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DIF|위대한 침묵|Into Great Silence
EIDF|Sicko|2007
EIDF|딸에게 보내는 편지|The Kids Grow
방자전|2010
EIDF|더 코브: 슬픈 돌고래의 진실|The Cove|2009
인셉션|Inception|2010
아저씨|2010
예상했던 것
원빈의 폼나는 화보-말이 필요없지만...난 머리밀기전 커튼 드리운 얼굴이 더 좋아~
대사를 절제한 원빈의 눈빛연기-대사가 참 없다...^^
시원한 액션-맨손, 총, 칼까지 등장하는 다양한 육탄전. 오랜만에 보는 맨손싸움이 젤 멋짐.
스토리-초반 여자어린이의 신파와 별안간 응징자로의 변신이 좀 까슬까슬했지만
증폭되는 액션에 어울리던 스토리였던 듯.
예상외의 것
모든 조연의 빠짐없는 호연-어떻게 단 한명도 빠짐없이 감탄스러울수가...!
카메라-맨손싸움 장면을 가슴높이에서 정면각으로 잡은 앵글. 만화에서만 가능한 것인 줄 알았는데...
어떻게 찍었을까?
디테일한 범죄의 재현-정말 무서운 세계다....
강력한 초지일관 캐릭터-죽기직전까지 자신의 개성을(^^) 불태운 놀라운 캐릭터 열전
흥행에는 이유가 있구나 싶다.
예상대로의 것도 물론있지만 예상외의 것들이 주는 더 큰 즐거움.
오빠라고 불러주면 쓰러지는 아저씨들이 천지인데
굳이 아저씨를 자청하는 꽃돌이오빠의 도전.
남자배우라면 이런 화보 하나씩은 갖고 싶을거다.
혼자 쓴 시나리오 같지 않았는데 크레딧에는 단 하나의 이름 뿐.
뭔가 슬픈 이야기가 숨겨져있는 것은 아니길.
어린이 여러분.
이런 아저씨가 있을 확률은 거의 0이지만
성추행범은 많이 있으니
아저씨들하고는 놀지 않도록 하세요...
참 슬프군요.
마지막 충알을 쏠 때의 표정-이와 비슷하나 이보다 멋졌던
어색함이라고는 전혀없던 김희원에게서 어색한 장면을 찾아낸 스틸의 놀라운 재능
이 머리가 더 좋았다는 거죠...^^
얼굴도 좀 닮은 것 같은데 제2의 손현주를 기대하게 하는 이종필
연애, 그 참을 수 없는 가벼움|2006
사회학에의 초대-인간주의적 전망|피터L.버거
현시적 기능은 사회적 과정의 의식적이며 의도적인 기능이며, 잠재적 기능은 무의식적이며 비의도적인 기능이다. 그렇다면 도박금지법의 현시적 기능은 도박을 금지하는 것이지만, 그것의 잠재기능은 도박조직을 불법적인 세계로 만드는 것일 것이다.
사회학의 정체폭로동기는 말의 연막(verbal smoke screen)을 이처럼 꿰뚫고 들어가서...때로는 불쾌한 주요 동기에 도달하는데 그 의의가 있다.
따라서 사회학적 문제는 당국자와 사회적 상황의 관리의 관점에서 어떤 일이 왜 `잘못되고`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첫째로 체계 전체가 어떻게 움직이고 있는가, 그 전제는 무엇이며 그 체계전체가 어떤 방법으로 결합되어 있는가를 이해하는 것이다. 기본적인 사회학적 문제는 범죄가 아니라 법이며, 이혼이 아니라 결혼이고, 인종차별이 아니라 인종적으로 정해진 계층이며, 혁명이 아니라 통치이다.
사회학자가 해결하고 싶어하는 `문제`는 양쪽의 사회체계속에서의 가치와 행동양식, 두 사회체계가 공간과 시간속에서 공존하는 방식 등 사회상황 전체에 대한 이해와 관련된다.
성숙은 정착해서 현재의 상태와 타협하였으며 아울러 모험과 성취의 무모한 꿈을 포기한 마음의 상태이다.
