 훨씬 더 많은 일을 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언어는 그들을 훨씬 더 활동적으로 만들었다. 텔레파시로는 모든 사람이 다른 모든 사람과 모든 것에 대하여 항상 대화하기 때문에, 모든 정보에 대한 일종의 일반화된 무관심을 낳았다. 그러나 의미 전달이 느리고 협소한 언어를 사용하면 한 번에 한 가지만 생각하게 되므로 계획에 따라 생각하는 것이 가능했다.

...기계의 정교한 발달로 인해 전 세계에 끔찍한 문제가 확산될 수 있는데, 그 문제를 아주 적은 규모로 해결하는 실험이었기 때문이오. 그 문제는 이것이었소.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사람들을 어떻게 사랑해야 하는가?
때가 되면 거의 모든 사람이 상품, 음식, 서비스, 더 많은 기계를 만들어내는 생산자로서 가치를 잃을 것이고, 경제와 기술분야는 물론이고 어쩌면 의료분야에서도 실용적인 아이디어원천으로서 가치를 잃을 것이오. 따라서 만일 우리가 인간을 인간이기 때문에 소중히 여길 수 있는 근거와 방법을 찾지 못하면, 많은 사람이 종종 제안하듯 그들을 완전히 없애는 게 나을지도 모르오.

-가난해도 진취적인 사람은 지금도 수렁에서 빠져나올 수 있소...
-...가난해도 진취적이고 적극적이라면, 그 후손은 피스콴투잇 같은 유토피아에서 살 수 있겠죠, 하지만 그곳의 정신적인 부패와 어리석음, 무감각과 나태함은 로즈워터 군의 전염병 만큼이나 지독합니다. 가난은 아주 나약한 영혼을 가진 미국인에게도 비교적 가벼운 질병인데 반해, 무익함은 강인한 사람과 나약한 사람을 가리지 않고 모든 미국인을 매번 파괴합니다.

-엘리엇이 알아 낸 중요한 사실은 사람들은 무조건 사랑을 주면 주는 대로 다 받아들인다는 것입니다....새로운 건 한 사람이 오랫동안 그런 사랑을 줄 수 있었다는 것이지요.
 
제목에 나오는 `신이 축복이 있기를, 로즈워터씨`는 두 번 등장한다.
`미친` 엘리엇 로즈워터에게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사람이 건네는 것으로 한 번,
보험판매원인 프레드 로즈워터가 보험고객에게 듣는 것으로 또 한 번.
전혀 다른 상황에서의 같은 인사에서 큰 차이가 느껴진다.

내놓고 교훈적이며 계몽적인 소설로,
작가 스스로도 읽을 사람들이 안 읽을까봐 걱정할 법한 이야기.
권선징악(^^)을 벗어나지 않는 뚝심있는 결말까지
고풍스러운(^^) 만족을 주었다.
새로운 작가와의 즐거운 첫만남.

경계도시


뒤늦게 본 덕에 1, 2편을 연달아 볼 수 있었다.
송두율이라는 인물에 대한 대한민국적 정의에 대한 물음표였던 1편에 비해
2편의 파장은 비교할 수 없을만큼 컸다.
그 합리적인 논지에도 불구하고
과연 대한민국이라는 사회가 이런 논의의 장이 될만한 곳인가 라는 회의가 먼저 들었기 때문에
내내 우울했다.
팔다리를 다 자르고서도 온전히 정체성을 지킬 수 없었던
송두율은 지금도 스스로를 경계인이라 생각할 수 있을까.
내가 생각하는 경계인이란 거리두기가 가능한 위치에 있어야 할 것 같은데
그는 과연 그 고통을 안겨준 대상을 끌어안을만큼의 넉넉한 사유를
지금도 할 수 있을까.

힘있는 자들이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고 그 불합리함을 유지하기 위해 정해놓은 것이라는
우울한 법의 정의를 다시 보는 것보다
태생부터 합의일 수 없었던 규칙조차도
막연한 공포로 맹목하는 순진한 사람들의 모습이 섬뜩했다는 것이 더 충격이다.

