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마이파더|My Father|2007



 
드라마틱한 실화, 감동의 깃발을 들고 있을 것 같아 오히려 호기심은 줄어드는 드라마.
하지만 말아톤이 그랬듯 공들임은 역시 어느 구석이든 반짝반짝 빛나게 만드는 보람찬 노동이다.
 
서프라이즈 다니엘헤니.
리모콘 지나는 길에 본 예고편에서 나를 화들짝 놀라게 했던 다니엘헤니는 예고편이 다가 아니었음을 보여주었다.
연기 잘하는 배우가 철저히 계산된 연기를 한 것 같은 극한을 보여줘야 하는 역할속에서 
난 어쩐지 그의 진심을 보고만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두 손으로 큰 원을 만들어 관객들에게 동글이파장을 보내고 있는 것 같다고나 할까.
있는 신인상은 다 받으세요, 그리고 한국말 얼렁 많이 배워서 많이 나오셔요.
변함없는 카리스마 김영철은 느닷없이 가슴을 여러 번 철렁하게 만드는 사형수를 연기한다.
첫만남, 봄, 그리고 매번의 면회까지 클라이막스를 따로 고를 수도 없는,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의 죄까지 잊어버리게 하지는 않은 김영철에게
나의 영화제 주연상을 안긴다-물론 권위는 절대 없다.
그리고 안석환-타짜에 아귀가 있었다면 마이파더에는 장민호가 있었다..!
나의 영화제 조연상을 그대에게.
 
웃긴 슬픈, 혹은 슬픈 웃긴 장면이 많았던 이 영화.
영화 밖의 다른 어떤 것에도  현혹되지 않을 거리를 지키는 예의바르게 꼼꼼한 시선이 느껴진다.
그 성실한 사람의 열심이 담긴 노력에 보내줄 수 있는 최고의 박수 짝짝짝!
 
어쩌면 사형제는 사회적 합의를 구할 게 아니라 엄격한 손실측정을 통해 개인적인 원한을 대행해야 하는 게 아닐까.
용서하지 못하는 희생자에게 목숨은 신의 영역이라고 말하는 건
사람으로 사는 세상에서 사람이 아닌 박애, 사랑이 되길 강요하는 것이고,
새사람이 되었으니 용서하라는 것도
과거의 죄를 묻고 싶어하는 사람에겐 힘이 없다.
살인자를 죽인다고 죽은 사람이 살아돌아오지는 못하지만
그것으로 상처받은 사람들이 조금이라도 `정의의 심판`에 기대 위안을 얻는다면
그 위안을 빼앗을 권리 역시 사람의 몫은 아닐지도 모른다.

튀니지|크사르귈란(Khsar Guilan) 사하라에서 수영하기^^


차바퀴 규모로 몇차선인지를 가늠하게 되는 사막의 길
여기까진 평범한 초입이었다.
드디어 등장한 카페
한시간 거리쯤에 하나씩 있는데 가는 도중에는 여기가 마지막 이라고 해서
다같이 내려 사륜구동에 피곤해진 엉덩이들에게 휴식시간을 주었다.
그래, 이거다. 보고 싶었던 그 모습.
지나는 길에 낙타를 끌고 단체 이동을 하는 지역주민들을 만났다.
차로도 몇시간 거리인데 걸어서는 한달여정이라고 한다.
간식(--;;)담배의 요청을 기꺼이 받아들임.
한달간 걸어가면서 담배도 없으면 팍팍할테지...
컨셉은 역사적 한발자욱 이지만 푸하핫!
도착하던 날의 오묘한 석양-흑백이 아닌데 이렇게 나왔다;;
가이드북에서 보긴 했지만 사막에 웬 온천?
보나마나 또 설레발광일거야 생각했었는데 저 아담한 풀장엔 온수가 흐르고 있다.
온천이라 할 정도로 뜨겁지는 않지만 한밤에 물 속에서 맥주 한잔 마시며
춥지않게 노닥거릴 정도는 된다. 사진은 못찍었지만 맥주 덥혀질세라 머리에 올려놓고
동그랗게 떼를 지어 맥주마시던 독일아저씨들이 매일 밤 있었다.
그들은 캠핑카에 독일 맥주를 아예 쟁여가지고 다닌다고 한다.
팔면 사 먹고 싶었어....
사실 더 놀란 곳이 우리 캠핑장 바로 옆의 별다섯개짜리 호텔.
모래색의 전망대 건물을 비롯해서 아라비아왕자네 별장 같은 부대시설들이 멋있었다.
단체 아니면 손님이 없는지 별다섯개짜리 텐트는 거의 비어 있었지만.
여기는 찬물 수영장.

