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우치|2009

잊고 있었다, 토종 수퍼히어로로서 손색이 없는 도사라는 존재를.
이제 하나 끄집어냈으니 앞으로도 좀 더 나올까?
얘기잘하는 사람 최동훈의 매력은 사라지지 않은 것 같고
구석구석 주고받는 사람들의 호흡은 신난다.
그런데...
요괴마을 청계천도, 그림돈세탁도
찌를 것도 아니면서 어설프게 스치고,
요괴를 달래던 피리가 어쩌다가 요괴를 깨우는 피리가 되었는지,
무협지처럼 눈치도 안보고 마구마구 증폭되는 전우치와 요괴화담의 파워업 등등
이전의 영화들보다는 촘촘함이 줄어든 느낌이다.
어차피 신선들도 아무생각없이 숫자하나 잘못 세서 이렇게 된 거-삼천을 세다보면 그럴수도 있는거지^^
-라고 생각하면
좀 길다 싶긴 해도 지루하진 않다.

이런 영화에서 천덕꾸러기는 항상 여자.
아무리 찰나의 캣우먼이라해도
정말 존재감 없기는 하다, 임수정인데...도.
세계적인 경합이 벌어지고 있는 요괴마을 주민들도 좀 빈약하긴 했다.
걔들도 다 이유가 있어 태어났을텐데 외모에 너무 신경 안써주시네~~~
와이어 전우치만큼도 매끄럽지 못한 움직임이라니.
현대로 넘어온 후로는 그래도 괜찮았지만
옛날배경의 그림들은 많이 허전했다.
여백이 허전하지 않고 아름답게 보이게 하려면 역시 그림 좀 봐야되나 봐.
그림은 좀 그렇지만
이번에도 출연배우들의 에너지를 쭉 뽑아내는데는 성공.
노동집약형 영화의 인본주의 감독인가봐^^

완전 물만난 유해진
그 많은 대사를 그렇게 재미있고도 그렇게 잘 알아듣게 말해주다니~!
삼단변신에 배신까지 하느라 고생많았어, 초랭언니
귀여운 신선삼종세트
누가 더 귀염둥이인지 우열을 가리긴 너무너무 힘들지만
새롭게 떠오르는 중견별 주진모
(믿으세요, 내가 찍으면 다 뜬다니깐!)
장화홍련 이후의 염정아는 완전 다른 사람
특별출연 종목에서 백선생님의 포스를 압도했다네
오래 살아야 별 거 없다-면서 오빠는 왜 그러셨쎄여
내가 누구인지 알고 사는 것도 참 힘든 일임을 보여주시는-
그래도 멋지옵니다
초라니 방정이라 하기엔 여전히 느린 말투지만
표정에 있어서는 선물세트를 하나 장만하신 동원군
입대선물 쌩유!
건강(^^)하지 못한 몸이라 술은 못따라준다...
하나로 만족 할 수 없는 욕심쟁이들을 위한 보너스 동동동...동동씬

연애론|스탕달

사랑의 탄생과 성장의 일곱단계: 감탄, 쾌락, 희망.
.사랑의 탄생-첫번째 결정작용은 의심이다
...두번째 결정작용
일에서 이단계까지 걸리는 시간은 일년이 될 수도 있다.
이에서 삼단계까지는 보통 한달정도 걸린다. 그러나 빨리 희망을 찾지 못하면 이단계에서 서서히 포기하게 되는 것이 보통이다.
삼단계에서 사단계로 넘어가는 과정은 눈깜짝할 사이에 이루어진다. 희망의 틀을 발견하는 순간 바로 사랑이 싹튼다.
사단계와 오단계는 거의 구분이 되지 않으며 동시에 진행되는 경우가 많다. 사랑이 시작됨과 동시에 결정작용이 시작된다.........
오단계에서 육단계로 진행되는 과정에는 열정의 강도와 성격의 완고함 정도가 영향을 미친다.......
육단계와 칠단계는 구분이 명확치 않으며 거의 동시에 이루어진다. 여기서 육단계를 벗어나지 못하면 짧은 시간안에 끝나는 허무한 사랑이 되는 것이다..........
여자들이 수를 놓는 것은 그렇게 하릴없이 수틀앞에서 시간을 보내며 모든 신경을 그에게 집중하고 싶어서인지도 모르겠다. 그가 기병대라면 총알이 날아다니는 평원에서 말을 달리며 애인생각에 빠져드는 것은 위험천만한 일이다.
현재의 불행속에서 행복했던 과거를 돌아보는 것보다 더 큰 슬픔은 없다.
감각이란 상대의 특성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다.
그러나 열정이 넘치는 사람들은 상대의 특징을 미처 파악하기도 전에 상상속에서 그의 매력을 카워내고 사랑해버린다. 그들은 자신이 만들어낸 이미지로 사람을 파악할 뿐이다. 자신이 만들어낸 환상을 보고 즐기는 것이다. 그러면서도 상대를 있는 그대로 사랑한다고 착각한다. 그렇게 열정적인 사랑을 퍼부었건만 상대는 너무 불공평하고 이기적이라고 착각한다.
그러나 숱한 불행을 겪으며 의심이 많아진 사람들은 이런 영혼의 혁명같은 첫눈에 반하기를 겪을 수 없다. 사랑을 외면하는 것 역시 사랑에 보다 가까이 다가서고 싶은 욕망의 반동이다.....
마다가스카르의 여자들은 치부는 아무렇지도 않게 드러내면서 팔을 드러내는 것은 수치스럽게 생각한다. 우리가 배운 수치심은 대부분 후천적이기 때문이다.
맹금류는 물을 마실 때 몸을 숨기는데 물을 마시려 몸을 숙이는 순간 무방비상태가 되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두가지 불행이 있다. 뜻대로 되지 않는 정열과 절대적 공허함이 바로 그것이다.
남자들이 가식과 위장에 정신팔려있으면 여자는 오히려 강한 교태로 남자를 자신에게 집중시켜 자연스러움을 찾게 도와준다.
재기가 부족하고 둔감한 여자가 사랑받지 못하는 이유는 둔한 여자 앞에서는 가식을 부리기도 쉽고 상대가 눈치채지 못하니 가책을 느낄 필요도 없다. 그것이 습관이 되면 자연스러움이 영영 사라진다.
예민한 남자가 감동을 받으면 그를 지배하고 있던 묵은 습관은 한순간에 사라져 버린다. 감동이 없는 길은 더 이상 갈 수가 없는 것이다. 섬세한 남자들이 새로운 여자들에게서 뜻밖의 감동을 발견하면 맹목적으로 집착하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그는 사랑하는 여자에게 던지는 한마디 한마디에 자신의 운명이 달린 것 같아 잘하려고 노력할 수 밖에 없다.
상대에 대한 작은 의심은 사랑에 대한 갈증을 증폭시키고 사랑에 생명을 불러넣어 행복으로 발전시킨다. 이것이 사랑이 지속되는 비밀이다.
취미적인 사랑은 다른 사람에게 털어놓으면서 강해지는 반면 정열적인 사랑은 식어간다.
사랑에 사로잡힌 마음을 털어놓기에 가장 좋은 상대는 어쩌면 자기자신.
사람들은 지금 이 순간 질투를 느낀다고 인정하는 것은 부끄러워하면서도 예전에 질투를 느낀적이 있고 앞으로 질투를 느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는데는 비교적 떳떳하다.라 로슈푸코
정숙함이 불행한 것은 지루함 때문이다. 정열적인 사랑이 불행한 것은 절망과 죽음 때문이다.  


