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우리생애 최고의 순간|2008



 
비인기종목, 여자운동선수로 산다는 것-사실만으로도 충분히 울컥할 준비는 다 되는데
꼭 약까지 먹여야 했을까.
관객들은 이런 걸 좋아해, 흥행하려면 이런 게 있어야 돼-덕분에 예고편 보고도 눈물이 핑돌았던 나지만 눈물 한 방울 안흘리고 나왔다. 
날아서 쏘는 핸드볼의 새로운 매력을 알게 해준 멋진 장면들도 있었지만
예고편만큼도 박진감 넘치지 않던 경기,
기대보다 훨씬 적은 경기장면들,
대형화면이면 더 짜증났을 이상한 핸드헬드까지.
난 정말 스포츠영화를 보고 싶었단 말이지.
 
박수쳐주고 싶은 사람-문소리, 김지영.
박수쳐주기 싫은 사람-임순례, 황기석.
 

말 그대로 간지좔좔-진짜 선수같았던 문소리

내가 본 중 배우 문소리로서 최고의 연기

안벗고 안맞고 발광 안하는 여배우의 연기가

이렇게 빛날 수 있음을 보여준다.

영화속 슛장면은 이거보다 훨 멋짐
 
이쁜 보람이는 사진 한 장 없네.
비인기종목의 설움도 얘기하는 영화인데 최소한 같은 팀으로 나왔던 선수배역들이라면 사진 한장 정도는 다 넣어주는 게 예의 아닌가. 두루두루 실망일세...
 
재미있었던 크레딧
연출부인턴-여기 연출부는 월급 많이 주나 봐^^
김정은 트레이너가 3명이었는데 그 중 한명 이름이 미스터리였다.

영화|폭력의 역사|A History Of Violence|2005


이제는 보는 것만으로도 섬뜩한 포스터
& 참으로 매력적이며 무서운 제목

제목이 제목인데다 데이빗 크로넨버그라니, 아무때나 갑자기 총이 튀어 나와 머리통을 날리고 사라질 것 같아서 누가 나올 때마다 어찌나 가슴 졸였는지.
그래서 그 긴장감과 조마조마함이 연출의 효과인지 제목과 감독이름의 효과인지 헷갈린다.
깜짝이야~장면들은 의외로 준비운동을 다하고 나오기 때문에 사실 그렇게까지 떨면서 볼 필요는 없었는데. 오히려 디파티드의 깜짝이야~가 더 깜짝스러운 편이었다.

폭력이 인간에게 미치는 영향이나 희생자에 대한 연민 같은 것은 아예 잘라져 나가
폭력 그 자체가 거대한 생물체로 인간의 몸을 빌어 현신하는 현장을 바라보는 공포.
서로 고수를 알아보는 폭력들간의 기싸움도 그렇고
쓰면 쓸수록 증폭되는 힘이라는 것도
인간의 몸을 숙주로 스스로 자라나는 괴물같은 느낌이었다.
구타유발자들속에 그나마 남아있던 감정들은 이에 비하자면 인간적이라고나 할까.
그게 제목속에 구타와 폭력을 골라넣은 이유일지도 모르지만.
폭력에 대한 폭력영화.
정말 제목 그대로 폭력의 전기.
이런 교과서로 관찰만 하지말고 예방이라는가 방제차원의 해결책도 생각해주시면 감사하겠구만...
하여튼 한 동네에서 오래 한우물 파시는 어르신의 솜씨란 취향이 아니더라도 감탄스럽다.
     


100% 관람동기이자 대만족 윌리엄 허트.
살도 많이 빠지긴 했지만 얼굴부터 정말 다른 사람같았던 그의 리치.
역시나 전형을 피해가는 그의 스타일은 악역에서도 빛난다.
이렇게 안정감있는 예측불허의 악당을 본 적이 있는가...!
어떨 땐 얼굴근육을 세포단위로 조합해서 자유자재로 움직이는 사이보그 같기도 하다.