내가 만난 두번째 최고의 커플이자 크사르귈란까지의 동행이었던 A양과 M군^^

이튿날 떠난 크사르귈란 성까지의 산책. 처음엔 장난치고 떠들고 웃으며 가볍게 시작했지만
한복판에 이르러서부터는 엄청난 모래바람으로 거의 눈감고 걸었다.
돌아오는 길엔 급격한 체력저하로 남의 낙타뒤꽁무니를 따라 땅바닥만 보면서 부지런히 걸었는데도
해가 꼴딱 진 뒤에야 숙소에 도착했다.

샌드로즈가 뭐야 했더니 이 돌들이었다.
은은한 향이 정말 장미향기 같다.


사실 사하라에 와서 놀란 건 여러가지가 있었다.
일주일간 진짜 별 볼일(!) 없었다는 것.
날이 흐린데다가 달도 밝아서 암튼 매일밤 불평의 단골메뉴.
그다음 놀란 건 저 수영장들인데 혹시나 해서 수영복을 가지고 가긴 했지만
어째 바닷가에서보다 수영을 더 많이 한 것 같다.
한적하고 고요하며 별들이 쏟아질듯한 내 머릿속의 사막을 만나는 것은 실패했지만
아무리 다닌대도 수영장이 있는 사막구경은 또 쉽지 않을 것 같아서
그냥 가진 걸 즐기기로 작심하고 모래산책과 물놀이에 열중했다.
그나마 사막의 고요를 좀 짐작할 수 있었던 건 엠피쓰리 볼륨을 1에 놓고도
충분히 음악을 들을 수 있었다는 것 정도?
그리고 마지막 한가지가 더 있다.
바로, 바로, 바로..... 
....

이 파리들! 우하하~
처음엔 등 뒤에서 미친듯이 웃는 우리 때문에 살짝 기분까지 상하려던 M군이었으나
이 사진을 보고 강렬하게 쓰러진 사람도 본인^^
어쨌거나 튀니지안 사하라 공식 파리캐리어로 등극.
사막의 한복판에서 얘들은 뭘 먹고 살다가 이렇게 덤벼드는 걸까.



























































영화|황진이|2007



 
떨어져 있어도 의연하고 덤덤한 연인들의 이별을 보는 사람이 가슴아파해주기는 힘들다.
자기들 말대로 그냥 안보고 평생산다 생각하고도 잘 사는데
하나가 죽나 둘이 죽나 별 상관없어 보이니까.
종년도 주인 잘 만나면 대갓집 못지 않게 동네잔치혼사를 치르고
종놈도 힘 세고 똑똑하면 취직도 업종 바꿔 잘만 하니
시대에 분노해주기도 상큼하지가 않았다.
 
몰래 고자질할 용기는 있었으면서
기생이 되겠다는 아가씨 발밑에서 도망가자고 빌 용기는 없는 노미도 이상하고,
저렇게 뜨악한 연인사이를 질투하는 사또도 이상하다.
장윤현은 너무나도 쿨하신 거 아닌가.
황진이와 노미는 아마도 화면밖 안 보이는데서 뜨거운 사랑을 나누셨던게지.
영화보는 사람들한테도 좀 보여주지말야.
 