지금까지 들어본 적 있는 연애할 때 남자와 여자의 차이에 관한 모든 이야기들의 뿌리.
응용을 잘하면 남녀탐구생활이나 남보원까지 확장 가능한? 핫핫~!
단박에 읽어지는 실전얘기들.
1827년에 쓴 책인데 아주 옛날 얘기 같진 않은 걸 보면
좀 우울하긴 하다.
뭐 책 한권을 쓸 정도로 열애에 집중했다는 점은 참 감탄할만 하지만,
그렇게 집중력 있는 내 애인이
여자들은 이런 걸 좋아해-라는 생각으로 내내 나를 일반화시키며 만나왔던 거라면
그 사실을 아는 순간, 정 떨어질 것 같다.
스탕달, 혹시 이 책 쓰고 그래서 차이지 않았을까^^
연애하는 친구에게 추천하라면 이 책보다는 에리히 프롬의 사랑의 기술을 택하겠다...

Stendhal 본명 Marie-Henri Beyle 1783–1842)
프랑스에서 태어났지만 외가쪽인 이탈리아가 좋아 옮겨 가서 살았고
나중에 스탕달신드롬-예술작품앞에서 깊은 감동으로 어지럼증 등등의 병세를 진짜로 보이는 현상-에도 이름을 남긴 작가. 밀라노에서 만난 백작부인 마틸데와 연애.

 
PS. 사랑의 기술도 번역제목이 좀 웃기긴 하지만 스탕달의 연애론도 원제는 그냥 사랑.

여배우들|2009

재미있는 수다 한판.

작정한 듯 일얘기는 별로 없다.

배우라는 직업을 가진 직장인들의 애환이라고나 할까.

뭐 그들의 애환이야 구설수만큼이나 많고도 무거움을 짐작했던데다가

박수만큼의 돌멩이라는 윤여정의 명쾌한 정리로 더 할 말도 없음이다.

나혼자 평상복 입고 왔다갔다 하면서 배우들의 파티를 곁눈질로 구경한 느낌이랄까.

연예인에게 관심없는 사람이라면 당근 재미없었을.

보기좋은 그림

 

언젠가 괜찮다고 해놓고 내 담배에 불편해하시던 한 어른이 생각났다.

나이먹어 간다고 다 어른 되는 건 아님을 나를 표본삼아 확인하는 처지지만

(더) 자라서 윤여정 같이 쿨한 어른이 되고 싶어진다.

얼마나 실제와 닮았는지 모르겠지만 김옥빈은 성격 참 좋게 나온다.

다만 산발에 민낯을 해도 이쁠 옥빈양을 어찌 그리 스타일마루타로 남용을 하셨던지.

하긴 따지고 보면 전생부터 화보걸이었을 것 같은 김민희를 빼고는

멋지다 싶게 스타일링 된 사람도 없었던 것 같긴 하다.

그 `여배우들`을 불러 놓고 말이지.

준비된 세팅에 배우들을 집어넣은 듯 어색했다.

외국분장사가 우리나라 사람 화장시켜 놓은 것 모냥...쯧.

하긴 이건 화보촬영품평이 아니라 영화지^^

 

아름다운 그녀들

 

처음부터 들이대던 고현정.

그렇게 이명박스럽게 연기하다가 김희애가 될까봐 좀 걱정됐는데

다행이 그대로 끝내진 않았다.

외로움 보다 외로움을 만드는 모든 적들과 전쟁중인 듯한

그녀의 씩씩한 도전에 박수를 보낸다.

그래도 밀어부치기는 이제 그만~~

이 영화의 내맘대로 여우주연상.

수상자는 이-미-숙!

단 한순간도 연기하는 것 같지 않았다.

흰머리가 의외였을 뿐, 외모는 흐트러짐이 없었음에도 불구하고.