도둑을 막기위한 법을 만든다 치자.
이상적이면서 가장 오랜 시간이 걸리는 법은 도둑질하지 않고도 먹고 살도록
사회의 기반을 닦는 것이지만
세상 어디서나 가장 먼저 나오는 법은 처벌에 관한 것이다.
눈에 보이는 효과도 그렇지만 제일 쉬운 방법이기 때문이다.
그리고 나서 예방을 위해 격리를 시도한다.
도둑의 이웃, 도둑이 잘 다니는 곳을 자주 다니는 사람, 도둑의 활동지역에 나타난 사람,
도둑과 비밀얘기를 나누는 사람.
행동으로 처벌해야 한다는 간단한 원칙은
이러한 감정적인 의심속에 묻힌다.
왜 그런데서 얼쩡거렸냐는 비난은 필수양념.

전쟁에 치를 떠는 애국자들이
호전적이지 않은 대북자세마다 제동을 거는 것,
이산가족 상봉에 저마다 눈물을 흘리는 것,
이산가족 말고 간절히 바라는 사람이 있을까 싶은 통일이 아직 국시라는 것.
이 혼란스러운 마당에 이런 영화를 찍는 사람이 있다는 것.
다이나믹 코리아...다...
이미 자멸해버린 실패한 체제이자,
이제는 교과서속에서 학문으로도 대접 못받는 공산주의가
뭐가 그렇게도 위협적이라는 걸까.
공산당을 허용하지 않는 사회는 그만큼 자신없음을 고백하는 촌스러운 반쪽 민주주의임을
다시 확인할 수 밖에 없었다.
     
37년만의 방문을 앞두고 설레기만 하던 이때가 가장 행복한 순간이 아니었을까.

다른 모든 것을 떠나 그의 얼굴이 가장 강렬하다.
아버지의 임종도 못지킨 한에도 불구하고 넘치던 자긍심에서
단 몇 달 사이, 균형까지 틀어졌던 그의 얼굴.
몇 년 사이에 관점의 차이로 바뀔 수 있는 사회적 룰이 망친 개인의 삶이라서 안타깝다.
하지만, 그 불완전한 관점이 이어져 그의 낙인이 지워지지 않았다 하더라도
그 낙인의 정체성을 부정할 수 있는 정의는 살아있었을 것 같다.
그것을 누군가의 인생이 완전히 파괴되는 것으로 배우게 된다는 것이
아직은 잔인한 우리의 현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No Country for Old Men|코맥 매카시Cormac McCathy|사피엔스

선량한 주민들을 다스리는 데는 힘쓸 일이 거의 없다. 정말 거의 없다. 그리고 나쁜 인간들은 다스리기가 아예 불가능하다. 아니면 다스릴 수 있다는 얘기는 내가 들어본 적이 없거나.

사람들은 그들에게 닥치는, 그들이 감수할 까닭이 없는 나쁜 일에 관해서는 불평을 늘어놓지만 좋은 일에 대해서는 잘 말하지 않는다. 그렇게 좋은 일을 겪어도 될 자격이 그들에게 있는지에 대해.

이야기는 전해지고 진실은 무시된다....거짓만 말하고 그것을 잊는다 해도 진실은 남는다고 나는 생각한다. 진실은 여기저기로 움직이지 않으며 때에 따라 달라지지도 않는다. 소금에 소금을 칠 수 없듯이 진실을 더럽힐 수는 없다. 진실은 그것이 진실이기에 더럽힐 수 없는 것이다...이 말에 동의하지 않는 사람도 있을 것이다. 꽤 많을 것이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믿는 게 무엇인지 나는 결코 알 수 없었다.

진리는 언제나 단순하다. 단순해야 한다. 어린이도 이해할 수 있을 만큼 단순할 필요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너무 늦게 된다. 그것을 이해할 때는 벌써 늦은 것이다.

마치 어느 야구 선수가 언젠가 내게 말한 것처럼 작은 부상을 입어 몸이 약간 불편한 데도 오히려 더 좋은 플레이를 할 수 있었던 경우와 같다. 그의 부상은 백 가지 보다 한 가지에 집중할 수 있게 해 주었다.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다. 부상은 아무것도 바꾸지 못한다. 

