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새라새 안무가 시리즈 4 <LDP무용단>|2009

오늘 함께 본 관객들에게도 감사를~

 

또 지각을 했다.

그래서 Fly를 놓쳤다.

이제 제시간에 시작하는 공연들이 많아지고 있다는 좋은 증거이자

10분 정도 늦어서는 아무 지장 없이 공연을 봐왔던 나의 안이한 날들과 헤어져야할 징조.

Modern Feelings

모던 이라는 말을 들으면 단정함, 작게 각진 모서리 같은 것들이 떠오른다.

무료하게 앉아 있던 두 남자가 슬랩스틱 코미디 같기도 한 작은 합에서 시작해 대결의 합을 이어간다.

거리를 두고 움직이는 두 사람은  같은 동작이었지만 합을 보일 땐 조금씩 다른 동작을 통해 하나의 동작을 완성한다. 힘있는 동작들이었지만 부드럽게 이어지는 두 사람의 합이 직접적인 몸의 표현을 멋지게 보여주었다. 감정에 대한 표현보다는 관계에 대한 것 같아 보이긴 했지만.

무술영화의 대결씬을 안무가가 짜보면 어떨까...  

 

No Comment

사람이 심장을 뛰게 하다가, 심장이 사람을 뛰게 하고, 사람들이 멈춘 뒤에도 심장은 뛰며, 다시 모두를 움직이게 한다. 이국적인 음악과 힘있는 동작들의 어울림이 가장 인상적이었던 공연...이었던 또 하나의 이유는 아마도 이 무용단의-아마도 모두가 알고 있을 비밀인-미남땐서들. 그들이 제대로 판을 벌여 볼 수 있었던 화끈한 프로그램.

 

몸의 움직임들은 참 멋있었다.

형식이 정해져 있든 그렇지 않든 몸의 표현이란 어쨌든 익힘이 없이는 가능하지가 않으니 더 감탄하게 된다. 중력이 없는 것처럼, 힘껏 그러나 소리없이 바닥에 구르거나, 도움닫기도 없이 몸을 날리는 몸들. 같은 근육자랑이라도 싸움하는 남자보다 춤추는 남자가 백배는 멋있지 아니한가?

 

중간 휴식이 끝난 뒤에야 늦게 들어간 자리. 옆에 마스크를 쓴 파릇한 기침소녀 둘이 앉아있었다.

요즘 신종플루 보도를 볼때마다, 그래봤자 감기가지고...법썩 떨다가 죽는 사람이 더 많겠다라는 불만을 보이고 있던 나지만 막상 바로 옆에 강력한 기침소녀를 앉혀 놓고 보니 안 그래도 쌍화탕 한 병 생각이 간절하던 요즘 나의 면역력에 대한 의심이 겹쳐 긴장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그러나 이 쓰잘때기 없는 걱정을 걷어준 건 발랄한 오늘의 관객들.

Modern Feeling 중간 쯤 오른쪽 좌석에서 어린아이의 꺄르르 웃음이 터져나왔다. 한동안 멈추지 않던 그 웃음이 살살 웃고 있던 동지들을 궐기시켜 다른 객석에까지 잠시 퍼졌다. 살짝 보니 댄서 한명도 슬며시 웃음을...두명의 대결장면이었는데 즐거움 두 배.

이 무용단은 프로그램마다 무대가 아닌 객석을 환하게 비추곤 했는데-연출적인 심오한 뜻은 모르겠고 아마 관객 수질검사를 위한 사심이 아니었을까 의심 중-그럴때마다 무대 앞까지 나서는 무용수들이 객석으로 쏟아질까봐 긴장이 됐었다. 그런데 진짜로 No Comment의 후반부에서 무용수들 몇이 객석을 돌고 다시 무대로 올라갔다. 마침 뒤쪽에 무리지어 않아있던 여고생 군단의 자지러지는 비명은 공연 마지막의 환호와 박수세례로 까지 이어졌다. LDP무용단의 춤도 멋졌지만 아무래도 오늘 공연의 즐거움 중 반은 오늘 함께 본 관객들 덕~!

공연|정태춘박은옥 다시 첫차를 기다리며|2009




 
이들의 노래에 청춘을 빚지지 않은 사람이 누가 있겠나...로 시작하는 기사를 읽었다.
사실 난 슬그머니 손을 들어야 하는 형편이다.
질그릇 같은 정태춘의 목소리를 좋아했지만 그가 음반이 아닌 테이프로 새 노래들을 내기 시작했을 때 나는 외면했었다. 모르고는 몰라도 알면 알수록 맘만 부대끼며 살게 될 것이 싫어서 그냥 모른 척 하기로 했었다. 슬픈 칼날 같은 그의 새 노래들이 예전 노래을 향한 나의 감동까지 부정하는 것 같아서 불편했다.
그래도 내 MP3에는 Craig David과 브로콜리너마저와 함께 그의 노래 몇 곡이 들어있다.