동년배 남자배우들이 영화속에서 아버지로 등장하는 것을 보는 것보다

그녀들이 얼굴이라도 비출 기회가 더 적다는 것이 참 아깝다.

엘렌 그리모 리사이틀|Hélène Grimaud First Concert in Seoul

캐주얼한 차림-무대위에서는 음악을 위해 최대한 미모가 돋보이지 않도록 신경쓴다는 여유있는 미모의 소유자라니--;;-에 조금은 히피스럽기도 한 분위기인데 음악은 좀 예의범절 따지는 느낌이었달까.

구도자를 보는 것 같은 기분이 들기도 했다.

친절한 세번의 앵콜.

사람은 참 좋은 것 같지만 유심히 보고 또 찾아갈 연주자는 아닌 듯.

카핑 베토벤|Copying Beethoven|2006

베토벤의 지휘장면을 생각하면

사실 재현도 아니고 그저 상상으로 만들어낸 장면일텐데도

음악가나 화가들의 삶을 보여주고 싶어하는 감독들의 마음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음악과 음악가의 사이를 잘 걸어서 보여준 카핑 베토벤.

그의 음악을 듣고 대화를 한들 그 속으로 들어가 볼 수는 없으니

그의 음악을 통한 모든 기억들도 베토벤의 표현을 카피하는 것일지도.

그걸 여자조수가 하건 남자조수가 하건 별로 중요하지 않았다.

그래서 지휘장면이나 수녀원난동 장면들은 가상의 조수에게 너무 과하게 시간을 할애한듯.

베토벤다운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좋은 기회.

우리나라에서는 서태지라 할만큼 빛의 속도로 티켓을 매진시키는 예브게니 키신이 뉴욕에 있는 아파트에서는 이웃들 때문에 정해진 시간에만 피아노를 친다는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내가 좋아하는 스비아토슬라브 리흐테르도 어느 시골마을로 친구와 피아노 연습하러 갔다가 이웃 아주머니에게 시끄럽다고 혼난 적이 있다고 했다. 그에 비하면 베토벤은 진짜 이웃 복은 있었네^^

행복한 엠마, 행복한 돼지, 그리고 남자|Emmas Glück|2006

내가 엠마였다면
부상당한 마크를 그렇게 능숙하게 치료하지 못했을 것이다.
남의 돈을 들고 용도를 정하며 기뻐하지 못했을 것이다.
증거를 없애려 차를 태우는 것-생각하지 못했거나 아니면 생각 했더라도

실행하는데 시간이 더 걸렸을 것이다,
이런 사연을 두고 남자를 그렇게 스스럼없이 대하진 못했을 것이다.
특별한 그녀에겐 너무나 평범한 스토리.

사랑의 시간이 꼭 길어야 장땡은 아니지만

보는 사람이 받아들일 만큼은 보여줘야지....

특이한 설정을 현실적인 척 풀어내다가 오히려 비현실적이 되는 또 하나의 재미없는 샘플.

하나의 수확이라면 딱 내스타일의 여배우 Jördis Triebel

영화|백야행|2009

참 기이한 일본드라마였다, 백야행은.

절정으로 시작해

함께 성장했지만

결국 늙을 수는 없었던 살인.

그 열한시간짜리 무거운 드라마는 스크린에서 깔끔한 추리극으로 재탄생 했고

동수의 미안함, 미호의 분노, 요한의 슬픔도 살포시 전해주기는 했다.

초중반의 매끄러움에 비해 마지막 10분은 재앙같은 정도로

누가 대신 붙여주기라도 한 듯 어긋나 보였지만

그래도 한동수 만큼을 잘 발려내서 다시 보고 싶었다.

 

벌써 몇번째의 형사인지 모르겠다, 한석규.

그것도 폼나게 범인을 잡기는 커녕

늘 몰락의 끝에 선 꿀꿀한 형사.

그 꿀꿀한 형사들의 필모에서

한동수는 무척 인간적이다.

겉보기엔 무언가에 사로잡힌 인물이지만

그것이 욕망이나 집착이 아니라

인간이기에 벗어날 수 없었던 후회와 죄책감이었기에.

전과 다르게 더 많은 감정이 실린 목소리와

변화가 커진 표정도.

풋내기 시절의 잡고 싶은 열정에 날을 세우던,

14년이 지난 후 벗어나지 못해 다시 시작하는

두 형사 한동수에 끌리다.

네 사람이 서로를 바라보던 장면.

박신우라는 사람은 보는 재미를 줄줄 아는 사람 같다.

열광하지 않는 손예진 이지만 캐스팅은 딱이라고 생각했는데

드러남이 없이 겉만 있던 미호는 마지막의 슬픔을 완전히 줄여주고 걸어나간다.

고수, 미모로 손예진을 압도하다...

 

스틸사진 하나 없는 차화연.

제작진들, 열연에 대한 예의가 아니구려...

뮤지컬|지킬과 하이드|Jekyll & Hyde|2009

극으로만 본다면 난 LG아트센터에서 봤던 국내 버전이 더 좋았다.

분위기에 따라 집중하게도, 볼만하게도 꾸며졌던 짜임새가 내내 펼침스타일인 이번 공연보다 더 재미었다. 특히 마지막에 지킬과 하이드가 같이 등장하는 장면은 워낙 강렬하게 남아있던 장면이라 그랬는지 정말 집중력 떨어지게 느껴졌다.

하지만 브래드 리틀은 굉장했다.

대사는 그렇다치고 노래까지 두 개의 목소리가 가능하다니.

위풍당당 무대매너가 더해져 근사했다.

게다가 맘에 쏙 드는 엠마-그래, 이게 엠마 목소리지~

근데, 발랄하기만한 빨강머리 루시보다는 김선영의 루시가 더 맘에 들었다.