골라서는 안되는 책이었다. 매혹적인 제목에 끌려버린--;;
책겉장에 도배된 칭찬중에서 공감할 수 있었던 것은 구성에 대한 이야기.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숨돌릴 겨를 없이 끌렸다지만 나는 별로.
완벽한 번역이라면 단어사용의 묘미와 문체를 다 살려야 하겠지만
그게 여의치 않다면
나는 작가를 충분히 연구한 자신만만한 번역가의 의역이 좋다.
이 책의 성실한 번역가는
자기가 이해하지 못한 부분까지 주석으로 달아 변명할만큼 정직한 사람이기는 하나
그 부족한 자신감으로 인하여
어지간한 단어에 다 음을 달아 거기에 주석을 붙였고,
그 결과,
달려야 하는 이야기들은 자꾸 과속방지턱에 살짝살짝 걸려 김이 빠졌다.
번역자가 이 정도면
원서를 읽어봤자 내가 그 속도감을 느낄리는 만무--;;

아무런 이유도 없이 악한 시거,
우연히 시거의 물건에 욕심을 부린 모스,
그들에 말린 보안관 벨,
어떻게 추적해서 어떻게 서로를 찾아내는 지의 과정은 모두 생략된 채
장면으로 바로 뛰어들어가 분위기를 만들어내는 묘한 소설.
하지만
인물 누구에게도 응원하는 마음이 생기지 않았기에
즐거운 긴장은 아니었다.
얼추 읽기에도 이 코맥 매카시라는 작가는 매우 독특한 스타일의 작가인듯.
근데, 여전히 모르겠다.
왜 '노인들을 위한 나라는 없다'일까.

Capitalism: A Love Story|2009

팔짱끼고 불량하게 고백하시는 거삼? ㅋㅋ

마이클 무어는 정말 미국을 사랑한다.
미국 밖에서 혹은 미국내의 냉소적인 지식인들이
미국의 천박한 자본주의를 씹고 뜯고 욕하고 침뱉지만
그는 사랑하는 애인과 그 애인을 망치는 적들을 성실히 발라내어
그의 애인을 돌려달라고 열심히 부르짖는다.

분노가 시작이라고는 하지만
요즘은 그 분노에조차도 카스트가 생기는 것 같다.
머나먼 '그 분'들께는 가닿지 못하고
만만히 근처에 서 있는, 비슷한, 혹은 조금 나은 사람들에게
폭탄처럼 터지는 가난한 분노들.
가진 것 두른 것 없어서 생이빨을 대신 뽑은 엠씨몽의 가난한 비겁에는 차라리 동정이 어울린다.
분노는
머리칼 하나 뽑는 고통도 없이 편하게
험한 길은 피해가고 고운 길을 대대손손 이어주는
진짜 적들에게 정조준 되어야 옳지 않나.

은행이 주는 1000달러를 받아들면서,
퇴거명령을 수행하는 직원에게 속을 쏟는 강제철거민들을 대신해
마이클 무어는 그 적들을 찾아가 선전포고를 한다.
아무 법적인 힘은 없겠지만
범죄지역 띠를 두르고
몰수를 하겠다고 빈자루를 들고 덤비는 그의 모습이
그래서 멋있다.
 

사실 너무나 기본적인 거다.
법이라는 합의적인 개념을 편리하게 이용하기 위해 법을 바꾸는 사람들에 맞설 때
그 법의 테두리에서 싸우는 것만이 정의가 아니라는 것은.
그런 법을 만들어 잉여를 위해 착취하는 자본에게
살집을 일터를 생존을 순순히 빼앗겨줄 필요는 없다는 것도.

인상 깊은 대사들이 있었다.
은행강도 말고는 안 해본게 없는데 지금은 못할 것도 없을 것 같다고.
은행은 하는데 왜 나는 하면 안되냐고.
계약같은 건 한 일도 없이 일만 열심히 했을 뿐인데 그 계약의 피해를 왜 우리가 져야 하느냐고.
많은 사람들이 당연하게 얻는 것을 위해 우리는 싸워야 했다고.

미국 이상으로 진창에 구를 준비는 되어 있으면서
그나마 그만큼 번듯이 서지도 못한,
그래서 미국의 자본주의가 악이라면
한국의 자본주의는 그냥 병신이다.
이제 미국의 병을 좀 더 깊이 들여다보기로 한 마이클 무어의 이야기는
더 이상 남의 얘기가 아니었다.
1936년에 이미 노동자들을 용역깡패들에게서 보호하려고 공권력을 투입한 대통령이 있던 나라이기에
그 유산이 아직은 미국을 조금 버티게 해주는 것일까.

애국을 해도 국가는 계급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 유리한 법망조차도 어겨가면서 독과점으로 번 돈으로 기부하는 빌게이츠가
노블리스 오블리제의 상징일 수 없다.
직원들을 죽이고, 세금은 떼먹고 기부하면서
안녕하시냐고 광고하는 삼성은 역겹다.

