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청연|2005



[이 사진만 조선일보에서 훔침]

 

 

영웅의 인간승리도 아닌, 비운의 `여류비행사`를 신비스럽게 포장하지도 않은,

한 사람을 사로잡았던 하늘의 벅찬 느낌을 슬프게 전해주는 영화-청연.

그 여자는 대체 뭘 믿고 그런 꿈을 감히 품었으며 어쩌자고 그 꿈을 이루겠다고 작정하고 덤볐을까.

대충 가능성 있는 걸로, 먹고 살 만한 걸로,

어느새 꿈도 스스로 검열하는 평화(를 가장한)의 시절을 살면서

박경원 같은 사람을 만나는 건 그렇게 마음 편한 일은 아니었지만, 

윤종찬과 장진영을 믿고 찾아갔다.   

밑천 없는 집 딸이 성공하기가 밑천 없는 집 아들이 성공하는 것보다

여전히 어려운 시절을 살고 있기에, 나는 영화의 시작부터 마음이 좀 아팠다.

 

늘 죽음 가까이에 있던 그들의 모습은 그들이 가진 꿈은 그냥 내쳐 노력만 하면 늘 행복하기만 한 것이 아니란 걸 상기시켜준다. 그래, 박경원의 꿈은 참 위험한 것이었지, 여러모로.

꿈은 행복하려고 혹은 행복할 것을 믿으며 꾸는 것인데,

박경원은 꿈을 포기하지 못할수록 점점 불행해지는 운 나쁜 인간이었다.

뭘까, 그렇게 강렬하게 무언가에 사로잡힌다는 것은.

 

반쯤 미치지 않고서야 그렇게 살기 힘들었을 여자 박경원,

콘택트에 나왔던 브라더 제스의 뒤를 이을 법한 러브로망의 혁신적인 캐릭터이자 환타지 한지혁,

비행동료들-꿈을 공유한 사람들 간의 유대감 같은 거-좋았다.

박경원이 먹었을 욕은 미쉘위가 먹는 욕과 같은 방향이다.

그래서 지혁의 그 대사가 아주 시원했다-조선이 너한테 해준 게 뭔데?

 

찢겨진 불행한 시절에 살아야만 했던 한 사람의 남루하지 않을 뿐인 꿈에 순결을 강요하는 것이 공정한 지도 모르겠고 내 스스로의 애국행각(킹콩의 20분의 1밖에 안되는 돈으로 이런 영화를 보여준 윤종찬이 피터 잭슨보다 더 멋있다는..)을 돌이켜 볼 때 난 당당하게 돌을 던지지는 못하겠다.

나야 그냥 늦게 태어난 것 뿐이잖아.

개인적으로 고문장면 좀 지루하고, 이정희의 이상한 역할-한지민 연기는 참 잘했는데 비중에 비해 극 기여도는 낮다. 그리고 네이버영화 사진갤러리 뒷부분은 왜 전부 한지민 프로필 사진인거지?-이 개인적인 불만족의 전부다.  

영화에 대한 논란이 더 많은 정보를 준 건 오히려 더 나은 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영화에 나온 대로, 영화에 대해 사람들이 얘기한 대로 

난 이제 박경원이 `한 일`도, `한 짓`도 알게 되었는데,

그렇기에 얘기할 가치도 없다는 이상한 논리에는 적응 못한다.

한 말을 가지고야 비난을 할 수도 있지만 말 하는 것 자체를 비난하는 게 뭐야.

똑같은 짓을 전두환이 하면 독재고 네티즌이 하면 민주주의인가. 

 

내 평생을 두고 조국과 민족을 위해 고민한 시간을 생각해봤을 때 요즘처럼 분기탱천한 애국자 많은 대한민국에 나 같은 개인주의자가 산다는 게 참 부끄러울 따름이다.

그 끓는 피를 키보드 두드리는 것 말고 다른데도 좀 써서 진정한 애국자들로 거듭나시기를 바란다, 나 같은 사람 좀 묻어가게.

진정한 최초여자비행사 권기옥씨의 영화를 만들라고 말하는 사람들. 그 영화 만들어지기 전까지 도마 안중근부터 섭렵하시도록. 진작 그런 영화 단체관람들 좀 했으면 애국영화의 신유행을 창조했을 것을.

형사폐인


 “블록버스터를 목표로 했으면 동원이와 지원이의 운명적인 키스 신 정도는 있어야지” 하니까 대결 장면에서 칼날들이 부딪치는 것이 ‘쪽, 쪽, 쪽...’ 입 맞추는 거라며 그것도 모르냐는 식이다. 기가 막혀 “시나리오 문제 투성이야. 가장 중요한 두 개의 플롯이 빠져 있어. 슬픈 눈과 남순이가 왜 첫눈에 반하는지와 슬픈 눈이 왜 병조 판서를 배신하는지가 없어” 하면 “영화는 소설이 아니라 시야. 이미지야” 하면서 플로베르의 일물일어(一物一語)론까지 들먹이며 교수의 자질을 시비한다.
<이명세가 플롯은 없다고 분명히 말했는데도 물고 늘어지는 강한섭-이 얘기 할때는 애증중에 '증'만 있었나봐>
 
사랑얘기를 볼 때.
왜 좋아하는 지 이해가 안 가-라는 말.
나도 해 본 적이 있다.
잉글리쉬페이션트라는 러브대로망을 보면서 그랬다.
아주, 인생 하나 뿐만 아니라 인간으로서의 정체성과 히스토리까지 싹 갈아엎는 그 대단한 로망.
만화도 순정만 보는 내가 반해 마땅한 스토리였는데.
그렇지 못한 이유는 단 하나.
남녀주인공이 모두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뭐가 저렇게 좋다는 건 지 쯧쯧...
러브스토리의 러브에 공감이 안된다면 그 영화는 정말 내게는 아무것도 아닌 것이지.
 
사실 사랑에 빠지는 동기가 뭐 별 거 있나?
둘 사이에는 히스토리가 있을 수 있어도 관객들이 보는 건 언제나 꼴깍 넘어가는 그 찰나부터인데.
왜 좋아-라고 물어볼 기회가 있다면 뭐 나름의 대답을 들을 수는 있겠지만
사실 왜 좋은지는 좋아하는 사람들끼리만 알면 되고,
다만 구경꾼들은 그 둘이 얼마나 좋아하는 지를 통해 공감하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이유라는 건 결국 호감과 비호감의 문제라고 생각한다.
받아들일 수 있는 얘기라면 이유 필요 없다.
뭔가 못마땅할때 이해할 단서가 필요하니까 이유를 따지는 것이다.
연기 잘하는 배우에 다 열광하지 않으면서
좋아하는 배우의 연기에 곧잘 감탄하지 않나, 마치 그런 명배우가 없는 것처럼.
그러니까 실은 결국 취향의 문제다.
가끔 '그래도 누군가는 좋아할 지 모른다'는 사실을 도무지 믿을 수가 없게 만드는, 
'쓰레기'라고 외치고 싶은 무언가가 나타나기는 하지만,
죽이고 싶은 X이 있어 내가 욕하고 다닐 수는 있어도,
죽어 마땅한 X이라고 내맘대로 선고하고 죽여버릴 수는 없는 것이다.
 
그래서 취향에 대해서는 무조건 커밍아웃을 해야 한다.
형사를 멜로라고 생각하고 본 나는 스토리의 허술함을 전혀 눈치챌 수 조차 없었다.
배경이 있으면 설득력은 더 생겼을지 모르지만
아님 어때? 감이 오면 즐기면되고 아니면 싫어하면 되지.
슬픈눈이 살았거나 죽었거나
어쨌든 그 둘은 만남보다 추억이 더 아름다울 수 밖에 없는 아쉬운 사랑을 하는 연인들이고
칼쌈질의 독특한 데이트로 보는 사람의 시선을 붙잡는 연인들이기도 하다.
저 칼날들의 '쪽, 쪽, 쪽...'은 정말 재밌다.
아마도 '쪽, 쪽, 쪽...'보다 더한 것도 있었으리라 짐작되는구만~
드디어 아이러뷰쏘머치까지 감동적으로 듣게 된 경이로운 하루를 마무리하면서...

마지막 대결|형사OST|2005


아티스트 - 조성우
관련앨범 - 형사 OST
마지막 대결 -조성우
쎄끈하고도 알흠답도다...

[펌] MEN OF THE YEAR - GQ,200512


GQ KOREA December 2005

 

 
 
이명세, 뭐든 예뻐야 해

한국 대중 영화에는 졸부 같은 구석이 있다. 돈 벌기에 급급한 나머지 영화 미학에는 둔감한 영화가 종종 눈에 띈다. 하지만 영화를 오직 영화로만 고민해온 감독이 있다. 6년 전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남긴 채 훌쩍 미국으로 떠났던 이명세는 <형사>로 다시 한 번 자신이 구제불능의 영화근본주의자라는 걸 입증했다. <형사>는 불완전한 작품이지만 이명세가 부재했던 지난 6년 동안 한국 대중 영화가 잊고 있었던 영화의 근본적인 가치가 무엇인지 보여주는 거울이다. <GQ>는 이명세를 올해의 감독으로 선택했다.


영화란 무엇인가? 어쩌면 당신에게 가장 잘 어울리는 질문인지도 모르겠다.

난 <대장금>을 무척 좋아한다. 신문 연재 소설 같다. 매 회 새로운 박진감이 느껴진다. 하지만 <대장금>은 드라마다. 영화는 드라마가 아니다. 신문 연재 소설이 아니다. 본질적으로 영화는 시에 가깝다.

<형사>로 영화의 본질에 접근하려고 했다는 뜻인가?
TV 드라마였다면 인물 설명을 위해 몇 회 분량을 소비했을 거다. 사실 인물을 온전히 보여주기 위해서라면 2시간을 써도 모자라다. 하지만 <형사>는 인물을 설명하고 그들이 빚어내는 사건을 담아내는 영화가 아니다. 두 남녀가 사랑하는 느낌에 대한 영화다.

하지만 관객은 받아들이려 하지 않았다.
관객도, 훈련을 받아야 한다. 클래식을 듣는 것과 같다. 어떤 사람은 쇼팽의 음악을 들으며 차갑다 혹은 뜨겁다는 느낌을 가질 수 있다. 하지만 그걸 느끼는 감각이 훈련되지 못하면 차이를 알 수 없다.

그렇다면 상업 영화 감독으로서 관객을 너무 앞서간 것 아닌가?

달라지고 있다. 우리도 그 느낌을 구분해낼 수 있는 단계에 와 있다. 디자인이 삶 속으로 들어오고 있지 않나? 예술이 생활 속으로 들어오고 있는 거다. 인간은 빵으로만 사는 게 아니다. 사람은 평생 동안 영적인 성장을 한다. 영화도 그걸 충족시키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

영혼은 어떻게 충족 되는건가?

어렵게 생각할 필요 없다. 우리는 흔히 베르사체나 샤넬, 디올의 옷을 입고 행복해하지 않나.

지금 한국영화에 그런 고민이 필요하단 얘기인가?
한국은 지금 영화 뿐만 아니라 대중 문화 전반에 철학이 없다. 미적으로 세련됐다는 건 미학적인 고민 속에서만 나온다. 우리가 커피숍에서 얘기를 나누지만 여기 분위기가 좋다 나쁘다고 얘기하게 되는 건 미적인 선택의 문제가 아닌가. 영화도 그런 근본적인 고민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영화 감독은 그런 고민을 하는 사람이다.
영화 감독은 결국 철학자인가?

영화 감독은 깡패다. 예술이 전복의 역사이고 예술가는 깡패이기 때문이다. 영화 감독은 자신이 하는 예술이란 무엇인지를 고민하는 철학자다. 경제인도 철학을 한다. 지금은 상도가 땅에 떨어졌다. 그렇다면 경제인들도 상술의 미학을 고민해야 한다.

지금 영화의 미학이 땅에 떨어졌나?
아름다움과 그렇지 못한 것의 구분이 없어지고 있다. 영화가 아름답고자 한다면 극장의 의자 배치까지도 신경 써야 한다. 그런 건 평론가들과 매체의 몫이기도 하다. 음식 문화가 나아지고 있다면 음식 문화의 무엇이 나아지고 있는지를 고민해야 한다. 그것이 바로 매체의 평이다. 그런데 매체들은 자기 권력만 휘두른다. 영화를 재단하기에 바쁘다.

아름답다는 건 뭔가?
난 <인정사정 볼 것 없다>에서 우 형사가 욕을 했다는 게 지금까지도 마음에 걸린다. 고약한 장면이 유독 많이 등장하는 영화가 있다. 그게 표현의 자유일까? 그렇다면 예술의 표현이 무엇인지 다시 생각해봐야 한다. 한국 사회에선 무엇이든 표현할 수 있다고, 표현의 자유를 지지해야만 진보라고 불린다. 하지만 표현의 아름다움을 고민하고 표현의 미래를 고민하는 게 진짜 진보다. 난 진보의 진보다.

영화 감독은 왜 했나? 벌써 20년째 당신은 영화 감독이다.
그 질문 참 오랜만에 들어본다. 왜 했을까…. 고등학교 시절부터 한참을 고민했다. 산다는 게 무엇일까? 그러다 감독이 되겠다고 생각했다.

산다는 게 무엇인지에 대한 고민이 어떻게 감독이 되겠다는 것으로 연결되나?

난 나 자신에 대한 정신분석을 하곤 한다. 모든 것은 나 자신부터 시작되는 거니까. 나를 생각했을 때, 소박한 소시민은 아닌 것 같았다. 하지만 다른 답을 찾기가 힘들었다. 난 뭔가를 제대로 알지 못하면 단 한 발자국도 앞으로 나가지 못한다. 영화도, 인생도 그렇게 산다. 그래서 생각했다. 사람한테는 주민등록증이 있다. 하지만 정신의 주민등록증은 없다. 내겐 영화를 만들어나간다는 게 영혼의 주민등록증을 찾아가는 과정이다. 그래서 영화를 한 거다.