공연|한러수교20주년기념 사전음악회



이런 공연은 정말 아람누리 근처에 사는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만원의 행복이라고나 할까.

공연의 하이라이트는 메조소프라노 올레샤 페트로바.
소리통이 민간인의 수십배는 될 듯한 여유있고 강한 음색에
무대 선 내내 오페라 연기만큼의 감성과 있어보이는 무대매너를 보여준 멋진 가수.
테너를 압도했다.
여태 들은 연주보다는 앞으로 들을 연주가 더 많을테지만
난 노장 피아니스트들이 더 끌린다.
그들의 묵직한 연주는 화려하고 정교하게 연주하는 젊은 소리들에게선 잘 느껴지지 않는
`느낌`이 있는 것 같다.

공연|소피아필하모닉

아~~멋지다.

한 달에 두 번이나 라흐마니노프를 듣는 기쁨.

힘세보이는 외모와 달리 내가 들어본 중 가장 여성스러운 라흐마니노프는

부드러움과 섬세함이 돋보이는 독특한 연주였다.

두시간 가량 클래식클럽에서 노는 듯, 흥을 놓지 않은 지휘자도 인상적이었던.

처음 입장할 땐 게슈타포들을 보는 것 같았을 정도로 딱딱한 표정일색이었던 아저씨들이

음악에 따라 미소까지 짓는 변화를 보여준 것도 이색재미.

엄청난 첼로군단의 매력적인 소리도 기억에 남을...  

공연|고양필하모닉오케스트라 창단 10주년 기념음악회

예정되었던 협연자의 교통사고로 연주자가 바뀌었다.

딱딱한 또로록 클라이막스에서 처지는 박자. 그래도 3악장은 휼륭한 마무리.

군데군데 세로줄이 난듯한 아주 이상한 연주. 건반 양끝을 완주하며 또박또박 큰 소리로 달리던 손가락이 황금박쥐가 되어 동굴속에서 잠깐 몸을 숙여가며 일반박쥐를 하나씩 무찌르는 것 같았던 극적인 앵콜.

라흐마니노프 2번을 들을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지만

내가 좋아하는 부분에서 맥없이 연주하거나 느렸던 오케스트라 때문에

조금 아쉬웠다.

오케스트라도 앵콜이었던 하차투리안의 왈츠가

연주자였던 뮐러도 앵콜이었던 리스트의 헝가리안 랩소디가

본 연주보다 더 좋았다.

우연히 공연 뒤 연주자에게 직접 앵콜곡을 물어볼 기회가 있어서 곡명은 들었는데

호로비츠가 편곡한 헝가리안랩소디가 그렇게 많을 줄이야--;;

영화|파주|2009

안된다면 안할거냐^^

서우의 눈망울이 멋진.

심장가죽이 얇은 사람들의 이야기가 좋다.

죄책감이란, 버겁지만 인간적인 감정.

뻔뻔해질 수 없고, 잊을 수도 없어서 습하게 마음 한 구석에 깔려 있을.

그래도 사랑은 찾아오고 또 행복해지려 노력을 하긴 한 것 같다.

하지만 결혼은 왜 했던 걸까.

참 닮았다, 둘.

상대를 위해 늘 일방적으로 결정한다.

하지만 끝까지 그게 최선이었는지는 알 수 없다.

상대가 자신을 위해 준비한 최선에 행복해질 수 있을까.

사랑의 이름으로 망가지는 정도가 열정의 척도인 것처럼 여겨지는 연애시장에서

사랑하기 때문에 전쟁같은 삶터에서도 굳세고, 돈의 유혹에도 흔들리지 않는 생활형 연애는

귀감이 될 만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서늘한 안개같은 기운.

이런 뿌연 사랑얘기가 삶과 달라붙어 있다는 건 참 놀라운 일이다.

그래도 질투는 나의 힘이 더 재미있었다.

"용산 참사 선고, 이것은 형사 재판이 아니다"

 

참담하기 이를 데 없다.

재판부는 지난 1월 20일 서울 용산 남일당 빌딩에서 발생한 용산 철거민들의 망루 농성 및 화재 참사 사건과 관련하여, 철거민들의 화염병 투척으로 인한 화재 참사로서 특수공무집행방해치자상죄 등이 성립한다는 검찰의 공소 사실을 모두 받아들여 철거민들에게 유죄를 인정하고 2~6년의 중형을 선고했다. 형사 재판은 자고로 객관적 진실을 발견하여 사안의 진상을 명백히 하고 그 실체적 진실을 전제로 국가 형벌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용산 참사 사건의 재판부는 절차적으로나 실체적으로 형사 재판의 본질을 정면으로 훼손하는 판결을 하고 말았다.

먼저, 재판부는 판결문에서 검찰의 수사 기록 3000여 쪽의 은닉이 가지는 법적인 문제점에 대해서 한마디도 언급하지 않았다. 다만 판결 선고 전의 모두 발언에서 "검찰이 수사 자료 3000여 쪽을 제출하지 않은 아쉬움이 있지만 진실을 발견하기 위해 최선을 다했다"라고 변명했다. 그러나 수사 기록 3000여 쪽의 비공개 문제는 단순히 아쉬움으로 달래고 지나칠 수 있는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비공개된 수사 기록에는 진압 작전의 수립 및 결정에 관여한 김석기 당시 서울지방경찰청장을 비롯한 경찰 수뇌부들 전부의 진술이 기재된 서류, 그리고 경찰과 철거업체나 도시환경정비사업조합과의 유착 관계를 밝힐 수 있을 것으로 보이는 압수 서류나 물건 등이 대거 포함되어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이 기록들은 경찰 진압 과정의 위법성 여부를 다룰 수 있는 유력한 자료들임이 명백하다.