공연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첫 공연을 보고 싶었던 건 5년 만이라는 공연이 분명 그들에게도 특별했을 것이라
그들의 설렘과 떨림을 온전히 같이 느껴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2시간 반동안 노래와 얘기가 이어졌다.
정태춘은 노래를 목으로 부르지 않아서 시간이 지날수록 힘센 노래들이 흘러나왔다.

무대위에서 부부는 남편과 아내가 혼자 노래할 때면 서로의 노래를 지긋이 들었다.
인터뷰에서 박은옥이 정태춘의 팬이자 이해하는 아내로 살아간다고 얘기하던 부분을 떠올리며 실은 정태춘도 그랬나보다 하고 있었는데 공연 후반부에서 정태춘은 며칠 걸려 아내 몰래 쓴 편지를 읽으며 박은옥의 팬임을 고백했다, 이 공연은 자신보다 더 노래하고 싶어하는 박은옥의 것이라면서.
벗이 되고, 팬이 되고...사람끼리의 관계가 더해져 두터워진 부부를 보고 있자니 연정 뿐인 관계는 참 연약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다쳐도 남의 연애에 그렇게 울 것 까지야--;;)

기차소리, 오토바이소리까지 욕심껏 소리를 준비한 공연은
두시간 반을 꽉 채우고 끝났다.
관객에게 인사를 하며 그동안 `환대와 박수`에 고맙다고 했다.
난 `사랑`이라는 말을 아껴쓰는 사람이 좋다.

안보이던 동안도 세월을 잘 지낸듯 멋져보인 두 사람.
공연 중에
그는 그의 재능에 대한 환호와
인생에 대한 응원 중 어느 것이 더 맘에 들까-하는 생각이 잠시 들었었다.
청년의 분노이던 시절의 기억이 내게도 남아있는데
공연 뒤 싸인을 해주던 그의 소년의 얼굴을 생각하면
참 부질없는 궁금증이었다.
공연 중에 시낭송을 한 문소리, 잠시 행사진행을 맡은 김제동.
잘 산다는 건 좋은 사람들과 친하게 지내는 것이구나-좀 부러웠다.

이상하게도 눈물이 참 많이 났다.
우리들의 죽음처럼 어쩔 수 없는 노래 뿐 아니라
촛불에서, 시인의 마을에서도, 떠나가는 배에서도 울었다.
나도 모르는 사이 나 어딘가를 많이 다쳐있었나 봐...

영화|주노|Juno|2007



자극적인 소재에만 신경쓸 관객들을 위해 영화의 요점을 제대로 짚어주시는 포스터

대여점에서 DVD를 바꿔오기까지 했는데도 내 DVD플레이어에서는 돌아가질 않던 주노를
땡새벽 온스타일에서 관람..와핫핫...재밌다!

주노는 특별한 이름을 가진 당찬 소녀이지만
재혼가정의 아이이고 십대임산부가 되었으며 결국을 온전치 못한 십대엄마가 되어버리고 만셈인데.
하지만 그녀는 어떤 상황에서도 항상 자신을 잘 알고 있었고, 또 그녀일 수 있었기에
자기 자신이 아닌 그녀의 환경 어떤 것도 그녀의 이름을 다른 별칭으로 바꿔놓지 못했다.
주노가 주노인 동안 그녀의 인생이 불행해지긴 힘들것 같아.

엘렌 페이지, 예쁜 배우이기도 했지만,
사람이 가진 가장 강력한 매력이 자아, 자존감에 있음을 보여줄만큼
연기력도 빛나는 배우.
엣된 얼굴 사이사이 나이를 가늠할 수 없는 말투와 표정이 꼼꼼하게 끼어드는 걸 보고 있자면
이 처자도 보통내기는 아닐 거란 생각이 든다.
이자벨 아자니를 닮은 헬레나 본 햄 카터랄까?




주노의 멋진 부모
명령하고 야단치는 것 보다 훨씬 힘들되 보람찬 부모노릇이 많다는 것을 보여준다.