그렇다면 당신은 관객이 아니라 자신이 비치는 거울을 앞에 놓고 영화를 만드는 것 같기도 하다.
그건 아니다. 나르시시즘은 피해야 한다. 관객과 소통하고 관객에게 이해 받기를 원한다. 어사 박문수가 목이 말라 물을 찾았는데 한 아낙네가 물바가지에 버들잎을 띄워줬다고 했던가? 누군가는 목 말라 죽겠는데 버들잎을 띄워주냐며 역정을 내겠지만 현명한 누군가는 버들잎의 속내를 알아챌거다. 현명한 관객을 위해 난 영화를 만든다.

그렇다면 <형사>에 대한 평단의 반응에 무척 실망했을 것 같다. 찬반을 떠나 십 수년 전 <개그맨>이나 <첫사랑>을 찍었을 때의 반응과 별반 다르지 않았으니까. 이야기가 빈약하다느니, 이미지 과잉이라느니 하는 비판 말이다.
비슷한 것만 자꾸 하면 재미 없다. 성장이 없으니까. 인터뷰도 마찬가지 아닌가. 지난해 우리가 만나서 한 얘기와 올해 우리가 만나서 나눌 얘기가 비슷하다면 재미 없지. 가끔 알고나 썼을까 싶은 평론이 있긴 하다. 내 영화뿐만 아니라 모든 글이 장황하고 어려운 사람이 있다. 그런 건 재미 없다.

그럼 무엇이 재미있는 건가?
난 우리 사회가 시대의 강박 관념을 끊어버렸으면 싶다. 한국을 포함해서 아시아 영화들엔 그런 무거움이 있다. 젊은 친구들의 영화에서도 그런 게 엿보일 때면 답답하다. 그런 강박을 버리면 재미 있어진다. 그건 이야기에 대한 강박과도 같은 것이다.

이야기가 없다는 비평을 절대 수용할 수 없는 모양이다.
<첫사랑> 때도 그런 얘긴 귀가 따갑도록 들었다. 고흐 시대 사람들은 고흐를 버렸다. 예수는 십자가에 못박혔다. 마녀 사냥으로 숱한 사람들이 화형을 당했다.

당신 인생의 가장 큰 고민은 결국 영화인가? 지금과는 다른 삶에 대한 아쉬움은 없나? 당신 나이의 남자들은 가정과 아이 걱정으로 인생을 보낸다.

글쎄…. 결국 내겐 영화밖엔 없는 거겠지. 친구들 그리고 가족들과 점점 더 멀어지는 것 같다. 내 발로 나왔는데 너무 멀리 나왔다. 잘해보고도 싶은데 너무 멀리 온 것 같다. 가끔은 다른 삶을 살 수 있었나 싶은 고민을 한다. 내 영화 <첫사랑>에 그런 느낌이 조금 배어 있다. 내겐 시간이 흘러간다는 것에 대한 강박 관념 같은 게 있다. 그렇게 짓눌려서인지 악몽을 꾼다. 울어야 하는데 울음이 안 나온다. 그러다 소리지르며 깨서 운다. 죽을 때 무슨 생각을 할까, 그 생각을 가끔 한다.

왜 그런 생각을 하나?

난 늘 죽음과 너무 가까이 있었다. 어릴 적부터 늘 그랬다. 그래서 자연스럽게 인간이란 게 뭔지, 왜 유한한 존재인지 고민하게 됐던 것 같다. 예수와 부처도 결국 다 죽음을 극복하려고 했던 것 아닌가. 죽음에 대한 생각이 곧 인생에 대한 고민이다.

그런 근원적인 고민이 6년 동안의 미국 생활에서 더욱 깊어진 게 아닌가도 싶다.

늘 짊어지고 사는 질문들이다. 미국에서도 많은 타협을 해야만 했다. 그리고 고민을 하면서 생각을 숙성시켰다.

서사 구조에 대한 고민은 소설에서도 치열하게 전개됐던 것이다. 찰스 디킨스 같은 소설가가 있었던가 하면 제임스 조이스처럼 이야기를 단절시키고 분쇄하는 소설가가 등장했었다. 시간과 논리에 대한 싸움은 예술의 숙명이다. 영화에서 당신도 그런 싸움을 벌이고 있는 것 같다.

문학뿐만 아니라 미술에서도 그런 고민은 있었다. 인상파나 야수파가 출연하게 된 건 평면적인 화폭의 한계를 극복하려 했던 것 아닌가. <형사>는 외국에서도 쉽게 인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한 번도 못 본 영화라는 건 인정했다. 본 적이 없는 영화를 어떻게 정의내릴지는 아무도 모르는거다.

앞으로도 영화가 진화할 수 있다고 생각하나?
CG도 영화가 진화하고 있다는 증거다. 어떤 사람은 CG란 기술의 진보일 뿐이라지만 난 동의하지 않는다. CG는 영화 언어의 진보다. 영화란 무엇인가에 대한 고민과 상상력이 있다면 진화할 거다. 그 시대엔 그 시대에 맞는 매체가 탄생하게 돼 있다. 20세기엔 영화가 탄생했다. 2005년엔 그에 맞는 영화 언어의 진보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다. 내 영화가 그 진보의 연장에 있기를 바란다. 난 인생이 무엇인지, 영화가 무엇인지 알고 싶다. 난 구도자다. 난 지금 만행을 하는 중이다.


에디터 | 신기주

[펌] movieweek : `형사 Duelist` 안성기 & 이명세


<형사 Duelist>안성기 & 이명세
 
우린 <장수무대>까지 함께 간다 
 

 
 
벌써 20여 년이 훌쩍 지났다. 안성기와 이명세 감독이 배창호 감독의
<철인들>(82)에서 배우와 조감독으로 만나 반세기 가량 우정을
나누었으니 이젠 눈만 보면 서로의 마음을 읽을 정도다. <형사 Duelist>
(이하 <형사>) 이전까지 두 사람이 호흡을 맞춘 영화는 이명세 감독의
연출부 시절까지 포함해 9편. 그 중 이명세 감독이 직접 메가폰을 쥔
<개그맨><남자는 괴로워><인정사정 볼 것 없다> 등 네 편에 출연한
안성기는 그야말로 연기의 진수를 보여주었다. 그리고 1년여의 공을
들인 <형사>에서 안성기와 이명세 감독은 다시 뭉쳐 보란 듯이 멋진
앙상블을 보여준다. 배우와 감독의 행복한 만남을 보여준 안성기와
이명세 감독을 바라보면 자연스레 박수를 보내고 싶어진다.
 
 
강남의 한 한정식집에서 안성기와 이명세 감독을 만났다. 비음이 약간 담긴 특유의 웃음소리와 함께 이야기를 꺼낸 안성기와 대뜸 “원래 이 형(이명세 감독은 현장에서 배우들에게 나이에 상관없이 ‘형’이라는 단어를 붙인다)은 영화를 어떻게 봤어?”라는 질문을 꺼낸 이명세 감독. 그로부터 두 시간이 영화에 대한 이야기로 정신없이 흘렀다.

두 분이 만난 지 꽤 오래됐죠? 거의 20년이
넘은 걸로 아는데.
이명세
80년대 초반인 거 같은데. 직접적인 건 <철인들>이라는 영화에서 내가 연출부를 하면서고. 그 전에 보긴 했지만.
안성기 그때 다른 영화의 조감독도 했었나? 배창호 감독 거 말고.
이명세 내가 창호 형이랑 같이 영화했잖아. 그 전에 다른 영화도 했지. 둘이 연출부 세컨드, 서드를 했는데, 군대 가기 전에 김수용 감독님 작품 두 편을 하고 갔지. 두 편 하고 돌아와서 <철인들>을 같이 했고.
 
<형사>를 기획하면서 안성기 씨를 안 포교 역으로 생각했어요?
이명세
들어오기 전부터 생각했지. 시나리오가 없는 상태였는데… 사실은 성기 형이 대사를 하나 쓰기도 했어. "내가 현장이 좋아서…." 뭐 그런 거.(웃음)
 
<형사>에는 감독님이 미국에 4년 동안 있으면서 느꼈던 것들이 많이 포함되지 않았을까 싶은데요.
이명세
아무래도 영화는 숙명적으로 대중성을 담보해야 하니까 그런 점을 고려해서 한 건데, 그게 또 반대되는 뭔가 있네. 정말로 난 가장 상업적인 영화를 찍겠다고 맹세하고 찍은 영환데. (웃음)
 
안성기 씨는 작업하면서 이게 상업적이다, 아니다 하는 게 보이는지.
안성기
상업적인 틀은 돼 있지. 근데 이제 그것이 직접적이지 않고 표현이 좀 더 예술적으로 승화된 부분이 있기 때문에 그것이 지루할 수 있지. 대중들이 그러한 부분을 지루해 하니까. 그 부분이 뭐랄까, 약간 갭이 있다고 할까?
이명세 경계선이지. 우리가 상업적이다, 예술적이다 하는 논쟁은 의미가 없어. 영화는 영화니까.
안성기 이게 얼마나 통속적이야? 둘이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을 한다는 건 아주 대중적인 코드거든. 그러면서 시작했는데, 찍으면서 예술적인 영상미를 가지니까 '대중적인 영화가 아니지 않나' 하는 생각을 할 수 있는 거지. (웃음)
 
이명세 감독님이 4년 만에 돌아와 <다모>를 소재로 영화를 한다고 해서 좀 의외라는 생각을 했거든요.
이명세
TV 드라마로 잘 알려져 있고, 통속적인 면이 강하니까 그럴 수도 있지.
안성기 거기에 지원이까지 캐스팅되니까 오만하다고 할까. (웃음) 아주 자신감이 있는 거지.
 
그렇다면 <다모>를 그대로는 안 갈 텐데, 어떻게 새롭게 갈까 하는 궁금증이 들더라고요.
안성기
나도 처음에 '왜 이걸 하려고 했을까, 5년간 쉰 다음에 잡은 소재로는 좀 의외다'하는 생각이 들었어. 그것도 TV에서 '스윽' 지나갔으면 괜찮은데, 아주 히트한 작품을 영화로 다시 한다고 하니까 조금 의외라는 생각은 했지.
 
그럼 <형사>를 기획한 이유는 내용이 아주 통속적이라서인가요?
이명세
내가 다루는 소재들이 거의 다 일상적이고 통속적인 거니까. <개그맨>이 좀 예외적일 수 있지만 사람들이 꿈꾸는 부분이 있고.
안성기 그런 캐릭터들이 이명세 감독의 모든 영화에 다 있지.
이명세 <형사>는 시대가 조선말이지만 우리 식의 <로미오와 줄리엣> 같은 느낌들을 주려 했거든. 거기에 멜로드라마를 전 세계 사람들이 알고 있는 검술과 연결해서 보여주면 좋겠다 싶었지.
 
영화 초반에 포교와 악당들이 위조화폐 꾸러미를 두고 엎치락뒤치락하는 장면은 럭비를 보는 듯해요. 그래서 '아, 드디어 <인정사정>의 스타일이 나오는구나'라고 생각했거든요.
이명세
집단적인 움직임이지. 이번에 보여주려고 했던 것이 움직임 속의 그런 부분이니까. <인정사정>에서는 멀리서 바라봤을 때의 거리감 있는 느낌으로 왈츠를 사용한 거고, <형사>는 그 움직임을 더 적극적으로 끌어당긴 거거든. 소제목을 달진 않았지만 우리가 생각한 것 중에 'Chaos(혼돈)'도 있었어. 누가 적인지, 엿장수인지… 관객들이 고정관념을 가지고 영화를 보기 때문에 그걸 깨주려고 그런 거야. 그런 건데 국내 관객들은 성기 형 때문에 그들이 좋은 사람들일 거라 보지. 조금씩 움직이면서 ‘이건 뭐고, 저건 뭔가’ 하면서 그게 어울려서 만들어내는 걸 조금씩 알아내는 건데….
 
사투리를 빠르게 주고받기 때문에 마당극을 보는 듯한 느낌이 강했어요.
안성기
<인정사정>은 너무 편했지. 대사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왜 학교 다닐 때 시험 시간표가 잘 짜여서 하룻밤 새우면서 공부하면 성적 좋아지는 거 있잖아. 그런 느낌이야. 대사가 없으면 현장에 가면 아주 편안해. 쉬게 돼. 난 쉴 수 있고 장면과 디테일만 생각하면 돼. 대사가 있으면 "가만 있어봐" 하면서 대사를 떠올리게 되는데, 특히 이번에는 사투리가 있어서 더 신경이 쓰였어. 전라도 사투리라는 것이 거기 살지 않는 사람이 하기에는 뉘앙스를 흉내내기 힘들잖아. 어감이라는 것이 있어서 그런 거 같아. 함께 출연했던 이한위 씨가 전라도 표준사투리 홍보대사라고 하면서 며칠간 와서 해줬어. 더빙할 때 와서 다시 챙겨주고. 정규수 씨는 <품바>를 많이 해서 마당극 같은 느낌을 많이 얻어왔고. 아주 고마워.
이명세 여러 가지지. 느낌은 리듬이거든. 성기 형이 고생했지. 빠르게 대사하고 감정 싣고 하니까. 원래 한 커트로 찍으려고 하는데, 두 커트로 나눈 거야. 워낙 체력적인 소모가 심하고, 성기 형뿐만 아니라 전체 스태프가 다 맞춰야 하니까.
안성기 이 감독이 요즘 나오는 랩처럼 했으면 좋겠다고 해서, 원래 진짜 랩처럼 대사를 "따다다다"(웃음) 하면서 하기도 했는데 그건 좀 이상하더라고. 이 감독이 나를 워낙에 잘 아는데, 연기를 할 때 시동을 거는 타임이 있어. 조금씩 굼뜨는. 그런 걸 다 없앴으면 좋겠다고 하더라고. 그런 걸 많이 지적해서 빠르게 하느라 신경을 많이 써야 했지.
 