이 사건의 핵심적인 공소 내용이었던 특수공무집행방해치사상죄(단체 또는 다중의 위력을 보이거나 위험한 물건을 휴대하여 공무 집행을 방해하고 공무를 집행하던 공무원을 상해 또는 사망에 이르게 한 죄)의 성립 여부는 경찰의 적법한 공무 집행을 전제로 한다. 그런데 공무 집행의 적법 여부를 밝혀줄 수 있는 핵심적인 기록들이 대거 비공개된 상태에서 재판부는 경찰의 공무 집행이 적법했다고 판단했다. 경찰의 진압 결정과 전개 사실을 밝혀 줄 수 있는 핵심적인 자료가 은닉된 상태에서 섣부르게도 법적인 판단부터 내린 것이다.

법적인 판단은 객관적 사실에 대한 규명을 근거로 하는 것임에도 경찰의 진압 과정에 대한 단서들을 대거 포함한 수사 기록 3000여 쪽을 검토해보려는 노력을 포기한 채 진실 발견이 가능한 것처럼 강변하고 나아가 부실한 사실구성을 바탕으로 경찰의 공무 집행이 적법하다는 논리를 편 것이다. 재판부는 사실과 관련된 기록들을 보지 않고도 사실을 확정했고 법적인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보지 않고도 사물을 직관할 수 있는 예지능력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정녕 신의 경지에 이른 것인가? 재판부 스스로 실체적 진실을 전제로 국가형벌권을 행사하여야 한다는 형사재판의 가장 기본적인 이념을 내팽개쳐버린 것이다.

둘째, 재판부는 "철거민들이 약 1톤(t)이 넘는 세녹스 등 인화물질과 새총 등 위험한 시위용품을 보유한 채 1월 19일부터 인근 건물과 한강대로 변에 벽돌, 화염병, 염산병을 투척했고, 한강대로를 지나는 차량 등 일반인의 통행에 위협을 주고 있었으며, 경찰은 1월 19일부터 전철연 간부를 접촉하여 농성자들과 대화를 시도했지만 농성자들은 경찰의 선 철수를 대화의 전제 조건으로 삼아 결국 대화가 무산되는 상황에서 경찰로서는 경찰력을 투입하여 농성을 진압할 필요가 있었고, 진압 경험이 많고 고도로 훈련된 경찰특공대를 투입하는 것이 필요했으며 경찰지휘부가 경찰특공대를 조기에 투입하기로 한 것은 위법하다고 볼 수 없으며, 경찰특공대는 방패, 진압봉, 소화기 등 최소한의 장비만을 소지한 채 진압작전을 벌였고 진압하는 과정에서 체포에 필요한 이상의 물리력을 행사한 것이 아니므로 공무집행 또한 적법하다"고 판단했다.

경찰권의 행사는 그 필요성이 존재한다고 하더라도 비례의 원칙(경찰권의 행사가 도를 넘지 않게 행사되어야 한다는 원칙)에 맞게 행사되어야 한다. 경찰 진압이 필요하다고 해서 적을 토벌하듯이 경찰권을 행사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며 농성자들의 안전과 생명, 그리고 진압하는 경찰관의 안전도 함께 고려하여야 한다. 이것이 농성 진압시 반드시 준수해야 할 안전수칙이다. 그런데 경찰특공대 진압 작전이 결정된 1월 19일 오후 시점부터 진압 작전이 전개될 시점까지 경찰과 농성자들 사이에 충돌이 없었으며 농성자들이 대로변으로 화염병을 투척하거나 새총을 쏘지도 아니하는 매우 평화로운 상태였다. 철거민들은 자신들의 농성이 공격을 받을 때 방어적으로 새총을 쏘고 화염병을 투척한 것으로 입증되고 있다. 주민들을 고의적으로 공격하거나 행인을 향해 무차별적으로 공격을 한 사실이 없음도 밝혀졌다.

이러한 상태에서 경찰은 1월 20일 새벽을 틈타 사방으로 물대포를 쏘며 인화물질이 다량 쌓여있는 건물 옥상 위 철거민들을 토끼몰이 하듯이 매우 공격적으로 진압을 시도한 것이다. 화재전문가 역시 망루 내의 인화물질을 고려할 때 불이 나는 경우 대형 화재를 막을 방법이 없다고 증언하였다. 경찰특공대의 1차 진압과정에서 망루 내에 1차 화재가 발생하여 대형 화재의 가능성이 감지되고 있음에도 이에 대한 어떠한 안전 대책도 없이 심지어 이미 바닥난 소화기도 충전하지 아니한 상태로 망루 안으로의 진압을 밀어붙인 것이다. 대형 화재가 예견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진압을 독려하고 진압을 강행하는 행위가 과연 안전수칙을 준수한 경찰권의 적법한 행사인가?

이 사건 판결문에는 경찰권을 행사하더라도 안전과 생명을 중시하고 그 침해를 최소화하기 위한 비례의 원칙을 준수하였는지 여부에 대한 어떠한 판단도 보이지 않는다. 위험요소를 방치한 채 수행되는 진압작전은 그 자체로 이미 상당한 인명에 대한 손상을 예견할 수 있는 과도한 진압 형태임에도 경찰 진압과정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아무런 구체적인 판단도 하지 않은 채 도리어 면죄부를 씌어준 것이다. 또한 경찰은 그 추운 겨울 최루액을 섞은 물대포로 사방을 공격하고, 소화가스를 망루내로 살포하고, 컨테이너와 쇠갈퀴로 망루에 대한 해체를 시도하고, 망루의 아래와 위로 동시에 공격을 시도함으로써 극도로 공포 상태로 몰아가고 있었음에도 오히려 재판부는 경찰이 최소한의 장비만을 소지한 채 얌전한 진압 작전을 벌인 것처럼 사실 판단에서 심각한 오류를 범하고 있다.