사실 이런 사람 본 적도 없는데 이 장면이 찡했던 건 바네사의 힘

주노의 너무나도 이지적이면서 로맨틱한 고백에 감탄하는 와중에
저 노란반바지를 웃지 않고 볼 수는 없었던^^

혼자달리기를 멈추고 함께 노래하기로 한 주노의 연인

영화를 보기 한참 전, 아카데미시상식에서 꽃띠처자가 각본상을 수상하는 장면을 먼저 봤더랬다.
같이 오른 후보작들은 기억에 나지 않지만 이 감각이라면 놀라운 결과도 아닐듯하다.
첫 장면에 평범했던 등장인물들이 영화가 끝나기 전엔 전원 매력인들이 되었으니.
해산직전의 친구가 탄 휠체어를 재밌다고 몰고 놀며 그녀들이 10대임을 다시 확인시켜준 레아까지도~

공연|타타인붓다|2009



`난타`는 그저 그랬지만 `점프`때의 흥분을 상상하며 한번 신청해 본 이벤트에 당첨이 됐다.
사실 당첨이 안되었더라도 나중에 보러갔을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공연...이었는데.

일가친척 불러놓고 서비스공연하는 사람들처럼
공연 전에 연출자가 나와 10분간 바람잡이를 한다.
일단 마이너스 10점이다.
드디어 시작된 공연.

공연은
어찌 이런 대본에 제작비 조달이 가능했을까 의심스러운 스토리에
100% 배우들의 노동력에만 의존한
총체적인 난국이다.
신체구조를 무시해서 막 입힌 의상, 보이기만 하면 다행이다 싶은 조명, 웅장한 녹음반주,
힘들겠다 싶은 해설용 노래-배우들로 전달되는 스토리는 거의 없고 해설자가 공연의 노래 대부분을 커버하는데 어지간한 콘서트를 능가하는 차력용 성대의 소유자 인듯 했다. 임춘길, 시카고에서 좋았고 춤 잘추는 배우라고 들었는데 정말 욕 봤다. 근데 100분간의 공연에서 아쉽게도 다시 듣고 싶은 노래는 하나도 없다.
연기는 아무도 연기할 필요가 없기에 말할 것도 없지만,
운동만 하던 학생들임에도 불구하고 다들 굉장히 성실해 보였다.
게다가 그 땀을 생각하면
노동강도에 한참 못 미치는 완성도로 공연을 만든 제작자와 연출자가 완전 나쁜 거다.

태권도를 걸고 나오지만
어느 태권도장에서나 볼 수 있을 법한 기본단체훈련이 여러 번 등장하고
놀라운 격파와 날렵한 동작들도 몇 있기는 하다.
중요한 건 군무를 대신해야하는 단체 동작들이 매우 단조로우며
밋밋한 스토리에 이런 동작들을 그냥 알박기 했을 뿐
하나의 공연속에 어우러지게 만들지 못했다는 것이다.
다 따로 놀면서 뭐 하나도 살리지 못할 바에야
국기원 단증심사나 리권동영상이 더 박진감 넘치겠다.



아....
참 오랜만이다-시간이 아까운 공연이라니.
억지로 호응해 주기엔 정말 마음이 동하지 않았는데
앞 자리에 앉은 관계로
다가오는 배우들의 시선을 피하는 게 너무도 고역이어서
막이든 장이든 바뀔 때 불이 꺼지면 살짝 나가려고 했는데
공연은 한번에 쭉 갔다.
끝나자마자 나오려 했는데 또 잽싸게 다시 등장하시는 연출자.
이번엔 공연을 후원한 대학의 이사장을 불러 인사까지 하고
공연에 참가한 학생들이 이사장에게 꽃다발을 건넨다.
뒷풀이는 관객들 좀 보내준 다음에 하지 그래, 이 아마추어들.

안 봐서 태양의 서커스는 모르겠다만
난타라니, 점프라니......
지금 수준으론 비교한다는 거 자체가 명예훼손 같은데
정말 저 두 공연도 처음엔 이렇게 밑바닥에서부터 시작한 걸까?
왔다갔다 보낸 시간에, 먼길 꼬셔낸 동행에게
내가 찐하게 AS를 해줘야 할 것 같은 미안함마저 들었건만...한숨밖에 안나온다...

영화|디스트릭트9|District 9|2009

최초의 빈민가 SF

 

차별, 강제퇴거, 조직폭력배, 전쟁, 피도 눈물도 없는 가족, 카니발, 빈민가의 비참한 생활.

아주 신경써서 혐오스러운 것들을 잘도 모았다.