표정을 보면 아주 능청스럽기도 해요. <투캅스>의 형사처럼.
안성기
이 감독은 <고래사냥>의 민우 같은 편안한 느낌 있잖아. 막 감정 그대로 뱉어내는 걸 원하더라고. 후시 더빙을 할 때 더 촐랑거리는 스타일로 하자고 하더라고. 그래서 "이랬냐"를 "잉랬냐"라고 더 과장해서 하고 그랬지. (웃음)
 
하지원 씨와 강동원 씨를 캐스팅한 건 두 배우가 지닌 장점을 영화적으로 더 표현하고 싶어서였나요?
이명세
그렇지. 하지원은 전형적인 모습을 안 가지고 있잖아. 누구처럼 섹시 스타라든지 하는 정형화된 이미지가 없어. 선입견을 가질까봐 영화를 다 보진 않았는데 평범한 역할을 많이 했더라고.
동원이는 눈빛만 보고 캐스팅한 거지. <늑대의 유혹> 시사회에서 '쟤다' 했어. 대성할 수 있는 자질이 있었고. 모든 장면, 심지어 저 멀리 서 있는 장면, 부딪쳐 지나가는 장면 등 딴 사람이 할 수 있는 것도 본인이 다 했어.
 
어린 두 배우들이 두 분을 힘들어하지 않던가요?
안성기
뭐랄까, 우리는 그쪽으로 내려간다고 했고, 그들은 우리 쪽으로 올라온다 했을 거야. 그런데 중간에서 잘 만난 거 같아.
이명세 환상적이었어.
 
이번에도 현장에서 항상 그렇듯 '동원이 형'이라고 했을 거 같은데, 그럼 하지원 씨는 어떻게 불렀어요?
이명세
'네 이년'. (웃음) 성기 형이 이번에 두 배우 중간에서 아주 잘 해줬지. 나야 풀어준다고 해도 호흡을 맞추는 건 연기자들끼리니까. 성기 형이 근엄하게 하면 더 어렵고 경직될 수 있는데, 말 그대로 같은 길을 가는 동료로 대해줬거든.
 
개인적으로 <형사>를 보고 가장 먼저 느낀 건, '<인정사정>의 한풀이를 했구나'라는 거였어요. 왜 <인정사정>의 마지막 장면은 비가 오는 게 아니라 원래는 눈이 오는 설정이었잖아요. 그래서 이번에 눈을 그렇게 많이 쓰는구나…. (웃음)
이명세
그해가 폭설이 온다고 해서 기다렸는데 안 왔지. 난 움직이는 모든 걸 좋아해. 수평으로 흐르고, 수직으로 내리고. 그건 흩어지는 거니까. <인정사정> 때는 싸우는 장면에서 탄광촌에 내리는 눈이 검게 변하는 걸로 하려고 했거든. 언젠가 그걸 꼭 할 거야.
 
돌담길에서 둘의 대결 장면은 올해 최고의 명장면이 아닌가 싶어요.
안성기
원래 시나리오에는 내가 더 좋아하는 장면이 있었어. 겨울에 둘이 그런 식으로 싸우는 장면. 그러면 슬픈눈이 입김만 남기고 떠나고, 남순이 입김을 내쉬면서 두 입김이 섞이는 거야. 이게 죽인다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빠졌더라고.
이명세 그건 CG로 해도 안 되더라고.
안성기 그게 뭔가 합쳐지는 징조를 아주 확실히 보여주는 건데.
이명세 얼굴에서 나오는 입김을 잡아내기가 힘들어. 겨울에 찍었으면 원래 입김에 CG를 덧붙이면 좋았을 텐데.
 
달 위에 올라가는 장면은 만화적 상상력이 빛났어요.
이명세 조심해야 할 부분이지. 유치하지 않아야 하니까. 딱 한 장면 쓴 거야.
 
<인정사정>이 추격과정을 보여줬다면, <형사>는 제목에 'Duelist'를 넣을 만큼 대결에 주목하라는 느낌인데요. 한편으론 너무 대결에 집중한 것이 아닌가요. 그 외의 인물들에 대한 배려가 좀 모자란 것 같아요.
이명세
대결에 집중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이 없어. <남자는 괴로워> 때는 괴로운 것만 찍기도 힘들었어. 영화가 열 시간 상영하는 게 아니잖아. 영화라는 것이 한 이미지를 가지고 승부를 거는 거니까. 영화는 시와 같고 음악과 같은 건데 자꾸만 서사라는 게 끼어들지.
 
<인정사정>의 주변 형사들 이야기처럼 이번에도 주변 포교들의 이야기가 있어주지 않을까 했거든요.
안성기
그게 좀 약했어.
이명세 그게 좀 힘들어. 잘 지켜보면 그 외의 인물들도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어. 이전의 내 영화나, 일반적인 드라마를 기대한다면 그런 것들이 있어야겠지. 그런데 이 영화는 단도직입적으로 간다고 했거든. 사생활도 없고, 대결과 그 느낌만으로 간다는 목표점이 있었어. 그것을 보여줘서 찍어봐야 다 잘라내야 하는 거지. 안 포교와 남순의 관계나 포교의 애환 등은 어차피 다 편집될 거니까.
 
부녀관계 같은 안 포교와 남순이 지닌 과거사는 어떤 걸까요?
안성기
우리끼리 그런 얘길 한 적이 있어. 둘의 관계가 어떤 걸까? 뭔가 정적을 치고 나서 애가 하나 살아남았는데 그 아이를 안 포교가 데려다 키우고, 검술도 가르쳐서 포교 일을 시키고. 아버지와 딸 같은 감정. 그런데 조금은 질투심이랄까? 그런 것도 있어. 왜 슬픈눈을 보고 "저게 우는 눈깔이냐" 하면서 좀 씹잖아. (웃음)
이명세 부녀관계 같은 느낌이지. 아버지가 딸을 사랑하잖아. 이성적인 관계가 아니라.
 
이명세 감독님은 옷만 갈아입고 카메오로 출연해도 됐을 거 같아요. 장돌뱅이 같은 것.
이명세 나오려 했는데 그럴 시간이 없었어. 나중에 "어명이오" 하는 거.
안성기 옛날 캐릭터로 보면 장터에서 "돈이다!" 하고 소리치는 거 해야지. (웃음)
 
<형사>를 이야기할 때 스타일은 환상적이지만 드라마가 약하다는 말이 가장 많죠?
이명세 드라마가 없다는 건 말이 안 돼. 플롯이 없다는 건 말이 되지만. 드라마야 두 사람이 혼돈 속에서 만나고, 그러다가 부딪치고, 데이트하고. 사랑의 갈등을 겪는 부분은 성기 형이 도와준 거지. 남순과 슬픈눈이 직접 할 수도 있지만 영화 중반에 보면 "나의 생각엔 말이다" 같은 안 포교의 대사가 남순의 감정을 대변해주는 거야. 사랑 얘기가 전면에 드러나면 곤란하거든.
 
관객들이 그런 걸 보면서 제대로 받아들이면서 가느냐가 이 영화의 관건이 아닌가 싶어요. 남순과 슬픈눈이 크게 세 번 대결하는 것도 사랑의 진행 단계잖아요.
이명세
사람들이 드라마라고 말하는 건 사실은 플롯이거든. 달려가고, 따귀 맞고, "정신차려 이년아"하고 부르고, 그런 걸 찍기도 했는데 다 잘랐어. 대결이라는 것 속에 멜로를 접목시킨 거지. 충돌시키고. 그래서 소리가 더 중요했어. 예를 들어 후반부에 남순이가 달려가는 장면에서 멜로의 정서가 깔려 있는데 록 음악이 나온다고. 그건 충돌을 의도한 거야, 불협화음 같은 음악이니까. 남순이 마음은 두 가지 상태로 달려가는 거거든.
 
가장 힘들게 찍은 장면은 어떤 건가요?
안성기 내 첫 촬영은 훈련하고, 봉 돌리고, 지원하고, 얘기하는 거였는데, 봉 돌리는 장면을 낮에 연습하고, 밤 10시에 슛 들어가서 새벽 3시에야 OK가 났어. 연습 때 넓은 곳에서 할 때는 됐는데 촬영 때는 나뭇가지에 봉이 자꾸 걸려서 말이지. 나중에 포교 역의 배중식 씨가 담배를 끊었잖아. 나랑 같이 봉 신에 나오는데 스물네 번을 쓰러진 거야. 내가 먼저 쓰러질 줄 알았는데 자기가 먼저 지쳤어. (웃음)
 
안성기 씨는 박중훈 씨가 담배 끊는 걸 보고 끊었잖아요. (웃음)
안성기
얘가 끊는데 내가 왜 못 끊느냐 하면서…. (웃음)
 
안성기 씨는 다음 영화가 벌써 두 편이나 예정돼 있잖아요. 한국, 일본, 중국, 홍콩이 합작하는 <묵공>과 강우석 감독의 <한반도>. 강우석 감독하고는 <투캅스 파이널> 시나리오가 좋으면 하기로 했고.

이명세 올해엔 정말 많이 해야 돼. <형사>로 한 일 년 가장의 역할을 못했으니까. (웃음) 알다시피 성기 형이 있어서가 아니라 중요한 배우의 역할이거든. 두 어린 스타가 전면에 있고 성기 형이 있는 건데, 성기 형이 있어서 두 배우가 돋보이는 것이 아니라면 의미가 없는 거지. 연기의 중심점을 잡아주는 연기자들이 계속해서 나와야 하는데.
안성기 <한반도>는 <실미도>와 비슷한 경우야. <아라한-장풍대작전> 을 하기로 돼 있는데, 강 감독이 "이거 해야 해요" 해서 했거든. <묵공>도 오래 전부터 이야기됐던 건데, "<한반도> 해야 해" (웃음) 해서 또 먼저 해야 될 것 같고. <투캅스 파이널>은, 강 감독이 워낙에 계산의 천재니까. 시나리오가 잘 안 나오면 서로 할 필요가 없는 거지.
 
이명세 감독님의 미국 프로젝트는 어떻게 되고 있나요?
이명세 몇 개 새롭게 들어온 것도 있고, 보류해 두고 있는 것도 있는데, 아직 못 봤어. 이제 차근차근 봐야지.
 
안성기 씨가 보는 이명세 감독은 어떤 감독인가요?
안성기 확실히 영화에 미쳐 있는 부분이 있어. 생활 감각이 좀 없고, 영화 감각만 살아 있는…. (웃음) 옆에서 보면 좀 걱정이 되는 대책 없는 사람이야. '영화만 잘 만들면 되는 시대가 아닌가'하고 생각하는, 올인하는 감독이지. 이번 현장에 다른 감독들이 지켜보고 싶다고 많이들 왔어. 배우들이 좋아하는 감독이 아니라 감독들이 좋아하는 감독, 그건 아주 독특한 감독이지. 배우들도 그런 게 있어. 배우들이 좋아하는 배우, 그건 되게 좋은 거거든.
 
이명세 감독이 보는 안성기 씨는?
이명세
<장수무대>에 같이 나가고 싶다니깐. 끝까지 남아서 현역으로 나가는 거지. 연기면 연기, 생활이면 생활, 이렇게 모범이 될 수 있는 사람이 필요해. 뛰어난 연기자가 없었다는 게 아니라 죽는 날까지 끝까지 연기한 배우가 별로 없어서. 아마 성기 형이 그 일을 해낼 수 있지 않을까 해.
 
글.이원 기자 사진.김범렬 2005.09.12 
 
 
※ 출처 - moviewee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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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센스가 캡 거슬립니다아아아아!!!! 무슨 만담듀오 인터뷰도 아니고. 췌~ 뭔 소린지 원~ =3=
그래도 명 감독님과 안성기 아저씨의 만담은(만담 듀오 아니라니까!!!) 넘 좋아요~♡
이 뇬은 특히 <남자는 괴로워>는 괴로운 것만 찍기도 힘들었다는 그 부분이... -∇-b

[펌] 강한섭이 말하는 이명세


출처 : FILM2.0   2005. 09. 21
 
감독과 평론가의 17년에 걸친 우정과 논쟁



강한섭이 말하는 이명세

2005.09.21 / 강한섭(서울예대 영화과 교수) 


서울예대 영화과 강한섭 교수가 이명세 감독의 신작 <형사 Duelist>를 보고 1989년 그를 처음 만났을 때를 떠올렸다. 그로부터 17년, 두 사람은 밀회와 상박의 의미심장한 시간들을 거쳐왔다. 강한섭 교수가 그 시간들을 되돌아본다. A4 10쪽에 이르는 장문의 원고를 싣는다

1. 다짜고짜

“나는 통합영화시대의 제1호 감독이다.” 내가 사랑하고 증오하는 이명세가 나에게 다짜고짜 던진 제1성이다. 때는 1989년 6월 24일 13시경, 장소는 종로 3가에 위치한 옛날 단성사극장 앞 광장. 비공식 시사회에서 <개그맨>을 처음 보고 ‘아니, 대한민국에도 이런 멋진 영화가 있다니’ 충격을 먹은 평론가는 중간에 사람을 놓아 개봉일에 감독을 만나고 싶다는 전갈을 띄워놓은 참이었다. 1회 상영이 끝나고 관객들이 광장으로 쏟아지고 얼마 후 검은 바지, 검은 남방 차림으로 나타난 감독에게 평론가는 좋은 영화를 보았다고 시네루를 던졌다. 그러자 감독이 통성명도 나누기 전에 당연하다는 듯 폼을 잡으며 대화를 외면하고 마치 독립 투사의 죽음을 각오한 결연한 톤과 음색으로 파고다공원 쪽을 향해 ‘통합영화시대’를 외쳤던 것이다.

그로부터 17년이 흘렀다. 이명세는 한국의 중견 감독을 넘어 거의 임권택 선생님 정도의 권위에 육박하는 국가대표 감독이 되었다. 그리고 무려 제작비 1백억 원이 투자된 일곱 번째 작품 <형사 Duelist>를 완성하고 목하 밀려드는 취재와 인터뷰 스케줄에 비명을 지르는 척하며 즐기고 있었다. 그래서 더욱 오만해진 이명세에게 물었다.