도움과 격려의 손길은 늘 가까운 곳에서 먼저온다.
애국보다는 범지구적계급연대가 더 현실적인 꿈이 아닐까.

이번엔 극장개봉을 못했는지
생소한 제목에 마이클 무어의 이름을 발견하고 놀랐다.
전과 다르게 이번엔 관객에게 호소하는 마이클 무어를 보면서
전보다 범위가 넓어진 그의 적들의 거대한 힘을 느꼈다.
농노보험까지 들고 있다는 미국의 기업들.
참 니들 보통이 아니긴 하다....

도쿄|2008


Interior Design
꿈을 펼치는 사람 옆에서 구박은 받지만 성실히 살고 싶어하던 히로코가
자신의 꿈을 이루는 이야기.
장편이었던 수면의 과학보다 차분하면서도
재미있었던.

Merde
어느 미친 이방인을 바라보는 시선.
불편함과 공포가 이유라 하더라도
그런 이유로 무한제제가 합당할까?
도쿄까지 와서도 하수구에 출몰하는
개고생 전담배우 드니 라방에게 박수를.
라방 오라방 여전하신 포스^^

흔들리는 도쿄
가장 지루한 봉준호 영화가 단편이라니 ㅋㅋ....
그것도 미셀 공드리나 레오 카락스처럼 '-스러운' 느낌 조차 없던 밋밋한...
김씨표류기같던 엔딩까지도.

노다메 칸타빌레 Vol.1|のだめカンタービレ|2009

애처롭도록 높이 솟은 광대뼈 언덕이 그나마 희미하게 보이는--;;


그렇게 열광했던 노다메-내 그간 너를 위해 해준 것이 없어 미안했는데
그나마 이렇게라도 기회를 주는구나^^
DVD라도 사고 싶었지만,
비싼 건 둘째치더라도
한글자막도 없는 정품이라니 너무 상징적이기만 하잖아.
차이코프스키와 슈만도 좋았고
큰 화면에서 보는 유럽도 좋긴 했지만
가장 큰 의미는
아무래도 빚을 갚는 것이었어--;;
하지만 그렇게 궁금한 예고편을 남기고
2부 개봉예정은 잡지도 않아버리면
사람들이 다시 어둠의 경로를 찾게 되지 않을까.
지금 꾹 참고 있지만, 나도 좀 힘들군...
제발 한번 더 빚을 갚을 기회를 주기 바래,
어서~

큰 화면에서도 기죽지 않는 노다메 필살기
첫등장부터 콕 찍었는데 유럽편을 거쳐 영화까지 엄선된(^^) 쿠로킹

탈주|2009

시작은 도발이었지만 결국은 지능적인 탈영방지캠페인^^


람보류의 영화들이 자주 욕먹는 항목인
총을 몇 발을 맞든, 필요한 동안은 죽지 않는 주인공,
아무리 절망적인 상황이라도,
심지어 경찰이 손만 뻗으면 잡힐 것 같은 거리에서도
총맞은 다리로 도주에 성공하는 주인공,
언제나 삽질하는 조연들의 총질과
언제나 명중하는 주인공의 총질.
결말이 짜잔하고 나타나기 전까지
주인공들의 모든 도발은 성공.

이건 예산이 적다 많다의 문제는 아니다.
혹시
독립영화는 원래 관객이 적다는
든든하도록 절망적인 환경에서
만들기만 하면
그래도 애정어린 격려를 보내는 이들하고만 친하게 지내는 동안
그 관대함에 길들여진
위험한 무성의가 아닐까.
 
욕의 방향이 군대만을 향하며
영화 속 '-설'일 것 같았던 얘기들이
영화 이후 놀랍게도 사실로 뉴스를 탔다.
그래서 끊임없이 남과 다른 관심사로
새로운 이야기를 들려주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반가우면서도,
별로 딱지 붙이면서 보고 싶진 않았지만,
(소비자 입장에서는 가격도 같으니깐!)
좀 아쉬웠다.
뭐, 상업영화들이 이보다 엉성하면서도
이보다는 돈벌이를 잘 할 상황을 생각해보면
좀 억울하긴 하겠지만,
반대로,
뚝심있는 관심사를 가진 사람에 대해
역으로 더 큰 기대를 갖는 관객이 있을수도 있다는 것까지
신경써 줄 그날이 오기를 바랄 뿐...
진이한은 영화가 훨씬 나았다, 드라마와는 비교도 안될만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