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밀양|2007



 
부정할 수 없는 존재가 유독 내게만 잔인할 때의 묵직한 고통.
그래서 신애는 신을 신보다 나은 방법으로 이긴 것일까.
이걸 더 봐야하나 말아야 하나 몇 번을 망설이다가 전도연의 클라이막스를 기다리며 보는 사이 결말에 이르렀지만 후반부에 이르는 이 길은 너무나도 멀었다.
어긋난 대상에 분노하는 신애를 이해하도록 만든 작위적인 상황들에 비위상하고,
그저 촌스러울 뿐이라고 하기엔 너무나도 무신경한 김사장에 어이 없어 하며 보낸 두 시간을 후반부의 몇 십분으로 다 보상해 줄 작정이었다면 실력보다는 시험결과가 중요하다는, 참, 속상한 얘기다.
상황의 재미를 위해 조주연 안가리고 기꺼이 캐릭터를 희생시키는 이창동의 뚝심에는 섬뜩함마저 느껴진다. 세상에 별의 별 인간이 다 있긴 하겠으나 그런 사람들만 골라서 꼭 다 만나보고 싶은 것은 아닌데 도대체 인간에 대한 예의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그 미친년놈들을 통해 말 걸어오는 이창동의 중후한 척 하는 마초질은 너무 위험하다.
그냥 인삿말이었다면, 또는 칸느의 본선진출까지를 의미하는 것이었다면 모르겠지만,
누구에게 감사할 것도 없이 칸느여우주연상은 100% 전도연 당신의 몫입니다.
마음으로는 초반부터 정수리가 쪼깨진 캐릭터를 연기하느라 욕 본 송강호에게도 박수 한 사발.
대체 배우들이 생각한 신애와 김사장은 어떤 사람들이었을지 참 궁금하다.
이런 사랑도 있다-라고? 홍보팀의 뻘짓이 아니라 진심이라면 그래, 좋겠다, 열번 찍어 넘어가서....!
 
PS. 한국영화 최초로 한글자막으로 감상-이 지경의 사운드는 진짜 처음이다.
비디오로 빌렸으면 큰일날 뻔 했지....

영화|타인의 삶|Das Leben Der Anderen|2006


 
민간인사찰을 소재로 한 약간에로 적극멜로 일방적인 삼각염정스토리..아, 정말 특이하다.
가끔, 박찬욱 같이 외모를 제외하고는 표나게 반듯한 사람이 어지간한 망나니도 두려워할 끔찍한 장면들을 영화로 찍어내는 걸 보면 경험이 오히려 상상을 제한하는 것 같단 생각이 든다. 극단의 불행에 절망하는 사람들이 바로 옆에 있을 때는 누구라도 위로 밖에 할 수 있는 게 없지만 TV를 통해보고 술자리에서 전해들은 이야기의 주인공들에게 잔인한 분석을 내리는 데는 특별히 차가운 피가 필요하지도 않으니까.
저 민간인 사찰에 치를 떨었던 사람이라면 고발영화가 아닌 다른 영화는 상상할 수도 없었을텐데.
삐뚤어져보자면 하나가 된 이 마당에도 상대가 부끄러워하는 과거를 아무렇지도 않게 농담 삼으면서 이젠 그런 것쯤은 편하게 얘기하라고 말하는 무신경한 애인의 자세 같다고나 할까.
그래도 좀 희망적인 교훈이라면 어쩔수 없이 해야 하는 일에도 방법이 하나 뿐인 것 만은 아니라는 사실이다. 하지만 피해자의 입장에서 보자면 아무리 직업에 충실한 것이긴 해도 거의 발단지점에 서 있는 장본인인데 성의를 보여준 것 만으로 그렇게 감사가 나올까? 모르겠다......
 

영화|블러드 다이아몬드|Blood Diamond|2006

 
시에라리온의 다이아몬드 전쟁이야기, 블러드 다이아몬드.
포화속으로 뛰어들어가 그 안에서 외치고 있는 혈기넘치는 젊은 목소리를 들은 듯하다.
아직 다이아몬드의 아름다움을 눈치채지 못한 사람 중 하나임에도 불구하고 소비자에게 큰짐을 쾅 내려놓고 사라진 것은 좀 맥빠지긴 했지만 화려한 휴가가 그랬듯이 남들이 돌아보지 않는 사이에도 마음가는 곳을 보며 하고싶은 얘기를 해줘서 고마웠다. 
 
 
반디의 아들을 위해 몸을 던지기도 하고 결국 합리적인 선택의 희생을 자처하는 인물이지만 그에게도 한때 몸가는대로 순간의 적들을 무찌르던 람보의 시절이 있었다.
디카프리오를 보고 있으면 언제부턴가 드니로가 생각난다. 얼굴은 별로 닮은 것 같지 않은데 표정이 그렇다. 남들이 주름 한 개 쎄게 접을 것은 한 반 정도만 접어주면서 그 위에 다른 감정을 쓰윽 덮어주는 듯한 묘한 표정들. `이 소년의 삶`에서 보여준 기가막힌 흉내는 단순한 흉내내기가 아니었던거야? 
아프리카의 백인꼬마출신 대니 아처에 비하면 유럽 흑인들의 기구함이란 명함도 못내밀테지.
이 비극적인 영화속에서도 아프리카를 떠올리게 해주어서 반가왔다. 지금 만났는데도 팔고 싶은 게 있을 때면 항상 `마이프렌`을 연발하던 아프리카의 삐끼아저씨(혹은 청년)들, 아무리 그런 게 아니라 해도 맘대로 미스코리아라고 부르질 않나...크하하! 까칠한 구석없이 대강대강 잘 넘어가주던 느긋한 동네 생각이 잠시 났다.
 
 
우수한 신체조건으로 손가락도 잘리지 않고 자유의 몸이 되자마자 쉽지 않을 취직도 금방 해낸 능력있는 남자, 반디. 교육이라는 건 사실 원래는 신체적인 제약과 신분이 주는 불평등함을 해결하기 위한 것이었는데 어쩌다 계급을 다시만드는 이상한 절차가 되어버렸을까. 
타고난 우수한 신체조건과 순박한 뚝심, 욕심은 내지 않지만 필요한 것은 해내는 능력. 남들이 만든 운명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속에서는 자유로울 수 있는 아프리카의 상징처럼 느껴진다. 
 
 
그녀의 용기는 뭔가 보여주고 싶은 욕망을 넘지 못한다. 자책을 하고 정직하게 비판하고 남들은 감히 엄두도 못낼 배짱이 있다 해도 그녀의 모든 노력은 카메라에 담을 수 있는 진실만을 위한 것이다.
그런 카메라로 죽을 뻔한 일행을 구해내기도 하지만 여전히 같은 자세로 바라보고 있을 것만 같은 이 사람.
그런데 이상하게도 유난히 바라보기는 편했던 얼굴, 자연산의 느낌이야.
사진찍기로 살아나는 장면에서 진짜 많이 웃었다. 그 상황에서 먹힌 대도 정말 안 이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