“그래, 너는 십수 년 전 네가 스스로 호명한 ‘통합영화 1호 감독’에 부합하는 작품을 만들어왔느냐?” “물론! 나의 영화 연보에 실패작은 없으며, 나는 모든 작품을 통해 통합영화의 개론과 각론을 쓰고 있다.” 기가 막혀버린 평론가가 이제 아주 절망적으로 물었다. “(코웃음을 치며) 그래, 그렇다면 통합영화시대 제2호 감독은 누구냐?” “불행하지만 아직 없다.” “아니, 뭐라고? 그렇다면 통합영화란 계룡산 1인 신흥 종교구만. 너는 홍상수를 칭찬하고 김지운도 싹수가 보인다고 했잖아?” "(잠시 곤혹스러운 모습, 하지만 곧 안타깝다는 표정으로 바뀌며) 아직 영화를 진화적 관점에서 찍는 후배들이 없어. 물고기 다리가 퇴화되어 지느러미로 헤엄친다는 것을 보여 주지 않고 모두 물고기의 겉모습만 바라보고 있잖아.” “(속으로) 진화? 퇴화? 다리? 물고기? 아니 이 못말리는 본질주의자가 뭔 귀신 씨나락 까먹는 소리야. 이 친구 문화진화론 제1호 평론가를 선언한 내 책을 읽고 감동 먹은 거 아냐?”

감독이라는 창작자와 평론가라는 비평자는 기본적으로 인간이 할 수 없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생각해 보라. 어떻게 인간의 하찮은 육감과 이성을 가지고 무한대의 항시 변하는 세상과 우주를 경험하고 분석한 다음 표현하고 게다가 그것을 좋다, 나쁘다 할 수 있다는 말인가? 원래 창조와 평가는 인간의 몫이 아니라 신의 영역이며 그도 아니면 영원히 알 수 없는 수수께끼 미궁인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이 제 분수를 알고 살았던 시절에 종일 놀고 질문하며 살고 싶은 특별한 '끼'를 가진 아웃사이더들은 제사의 무당이 되거나 초야나 광야에서 하늘의 섭리와 땅의 도리를 궁리하며 살아갔다.

그러나 요즘에는 세상이 참 좋아져 무당들을 예술가로 대접하고 일류 무당은 엄청난 출연료에 더해 제작 지분의 반을 요구할 수 있는 시대가 되었다. 그리고 시비 가리기의 도사들은 동서고금의 온갖 사이비 이론을 마치 제것인 양 끌어들여 세상이 이러니저러니 하며 중생들을 훈계하며 살 수 있게 되었다. 참 좋은 세상이다. 창작자와 비평가는 이렇게 원래 불가능한 것을 가능한 것으로 오해하고 있는 사람들이다. 이 두 직업은 신이 허락한 것이 아니라 근대 시민들이 중세의 전제 권력으로부터 해방되기 위해 투쟁 전략으로 만들어낸 개념이다. 창작자와 비평가는 그러므로 내가 세상의 중심이며 내가 세상을 알 수 있고 표현할 수 있고 그것을 다시 비판할 수 있다는 불가능에 도전하는 슈퍼맨들이다. 창작자와 비평가는 오만과 독단으로 세상과 승부하는 사람들이다. 내가 최고라고 큰소리치는 사람들이다. 자본에 빌붙고 권력에 신경 쓰는 놈들은 감독도 비평가도 아니다. 이명세와 강한섭은 최소한 이 점을 잘 알고 있다. 그 배짱으로 우리는 17년을 서로 싸웠다.

2. “나는 그런 감독이 아니야”
이명세는 중증 왕자병 환자다. 그는 중고등학교 영어 시간에 공부는 안 하고 소설책을 본 문제 학생이었고 군대에서는 ‘악질 개인주의자’로 찍혀 탄압당하다 겨우 목숨을 부지해 고향집으로 귀환했다. 그러나 치유 불능의 말기 환자가 된 것에는 나에게도 일말의 책임이 있다. 나는 한국영화 탄생 70주년을 기념하는 1989년의 한국영화 베스트 원으로 <개그맨>을 선정하면서 다음과 같은 막가파식 코멘트를 날려버렸기 때문이다. “배용균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은 독립영화를 시작하면서 독립영화의 가능성을 모두 실천해 버렸고, 이명세의 <개그맨>은 충무로 영화의 70년을 정리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변경을 제시했다. 이 두 천재가 걸어갈 90년대의 10년이 한국영화를 결정할 것이다.”

<개그맨>은 1988년 크리스마스-신정 특선 프로로 단성사에서 개봉될 예정이었다. 이 영화의 제작자인 태흥영화사 이태원 사장은 기술 시사를 보면서 너무나 재미있어 하는 차에 전화가 걸려오자 “잠깐 상영 중지!”를 외칠 정도였다. 그러나 시사가 끝나고 주위를 살펴보자 자신과 감독을 빼면 모두 심드렁한 표정이었다. 게다가 앞서 개봉한 <다이 하드>가 성탄절이 다가올수록 관객이 급증하는 파죽지세의 흥행 기록을 수립해 버렸다. 그래서 지방 배급사들의 반응도 영 아니었던 <개그맨>의 예고 간판은 철거되었다. 그러다 혹시 모르지 하며 완성한 지 반 년이 훨씬 넘어 기본적인 광고만 하고 그때만 해도 모두가 피해갔던 방학 전 비수기 프로그램으로 간신히 개봉한 것이다.

요즘 말로 하면 마케팅도 포기하고 언론 리뷰와 관객 반응도 별로였던 영화의 흥행은 불 보듯 뻔했다. 돈도 못 벌고 명예도 얻지 못한 대역죄를 범한 충무로 신인감독은 지금처럼 그때도 ‘조기 퇴출’의 형벌을 받았다. 그러나 몇몇이 소문을 내기 시작했다. 충무로에 천재가 나타났다고. 그중 한 사람이 지금은 여성영화인회의를 이끌고 있는 채윤희 씨다. 그때 상당한 자금력을 가진 신생 영화사로 소문났던 삼호필름의 이사로 일했던 그는 이명세가 두 번째 작품을 만드는 데 결정적인 공을 세웠다.

1990년 12월 30일 오후, 겨울의 짧은 해가 서산을 향해 다이빙을 하기 직전쯤, 이명세와 나는 피카디리극장 옆 골목의 한 허름한 대폿집에서 술잔을 부딪쳤다. 우리는 방금 전 <나의 사랑, 나의 신부>가 상영 중인 피카디리극장의 매표소 입구가 ‘전회 매진’을 알리는 영광의 입간판으로 봉쇄되는 것을 목도했다. 우리는 영화하는 사람들이 이 판을 못 떠나는 몇 가지 도락 중에서도 으뜸인 ‘흥행 숫자’ 맞추기 내기를 즐기다 곧 감독과 평론가의 대결 구도로 자세를 고쳐 잡았다. 영화를 재미있게 보았다, 너의 재능을 다시 확인했다, 여자 주인공 미영의 짧은 여행 시퀀스는 너의 십팔번인 현실과 꿈의 관계를 날카롭고 성실한 삶의 체험을 통해 보여 주는 명장면이다 등등의 의례적 찬사를 보내고 곧 다음과 같은 직격탄을 날렸다.

“그러나 <나의 사랑, 나의 신부>는 <개그맨>에 비하면 습작에 불과한 작품이다.” “<개그맨>의 페이소스 넘치는 반문명, 반체제의 풍자는 다 어디로 가고 표피적인 개그들이 휘날리고 있다.” “너같은 악질 스타일리스트들은 변화하는 세계의 역사성 보다는 자아 성찰을 통한 진리의 획득이라는 반계몽주의의 함정에 빠지지 쉽다. 그러면 바로 그순간 네가 혐오하는 관습의 유령이 너의 의식을 개인화, 관념화의 진공 상태로 만들 거야.” “이명세를 이명세답게 만드는 것은 허깨비처럼 우리의 생각을 고착화시키는 관습의 파괴자로서지 보통 사람의 평범한 삶에서 얻게 되는 범속한 깨달음 같은 게 아냐.” 비평가의 줄 펀치를 맞으면서도 이명세는 미동도 하지 않았다. 나의 독설이 끝나자 이명세가 한마디로 사태를 종결지었다. “네가 잘못 봤어. 나는 그런 감독이 아니야.”

3. 이명세 매니저
1992년 2월 중순의 늦은 밤. 그의 세 번째 작품인 <첫사랑> 시나리오를 읽자마자 걸작의 탄생을 눈치채 버린 사람들이 강원도 양구 근처 모텔에서 충무로 야사를 안주 삼아 로케이션 헌팅의 첫날밤을 보내고 있었다. 제작 실장 김태균(<화산고>의 감독), 연출부 친구들, 나, 그리고 훌륭한 반전(反戰) 시나리오를 완성하고 촬영 직전에 뇌일혈로 쓰러져 사회 활동을 접은 시인이자 영화감독 이세룡 형.

우리는 그때 충무로 최고의 흥행 감독으로 입신하여 고공을 비행하던 이명세의 큰 허파에 더욱 뜨거운 야망을 불어넣어 주었다. “시나리오 죽인다.” “작품 나오겠다.” “흥행도 따논 당상이다.” 나는 그때 이미 공정하고 양식 있는 평론가의 직분을 망각하고 이명세 팬클럽 회장 같이 행동하고 있었다. 참 그날 아침 장충동의 영화사를 출발하면서 <스무살까지만 살고 싶어요> 흥행 실패로 별 볼일 없었던 강우석이 우리 팀을 부러운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러나 시나리오의 계절은 겨울인데 안타깝게도 설악산 골짜기의 눈도 벌써 흐트러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때 이명세의 30대는 절정을 향해 차오르고 있었다. 그는 곧 영화의 계절을 봄으로 바꿨다. 그리고는 봄에 시작하는 첫사랑의 모든 것을, 그 떨리는 우리 모두의 경험을 이미지와 사운드의 결합과 충돌로 완벽하게 표현해냈다.

내가 보기에 이명세의 대표작은 단연 <첫사랑>이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다. 한국영화의 걸작 하나가 있다면 그게 바로 <첫사랑>이다. “너는 위대하게 35세에 걸작을 만들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너는 그 이후 다시는 그 경지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는 나의 지적에 이명세는 역시 동의하지 않았다. “다시 한번 말하지만 나에게 실패작은 없다. 그때그때 소재에 맞게 변화가 있을 뿐이다. 그 진수를 뽑아내는 것이다. 나의 불륜의 사랑, 나의 신부의 사랑, 그리고 나의 첫사랑. 모두 중요하다. 아니, 나의 안성기 과장, 나의 우 형사, 나의 남옥이와 나의 슬픈 눈동자. 모두 최고다.” “웃기지 마라. 허세 부리지 마라. 너는 35세에 시간의 비밀을 알았다. 그것은 너의 두려울 정도의 몰입과 직관, 그리고 상상력으로 얻어진 거다. 너는 ‘첫사랑은 진화하지 않는다’부터 출발했다. 당연하다. 첫사랑은 19세기에도 20세기에도 몰래 떨면서 했으니까. 그리고 지금 21세기의 청춘들도 그렇다. 그래서 첫사랑은 시인 정현종이 간파했고 네가 완벽하게 표현했듯이 시간의 회귀와 영겁을 증명하는 바로 시간의 비밀을 여는 단초인 거다. 그래서 너는 시간의 상대성을 발견한 거야. 바로 너는 아인슈타인이 고등 방정식으로 증명한 상대성을 직관으로 터득한 거야. 그러니 이제 솔직하게 고백해봐. 너의 걸작은 <첫사랑> 하나라고.” “아니, 나에게 실패작은 없다. 굳이 호감이 가는 작품을 고르자면 <첫사랑>과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그리고 <형사 Duelist>다.” “지독한 친구.”

1993년 1월 22일 아침. 명보극장을 향해 이명세 팬클럽이 가기 시작했다. 매표구에서 그들은 입장권을 사고 감독에게 흔들어 보였다. 꽤 많았다. 거의 1백여 명 회원이 줄을 서자 꽤 길었다. 그러나 그때뿐이었다. <나의 사랑, 나의 신부>를 사랑했던 관객들은 오지 않았다. 차갑게 외면했다. <첫사랑>은 격동의 사회문화 혁명기를 보내고 있던 한국 사회에 어울리지 않는 시대착오적이며 유치찬란한 영화로 매도됐다. 흥행 성적은 1주일 상영에 총 4,917명! 오후 5시쯤 다시 찾아간 명보극장 앞에 이명세가 혼자 검은 바바리에 가방을 가로 메고 정면을 응시하고 서 있었다. 우리는 극장 옆 물만두 집에서 술을 시켜 식도에 부었다. 이런 저런 얘기를 하고 힘을 내자고 자장면을 시켜 먹었다. 그리고 헤어졌다. 이번에 다시 만나 그때 얼마나 충격이 크고 분했었냐고 물어보았다. 감독은 이렇게 말했다. “아니야, 그때 명보극장 앞 건널목을 건너면서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랬어. 나같이 건방진 놈이 두 작품 연속 흥행했으면 얼마나 더 건방지게 됐겠어. ‘하나님, 감사합니다’ 그랬어, 정말.”

나의 대표 감독 이명세가 세상과 불화하기 시작하자 평론가도 이성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영화상 심사만 맡으면 어김없이 이명세와 이명세의 배우들과 이명세의 기술인들을 밀었다. 1993년 제14회 청룡상 여우주연상은 <첫사랑>의 영신이 김혜수가 받았다. 김혜수의 가장 아름다운 모습이 영화 속에 있다. 영화각본상도 이명세가 받았다. 상대성 이론을 직관으로 표현했으니 당연하다. 그때 심사위원들은 반신반의하면서도 나의 <첫사랑> 옹호론에 손을 들어주었다. 작품상도 <첫사랑>이 받아야 한다고 주장하자 눈길이 냉랭해졌다. 작품상은 임권택 감독의 <서편제>가 받았다. 기술상은 <그대안의 블루>의 안상수 디자이너에게 돌아갔다. 결국 그 한을 영화평론상에서 풀었다. <첫사랑>의 미술감독 조융삼의 디자인은 지금도 내가 아는 한국영화 최고의 프로덕션 디자인이다. 그 무렵 어느 모임에서 존경하는 평론가 김종원 선생이 나를 소개하면서 ‘이명세 감독의 매니저’라 호칭했다.

