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미개인 동양의 현자|프레데릭 볼레스텍스|청년사


-한국인들이 늘 엄청나게 시끄럽고 항상 높은 어조로 말을 한다고 지적한다. 한국인에게는 최대한 큰 소리를 치는 것이 가장 큰 예의의 증거이다. 그래서 떠들썩한 것을 좋아하는 것은 거의 선천적인 것이며 소동을 피우지 않고는 아무 것도 제대로 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한국의 남녀는 선천적으로 열정적이다...이들은 동물적 욕구밖에는 모르며 야수의 본능으로 자신의 욕구를 충족시키기 위해, 제일 먼저 만나는 대상에게 맹목적으로 달려든다...전반적으로 고집스럽고 까탈스러우며 화를 잘 내고 앙심이 깊은 성격이다. 이는 이들이 오랫동안 반야만상태에서 살아왔기 때문이다.
-한국의 귀족들은 세계에서 가장 강력하고도 오만한 계층이다. 다른 나라에서는 군주나 법관 그외 다양한 기관이 귀족들을 다스리고 그들의 권력을 견제한다. 그런데 한국에서는 귀족들이 너무 많아서 아무리 내분이 잦아도 자신들의 특권을 옹호하고 확대하기 위해서라면 놀라운 단결력을 보인다. 그래서 백성들도 관리들도 심지어는 왕조차 그들의 권위에 대항해 싸울 수가 없다.
/샤를르 달레신부 <한국교회사>

-그들의 민첩함은 실로 놀랍다. 이는 그들이 그토록 좋아하는 산에서 뛰어다니고 종종 산의 정상에서 모임을 하면서 얻어진 능력인 듯 하다.
-글을 읽을 줄 모르는 사람은 매우 드물고 다른 이들의 멸시를 받기 쉽다. 문맹인에 대해 그토록 엄격한 태도를 취한다면 프랑스에서는 멸시받을 사람들이 상당히 많을 것이다.
-...한국의 자연적 여건 때문에 끝없이 산에 올라야 하고 그곳에서 신선한 공기를 마셔서 폐가 그토록 발달한 것 같다(...)최소한 초보적 교육은 널리 보급되어 있는 듯 하다. 아무리 가난한 집이라도 종이와 책은 갖추고 있다.  
/앙리 주베르<한국지도에 관한 고찰, 한국 원정>

-2차 시험에 떨어진 사람도 진사가 되려면 1차 시험을 다시 보도록 하는 제도는 한국 사람들의 머릿속에 공공교육에 대한 매우 실용적인 생각이 들어 있음을 보여주는 듯하다. 이들이 택한 체제는 단기간에 준비해 실력보다도 운으로 성공하는 일을 막기 위한 최고의 방법인 듯하다(...)지식에 권력이 수반되지 않더라도 그 자체를 존중하는 일반인들의 태도는 우리 서구에 만연되어 있는 개탄할만한 사조와는 대조적이며 한국인들에게 독립적인 사상이 있음을 보여준다. 서구에서는 학식이 있더라도 그것을 빛내주는 명예가 없으면 학식은 쓸모 없는 가구 쯤으로 여겨진다. 게다가 그 명예는 종종 갖가지 술책으로 얻어진다. 
/모리스 잠텔Maurice Jametel 

-합법적이고 정당한 행정제도가 들어서서 백성들의 노동을 더 이상 규제하지 않는 날이 오면, 사람들의 등이나 짐승애 짐을 실어 나르는 대신 길이나 철도로 상품을 옮길 수 있게 되는 날이 오면, 유용한 상품들은 넘쳐나고 국민의 수요를 충당하고도 남게 될 것이다. 따라서 한국의 경제적인 전망은 매우 밝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한국인들이 악덕을 개혁하고, 서구문명에서 유용한 것을 취할 줄 알고, 생산수단과 빠르고 저렴한 통신수단, 더 평등한 사법제도, 더 엄격하고 정확한 금융제도를 갖추어야 할 것이다. 또한 무기경쟁으로 빈약한 자원을 바닥내는 일은 외국인들에게 맡기고 강대국보다는벨기에나 스위스 같은 나라를 본으로 삼아야 할 것이다. 
/모리스 쿠랑Maurice Courant <서울의 추억, 한국>