20대 여배우중에서 내눈에 제일 예쁜 송혜교인데
아무리 예쁘다고 예쁘게 찍어주는데는 별로 관심도 없었던지
화장한 황진이는 자꾸만 보그표지사진을 생각나게 하고
대낮의 황진이는 남자 같고
그나마 달빛 아래 화장기 없는 황진이만 송혜교의 미모를 상기시켜준다.
 
별로 가슴아파해주지는 못했지만 마지막 장면의 유지태의 표정은 멋있었다.
그리고 다음 영화쯤에서는 송혜교도 배우스러워질 것 같은 기대가 생겼다.

튀니지|두즈(Douz)

투쥬에 하루를 더 있을까 하다가 오후에 두즈 가는 버스가 있다고 해서 오전에 읍내 구경을 마치고 바로 두즈로 출발하기로 결심. 호텔아저씨는 3시랬는데 버스터미널에서는 2시랜다. 2시까지 가봤더니 다른 사람이 3시라고 한다. 차 한 잔 마시고 기다리다가 30분전에 터미널 안으로 들어갔더니 이번에는 취소됐댄다--;;

할 수 없이 단거리 단체택시 정류소로 가서 중간역인 카빌리까지 가는 차를 탄 다음 거기서 다시 두즈행으로 갈아탔다. 운 좋게 두 번 모두 사람이 다 차있어서 기다리는 시간 없이 잽싸게 두즈 도착.   

투쥬보다 더 사람이 많을 것을 예상했지만 의외로 한적한, 그래서 긴 사막투어에 약간 먹구름이 감도는 것을 느꼈다. 인도의 라자스탄처럼 내리기만 하면 사막여행지원자가 나래비로 기다리고 있을 줄 알았는데 오늘 여행사 7군데를 돌면서 거의 단체로 미리 예약을 하고 온다는 사실을 새롭게 알았다. 대부분 프랑스에서 오는 모양인지 여행사인데도 불어하는 사람들이 대세였다. 그렇구나, 튀니지의 사하라는.

 

달디 단 두즈의 대추야자 나무

Great Dunes-사하라 놀이공원^^

맞은 편엔 카페에서 사람구경하며 커피도 마실 수 있다.

 

어슬렁어슬렁 사구산책을 나섰는데 길을 헤매는 바람에 본의 아니게 택시로 갔다가 걸어서 왔다.
낮고 넓게 펼쳐진 사하라 초입의 모래언덕은 거의 사하라 놀이공원이라고나 할까.

새똥만 떨어져도 추락할 것 같이 생겨서 더 스릴 넘칠법한 경비행기도 날아다니고, 멀리서보면 캐러반처럼도 보이는 관광객 낙타부대의 행렬이 끊임없이 이어지며, 네바퀴오토바이 부대와 카트라이더 부대들의 누가 누가 더 시끄럽게 달리나 경주도 정신을 쏙 빼놓는다. 여기에 사하라횡단의 거친 꿈을 안고 달려가는 중인 오토바이족들까지 합세해 그야말로 두즈의 사구는 분주함의 극치였다.


 

적막하지도 않았고 짙은 구름때문에 멋진 석양도 볼 수 없었던 두즈였지만 그래도 두 발바닥 두 손바닥으로 부드러운 모래들과 만날 수 있어 즐거웠다.

맨손으로는 쓸어도 쓸어도 계속 남아있던 모래들을 물로 씻어 내리면서 조금 아까왔다.

사하라를 쓸어 내다니 사막의 팬으로 좀 무례한 것 같기도 하고.

 

길을 헤매면서 자동으로 생긴 일일 두즈 관광코스

 

살짝 부담스럽긴 해도 불편하진 않을 정도로 친절한 주민들, 깔끔하고 예쁜 20Mars 호텔, 걸어서 다닐만한 사구, 늘 흥분해 있긴해도 이해가능한 정도로 장난치길 좋아하는 식당청년-아마 이 친구는 식당에 손님 떨어지면 돈 때문이 아니라 심심해서 죽을 것 같다.