4. 사막을 건너다
이명세의 작품 연보에는 흥행 실패에 따른 타의에 의한 두 번의 ‘사막 건너기’와 욕망의 통제에 의한 두 번의 ‘자의의 휴식기’가 있다. 1993년 1월의 <첫사랑> 대패부터 1994년 중반 네 번째 작품 <남자는 괴로워>의 촬영에 들어가기까지가 첫 번째 사막기고, 1996년 다섯 번째 작품 <지독한 사랑>마저 관객의 지지를 받지 못하자 또다시 유랑해야 했던 1999년 상반기까지가 두 번째 사막기다.

첫 번째 시련기에 나는 이명세를 많이 위로하지 못했다. 내가 멋모르고 설쳐대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나는 그때 학자의 본분을 망각하고 YS정권에게 영혼을 저당 잡히고 요즘의 ‘문화 산업 5대 강국론’에 해당하는 ‘<쥬라기 공원> 한 편의 수익이 현대 자동차 150만 대 수출액과 맞먹는다’와 같은 엉터리 어용 영화 정책을 판매하는 한심한 교수였다. 그래서 새벽 조찬부터 시작해 오전에 강의 잠깐 하고 오후에는 각종 정부 위원회로 뛰어다녔으며 그 사이사이에 라디오와 텔레비전에도 얼굴을 내밀어 사소한 부를 축적하고 세속의 명예를 쌓아가면서 인생을 낭비하고 있었다.

그래서 <남자는 괴로워> 촬영장에는 가보지도 못했다. 아마 시사회도 바빠 가보지 못한 것 같다. 아무 기억이 없으니 말이다. 1995년 2월 중순에 개봉된 <남자는 괴로워>는 흥행과 비평 모두에서 또 하나의 재앙이었다. 그로부터 한 달 후인 3월 중순경 이명세로부터 구원을 요청하는 SOS 전화가 왔다. 서초동의 한 냉기가 도는 오피스텔에서 만난 이명세는 지치고 낙담하여 소리치고 있었다. 평정심을 잃고 한국의 ‘무식한’ 평론가와 기자 놈들에게 저주를 퍼붓고 있었다. <첫사랑>과 <남자는 괴로워>의 잇단 흥행 재앙은 당당하게 오만했던 이명세의 평상심을 온통 흔들어놓고 있었다.

그는 실직한 안성기 과장만큼 외롭고 비참했다. 그렇다고 영화 주인공처럼 롤러스케이트를 타고 빌딩 복도를 헤집고 다니거나 빗물을 차면서 거리에서 춤출 수도 없었다. 그는 흥행을 아주 섬세하고 치밀하게 분석하는 감독이다. 영화 흥행 통계를 살피다가 ‘장르 20년 주기설’을 만들 정도다. <남자는 괴로워>는 1965년 작 <1등 과장>의 리메이크다. 그래서 1995년이면 한국이 단군 이래 최고 호황이라는 3저 호황기인데 직장에서의 퇴출과 자살이라니 사회를 잘못 읽었구나 하자 그가 바로 받아쳤다. “천만에. 원래 경기 호황기에 가난한 이야기, 불행한 이야기가 장사되는 거야. 여유가 있기 때문이지. 그러나 불황기에는 여유가 없어져 해피 엔딩의 드라마가 장사되는 거야.” 이 정도의 흥행 전략가인데 번번이 화살은 과녁을 훨씬 벗어났다.

그래서 운이 좋아 만들게 된 <지독한 사랑> 때는 한 번 더 실패하면 충무로에서 영구 추방이라는 강박관념이 떠나지 않았다. 그래서 전략가의 분석을 동원해 ‘소프트 포르노란 무엇인가’에 도전했다. 그러나 이명세류 소프트 포르노를 동양 최대의 대한극장에서 개봉했으니 장사가 될 리 없었다. 비평가들의 반응도 다시 냉랭했다. 대한극장 앞에서 마주친 강수연 씨가 나에게 “강한섭 씨만 별 네 개 줬대?”하며 까르르 웃었다. 그해 대종상에서 나는 예선 심사위원을 맡았다. 그래서 박종원 감독, 편장완 교수, 신철 제작자 등과 의기투합해 대종상 총 18개 부문에서 17개 부문에 <지독한 사랑>을 후보로 올려놓았다. 그리고 본선 행사가 펼쳐진 전라도 무주로 이명세와 같이 갔다. 결과는 ‘최다 부문 후보 지명, 전 부문 탈락’의 진기록을 수립했다. 그해 대종상의 스타는 <접속>의 장윤현이었다. 장 감독의 차를 타고 3명이 서울로 돌아왔다. 오는 도중에 한 시골 다방에서 장윤현이 “우리 세대의 젊은 감독들도 이명세의 <첫사랑>을 보고 또 보고 있습니다” 했다. 장 감독, 참 똑똑하고 현명한 사람....

1996년 여름부터 1998년 말까지 이명세는 참 외로웠다. 그래서 이 기간 동안 우리는 자주 만났다. 현장에서 독재를 부려야 할 이명세가 평론가와 시사회를 보러 다녔다. 이 학교 저 학교를 다니며 특강도 많이 했다. 실패한 영화감독에게 학생들이 환호할 리 없는데 말이다. 그러고도 시간이 남아 우리 학교 영화과 신입생 OT에도 따라와 학생들과 술을 마셨다. 그러다 사건이 났다. 시사 주간 ‘타임’지의 평론가 리처드 콜리스가 토론토영화제를 정리하는 기사에서 한국영화를 발견하고 그중에서도 <지독한 사랑>이 으뜸으로 매혹적이라고 크게 소개한 것이다. 그래서 전화기를 잡고 “명세야, 너 타임지에 났다! 그것도 사진까지”하며 알려주었다. 기사를 복사하고 영어 원문을 번역까지 해줬다. 시사회 때 만난 기자들에게도 주었다. 그래서 몇 신문에 ‘타임지 이명세 감독 극찬’이라는 기사가 났다. 참 유치한 시절이다.

5. 장인(匠人)
나는 이명세가 항상 다음 영화를 만들다가 녹음실에서 사망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는 목숨을 걸고 작품의 완벽을 추구하는 장인이기 때문이다. 한 작품 끝날 때마다 10년은 늙어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동년배인데 이 감독이 훨씬 나이 들어 보인다. 내가 이런 긴 글을 쓰는 것도 <형사 Duelist>가 그의 유작이 될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다. 그의 장인 기질은 1999년 20세기의 마지막 작품 <인정사정 볼 것 없다>의 우 형사 박중훈의 다음 대사에 잘 나타나 있다. “판단은 판사가 하고 변명은 변호사가 하고 용서는 목사가 하고 형사는 무조건 잡는 거야.”

<인정사정 볼 것 없다>는 내가 글을 쓰지 않은 유일한 이명세 영화다. 그때 평론에 흥미를 잃고 대신 이명세 프로듀서를 하려고 시나리오를 가지고 제작자와 투자자를 만났다. 모두 재미있는 기획이라고 평했지만 이명세라고 하면 고개를 저었다. 유치찬란한 멜로 감독이 액션영화라니 그것도 도시 액션이라니 곤란해 했다. 이명세에게 항상 경외심을 가지고 있는 신철 제작자도 할까 말까 하다가 “한섭아, 시나리오는 참 좋다”한 다음 말을 잇지 않았다. 이 감독도 많은 제작자를 만났다. 한동안은 명배우 명계남 씨의 이스트필름과 연결되는 것 같았다. 하지만 어느 날 이명세가 전화를 걸어 흥분했다. “아, 참, 이창동 감독, 그 놈이 시나리오 이렇게 쓰는 게 아니래.” 그래서 시나리오가 충무로를 돌고 돌다 결국 태원영화사로 갔다. 영화는 대성공하고 이명세는 복권됐다. 그리고 21세기가 열렸다. 그러나 이명세는 제작사와 불화했다. 충무로 제작 시스템에 진저리를 치며 한국의 영화 현장을 개혁하겠다고 결심한다. 한편 나는 다시 학교로 돌아가 ‘한국의 영화학’을 처음부터 다시 쓰겠다는 의지를 불태운다.

6. 뉴욕 브룩클린과 이멜

나는 이명세가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흥행에 성공시킨 99년 여름 이제야 몇 년 전 그에게 빌려줬던 1백만 원이 넘는 돈에 원금에 이자를 더해 2백만 원쯤 돌려받을 수 있겠다 생각했다. 그러나 그의 인격을 믿고 차용증을 안 쓴 것이 화근이었다. 이명세는 계약금을 두둑하게 줄 테니 차기 프로젝트나 빨리 계약하자는 충무로 제작자들을 뿌리치고 그해 겨울 어느 깊은 밤 술자리에서 돌연 “조국에서는 더 이상 이룰 게 없다”는 정말 그의 소녀 취향적 '뽀시시' 영상 스타일만큼이나 살 떨리는 발언과 함께 “할리우드로 가 세계 일류들과 싸워 꼭 승리하고 금의환향하겠다”고 선언했다. 그리고는 돈을 받지 못해 낙담하는 필자에게 “네 돈은 이자를 복리로 쳐 달러로 갚겠다”며 비장하게 말했다. 이듬해 4월 그는 뉴욕행 비행기를 타고 정말 태평양을 건너가 버렸다. 그 이후 그는 잊을라치면 전화나 메일을 때려 팬 관리를 하는 용의주도함을 보이다가, 조국으로부터 잊혀지는 것이 불안했는지 몇 번 귀국하여 ‘피가 한 방울도 안 나오는 놀라운 공포영화’의 트리트먼트를 완성하여 리들리 스콧 감독의 프로덕션에 주어 좋은 반응을 얻고 있으니 절대로 자기를 배신하면 안 된다며 점차 열정이 식어가던 그의 국내 지지자들을 협박하고 돌아갔다.

그러나 이명세의 뉴욕 브루클린 시절의 절정은 리들리 스콧도 선댄스영화제도 유럽의 회고전도 아니다. 그는 뉴욕에서 영화의 고전들을 보며 영화에 대한 자신의 생각들을 확장하고 깊이를 더했다. 그리고 마침내 영화 철학자가 되었다. 정말이다. 한국의 지인들에게 보낸 여러 메일들 중에서 2001년 10월 2일자가 압권이다. 그래서 전문을 소개한다.

“아직도 떨림이 남아 있어서, 어떤 말로 말을 시작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왜냐하면 오늘 내가 정말로 사랑한다고 이야기할 수 있는 사람을 만났기 때문입니다. 그 사람은 내가 그동안 하고 싶었던 말들, 내가 전달하고 싶었던 느낌을 고스란히 갖고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이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면 좀 더 오랫동안 묻어두었어야 할 말들을 오늘은 할 수 있게 된 것입니다. 나는 그 사람을 오늘 2시에 만났습니다. 정확하게 10월 1일 2시입니다. 오늘은 날도 흐리고(이 곳은 요 며칠 계속 흐립니다) 비도 오고 해서, 사실은 이 사람을 만나러 가기로 마음은 먹었었지만 잠시 망설였습니다. 만약에 안 갔다면...? 뭐, 그래도 인연이 있으면 만나기는 했겠지만, 좀 더 시간이 걸렸겠죠.

오늘은 이상하게 눈도 일찍 떠졌습니다. 다른 날 같았으면 아마 더 침대에서 뭉기적거릴 텐데, 눈을 떴더니, 그런대로 몸도 가볍고 해서 일찍 나갔습니다. 약속 시간보다 30분 정도 일찍. 그래서 커피도 한 잔 마시고 그냥 가벼운 마음으로 기다렸습니다. 그리고 약속 시간 5분 전에 자리에 앉아서 기다렸습니다. 다른 시간 같으면 그곳에는 젊은 사람들로 꽉 차는 장소인데, 오늘은 낮이라 그런지 젊은 사람보다 나이 든 사람들이 훨씬 많았습니다. 거의 대부분 이 곳 낮 시간은 그렇게 나이 든 사람들이 많은 장소입니다. 정각 2시가 되자 피아노맨이 들어와 음악을 연주하기 시작했고, 불이 꺼졌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박수와 웃음소리와 함께 그 사람이 등장했습니다.

그 사람의 이름은 버스터 키튼입니다. 오늘 그가 보여 준 이야기는 카메라맨(<THE CAMERAMAN>, 1929)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한 번쯤 말씀드린 적이 있을 겁니다. 나는 영화를 영화로 찍는 5명을 안다, 그 5명은 오즈 야스지로, 페데리코 펠리니, 채플린, 자크 타티, 버스터 키튼이라고요. 이 명단은 이곳에 와서 만든 겁니다. 그 명단을 만들게 된 계기는 올 초에 우연히 도서관에서 빌린 펠리니의 라는 작품이었읍니다. 그 영화를 보면서 '이것이 영화다'라고 생각했고, 그래서 내 생각에는 누가 영화를 영화로 찍는가를 한 번 생각해봤죠. 그 참에 필름포럼에서 자크 타티 회고전을 했읍니다. 그때 <위고씨의 휴일>이란 영화를 보면서, 이것이 영화라고 생각해서 추가했고, 언제나 영화제에 가면 누구를 좋아하는가? 물을 때마다, 내가 채플린이라고 하면, 사람들이 말하곤 하는 버스터 키튼(처음에는 채플린에 대한 질투 때문이라고만 생각했습니다)의 비디오 <STEAMBOAT BILL.JR>를 보곤 버스터 키튼 역시 영화를 영화로 찍는 사람이구나 하고 명단에 올렸었던 것이죠.