셋째, 재판부는 "피고인들을 비롯한 농성자들이 망루 내부로 진입한 경찰특공대원들에게 불이 붙은 화염병을 투척하여 망루 내부 3층 계단 부근에 불을 내 망루 안에 있던 세녹스의 유증기에 불이 옮겨 붙어 망루 전체에 화재가 발생한 것이고 누가 던졌는지 알 수 없다고 해도 이 사건 화재 당시 망루 4층에 남아 있었던 이상 책임을 져야한다"고 판단하였다.

그런데 과연 '화염병을 투척하여' 망루 내부 3층 계단 부근에 불이 났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인가? 농성자들이 4층에서 던진 화염병 불에 의해 3층 계단 부근에 불이 붙고 유증기에 옮겨 붙었다면 철거민들이 4층에서 화염병에 불을 붙일 때는 왜 아무렇지도 않았을까? 화재 전문가의 증언에 따르면 유증기는 정전기에 의해서도 발화될 수 있을 만큼 매우 민감한 것임에도 화염병에 불을 불일 당시에는 어떻게 온전할 수 있었던 것일까? 더욱이 2차 진입 당시 화염병을 직접 목격한 경찰특공대의 증언은 없었던 것으로 보인다. 화염병으로 인한 화재로 단정 짓기에는 너무나 의문이 많은 것이다.

또한 화염병을 누가 던졌는지도 알 수 없고, 피고인들이 화염병으로 인해 대형 화재가 발생할 것이라고 예견하였는지 여부도 알 수 없는 상태에서 화재 당시 망루 4층에 있었던 사실만으로 모두 중형의 책임을 지울 수 있는 것인가? 피고인들은 절규하고 있다. "망루 안으로 불붙은 화염병을 던지는 것은 곧 자신들의 죽음을 의미하는 것인데 망루 안으로 불붙은 화염병을 던지겠는가?"라며. 피고인들은 대형 화재가 발생할 것이라는 예견 자체를 극구 부인하고 있는 형국이다. 그럼에도 목격된 바 없는 화염병으로, 누가 던졌는지도 알 수 없는 화염병으로 인한 대형 화재 사고에 대해 단지 화재 현장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중형의 책임을 져야한다는 것인가? 조직 범죄의 수괴를 처벌하기 위해 개발된 공모공동정범의 법리를 자신의 생존을 위해 저항했던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적용함으로써 형벌권의 남용을 자초하고 있는 것이다.

넷째, 게다가 재판부는 재개발 지역의 세입자들이 자신의 생계 대책을 세워줄 것을 요구하기 위해 시작한 망루 농성을 두고 국가법질서의 근본을 유린하는 행동으로 단죄하였다. 이 얼마나 가혹한 가치판단인가? 세입자들은 재개발로 인해 자신의 생존 수단을 상실하게 될 절박한 상황에 놓인 피해자들이었다. 그들은 부실한 법제도와 건설재벌 및 재개발조합, 그리고 철거용역업체들의 일방적 폭력 앞에 단지 3개월간의 영업손실과 적은 금액의 보상금을 받고 거리로 나 앉아야 할 형편에 있던, 음식점, 옷가게, 금은방 점포 사장님 등 평범한 우리 이웃들이었다. 재판부는 그들이 자신의 생존권 보장을 요구하며 망루에 올라갔고 자신들의 생계대책을 요구하려던 과정에서 경찰의 진압에 저항했던 행위를 국가법질서의 근본을 유린하는 행동으로 규정해버린 것이다.

반면 이 사건의 발단이 된 재개발 과정의 폭력성과 비인간성, 세입자들의 피해 상황 등에 대해서는 철저히 외면하는 매우 편파적인 태도를 보였다. 그렇다면 사회적 약자는 모두 강자의 논리에 따라 주면 주는 대로 내쫓으면 내쫓는 대로 그에 따라야 한다는 것인지 반문하지 않을 수 없다. 자신의 아버지가 또는 남편이 테러리스트가 아님을 밝혀달라고 절규하는 가족들의 모습과는 너무나도 대조적이다.

다섯째, 재판부는 "피고인들은 수사기관 이래 이 법정에 이르기까지 경찰과 조합, 철거용역들에게 이 사건의 책임을 전가하려만 하고 있고, 엄숙한 이 법정에서 계획적으로 재판의 진행을 방해하고 이 법정을 자신들의 정치적인 의사표현의 장으로 변질시키려 하는 등 범죄 후의 정황도 매우 좋지 않다"고 판시했다.

그런데 피고인들이 자신들의 방어권을 행사하고 공정한 재판을 받을 수 있도록 검찰이 비공개한 수사 기록 3000여 쪽을 공개하라고 요구하고 이를 위해 재판부에 적극적으로 소송 지휘권을 행사해달라고 요구한 것이 '계획적으로 재판의 진행을 방해한 행위'인가? 경찰과 조합, 철거 용역들의 유착 관계에 대한 의혹을 제기한 것이 '책임을 전가하려는 행위'인가? 사건의 본질을 보기 위해서는, 그리고 객관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필요한 절차들이 아니었는가?