그래도 우주를 초월한 우정과 쓰레기장에서 핀 철꽃의 희망(-이라고 해도 될까...)의 결말이지만.

처음에 무척 궁금했다. 왜 요하네스버그인가.

외계인이 아니더라도 비분쟁지역중 아마도 세계 최고의 범죄율을 자랑할 것이며,

이제 인종차별은 역사다-라고 절대 말할 수 없는 차별의 성지.

그 긴 차별의 역사를 살아남은 사람들이 외계인 차별발언들을 쏟아낼 때

그러니까, 차별받을 짓을 하니까 차별하지 라는 거냐..까지 진도를 나갈 뻔도 했기에 참 궁금했는데

아주 단순한 이유였으리란 심증이 들었다-감독의 고향이라네...

시작부터 흥미진진이었다.

여러가지 불법퇴거동의서 작성법이 등장한다.

얘들은 외계인한테도 합법적인 척을 하기는 한다.

최후의 진압의 규모는 어마어마하지만

죽은 사람 입장에서야 총이건 각목이건 불이건 무슨 차이가 있겠어.

이들의 인권-외계인권을 지키고자하는 단체들이 있으며

그런 단체들의 항의를 걱정하는 척이라도 해주는 선진 아프리카.

당당하게 승진한 비커스의 첫 출근지.

알 500개는 아무렇지 않게 죽이면서 움직이는 꼬마외계인은 존중하고 살아있는 타겟은 거부하는 그의 의식이라는 게 아주 모순투성이인 것 같지만

실은 일반적인 인권의식 또한 이렇지 아니한가.

왠지...에 흘러가는.

재앙의 시작.

정말 생존이라는 건 본능일까.

똑똑하고 의리도 있는 크리스토프(?)-이름이--;;

그래도 3년은 너무하잖아, 먼저 비커스 좀 도와주고 가지.

 

팔 한쪽의 차이로 인간은 비커스를 따 시키고(먹으려고도 하고)

그 팔 한쪽의 공통점으로 외계인들은 편이 되어준다.

먹을 것만 있으면 거기 사는 것도 괜찮다고 봐, 나는.

 

비커스와 크리스토프 같은 1대1의 관계는 현실에서도 분명 존재하지만

이게 집단으로는 어려워진다.

나 너무너무 좋아하는 일본친구가 있는데 독도는 우리땅이잖아?

그러니 오히려 관계를 중시하고 평화를 사랑하는 인간성을 지키려면

모두 다 따로 노는게 맞는 거 아닌지.

내 건 혼자 양보해줄수도 있지만

우리의 것을 양보하기엔 나 혼자 결정하기가 어려울 뿐더러

`우리의 양보`가 굉장히 큰 손실이 될지 모른다는 공포가 생긴다.

하나가 못되게 굴면 그냥 싫어하면 되는데

여럿이 덤비면 무섭다.

그러니까 떼로 몰려다니지 말자-는 말씀.

 

비커스의 탈출장면은 언뜻 괴물의 송강호 탈출을 떠올리게도 하고

마지막 전투 장면은 블러드다이아몬드의 세사람의 관계를 생각나게도 했다.

크레딧에 떠오르는 이름-피터 잭슨.

개떼같이 등장하던 외계인들 혹시 재활용? ㅋ

새로운 풍자에 성공한 네일 브롬캠프라는 새로운 감독.

영어의 alienate과도 뭔가가 맞아 떨어지는 것 같은 재미있는 감각이다.

그래도 다 좋지는 못했던 것이 나의 수준낮은 비위 때문인데...

옛날에 누가 `퐁네프의 연인들` 를 보고 `스크린에서 쓰레기 냄새 나는 줄 알았다`더니

내 비위가 좀만 더 좋았더라면 한번쯤은 재미있게 더 봐줄수도 있었을

남루한 빈민SF의 신선함-좋아. 그래도 두 번은 못 봐...

영화|호우시절|2009

 

 

인생의  한 구석에 수줍게 남아있을 법한 설레임들에게

`사랑`이란 이름표를 붙여주는 허진호의 `찾아주는 서비스`.

이제 꼼꼼히 찾아헤매다 기억의 귀퉁이쯤에 있는 옛사랑에까지 이르렀다.

지나고 나면 알게된다는 사랑의 정체는

그것이 현재인 동안

`이게 사랑일까`라는 물음 앞의 머뭇거림이다.

그 질문에 자신있게 답할 수 없었던 소심한 전직연인에게 허진호는

그거 사랑이야라고 토닥여주는 연애물의 감초친구 같다.