그런데 오늘 확실하게 안 것입니다. 그는 정말 영화를 영화로 찍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는 그대로 내가 생각했던 말들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는 영화라는 것이, 어떤 소재를 선택해야 하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영화적 공간이 될 수 있는 공간을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것이 영화로 표현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영화는 모든 것을 표현할 수 없습니다. 영화적인 것만이 영화로 표현될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영화의 한계입니다. 분명히 영화는 한계가 있습니다. 사람 목숨이 유한한 것처럼. 그 한계를 인정해야만 된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그 한계라는 것이 바로 각 예술의 고유한 특성이라고 저는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는 영화는 단순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단순하다는 것은 정수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좋은 영화란 분석의 대상이 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정수는 쪼개어질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정수는 확장의 대상이지, 결코 분석의 대상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선문답과 같은 것입니다. '차나 한잔 들고 가게' 속에서 어떻게 선을 분석할 수 있습니까? 그래서 결론 짓는 것은 ‘분석 대상이 되는 것은 아직 그 정수에 이르지 못한 것’이라는 것입니다. 덧붙여 말한다면 카프카가 말한 것처럼, 시가 종교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기도가 될 수 있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더 많은 이야기가 있지만, 아직 흥분 상태가 가라앉지 않았습니다. 극장 문을 나서면서 나는 속으로 버스터 키튼을 사랑한다고 고백했습니다. 이것은 저의 첫 번째 고백입니다.

한섭형 잘 지내지? 명세"


처음 메일을 읽고 참 기분이 좋아졌다.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공부하는 감독에게라면 돈을 떼이더라도 가만히 있겠다 했다. “좋은 영화는 분석 대상이 될 수 없다”는 그의 화두는 분명 나같이 영화를 찢고 나누고 해체하는 일로 먹고사는 영화 글쟁이들을 무장 해제하려는 의도를 내포하고 있지만 그래도 할 수 없지 싶었다. 학생들에게 메일을 소개하자 몇몇 마음이 아름다운 학생들은 건드리면 곧 눈물을 쏟을 것 같은 ‘감동을 주체할 수 없음’의 표정을 지었다. 그러나 나는 감상적인 글쟁이가 아니다. 그래서 이명세의 메일을 물신화하기 시작한 학생들에게 일갈했다. “이명세는 영화 철학의 오사마 빈 라덴이다. 경계하라!” 내 생각은 이렇다.

“나는 영화를 영화로 찍는 5명을 안다”, “영화적인 것만이 영화로 표현될 수 있다” 그리고 “영화는 단순해야 한다. 단순하다는 것은 정수라는 뜻”이라는 주장을 펴는 이명세는 불변의 진리는 존재하고 그 진리에 도달하려면 육체와 정신을 갈고닦아야 한다는 변하지 않는 정수(essence)로서의 초월적 진리를 추구하는 중세 인식론의 담론에 기초하고 있다. 어떤 사물과 현상에 불변의 정수가 있고 그 정수를 영혼을 통해 알 수 있다는 주장은 명백히 거짓말이다. 근대의 철학 천재들을 거명하지 않고서도 인간의 머릿속에는 영혼이라는 기관이 존재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영화 예술의 진리는 없다고 생각한다. 아니 영화의 에센스는 끊임없이 변한다. 작품 그 자체는 의미가 없고 오직 작가, 작품, 관객, 그리고 그것들이 존재하는 환경들 사이의 관계의 조합에서만 의미가 만들어지기 때문이다. 게다가 본질주의자들은 위험하다. 진리를 유일한 것으로 상정하기 때문에 그들은 다른 사람의 믿음을 인정하지 않는다. 빈 라덴과 같은 이슬람 원리주의자 그리고 부시와 같은 패권을 추구하는 제국주의자가 다 세계 평화에 암적인 존재들이다.

그러나 이명세나 안드레이 타르코프스키와 같은 예술 근본주의자들은 속물적인 세상에 분노하면서 그 울부짖음을 아름다움으로 승화시켜 표현할 뿐이다. 그래서 그들은 영화의 기본 성격을 오해하고 있지만 역설적으로 그 오해의 힘으로 영화 예술이라는 우물의 깊이를 더해 마침내 지층의 심연에 도달해 펄펄 끓는 마그마에 도달하기도 한다. 이명세가 돈 주겠다는 제작자들을 뿌리치고 더 큰 영화의 승부를 위해 뉴욕으로 건너갈 수 있었던 것도 그가 고집스러운 근본주의이기 때문이다. 뉴욕 타임스가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평하면서 “마치 영화 스타일의 백과사전을 보는 것 같다"고 격찬한 이명세의 눈부신 스타일은 이렇게 그의 고집과 노력의 산물이다. 이명세는 본질주의자로 태어나 본질주의자로 살다 죽어야 하는 운명적인 예술가다.

7. 확신범들이 만드는 세상
신들의 무덤 판테온에 모셔진 위대한 영화감독들 중 세 사람이 이명세를 찾아왔다. 오손 웰스, 알프레드 히치콕, 오즈 야스지로. 시간순이다. 거인 웰스는 동물원에서 만났다. 한 뚱뚱한 남자가 앞에 걸어가다가 뒤 돌아서 이명세를 바라보았다. 한참 동안. 그래서 그 의미를 곰곰이 생각하다가 <개그맨>에서 배창호 감독을 캐스팅했다. 영화는 꿈인가 노스탤지어인가, 그것도 아니라면 그저 꿈속의 꿈에 불과한 것인가. 착한 일본 사람 오즈는 이명세의 책상 의자에 앉아 무언가를 쓰고 있었다. <인정사정 볼 것 없다>를 준비할 때였다. 인사를 하고 너무 반가워 차라도 대접하려고 방을 나갔다가 다시 돌아와 보니 이미 사라져버렸다. 오즈의 <태어났지만...>과 이명세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그 두 작품을 연결하는 공통 부호는 무엇일까? 히치콕 감독과의 조우에 대해서 이명세는 2002년 3월에 쓴 메일을 통해 다음과 같이 고백했다.

“친구가 보낸 통영의 매화 소식만 없었다면, 나는 요 근래 따뜻한 날을 그저 이상 기온의 현상으로만 생각하고 있을 것이다. 지금 창을 활짝 열어 놓았는데도 춥지 않은 걸 보면, 확실히 봄이 온 것 같다. 정말 봄이다. 어떻게 지내시는가? 이제 새 학기니 매년 똑같다 해도 분주하시겠지. 생각보다 2차 시나리오가 잘 진행되고 있음을 알립니다. 그리고 10년 전에 꾼 꿈의 화두 역시 풀었음을 알립니다. 10년 전 히치콕이 내게 M자 하나를 보여 주었는데 그동안 그것이 무엇인가? 지금까지 생각했었지. 미스티, 미스터리, 머더(Murder)... 그래서 그 때부터 영화 속에는 안개가 들어가기 시작했지. <첫사랑>의 안개는 그 꿈과 연결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지. 그러나 그것은 달을 가리키는 손가락에 지나지 않았던 거지. M이란 맥거핀(Macguffin)이였거든. 이제 다음 영화에는 맥거핀이 들어간다는 사실을 말씀드립니다. 맥거핀이란 대중영화입니다.”

그리고 지금 2005년 9월. 이명세는 뉴욕 프로젝트를 일단 접고 서울로 돌아와 M프로덕션을 서울예술대학 남산 캠퍼스에 차리고 자기 말로 ‘영화 사상 가장 빛나는 감각 액션’을 보여 주는 <형사 Duelist>를 피와 땀으로 완성하고 관객의 심판을 기다리고 있다. 자, 이제 M이란 무엇인가? 관객을 영화 속으로 안내하는 흥분, 두려움, 열정의 가공 장치 맥거핀인가? ‘성공 시나리오 X를 찾아서’라는 목표를 가지고 진행되는 이번 가을 학기 나의 ‘시나리오 워크숍’ 강좌의 학생들에게 같은 질문을 던지자 몇몇 재미있는 답변들이 나왔다. “M은 그림자예요. 실체보다 크고 돌아보면 사라져 버리니까요.”, “M은 맥도날드 햄버거의 머핀이죠. 머핀은 달콤하지만 맥도날드보다는 던킨 도너츠가 맛있으니까요.” 자라나는 우리 학생 아이들은 교육의 대상이 아니다. 나의 선생님들이다.

요즘 이명세의 답변은 “M은 M으로 시작되는 모든 단어들이다. 미스티, 미스터리, 머더, 맥거핀, 마릴린 먼로, 그리고 M 스쿨....” 이렇게 요설을 하는 이명세가 괘씸해 “요즘 너에게 M은 머니야” 하니까 옆에 있던 김홍준 감독이 “모어(More) 머니"라며 거든다. 모어 머니를 넘어 맥시멈 머니임에 틀림없다.

8. 세상의 중심에서 큰소리치다

이제 다시 출발점으로 돌아가서 통합 영화란 무엇이며 이명세는 정말 2호가 없는 1호 감독인가를 따져보자. 우선 통합 영화는 대단한 발상이다. 하지만 너무 큰 기대를 걸면 반드시 실망한다. 위대하지만 동시에 뻔한 소리기 때문이다.

“통합 영화는 드라마와 다큐멘터리의 구분을 무화시키는 것이다. 이미지와 사운드 구분은 육체/정신 이원론 수준에 머물고 있는 유치한 유럽 예술영화 감독들이나 하는 소리다. 예술과 돈도 목표는 하나고 메시지와 비주얼의 대결 구도도 쓰잘 데 없는 일이다. 사단칠정론에 따른 장르론도 할리우드 메이저의 프로덕션 라인업에나 유용하다. 왜냐하면 세상은 원래 둘이 아니라 하나고 예술가가 도통하면 세상의 불이(不二)함을 알고 온갖 나눔과 차이를 꿰뚫어 그 본질이 하나임을 보여 주는 시종여일(始終如一)의 표현에 도달하기 때문이다.”

“맞고요. 지당하고요. 옳습니다. 하지만 원래 하나, 즉 나누어지기 전의 통합으로서의 세상을 그리워하고 동경하는 것이 예술가의 존재 이유고요, 세상을 이루는 가장 기본적인 물질을 알기 위해 목숨을 걸고 끝없는 절단 작업을 수행하는 것이 과학자예요. 그런데 최소와 기본으로서의 본질과 최대와 현상으로서의 표현은 서로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예술가와 과학자 모두 극대와 극소의 양 극단을 모두 왔다 갔다 해야지요. 그런데 과학자는 숫자와 등식을, 예술가는 이미지와 비유법에 의존해 세상을 설명하고 표현하는 것만이 다를 뿐이죠. 그것도 모르셨나요. 이명세 감독님. 당신은 세상의 정수를 추구하는 참 용기 있는 감독임에 틀림 없지만 장선우도 그래요. 김기덕도 마찬가지고요. 그리고 더 넓은 세상에 나가면 용기 있는 감독은 너무 너무 많아요.”

하지만 문화진화론 제1호 평론가의 이러한 멋진 설명을 이명세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그리고는 자기가 설립한 M 스쿨의 주임 교수는 오즈, 펠리니, 채플린, 타티, 키튼 다섯 명뿐이고 자신은 이 다섯 영화 신(神)들의 세계를 통합하는 1호 감독이란다.

<형사 Duelist>의 반응은 관객과 전문가 공히 3할 열광, 3할 시큰퉁, 3할 불만, 나머지 무관심인 것 같다. 이명세가 목표로 했던 맥시멈 머니는 이미 물 건너간 것 같고 제작비 1백억 원을 떨어버리고 나면 판돈을 걸고 달려든 도박사들 모두 각기 원금에 약간의 모어 머니 정도 나눠가질 것 같다. 그래서 “블록버스터를 목표로 했으면 동원이와 지원이의 운명적인 키스 신 정도는 있어야지” 하니까 대결 장면에서 칼날들이 부딪치는 것이 ‘쪽, 쪽, 쪽...’ 입 맞추는 거라며 그것도 모르냐는 식이다. 기가 막혀 “시나리오 문제 투성이야. 가장 중요한 두 개의 플롯이 빠져 있어. 슬픈 눈과 남순이가 왜 첫눈에 반하는지와 슬픈 눈이 왜 병조 판서를 배신하는지가 없어” 하면 “영화는 소설이 아니라 시야. 이미지야” 하면서 플로베르의 일물일어(一物一語)론까지 들먹이며 교수의 자질을 시비한다.

요즘 나도 일당백 결의로 세상의 속물 영화 담론과 싸우고 있지만 할 말이 없다. 당신은 “여전히 철 안든 아이 같다”는 중앙일보 이후남 기자의 도전에 “영화란 영원히 영(young)한 거다”로 답변하는 독선과 후안무치, 그리고 자신만만. 그래서 이 엇갈리는 대화에 흥미를 잃고 자리를 일어서려고 “세상의 중심에 서서 큰소리치는 것이 바로 생존이야”라고 했다. 그러니까 이명세 이 독선의 고집쟁이 또 아니란다. 영화는 큰소리치는 것이 아니라 연애 편지를, 그것도 작은 쪽지를 관객을 향해 띄우는 것이란다. 그러면 이것이 행운의 편지가 되어 도미노식으로 전염병이 되어 세상에 퍼지는 것이 영화란다. 그래서 관객은 어부란다. 통합영화 1호 감독이 풀어놓은 무한의 물고기 중에 능력껏, 취향에 따라 몇 마리 잡아가는 거란다. <형사 Duelist>는 반드시 흥행해야 한다. 그래서 이명세 좀 타락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이명세 나한테 또 전화 걸어 새벽까지 술 마시자고 할 거니까. 그리고 진정한 영화, 영화의 진수, 어쩌고 할 테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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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다르면서 저렇게 대화가 가능한 두 사람의 관계도 재미있고
넘쳐나는 애정으로 까대기를 하고 있는 강한섭은 귀엽다.
예술근본자든 악질스타일리스트든 간에
평생 겸손의 미덕 같은 것에 비굴하게 넘어가지 말라, 이명세!
 