가장 관광지스러워진 곳일 텐데 어딘가 구석구석 예전이 많이 남아있는 것 같은 두즈가 맘에 든다.  
사하라에서 말달리자를 완성해보고 싶어서 이튿날 사구언덕엘 일찍부터 찾아갔다.

근데 말 주인이 전날 과음 후 숙취로 자고 있어서 낙타아저씨 말주인의 집앞까지 가서 소리소리 질러 깨워주었다. 쫓아가느라 나도 아침부터 사막달리기--;; 사막사람들은 목청도 좋다~

튀니지|투쥬(Tozuer),Mides,Chebika,Tamerza투어


밤 기차를 타고 새벽녘에 내리니 차가운 사막공기가 나를 반긴다. 결국 여기까지 비구름이 나를 쫓아오지는 못했다. 이탈리아의 새벽 같았으면 무서웠을 텐데 큰 도시도 아니건만 투쥬의 새벽녘엔 부지런한 택시도 다니고 문을 연 카페도 있다.
잘려고 마음먹은 숙소 앞에서 벨을 누르는데 아무 기척이 없다. 부지런한 마부아저씨들은 옹기종기 모여 있던데. 결국 한 30분 넘게 벨을 울리고 나서야 문이 열렸다. 주인아저씨의 카리스마 넘치는 목소리-얼른 가서 자고 체크인은 아침에 해라. 밤새 기차타고 왔을 테니깐-얼마나 멋진 말인가! 하지만. 그럼 문 좀 빨리 열어주지--;;

별로 졸립지 않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오전 내내 침대에서 뭉개버렸다. 나를 깨운 건 아저씨의 노크. 2시에 반나절 투어가 있는데 놓치기 아까운 거니까 꼭 가라고 한다. 잠도 덜 깨고 정신도 없어서 안 가려고 했는데 또 자신 있게 권하는 바람에 넘어갔다.
나중에 돌아오고 나니 진짜 재미있었냐고 몇 번 씩 묻는다. 내일은 다른 투어가 있다는데 매일 같은 프로그램이 아니라니 오늘 가길 정말 잘한 듯.
 
대낮의 투쥬는 독특한 벽돌건물들이 멋지게 서 있는 아담한 도시였다. 대낮에 카페에 웬 아저씨들이 그렇게나 많이 노닥거리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래도 활기차고 여기저기 이쁜 동네다. 얼마나 많은 곤니찌와들이 다녀갔는지 이젠 한국 사람이야 소리도 귀찮아서 못하겠다~ 

오는 길에 차 안에서 알제리 국경을 구경했다. 사실 알제리에서 사하라를 보고 싶었는데.

다음을 기약.

 

Mides
잉글리시페이션트와 스타워즈로 유명하다는 아이스고지. 멋진 패턴이다.

Chebika
한 50년 전 23일간의 장마로 마을전체가 언덕위로 이주했다는 마을인데

모래색 빈집들이 사막의 느낌을 강하게 풍긴다.

Tamerza
야자나무사이로 에메랄드 빛 오아시스가 보이는 예쁜 동네. 

돌아오던 길의 석양. 물줄기가 가르고 지나는 사막의 풍경이 멋있었는데

어두워서 안보인다--;;

사막의 폭포

튀니지의 사막은 정말 풍요로움 그자체 인듯하다.

튀니지|튀니스, 카르타고


도착하자마자의 튀니스와 떠나기 전의 튀니스는 달랐다.
갓 도착한 신선한 호구로서의 이틀간은 그다지 향기로운 추억들 주지 못했지만 돌아온 튀니스는 더 가깝게 느껴졌다. 
이럴 때 여행길의 아쉬움을 느낀다.
낯선 곳에 낯을 익히고 이제 좀 다닐만하다 싶을 때 떠나게 되는것.
언젠가 남은 생을 보낼 장소를 찾기 위해 여행한다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렇게 생각하면 떠나기가 더 즐거워질 것 같기도 하다.
 