어쩌면 그는 죽을 만큼 그리워 하거나

저주를 퍼부으며 잊으려 하거나

미칠듯이 달려가 보진 못했지만

사라지지 않는 오랜 떨림들의 온기를 기억하며

자신의 연정을 정성껏 포장하면서,

사랑을 묻는 현재의 연인들에게

격려를 보내고 싶은 게 아닐까.

 

어찌됐든 해피엔딩매니아에게는

신뢰할만한 감독....이지만

앉아있는 동안 시계를 네 번 보고야 말았다...

연애물의 주인공들은 늘 상대의 시선으로 그려지기에

신체조건에 상관없이 몰입한 만큼 멋있기 마련이다.

이따금 오바스런 엽기캐릭터까지 동원하며

거부할 수 없는 운명적 사랑의 농도를 강요하는 사람도 있지만

허진호의 연인들은 연애물의 주인공들답지않게 참 평범하다.

그게 그들의 연애를 남의 일 같지 않게 만들면서 몰입을 돕기도 하지만

그냥 그렇게 만났을 뿐이지 꼭 서로에게 꼭 `그`일 필요도, 꼭 `그녀`일 필요도 없게 만들기도 한다.

이 밍밍함의 정체가 배우들인지 허진호인지는 잘 모르겠다.

뭐, 그녀는 예뻤고 그는 멋있었다.

근데 뭐가 그렇게들 좋으셨는지는 전혀 눈치챌 수 없었다.

딱 한 번, 동호가 등장한다. 망설이다가 어정쩡하게 메이의 머리에서 꽃잎을 떼주는 장면.

그때를 빼고는 내내 매력적으로 보이고 싶어하는 안쓰러운 전직미남 정우성이었을 뿐.

아직도 외모때문에 연기력이 평가절하된다고 믿고 있는 걸까?

그렇게 믿는 동안은 앞으로도 희망이 없을텐데...

외모로는 더없이 잘어울리던 그녀.

하지만 계속 웃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참 힘들었겠다는 생각이 몇번 들었다.

요즘 내가 술자리에서 참 말이 많네..후회가 들곤했는데

이 분이 딸랑딸랑 경종을 울리고 가셨다.

자, 진상 경계경보^^

영화|오래된 정원|2007

믿음직한 임상수를 의심하지 말자

 

이들의 사랑이 슬프지만 아름다게 빛나는 것은

그들이 분노를 접고서는 살 수 없는 순수한 인류였고,

그들이 꿈꾸는 '함께'의 사랑이 사랑의 정수를 일깨워주기 때문이다.

 

원작의 한윤희도 이렇게 매혹적이었던가?

황석영의 원작은 오랜 기다림과 부푼 기대에 못미쳤던 허전한 사랑이야기로 남았을 뿐인데

임상수의 영화는 안타깝고도 힘센 그들의 사랑을 천천히 가슴에 심어놓고 갔다.

 

임상수의 영화는 늘 세련된 느낌이다.

하나로 몰아가느라 무리수를 두는 촌스러운 짓을 하지 않는다.

여러가닥의 씨줄과 날줄을 참 잘 엮어간달까.

그런데 이번엔 사랑이야기에 확 집중하고 싶었던 냄새가 났다.

기러기아빠라더니 쓸쓸하신게로구려..ㅋ.

그래도 촌스러워지진 않았던 것이

한 장면, 대사 하나에 공들인 흔적이 느껴진다.

장인이라 불러야 할 것 같아.

너무 늙수구레하게 들려 본인이 싫어할라나...

 

괜찮을까 싶은 조합이었는데 예상을 깼다. 염정아도 지진희도.

보고나선 만족스럽지만 보기전에 나를 적극적으로 꼬시지 못하는 배우들.

숨겨줘, 재워줘, 먹여줘, 몸줘...왜 가니, 니가.

그래도 가는 남자라 당신이 사랑했을거야.

그래도 잡지 않는 여자라 그가 사랑했을거야.

 

당신이 이래서 좋아요-라는 제일 시시한 수준의 고백 한마디 없이도

그들은 사랑에 빠지고 사랑하고 또 기억한다.

동반자이자 연인이 될 수 있는 서로를 만나다니

짧지만 운 좋은 사람들.

인생에 불공평함도 많지만

아주 쬐끔은 그것 좀 보충하라며 떨어지는 선물도 있는 법.

 

말랑한 멜로가 싫더라도,

영화 보는 보람을 느끼게 해 준 한마디가 있다.

"그러니까 전두환을 죽여야지."

시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