영화|형사|Duelist|2005|디지털상영








 
[디지털상영에서 새롭게 본 것]
 
주모로 변장한 남순의 주근깨
남순의 긴 대사가 꼬이던 발음
슬픈눈의 감동대사에 심하게 입혀진 에코
-남순의 회상에서는 에코 없는 것 같던데 그 편이 더 좋았다...
남순과의 첫대결에서 과감히 잘려 떨어지던 슬픈눈의 머리다발
(요게...극장에서는 본 것 같았는데 DVD로는 아무리봐도 남순이 모자인 것 같단 말이지....)
또렷하게 보이는 슬픈눈의 `미안하오`
마지막 대결에서 검은 그림자가 되기 전 선명하게 붉던 슬픈눈의 도포자락
슬픈눈의 눈물
마지막 대결에서 허리꺾기를 하던 슬픈눈과 받쳐주던 남순
-비디오에서는 어렴풋이 실루엣만 보였다....
서서히 여자티를 내가던 남순의 변화
전체적으로 월등히 선명해진 색감
그리고 처음보는 모든 어둠속의 장면들
더 박진감 있어진 음악
 
[여전히 궁금한 것들]
 
슬픈눈의 몽타쥬를 그리던 화공은 왜 그리 실실 웃고 있었나?
대책회의를 하던 형사들의 장면은 대체 어떻게 촬영을 했나?
==오늘 어느 기사에서 봤다. 테이블을 돌리다가 카메라를 뺐다! 헉...
슬픈눈이 죽었다는 말을 들은 남순은 뭐라고 소리지른 걸까?-혹시 슬픈눈의 이름이었냐...
==여러 번 보다 정리한 결과 '죽으면'과 '안돼'의 써라운드 인듯.
그래서 그 연애의 끝은 어찌된게요?
==드라마에서는 죽었고 마음은 살았다는데 같이 사나 같이 죽으나 다 해피엔딩이라고 봤을때 마지막의 애틋한 표정들을 보자면 남순이도 같이 죽었다는 일간의 사견은 좀 설득력이 떨어지는 듯. 
 
하지원 초반 오바의 미스테리에 대한 나름의 이해
-평범하게도 멋있자면 카리스마가 필요한데
나름 평범과에 속하는 하지원의 남순이
내내 분위기 잡는 슬픈눈과 균형을 이루자면
방법이 그것 뿐이었을 것 같다.
다행이 후반부에서는 좋은 표정도 좋은 대사도 있어서
남순의 사진만 빼버리지는 않을 정도의 호감이 생기다......
 
한번 더 볼까,
아님 그냥 DVD의 무삭제스토리나 기다려볼까,
생.각.중.

소설|호질.양반전.허생전|박지원


선비란 자기를 알아주는 이에게는 뜻을 펼 수 있겠으나 
자기를 알아주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뜻을 펴지 못하는 법이다.

덕만 있고 재주가 없으면 덕이란 빈그릇이 될 것이며, 
재주만 있고 덕이 없으면 재주를 담을 곳이 없을 뿐더러 
그 그릇이 얇으면 넘기가 쉬운 법이다. 
사람이 천지에 참가하여 삼재(하늘과 땅과 사람)가 되었으므로, 
귀신이 재주라면 
천지는 커다란 그릇이 될 것이다. 
그리고 저 지나치게 조촐한 자에게는 복이 붙을 곳이 없으며, 
남의 정상(情狀)을 잘 엿보는 자에겐 사람이 잘 붙지 않는 법이다. 
문장이란 천하의 지보(至寶)로서 조화의 기틀을 발견한다. 
숨은 진리를 찾아 형체도 없는 곳을 더듬어 음양을 누설하면 귀신이 분노할 것이다. 
대체로 나무가 재(材)가 될 만하면 사람은 벨 생각을 하고, 
조개가 재가 되면 사람은 빼앗고자 하는 법이다. 
그러므로 `재`자의 글자됨이 안으로 삐쳤을 망정 바깥으로 들날리진 않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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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가끔 산속에서 평생을 살며 공부만 하고 산 선비들이
세상이치에 공정하고 대단한 식견을 가지고 있는지 이해가 된다.
온전한 생각을 지키자면 세상과 섞여사는 것은 정말 불가능한 일일까?
선비정신의 폐해를 생각하면 참 비겁한 계급이라는 생각이 들지만
개인적으로는 많은 부분에 공감한다, 선비의 세계.    

소설|황진이|이태준


이태준의 황진이는 어떨까 많이 기대했지만 여전한 문체와 시각은 있되, 저자 스스로 밝혔듯 정말 읽고 싶으나 아무도 쓰지 않아서 쓴 이야기였던 모양이다.
이태준을 `태준군`으로 부르는 가람 이병기의 호칭이 재미있다. 
역시 관계란 상대적인 것이지.

인문|유혹의 심리학|파트릭 르무안


로마와 오디세우스처럼 집시들은 전통적으로 이름을 비밀에 부치는 전략을 구사해왔다. 그들은 세개의 이름을 갖는데, 마누시(집시)끼리만 아는 부족에서의 이름이 있고, 이방인들 즉 가드제(Gadje)에게 알려주는 이름이 있으며, 마지막으로 가장 중요한 비밀 이름이 있다. 비밀 이름은 엄마가 갓난아기를 안고 일생에 단 한 번 귀엣말로 불러주는 이름으로, 오직 엄마 한 사람 밖에 모른다. 아무도, 아기 본인도, 아빠도, 그 어떤 사람도 결코 그 이름을 알아서는 안된다, 그렇지만 이것이 하나뿐인 진짜 명명으로 간주된다. 이 이름은 너무나 비밀스럽고 신비스러우며 너무나 철통처럼 호위되기에, 어떤 사악한 영도 그 이름을 가로채거나 그 주인을(혹은 그의 넋을) 앗아가지 못한다.
 
유혹자에게 있어서 유혹은 상대를 홀리는 것, 납치해서 붙잡아 두는 것이다. 어떤 경우에도 유혹은 사랑이 아니다. 유혹자에게 있어 단 하나의 진정한 실패는 자신이 상대방에게 매이는 것이다. 진정한 카사노바는 여자를 욕망하지 않는다. 그는 욕망되어지기를 욕망할 뿐이다. 심미성(유혹)에서 윤리성으로 넘어가서는 안된다. 그때부터 권태가 싹트기 때문이다.     
 
인류는 지금까지 세 번 모욕을 당했다고 한다. 처음에는 코페르니쿠스애 의해(우주의 중심은 우리가 아니다), 다음에는 다윈 때문에(우리는 동물이며, 원숭이와 거의 흡사하다), 마지막으로 프로이트로 인해(우리는 우리 무의식의 꼭두각시다) 모욕을 맛 본 인류는 이제 자존심의 마지막 쪼가리들만 겨우 움켜쥐고 있는 상태다.
 
유혹하려면 타자를 진실로 사랑해야 한다. 나아가 자신을 사랑하고, 자신에게 스스로 유혹당하지 않으면 안된다......이타주의는 나르시시즘이라는 토양에서만 자랄 수 있는 연약하고 가냘픈 꽃인 것이다......사랑은 자살이다. 세기를 통틀어 가장 위대한 유혹의 귀재였던 두 여자, 클레오파트라와 마릴린 먼로를 보라, 두 여자 모두 당대 최고의 남성을 유혹했고, 스스로를 소멸함으로써 그 대가를 치렀다. 누군가를 정말로 사랑하려면, 이기적인 어린아이, 자기중심주의에 완전히 매몰된 그 괴물을-오래 전 우리 모두의 모습이었던-완전히 죽여야 한다. 
<>앞에서 한 얘기를 완전히 뒤집고 있다.
 
잔인한 짓이긴 하지만 병마개 따위로 칠면조의 귀를 막아보면 이 가엾은 짐승은 자기 새끼들이 지저귀는 소리를 듣지 못하고 새끼들을 자신을 위협하는 다른 동물로 착각하여 가차없이 죽여버린다......부모 펭귄들은 새끼 수 천 마리가 빽빽대며 울고 있어도 그 가운데서 제 새끼의 목소리를 식별할 수 있다......카나리아들은 바이브레이션과 발성을 수정하기 위해 노래와 관련하여 비축해놓은 뉴런들을 매년 갱신한다......다른 새의 둥지에서 자라는 뻐꾸기 새끼들은 그 새 새끼들의 고유한 울음소리를 흉내 내어 양부모들을 유혹한다(속인다).
 
왜 나이트클럽에서는 고막이 터지도록 음악을 크게 트는 걸까? 이브 르크뤼비에 같은 작가는 소리가 알코올이나 춤 등과 마찬가지로 전두엽을 제어하는, 즉 감성이나 이성을 단절시키는 효과가 있다고 설명한다. 따라서 인간을 대뇌변연계의 활동, 즉 본능, 감정, 정열, 야만성, 터부로, 특히 성적 감수성으로 이끄는 작용을 한다는 뜻이 되겠다.
그러나 좀 더 신경생리학적인 관점에 따르면, 강렬한 소리는 콜린성활동을 봉쇄한다. 바로 이럴 때 입술이 바짝바짝 마르는 현상이 나타난다. 갈증이 일어나면 음료를 찾게 되고(따라서 클럽의 매상이 오르게 된다), 그러다 보면 술도 마시게 되어 연애작업이 순조롭고 원활하게 굴러간다. 결국 누이 좋고 매부 좋은 셈이다.
 
때로 수컷들끼리의 다툼이 더욱 고도화되기도 한다. 생쥐 암컷은 방금 성관계를 가진 수컷이 아닌 다른 수컷 앞에 가면 프로락틴 분비가 저럴로 차단된다. 그로 인해 수정란이 자궁점막에 착상되지 못하게 되기 때문에 저절로 피임의 효과가 발생한다(소위 브루스 효과).
더한 강적도 있다. 일부 여우원숭이 및 원숭이류에서는 덩치가 작은 놈(마우스여우원숭이)이나 큰 놈(짧은꼬리원숭이)이나 할 것 없이 우두머리 수컷이 지배당하는 수컷의 남성호르몬 분비와 생식활동을 거의 막아버린다. 이 같은 양상은 토끼에서도 볼 수 있다.
 
어떤 동물을 자기 어미를 모른 채 자라게 하거나 여러 실험을 통해 어미와 자식을 경쟁상태에 지속적으로 놓아둠으로써 부모자식 간의 애착이 생기지 못하게 한다고 치자. 그 수컷(자식)과 암컷(어미)은 아무 거리낌 없이, 지극히 원만하게 성관계를 맺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근친상간의 금기는 부모자식 간의 애착과 가족적 사랑에서 기원하는 것이라는 관념이 생긴다. 이 점에서 그리스신화는 사태의 본질을 정확하게 꿰뚫어보았다. 오이디푸스는 아주 어릴 때 버려졌기에 생모와 가까워질 기회가 없었다. 그는 자기 어머니를 알아보지도 못했다.(여기에 그의 상징적 실명이 있다. 그는 사실을 알고 난 뒤 자기 눈을 스스로 찔러 멀게 한다). 그때문에 오이디푸스는 자기 어머니 이오카스테와 '자연스럽게' 성관계를 맺을 수 있었다. 반면 같은 오이디푸스가 딸 일렉트라와 함께 유배생활을 할 때에는 근친상간이 이루어지지 않는다. 여기서 아버지와 딸의 애착은 서로에게 충분히 익숙한 감정이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우리는 우리가 오랫동안 잘 알고 지내지 않았던 사람, (아직까지는) 애착을 품지 않는 상대하고만 성관계를 할 수 있다.
놀라운 이야기지만, 이 같은 시각에서 보자면 우리는 결국 사랑하지 않는-적어도 가족적인 사랑이라는 차원에서는-사람하고만 결혼할 수 있다.
<>역시 오이디푸스 컴플렉스라는 것은 결과만으로 따다 붙인 사건의 본질과는 거리가 있는 이론이다. 끝부분의 논리는 재미있긴 하지만(올드보이 생각이 나는군...) 사랑과 가족간의 애착에는 좀 구분이 필요하다고 보는데? 
 
타자가 부모와 같은 역할을 할 때 그 타자에 대해 에로틱한 끌림을 경험할 수 있다는 사실은 스톡홀름 신드롬으로 잘 설명된다. 스톡홀름 신드롬이란 인질이 가해자를 심적으로 옹호하게 되는 기이하지만 드물지 않은 현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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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혹이라는 이름으로 묶을 수 있는 잡학을 다 긁어놓아서 신선한 상식정보를 제공하기는 하지만 전체을 관통하는 주제라든가 실생활에 응용(^^)할 수 있는 실용정보를 원한다면 그닥 영양가가 없을 수도. 발랄한 어조는 지루하지 않게 읽는데에는 도움을 주나, 스스로의 유머감각에 도취한 나머지 자기논리를 뒤집는 오류도 나타난다.
'유혹'이라는 개인적인 관심사에 대한 좀 긴 수필쯤 되겠다. 그러고 보니 인문보다는 문학분류가 낫겠는 걸.  

크로슬리 레트로 턴테이블 사용기


내게 필요한 CD, 튜너, 턴테이블을 제외한 쓸데 없는 기능이 하나도 없다는 점에서 망설임 없이 질러버렸는데.
예상했던 대로 전원 하나면 오케이라 이전 오디오에 턴테이블에 변압기까지 연결하느라 복잡했던 코드 연결이 간편해졌다. 이와 동시에 110볼트짜리 가전제품들은 이제 모두 퇴장.
 
그러나.
음질은 한 15년 전쯤 10만원대로 팔던, 지금의 CD플레이어 대신 카세트데크가 끼워진 `뮤직센터`보다 한 수 낮은 수준이다. 왜냐구? 일단 스피커가 부실하니까.
그나마 LP는 그럭저럭이지만 CD는 절대 외부스피커 필요하다.
다 망가진 고물 오디오에서 스피커라도 재활용하게 되서 다행이기는 한데 스피커들의 어중간한 덩치가 그대로 남아 좁은 공간을 활용해보자는 계획은 별 영양가 없어졌다.
내 재활용 스피커는 나름대로 서라운드 지원이 되는 것인데 크로슬리씨에게 서라운드 단자가 없어서 강력한 서라운드는 포기. 그래도 없는 것 보다는 훨 낫지만.
외부 스피커를 연결하면 음질은 나은데 볼륨은 작아진다. 이유는 알 수 없다.
 