 
 
 

 

전망좋은 술집에서 바라본 튀니스의 시내.

저 골목 어딘가에 12시 넘어서까지 술을 파는 '몰래술집'이 있다^^

튀니스의 밤과 낮

 
막 로마인이야기의 시칠리아편을 다 읽고 나서인지 한니발과 카르타고에 대한 관심이 많아져 있었다. 부유한 신도시 같은 느낌이지만 고도인 카르타고.

길도 더 널찍하고 건물들도 더 멋있고 한적하기도 하고 멋이 풍겨 나오는 곳이었다.

카르타고역은 다섯 개가 있으니까 아무데서나 내려서 걸어 다니면 된다.

그래도 대부분은 나처럼 카르타고 한니발 역에서 내리겠지?

 

카르타고박물관과 기타 등등

카르타고에서 돌아오던 길 전철역 근처의 카페.

아라비안나이트 컨셉인듯 분위기 독특한 곳이었는데 사진발은 더 좋은^^

이반일리치의 죽음|레프 톨스토이|작가정신


죽음을 생각하며 산다는 것은 죽지 못해 사는 삶도 죽기위해 사는 삶도 아니기에
어떻게 죽을까를 생각하며 사는 게 오히려 사는 모습에 긍정적일 수 있다는 것에는 이견이 없다.
하지만 부담스러울 정도로 구원을 부르짖던 그의 목소리는 내가 있는 곳에서 참 많이도 떨어져 있다.
구원은 늘 벼락같이 오는 것이니 때를 기다리며 그냥 살라는 것 같기도 하고.
톨스토이가 왜 위대한 작가인지 눈치채는데 큰도움 안됐던 또 한권의 책.
이반일리치만큼도 구원에 다가가지 못한 그의 죽음도 미스테리...
평생 스스로 옳다고 믿는 삶을 살고 남에게 동정을 원하다니, 이반일리치의 죽음을 앞 둔 우울과 참회는 위선적인 중산층의 삶을 살아서가 아니라 일관성없는 욕망을 가졌기 때문이다.
 
-이반일리치의 죽음
-세죽음
-주인과 하인

영화|시간을 달리는 소녀|時をかける少女: The Girl Who Leapt Through Time|2006

 

첫사랑을 첫사랑스럽게 담아

두근거림이 전해지는 소녀의 시간.

과거 또는 추억을 위안삼고 미래에 불안해하는 평범한 연애와 달리

미래가 있어 더 힘차게 달릴 수 있는 그야말로 미래지향적인 사랑이야기.

얼마나 좋아, 마코토는.

그냥 내쳐달리기만 하면 행복해질테니.



기억되는 떨림을 가진 연인을

떨림이 있기 전의 모습으로 이별해야 할때

그 결정을 하는 순간 소녀는 많이 자랐을 것이고

그렇게 자란 소녀이기에

그 연인도

마음에 남을 이별을 할 만큼

기억해줄 수 있었는지 모른다.

그저 귀엽기만 했던 풋사랑이야기가

조금, 아릿한 그늘을 주고 갔다.