수사기록 3000여 쪽을 은닉한 검찰이야말로 재판의 진행을 방해한 근본적인 원인이 아니었던가? 그런데 재판부는 수사 기록을 제출하지 않는 검찰에게 왜 한마디도 하지 못하는가? 왜 그들에게 당당하게 수사 기록을 제출하라고 한마디도 하지 못했는가? 검찰은 권력자이고 피고인들은 힘없고 '빽' 없는 사회적 약자이기 때문인가? 아니면 수사기록의 공개는 정권에 부담을 주는 행위임을 감지한 때문인가? 피고인들과 변호인이 공정한 재판을 받기 위하여 수사기록 공개를 요구한 것을 두고 이 사건에 대한 책임전가로, 정치적 투쟁으로 매도해버렸다. 참으로 비겁한 행위가 아닐 수 없다.

▲ 용산 참사 해결을 촉구하며 단식 농성을 벌이려던 시민단체 대표들을 연행하는 경찰. ⓒ뉴시스

자고로 형사 재판은 객관적 진실을 발견하여 사안의 진상을 명백히 하고 그 실체적 진실을 전제로 국가형벌권을 행사하도록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용산 참사 사건의 재판부는 실제적 진실을 규명하기 위해 반드시 필요했을 수사 기록 3000여 쪽에 대해서 눈을 감은 채 사실을 확정하고 그를 근거로 법적 판단을 강행했다. 피고인들의 공정한 재판을 받을 헌법적 권리를 재판부 스스로 부정해버린 것이다. 따라서 검찰과 재판부의 국가법질서 유린 정도는 피고인들에 비할 바가 아니다.

훗날 수사 기록 3000여 쪽이 공개되어 자신이 확정한 사실과 실체적 진실이 다른 경우 재판부는 그때 가서 뭐라고 발뺌하려는가? 참으로 궁금하다.

/권영국 변호사 메일보내기 필자의 다른 기사

영화|신부의 수상한 여행가방|Killer Virgin Road|2009

한국 장진을 피하려다 일본 장진을 만나다--;;

보는 사람보다 만든 사람이 더 재미있어했을.

`고양이 손이라도 빌리고 싶은`때에 결혼을 이유로 사직하는 히로꼬

재미있는 표현이었어

 

결혼식으로 끝났더라면 좀 나았을까.

멈추지 않는 코미디지상주의.

하지만 그 불굴의 정신도 이젠 식상하다구.

 

우에노주리의 철인3종경기

또 반가운 마스미짱~

 

공연|새라새 안무가 시리즈 4 <LDP무용단>|2009

오늘 함께 본 관객들에게도 감사를~

 

또 지각을 했다.

그래서 Fly를 놓쳤다.

이제 제시간에 시작하는 공연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좋은 증거이자

10분 정도 늦어서는 아무 지장 없이 공연을 봐왔던 나의 안이한 날들과 헤어져야할 징조.

Modern Feelings

모던 이라는 말을 들으면 단정함, 작게 각진 모서리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무료하게 앉아 있던 두 남자가 슬랩스틱 코미디 같기도 한 작은 합에서 시작해 대결의 합을 이어간다.

거리를 두고 움직이는 두 사람은  같은 동작이었지만 합을 보일 땐 조금씩 다른 동작을 통해 하나의 동작을 완성한다. 힘있는 동작들이었지만 부드럽게 이어지는 두 사람의 합이 직접적인 몸의 표현을 멋지게 보여주었다. 감정에 대한 표현보다는 관계에 대한 것 같아 보이긴 했지만.

무술영화의 대결씬을 안무가가 짜보면 어떨까...  

 

No Comment

사람이 심장을 뛰게 하다가, 심장이 사람을 뛰게 하고, 사람들이 멈춘 뒤에도 심장은 뛰며, 다시 모두를 움직이게 한다. 이국적인 음악과 힘있는 동작들의 어울림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공연...이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아마도 이 무용단의-아마도 모두가 알고 있을 비밀인-미남땐서들. 그들이 제대로 판을 벌여 볼 수 있었던 화끈한 프로그램.

 

몸의 움직임들은 참 멋있었다.

형식이 정해져 있든 그렇지 않든 몸의 표현이란 어쨌든 익힘이 없이는 가능하지가 않으니 더 감탄하게 된다. 중력이 없는 것처럼, 힘껏 그러나 소리없이 바닥에 구르거나, 도움닫기도 없이 몸을 날리는 몸들. 같은 근육자랑이라도 싸움하는 남자보다 춤추는 남자가 백배는 멋있지 아니한가?

 

중간 휴식이 끝난 뒤에야 늦게 들어간 자리. 옆에 마스크를 쓴 파릇한 기침소녀 둘이 앉아있었다.

요즘 신종플루 보도를 볼때마다, 그래봤자 감기가지고...법썩 떨다가 죽는 사람이 더 많겠다라는 불만을 보이고 있던 나지만 막상 바로 옆에 강력한 기침소녀를 앉혀 놓고 보니 안 그래도 쌍화탕 한 병 생각이 간절하던 요즘 나의 면역력에 대한 의심이 겹쳐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쓰잘때기 없는 걱정을 걷어준 건 발랄한 오늘의 관객들.

Modern Feeling 중간 쯤 오른쪽 좌석에서 어린아이의 꺄르르 웃음이 터져나왔다. 한동안 멈추지 않던 그 웃음이 살살 웃고 있던 동지들을 궐기시켜 다른 객석에까지 잠시 퍼졌다. 살짝 보니 댄서 한명도 슬며시 웃음을...두명의 대결장면이었는데 즐거움 두 배.