홍종우의 춘향과 고목에 핀 꽃
1890년 12월 24일, 한 한국인이 프랑스에 도착한다. 그가 바로 홍종우였다. 잘 알려진 동양 국가들(당시 탐미주의자, 확, 작가들 사이에서는 일본풍이 대유행이었다)이 아닌 나라에서 온 최초의 한국인을 언론은 '조용한 아침의 나라'에서 온 수수께끼 같은 인물이라고 소개하고 있다. 그는 1893년 2년 간의 체류를 마치고 프랑스를 떠나, 같은 해 상하이에서 개혁주의자이자 1884년 정변의 주동자인 친일파 김옥균을 암살한다. 이 사건 이후 중국 당국은 홍종우를 한국으로 추방하고, 그는 한국에서 그 업적을 인정받아 정치가로서의 길을 걷게 된다. 
기메박물관에서 1년간(1892-1893) 일했던 홍종우의 도움으로 한국 문학작품 두 편이 최초로 번역되었다...홍종우는 일본어를 할 줄 알았고, 통역을 통해 프랑스인과 의사소통을 했다. 이렇게 해서 번역된 첫 작품이 바로 1892년의 춘향 Printemps Parfume 이다. 불어번역은 보엑스Boex형제(두 사람은 J.H.Rosny라는 필명을 같이 썼다) 가운데 형이 맡았다.

한국의 산은 따라서 대부분의 이야기 속에서 입문의 역할을 한다는 데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뭔가를 찾아 떠난' 주인공들은 산을 통해서 자신의 '길'을 찾게 된다. 산은 단순한 배경으로 머무는 대신 한국 우화에서 비중 있는 요소가 된다. 산을 넘어가는 것은 주인공들이 느끼는 결핍을 채워줄 본원적 자기정체성을 찾는 것이다. 그리고 야생의 자연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 모든 성숙에 수반되게 마련인 시련을 겪는 곳이다. 
이리하여 주인공이 뭔가를 찾아나설 경우, 우화의 배경은 정해져 있다. 깊은 산속에 있는 작은 나라에(두꺼비의 보은), 그래서 어느 날 그는 산을 돌아가는 대신 깊은 산속으로 들어가서(치악), 옛날 옛적 깊은 산속 외딴 곳에 불쌍한 여인이 살았는데(호랑이와 수수밭) 등이 좋은 예이다. 매번 산으로 들어가는 것, 산을 넘어가는 것은 특별한 경험, 신비한 것과 접하는 방법이 된다. 또한 세상의 본원적 원칙으로 귀의하는 것이기도 하며, 이는 19세기말 한국을 여행한 사람들의 기행문에서도 언급되고 있다.
한국 우화의 또 다른 특징은 한국적 정서에 있다. 단순한 구조 속에서 이 우화들은 유교적 원칙을 통해 전통사회의 사회적 일체감을 재확인하고 있다. 전적으로 개인적인 운명만을 다루는 프랑스 동화들에 비해, 한국의 우화는 사회의 공동체적 균형유지에 참여함으로써 신화와 같은 기능을 하고 있다.
이야기 속의 주인공의 대부분은 처음에는 소외된 사람들(착한 맹인, 가난한 고아, 가난하지만 정직한 바보 등)로 특별히 한국적이라고는 볼 수 없다. 이야기의 초반은 불만족스러운 현실에서 출발하며 사회에 대한 반항의 씨앗을 품고 있다. 그러나 마지막에 가서 주인공들은 그들의 사회와 문화속으로 수용되며, 그들의 행동을 통해 정의와 법의 힘을 구현한다. 사회의 낙오자(가난, 홀아비, 외로움, 바보, 병, 노쇠함 등)로서의 위치, 그 본원적인 결핍때문에 사회에서 자리를 잃었던 이들은 스스로도 의식하지 못한 채, 대립된 두 새계, 즉 규범과 도덕으로 가치화된 한국 사회와 제어되지 않는 본원적 에너지의 세계(원시의 혼령, 바다나 하늘의 괴물, 야생동물 등)를 이어주는 중재자 역할을 하는 것이다. 인간 사회에서 배척당한 것으로 믿었던 이들은 진정한 유교적 영웅으로 변화해 서로 적대적이었던 두 세계 간의 교류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다. ..무언가를 찾아나선 이들의 역할은 한국 무당들의 역할과 비슷하다고 하겠다....
이 우화들은 전통사회의 균형을 개인의 성공보다 중시한다. 현실세계의 왕들은 유럽의 동화들에서처럼 유토피아적이고 접근 불가능한 세계에 사는 동화적이고 멋진 인물이라기보다는, 덕과 존경을 우선시하는 공자의 인간주의 바탕으로 정의로운 세상을 지켜가는 인물들이다....덕스럽고 가치있는 행위에 대한 보상으로 부귀영화가 따르지만 인생의 행복은 다른 곳에 있다. 단지 관리로서 승진을 하는 등의 사소한 사회적 출세가 기다릴 뿐이다.