개인은 사회속에서 즉 사회적 통제의 체계들 안에 위치하며 또 이 체계 하나하나는 정체성을 발생시키는 장치를 수반하고 있다. 가능한 한 개인은 그의 대인관계(특히 친밀한 관계)를 과거에 그에게 만족을 주었던 정체성을 강화시키는 방향으로-예컨데 그가 하는 말을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처녀와 결혼한다든가, 그를 재미있다고 여기는 사람들을 친구로 선택한다든가, 또는 그를 정력적인 인간으로 인정하게 하는 직업을 택하든가 하는 방향으로-조종하려고 노력할 것이다. 물론 많은 경우에는 그러한 조종이 불가능하다...편견이 한 인간에게 가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것은 그를 그에 대한 편파적인 이미지가 규정하는 인간이 되게끔 한다는 것이다...얼굴을 비춰볼때 눈을 흘기는 괴물의 얼굴이 나타나도록 만들어진 거울만을 들여다보도록 강요받은 인간이 그 자신도 전에는 다른 얼굴을 가졌다는 사실을 잊지 않으려면, 그는 다른 거울을 가진 사람을 미친듯이 찾지 않으면 안된다. 이 것을 조금 다르게 표현하면 인간의 존엄성은 사회적 승인의 문제라는 것이다.
고의적인 기만은 극소수의 사람에게만 가능한 상당한 정도의 자제력을 필요로 한다. 위선이 오히려 드문 현상은 이 때문이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표리부동하지 않은데, 그 이유는 이것이 심리적으로 취하기가 가장 쉬운 길이기 때문이다. 즉 그들은 자신의 행동을 믿고 있고, 전에 한 행동을 편리하게 잊어버리며, 인생의 모든 욕구에 대해 책임을 다할 수 있다는 확신속에서 행복하게 살아간다. 성실성은 자신의 행위에 자기가 속는 인간의 의식이다.
어떤 관념이 사회의 어떤 기득권에 봉사할 때 우리는 이를 이데올로기라고 말한다. ...의도적으로 거짓말을 하려는 도덕적 노력은 대부분의 사람들의 능력을 벗어나는 일이다. 자신을 속이는 것이 ㅇ훨씬 더 쉽다. 그러므로 이데올로기 개념을 거짓, 기만, 선전 또는 속임수 등의 개념과 구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거짓말장이는 그 정의대로 자신이 거짓말한다는 것을 알고 있다. 이데올로기 신봉자는 그것을 모른다. 대부분의 모의설(謀議說)은 모의자들의 지적인 선견(先見)을 심히 과대평가한다.
`잘못된 믿음`은 실제로는 자발적인 어떤 것을 필연적이라고 핑계대는 것이다. 따라서 `잘못된 믿음`은 자유로부터의 도피이며, `선택의 고통`을 불성실하게 회피하는 것이다.
하이데거의 사상체계에서는 세인이라는 개념이 진실함과 진실하지 못함에 대한 그의 논의와 관련이 있다. 진실하게 존재한다는 것은 자신의 개체성의 독특하고 다른 것으로 대체할 수 없으며 또 비길데 없는 성질을 완전히 의식하며 사는 것이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진실하지 못하게 존재하는 것은 자신의 고유성을 사회적으로 구성된 추상적 관념에 넘겨주면서 세인의 익명성속에서 자신을 상실하는 것이다. 이것은 인간이 죽음에 직면하는 방식에서 특히 중요하다. 사실 죽는 것은 항상 하나의 개별적이며 고독한 개인이다. 그러나 사회는 각각의 죽음을 그것의 공포를 완화시키는 것처럼 보이는 일반적인 범주속에 포함시킴으로써 유족과 또 그 자신들도 죽을 운명인 사람들을 위로한다. 어떤 사람이 죽으며 우리는 "뭐, 우리 모두는 언젠가 죽어야 하니까"라고 말한다. 이 `우리 모두(we all)`는 세인의 정확한 번역이다. 그것은 모두이면서 아무도 아니다. 우리 자신을 그 일반성 속에 포함시키으로써 우리는 우리도 혼자서 고독하게 죽을 것이라는 필연적인 사실을 우리 자신에게 숨긴다. 하이데거 자신은 톨스토이의 작품 [이반 일리이치의 죽음]을 죽음에 직면했을때의 진실하지 못함을 문학적으로 가장 잘 표현한 것으로 보았다.
1959. The Presentation of Self in Everyday Life. New York
버거의 사회학 설명: 일상성의 가면을 벗기고 그 정체를 폭로하고 싶어하는 동기, 점잖치 못한 것에 주목하고 싶어하는 동기, 상대화하고 싶어하는 동기, 보편화하고 싶어하는 네가지 동기에 의해서 구성된 현대적인 비판적 사고의 한 형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