이 무용단은 프로그램마다 무대가 아닌 객석을 환하게 비추곤 했는데-연출적인 심오한 뜻은 모르겠고 아마 관객 수질검사를 위한 사심이 아니었을까 의심 중-그럴때마다 무대 앞까지 나서는 무용수들이 객석으로 쏟아질까봐 긴장이 됐었다. 그런데 진짜로 No Comment의 후반부에서 무용수들 몇이 객석을 돌고 다시 무대로 올라갔다. 마침 뒤쪽에 무리지어 않아있던 여고생 군단의 자지러지는 비명은 공연 마지막의 환호와 박수세례로 까지 이어졌다. LDP무용단의 춤도 멋졌지만 아무래도 오늘 공연의 즐거움 중 반은 오늘 함께 본 관객들 덕~!

공연|정태춘박은옥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2009




 
이들의 노래에 청춘을 빚지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나...로 시작하는 기사를 읽었다.
사실 난 슬그머니 손을 들어야 하는 형편이다.
질그릇 같은 정태춘의 목소리를 좋아했지만 그가 음반이 아닌 테이프로 새 노래들을 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외면했었다. 모르고는 몰라도 알면 알수록 맘만 부대끼며 살게 될 것이 싫어서 그냥 모른 척 하기로 했었다. 슬픈 칼날 같은 그의 새 노래들이 예전 노래을 향한 나의 감동까지 부정하는 것 같아서 불편했다.
그래도 내 MP3에는 Craig David과 브로콜리너마저와 함께 그의 노래 몇 곡이 들어있다.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첫 공연을 보고 싶었던 건 5년 만이라는 공연이 분명 그들에게도 특별했을 것이라
그들의 설렘과 떨림을 온전히 같이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2시간 반동안 노래와 얘기가 이어졌다.
정태춘은 노래를 목으로 부르지 않아서 시간이 지날수록 힘센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무대위에서 부부는 남편과 아내가 혼자 노래할 때면 서로의 노래를 지긋이 들었다.
인터뷰에서 박은옥이 정태춘의 팬이자 이해하는 아내로 살아간다고 얘기하던 부분을 떠올리며 실은 정태춘도 그랬나보다 하고 있었는데 공연 후반부에서 정태춘은 며칠 걸려 아내 몰래 쓴 편지를 읽으며 박은옥의 팬임을 고백했다, 이 공연은 자신보다 더 노래하고 싶어하는 박은옥의 것이라면서.
벗이 되고, 팬이 되고...사람끼리의 관계가 더해져 두터워진 부부를 보고 있자니 연정 뿐인 관계는 참 연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쳐도 남의 연애에 그렇게 울 것 까지야--;;)

기차소리, 오토바이소리까지 욕심껏 소리를 준비한 공연은
두시간 반을 꽉 채우고 끝났다.
관객에게 인사를 하며 그동안 `환대와 박수`에 고맙다고 했다.
난 `사랑`이라는 말을 아껴쓰는 사람이 좋다.

안보이던 동안도 세월을 잘 지낸듯 멋져보인 두 사람.
공연 중에
그는 그의 재능에 대한 환호와
인생에 대한 응원 중 어느 것이 더 맘에 들까-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었다.
청년의 분노이던 시절의 기억이 내게도 남아있는데
공연 뒤 싸인을 해주던 그의 소년의 얼굴을 생각하면
참 부질없는 궁금증이었다.
공연 중에 시낭송을 한 문소리, 잠시 행사진행을 맡은 김제동.
잘 산다는 건 좋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구나-좀 부러웠다.

이상하게도 눈물이 참 많이 났다.
우리들의 죽음처럼 어쩔 수 없는 노래 뿐 아니라
촛불에서, 시인의 마을에서도, 떠나가는 배에서도 울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 어딘가를 많이 다쳐있었나 봐...

영화|주노|Juno|2007



자극적인 소재에만 신경쓸 관객들을 위해 영화의 요점을 제대로 짚어주시는 포스터

대여점에서 DVD를 바꿔오기까지 했는데도 내 DVD플레이어에서는 돌아가질 않던 주노를
땡새벽 온스타일에서 관람..와핫핫...재밌다!

주노는 특별한 이름을 가진 당찬 소녀이지만
재혼가정의 아이이고 십대임산부가 되었으며 결국을 온전치 못한 십대엄마가 되어버리고 만셈인데.
하지만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자신을 잘 알고 있었고, 또 그녀일 수 있었기에
자기 자신이 아닌 그녀의 환경 어떤 것도 그녀의 이름을 다른 별칭으로 바꿔놓지 못했다.
주노가 주노인 동안 그녀의 인생이 불행해지긴 힘들것 같아.

엘렌 페이지, 예쁜 배우이기도 했지만,
사람이 가진 가장 강력한 매력이 자아, 자존감에 있음을 보여줄만큼
연기력도 빛나는 배우.
엣된 얼굴 사이사이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말투와 표정이 꼼꼼하게 끼어드는 걸 보고 있자면
이 처자도 보통내기는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이자벨 아자니를 닮은 헬레나 본 햄 카터랄까?




주노의 멋진 부모
명령하고 야단치는 것 보다 훨씬 힘들되 보람찬 부모노릇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이런 사람 본 적도 없는데 이 장면이 찡했던 건 바네사의 힘

주노의 너무나도 이지적이면서 로맨틱한 고백에 감탄하는 와중에
저 노란반바지를 웃지 않고 볼 수는 없었던^^

혼자달리기를 멈추고 함께 노래하기로 한 주노의 연인

영화를 보기 한참 전,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꽃띠처자가 각본상을 수상하는 장면을 먼저 봤더랬다.
같이 오른 후보작들은 기억에 나지 않지만 이 감각이라면 놀라운 결과도 아닐듯하다.
첫 장면에 평범했던 등장인물들이 영화가 끝나기 전엔 전원 매력인들이 되었으니.
해산직전의 친구가 탄 휠체어를 재밌다고 몰고 놀며 그녀들이 10대임을 다시 확인시켜준 레아까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