한국전쟁 이후 1960년대의 산업화를 거친 한국은 독특한 나라로 묘사된다. 그곳은 또 다른 땅, 또 다른 시간이 있는 곳이며, 그 안에서는 강렬한 대비효과(공간적, 시간적)가 존재한다. 더 이상 한국은 주변국들과 비스산 나라로 간주되지 않고, 서양인들의 태도와 비슷한 나라로 표현되기도 한다. 한국은 그 자체로 독창적이라기보다는 중국이 아니기 때문에, 일본이 아니기 때문에, 기타 무엇무엇이 아니기 때문에 독창적이다. 그런데 이러한 한국은 하나가 아니라 두 개이며 다양한 요소들이 심오한 대비를 이루고 있는 곳이다.

로렌스 베나임도 <조용한 아침의 나라의풍습>에서 한국의 거리를 묘사하고 있는데, 19세기 말 자료들에서 볼 수 있는 무기력함과 나태함의 분위기를 느낄 수 있다.
-명상 중인 군인들, 나이키 신발을 신고 뛰어다니는 승려들, 미니스커트를 입고 인사동에서 붓과 먹을 사는 여고생 무리들, 변화 중인 이 세계의 이미지들이다(...)거대한 도시의 모습은, 거의 무관심으로 보일 만큼 초연한 모습으로 거리를 오가는 서울 사람들의 평온함과 대조를 이룬다.
 
-그림은 뭔가를 재현해내는 공간이 아니라 성찰의 공간이다(...)한국의 화가들은 전통을 중시하면서 인간과 우주 간의 조화를 추구한다. 이러한 노력은 자연에 대한 경외감 혹은 이런 자연의 표현에서 출발한다. 빈 화폭에 대한 사랑,(...)한적한 공간, 명상의 공간에 대한 애착,(...)이러한 노력은 개인의 철학적 탐구로 이어진다. 
/장 프랑수와 모지코나지 Jean-Francois Mozziconacci

새로운 문명을 처음 접할 때의 생소함이 다양하게 드러난 인용구들의 모음.
역시 이 '남'들도 다들 그렇듯 '보고 싶은 대로' 보는 사람들이었으므로 
정체성을 꿰뚫어주는 시원함은 없지만
좀 달리보려 노력한 사람들의 흔적 속에서
새로운 관점을 느낄 수는 있다.
민첩함과 소란스러움, 생각보다 긴 뿌리를 가지고 있는 교육열에 대한 기록처럼 
관찰에서 나오는 나름의 정리들도 재미있었다.
성욕에 대한 부분은 동양사람들이 서양사람들에 갖는 생각과 비슷해서(원인은 달리 분석되겠지만)
웃겼다.
점령의도를 드러내고는 있다지만
강대국이 아닌 중립국을 모델로 삼았어야 한다는 모리스쿠랑의 의견에는 동의한다. 

*뮈텔이라는 신부의 기록에 대원군의 부인이 유모를 통해 개종했었다는 사실이 나와있다.

**착한 야만인Bon Savage: 장 자크 루소의 초기 저술에 제시된 이론으로 사회와 접하지 않음으로써 이상적이라고 간주되는 몇 가지 특성들을 간직한 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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