전시|불멸의 화가 반고흐


그림에 아무 관심이 없더라도 모르기 힘들고 또 좋아하지 않기도 힘든,
내게는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화가로 먼저 생각되는,
그림의 문외한으로서도 제일 좋아하는 화가라고 말하기가 전혀 망설여지지 않던 고흐.
드디어 그의 그림을 코앞에서 볼 기회가 생겼다는 것에 여전히 놀란 채로
좀 쌀쌀하던 금요일 오전 시립미술관으로 향했다.
나의 동행은 '세상에서 제일 유명한 화가'란 말로 꼬드긴,
이제 막 시작한 수묵화에 재미와 재능을 꽃 피우고 계신 칠순노모^^
전날 밤 인터넷에서 읽은 얘기를 주섬주섬 건네며 들어서는데.
아, 우리나라 참 많이 좋아졌다-65세 이상은 무료랜다.
예매한 표를 환불하고
늙어도 너무 좋겠다는 내게 만이천원어치 이상으로 당당해하시는 칠순노모와 함께
오디오가이드를 빌려서 전시장에 들어섰다.
원래는 11시 도슨트안내를 따라가려고 했는데 늦어서...
나중에 도슨트 그룹을 보니 수 십 명이 몰려다니느라 그림을 가까이서 보기도 힘들고
말소리도 잘 안들리는 것 같던데,
도슨트 안내가 50분 정도라고 하고, 우리가 전시보는데 걸린 시간이 3시간이었으니까
원하는 속도에 맞춰 보기에는 오디 오가이드도 괜찮은 대안이다.
도슨트안내 후에 한번 더 보거나, 오디오가이드로 돌고 도슨트 만나면 가서 들어보거나
뭐 여러가지 절충안 가능할 듯.

마지막 전시관에 붙어있던 글귀-내 그림이 물감보다 더 가치가 있다는 걸 알게될 것이다 라는 말이
아프면서도 한편 귀엽게 느껴졌던 건 `물감조각`이라고 불러도 손색없을 것 같은 그의 그림들 때문이었다.
내게는 움직이는 듯, 튀어나올 듯, 입체감과 운동감을 그대로 전하고 있는 힘찬 그의 그림이지만
지금 고흐그림의 위상으로는 농담이래도 안 웃기게 고작 물감의 가치와 비교하다니,
생전에 인정받지 못한 그가 받았을 상처가 어림 짐작된다.
상처속에서도 너무나 소박하게 분노를 기록한 그가 귀엽기도 하고 안쓰럽기도 했다.
음악의 라이브가 최고이듯 그림도 전시가 그랬다.
좀 더 자세히, 가까이 보는 게 당연히 더 좋은 거지만 고흐의 경우는 특히 더 그렇다.
이번 전시에서는 사이프러스나무가 그려진 밤그림이 나의 주목적이었지만
실물을 보면서 내가 반한 그림은 이전에는 몰랐던, 사진으로는 강렬하지 않았던 그림들이었다.

그림출처:www.vangoghgallery.com 다운로드코너에 배경화면용 고흐그림들이 몇개 있음
The Garden of Saint-Paul Hospital(1889)
Vincent's House in Arles (The Yellow House,1888)
The Sower(Arles,1888)
 
이 그림들의 공통점은 꽃정물화들만큼이나 유난히 두툼한 물감으로 만들어진 입체감과 색감이다.
생폴병원의 정원의 나무들은 원시림처럼 강렬하고,
아를르의 노란집은 햇빛을 가득 빨아들여 살아있는 집 같고,
씨뿌리는 사람의 금빛 태양이 이글거리는 거친 밭 한가운데 선 저 농부의 일은 정말 고단해보인다.
아무리 좋은 상태로 인쇄를 했던들 가서 보지 않고서는 몰랐을 이런 느낌이 놀라웠다.

전시회를 보기 전엔, 그래도 고흐인데 오리지널 기념품들을 좀 보고 살 생각도 있었지만
실물을 보고 나니 모작이나 프린트는 정말 아무 의미가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반고흐박물관에서 가져온 이 사진들은 더더욱--;;).
그럼에도 불구하고 뭐라도 꼭 사고 싶은 생각이 드는 아이러니.
결국은 한번 따라해보겠다며 투지를 불태우시는 칠순노모와 함께
그래도 프린트 중에서는 원작과 느낌이 비슷한 사이프러스나무 그림엽서를 샀다.
언제쯤 한번 베껴 그려주실지.

3층 전시관 밖에 의자들이 있으니까 오래 볼 사람은 간식 챙겨가면
맛이 어떻든 화가 날 가격의 미술관카페를 이용하지 않아도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