윌리엄 허트도 그렇지만 애드해리스의 선택도 멋지다.
중요한 역할을 더 중요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배우들의 빛나는 선택의 효과!

이것이 그 무서운 `폭력`씨의 사이즈별 숙주들


















영화|바벨|Babel|2006


 
나비효과, 크래쉬, 로스트 인 트랜슬레이션...다른 영화들을 되새김질 시키는 영화 바벨.
그러나
얼음까지 따지는 안전제일주의자가 총에 맞는다던가
`문명화`된 사회에서는 어림없었을 모로코 소년들의 `무장목동` 놀이라든가
그 재판 좋아하는 나라에서 재판을 포기하고 떠날 예정인 불법취업자라든가
아무튼 절대적인 상황의 문제보다는 시스템의 문제가 더 거슬렸고
또 작위적으로까지 느껴진다.
이것은 소통의 문제도 우연의 문제도 운명의 문제도 아닌
내겐 그저 영화를 만들고 싶은 이야기쟁이의 이야기 중 하나. 
 

이 장면이 궁금해서 봤다

제일 화나는 에피소드의 주인공

아르미안의 네딸들|신일숙|대원













운명을 거스르는 사람에게 가장 두려운 것이 뭘까.
희생이 운명이라면
그래서 운명을 거슬러 죽든가 운명에 따르든가 결과가 같다면
굳이 운명을 두려워할 필요도,
원망할 필요도 없는 것이었다.
다른 사람들의 희생을 부르는 샤리를 싫어했던 게
스스로 선택한 삶을 산 사람(혹은 정령)들의 의지를 무시한 무례였던 것 같은 생각이 이제사 든다.
늘 이기적이며-자신의 운명에 맞설 뿐과 다른 누구를 먼저 생각한 적이 없다,
불멸의 애인을 가진 주제에 꽃미남들의 무덤
-아마도 이것이 가장 큰 이유?^^-이었던 샤리가
세번째(네번째인가--;) 이 책을 읽고서야 좋아진다.

운명, 때로는 신-의 이름은
맘 편히 체념하거나 특별한 용기가 필요한 사람들을 위한 존재라는 생각이 든다.
믿음으로 힘이 세지는 팅커벨처럼.
인생이 예측불허라 의미를 갖는다는 멋진 말은 좀 공허한 느낌이 들지만
시작과 끝을 선택하지 못하고 똑같은 레일을 걸어가야 하는 무기력한 존재라고 해도
가는 동안 질러 가든, 놀다 가든, 헤매며 가든,
어디나 한가하지 않을 정도의 선택의 여지는 있는 것이니
운명과 신의 이름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며 맘대로 살련다^^  
상처주고 상처받아 괴로와하는 것만으로 점철된 인생을 산 리할은 여전히 밥맛이며
말이나 생각보다 몸으로 먼저 반응하는 에일레스
-그의 가공할 능력 덕에 폼이 나는 것이겠으나-는 여전히 멋지고
이해할 수 없는,
마치 허공에 붕 뜬 것 같은 사랑을 하는 미카엘은 여전히 불쌍하기만 한데,
글라우커스와 마누아의 닮은 꼴 인생의 다른 선택이야말로
운명과 인생에 대한 A4스타일의 정리인 것 같았다.
그런데 이런 책을 쓰고도 부끄러우시다니,
신선생님, 지나친 겸손은 팬 건강에 해롭습니다^^
그나저나 살 수 있는 책이 몇 권 안되던데
이쯤해서 애장판 한번 나와줘야 되는 거 아닌가.  

PS.
운명은 그런 것...  
무심히 스쳐가는 바람처럼 살며시 빠져 달아나는 운명...  
시간이 무르익기 전에는 원하는 것이 이루어진다 해도 풋사과와 같은 설익은 과실.  
기쁨을 느껴도 사랑과 진실을 모른다면...  
삶의 의미를 알 수 없다. ...

기다리던 애장판 구입기념으로 다시 읽던 중 맘에 들었던 구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