그러나.
이보다 더 황당한 것은 헤드폰 꽂을 데가 없다는 것이다.
구멍 하나 더 뚫는 게 뭐 어렵다고...
 
암튼 수려한 미모에 비해 황당한 실망을 안겨주기는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포노단자 지원되는 오디오와 턴테이블을 함께 알아봤을 때의 견적에 비하면 경제적인 선택이다. 중고로 사서 10년 넘게 가지고 있던 크로슬리씨보다 월등한 음질의 턴테이블을 내버리려니 거짓말 많이 보태서 눈물이 앞을 가리려 하는데...그러나 어쩌랴. 너를 살리자면 내가 파산하고 말 걸. 
어쨌거나 나름대로 올인원이라 처박혀 있던 음반들을 더 자주 듣게 되기는 할 것 같다. 

영화|형사|Duelist|2005




웃기면서 아름답고 또 가슴 아픈...이런 영화를 본 기억이...없다.
은하계인 이명세.
등장인물들이 입은 한복만 아니었다면 이 영화는 시공을 넘어 어느 곳 어느 시간에 갖다놓아도 이상하지 않은 배경과 대사를 가지고 있다. 
인물들의 표정이 강조되는 컷이나 공간을 엇가는 교차컷들을 보면 만화기술의 느낌을 영화로 잘 살린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말 그대로 만화속 인물들을 튀어나오게 만들어 준 것 같은 느낌. 
클래식한 음악속에 펼쳐지는 번잡한 장터의 활극,
점잖은 그림자 속에서 들어앉은 대감들의 실은 방정맞은 내용이었던 대화,
테크노락음악에 맞춰 기괴한 섹시댄스를 선보이는 기생들,
유일한 러브모드 데이트 장면에서 서로의 기억을 차지하는 우습고도 사랑스러운 모습들,
싸움이 아닌 슬픈눈 혼자만의 검무에 흐르던,
아마도 아주 개인적인 슬픔이었음을 짐작케하는 소박하고 슬픈 선율까지
음악과 장면, 사운드의 어우러짐은 정말 멋있었다.
(엔드타이틀의 러브송은 좀 생뚱맞은 것 같긴 했지만^^:들으면서 배우들과 목소리 비슷한 가수들을 잘도 골랐네, 남자가수는 너무 짜네-생각했는데 정말 강동원과 하지원이 불렀다는 것을 알고 나니 노래가 다시 들리는 간사한 변심이--;; 진짜 슬픈눈과 남순이라고 생각하고 들으니 가사가 이리도 애절할 수가...)
아마도 저게 슬픈 몸짓이라는 걸 거야-생각이 들던 슬픈눈의 검무와
마지막의 대결은 말 한마디 없는데도 눈물이 난다.
 
마음에 확 내려앉는 대사들의 여운도 길고
대결장면들의 움직임은 연인이나 와호장룡 같은 활극이 뻐기듯 보여주던 화려한 장면들에서 느껴지던 공허함을 다른 무언가가 채워주고 있는 느낌이었다.
이명세의 장면들은 군중씬들 조차도 스펙타클의 느낌보다는 보다 더 사람에 가까와져 있는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아기자기하달까.
또 하나의 놀라움은 사운드 인데, 실은 내가 웬만한 한국영화를 극장에서 보고 싶어한 이유였던 비디오버전의 웅웅거림이 이 영화에는 없다. 또박또박 들리는 대사의 반가움도 형사를 매끈하게 만든 공신이었을 것.
 
강동원|슬픈눈
이쁜 스틸에서는 놓쳐버린 매력이 영화에서는 더 많이 보인다. 매끄러운 몸동작을 100% 강동원이 한 것이라면 남우주연상을 받았어도 마땅하다.
대사의 매력도 새로왔다. 강동원이 이렇게나 울림있는 소리를 내는 배우이던가 싶은. 
올해 영화상에는 두 개의 특별상을 추가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다.
달콤한 인생의 이병헌을 위한 뽀다구상과 형사의 강동원을 위한 이쁜이상.
그런데 신기한 건 이렇게 `아름다운` 슬픈눈의 강동원이 남자다워 보였다는 것이다.
역시 칼을 들어야만 했던 것이냐...
 
하지원|남순
처음엔 오바인가 싶었지만 이명세가 오케이해서 넘어간 장면이었을 테니 흠을 잡아도 이명세에게서 잡아야 겠지. 어떤 장면은 마치 내사랑 싸가지를 보는 것 같기도 한데 튀지 않고 잘 어우러진듯. 하지원 단 한번의 진지대사도 마음에 들었다.
 
안성기|안포교
아니 왜 안성기는 후보에도 안 올려 준거야! 이렇게 잘 했구만.
개인적으로 안성기의 슬픈 눈깔인지 우는 눈깔인지와 나무에 매달려 하던 대사들이 아주 맘에 들었다. 한국영화계 상을 모두 휩쓸던 시절의 안성기는 잘 기억나지 않지만 무사 이후로 안성기의 연기력을 의심하지 않게 되었다. 형사도 역시 그가 필요한 영화였고.
 
송영창|송대감
나에게 연극의 맛을 알게 해 준 배우였고 한때 무대를 찾는 이유였던 배우. 사실 늘 영화나 드라마에서는 연극무대의 생기가 한김 빠진 듯한 모습이었기에 무대의 그를 더 좋아하기는 했지만, 형사의 송대감은 송영창 영화제의 대상감이다. 송대감이 될 수는 있었으나 그를 무대에서 볼 수 있는 날은 기약이 없으므로 여전히 나는 그가 원망스럽다.
정말 돌이킬수만 있다면.....
 
영화를 보기 전에 영평상 수상뉴스를 듣고는 역시 평론가들 티를 낸다고 생각했지만 보고 나니 다른 영화상들이 정말 불만이다. 남순이가 금자보다 못한 게 뭐야, 언제부터 상이 관객수에 비례했지 등등의 때 지난 불만. 이따금은 반골의 괴수 같던 평론가들도 제대로 하는 게 있긴하군 싶다. 
극장에서 놓친 것을 한탄하며 내년에는 꼭 훌륭한 테레비를 하나 장만해서 디비디로 봐주리라 결심을 했더니 마침 디지털 재상영 뉴스가 떴다. 역쉬~! 나를 버리지 않았어!
 
팀버튼의 어른스러워짐에 실망했던 자리를
변함없이 파릇파릇한 이명세가 위로해 준다.
이제 이명세팬 할래! 

영화|오페라의 유령|The Phantom Of The Opera|2004


남자들이 비슷하게 생겨서 첨엔 1인2역하는 줄 알았다--;;

 
 
오랜만에 비디오가게에 갔다가 빌리려던 형사가 남은 게 없어서 빌렸다.
개봉 당시 누가 같이 보러가자 했을 때 뮤지컬도 아니고 뮤지컬 영화를 뭔 재미로 보냐고 무시해버렸던 영화였는데...으하하...역시 썰렁했다.
 
일단. 팬텀.
전에 다른 버전의 팬텀 노래를 들은 적이 있는데 영화도 그렇고 전부 다 음산한 기운이 도는 카니발 광대스타일이었다. 음악의 천재이기도 하다면서 차라리 좀 세게 카리스마 넘치는 스타일로 부르는 게 더 멋지지 않나? 게다가 영화의 이 팬텀은 노래를 너무 못한다. EBS버전의 류정한이 훨 낫다.
노래 잘했으면 마지막에 좀 슬퍼해줬을 것을.
 
크리스틴.
노래는 잘 하는 모양이지만 별 개성없게 들리는 목소리가 내스타일이 아니라 별 매력없다. 전에 들었던 홍금단버전이 더 매력적이다. 그러나 청순한 외모는 굿.
마지막에 팬텀이 가란다고 낼름 달려가는 걸 보는 순간 내가 팬텀이라면 화가 나서 다시 잡아뒀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배 타고 돌아본 건 너무 늦잖아. 연기 좀 하지--;;
 
라울.
목소리도 연기도 셋 중 제일 낫지 않았나 싶은데, 얼굴이 살짝 기름진 스따-일. 
 
아마도 엄청 돈 들여 만들고 배우들도 열심히 뽑았을텐데 영화는 참 썰렁하기 그지 없다.
세트고 무대고 뮤지컬 실황이라면 모를까, 영화다운 한방이 없다.
저렴하게 한 번 모셔줄라고 영화로 만들었나? 
이런 OST라면 우리나라 배우들이 훨 낫겠다 싶기도 하고.
처음에는 배우들이 못해서 뮤지컬이 재미 없는 줄 알았는데 그렇다면 결국 다시 뮤지컬 자체에 취향이 안맞나? 뮤지컬 쪽에 살짝 쏠리려하는 중에 태클 한방 주고 간 영화.

결국 해를 못넘기고...


[크로슬리 레트로 턴테이블]

 

...질러버렸다....

새해에는 정말 착하게 살자...!

영화|킹콩|King Kong|2005

사진 잘받네, 킹콩?



 
희안한 영화.
재미있게 얘기하려면 그렇게 할 수도 있고 재미없게 얘기하려고 생각하면 그것도 가능하다.
그냥 일어난 일을 얘기하자면 3시간동안 시계를 한 6번은 봤고, 킹콩은 1시간 20분이 경과한 시점에서야 등장한다.
 
잘못된 리더 하나 때문에 결국 피보는 것은 서민들(!)이라는 잔인한 현실속에서
인간들의 탐욕과 위선을 비웃으시되 
단순한 일벌백계로 마무리 하지 않으면서 비현실성을 타파하신 것도 좋고,
살아남기 위해 원숭이(미안하다, 킹콩--;;)앞에서 재주까지 부리는 역동적인 여성캐릭터도 좋고,
여느 전쟁영웅 못지 않게 목숨 바쳐 싸우고-그러니까 손만 대면 다 이기는 괴물이 아니라 힘들게 싸워서 이겨야 하는 동물세계의 구성원이다-, 분노로 괴력까지 발산하는 똑똑하고 `남자다운` 킹콩,
타이타닉과 가위손의 러브씬까지 묘하게 바꿔 놓으면서 완성시킨 사랑얘기들도 좋고,
결국 탐욕은 재앙을 부른다는 교훈에
눈물이 주루룩 나도록 슬픈 킹콩의 사랑으로 마침표를 찍은 것도 좋긴 한데...
지루하다--;;
내쳐 달리기만 하는 블럭버스터 영화에 감정을 입히고 사람들을 살아있게 만드는 일은
정녕 시간을 왕창 늘리지 않고서는 불가능 하단 말인가...
 
영화를 보면서 뭔가 이상한데 잘 알 수 없었던 것들이 뭘까 생각해보니
앤의 비범함에 원인이 있었던 것 같다.
남녀를 불문하고 맞아 죽거나 떨어져 죽거나 잡아먹히기도 전에 심장마비로 죽었을 것 같은데 살아남은 그녀-어차피 살아야 영화가 되는 거면 좀 살살다뤄주든가...,
맘에 드는 여자에게 퉁명스러운 킹콩에게 앙탈도 부리는 걸 봤을 때 이미 그녀는 킹콩을 남자로 인정해주었던 것 같으니 정말 특이한 여자다.
 

아, 앤에게 한마디.

지적인이고 착한, 노력하는 배우이자 진심을 느낄 줄도 아는 아름답고 사랑스런 앤 양.

그런 당신의 짧은 애도시간에는 좀 많이 불만이오, 아무리 사랑은 새 사랑으로 잊는다지만.
 
뜬금없이 영화를 보고 나서 요즘 나의 개미살상 행위에 대해 좀 반성을 했다...

[펌] “잘 테면 자봐”… 날아다니는 ‘알람시계’

[


(고뉴스=이철 기자) 아침에 일어나기가 어려운 사람들을 위한 알람시계가 인터넷 상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아침잠이 많은 사람들에게 웬만한 알람은 무용지물이나 다름없는데, 그 가운데 늦잠 또는 지각을 하게 되는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알람을 끄고 다시 잠에 드는 것.
이런 점을 착안해 알람시계를 벌레처럼 날아다니게 만들어 일어나지 않고는 못 배기는 알람시계가 등장했다.

‘블로우플라이’(Blowfly)라는 이름의 이 알람시계는 아르헨티나의 에나 마카나(Ena Macana)라는 디자이너의 아이디어 작품이다.

이미 2005 대만 국제 디자인전(2005 Taiwan International Design Competition)에서 3등을 차지한 이 제품은 정해진 시간이 되면 시계에 달린 프로펠러가 작동, 공중에 떠다니며 시끄러운 소리를 낸다.

결국 달콤한 잠을 자기 위해서는 날아다니는 이 시계를 잡아 본체에 넣어둬야만 하는데, 이 일을 하다보면 자연히 잠에서 깨게 되는 것.

한 네티즌은 “정말 기발한 제품이다”라며 “잠이 많은 내게 꼭 필요한 제품”이라고 구입 의지를 나타냈다.

또 다른 네티즌은 “못 잡으면? 배터리가 떨어지면? 짜증나서 부셔버리면?”이라며 걱정 아닌 걱정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많은 네티즌들이 잠이 많은 사람들의 행동양식을 정확하게 파악해 고안해낸 작품이라며 호평을 하는 가운데 많은 디자인, 신제품 관련 사이트에서 큰 인기몰이를 하고 있다.

 
뉴스 : “잘 테면 자봐”… 날아다니는 ‘알람시계’

 

와..굉장하다....!

 

 

이런....

놓친 떡이 더 커 보인다더니....스틸마다 아트구나 이쁜아...


 
매년 마지막 프로포즈라는 제목으로
괜찮은(극장에서 나름대로 객관적인 척 뽑는) 영화들을 다시 보여주는 하이퍼텍 나다가 있기에
그거 믿고 대한극장 이벤트에 떨어지고도 여유를 부렸건만
헉..이럴수가.
형사가 프로그램에 없.다!
 
진작 예고편에 칼춤을 좀 제대로 넣어서 나를 서두르게 만들던가...
제목이 프로포즈라 나를 배신하는 것이냐...
이쁜이 한 번 보기가 이렇게 어려워서야...

공연|점프|Jump|예감





< 출처 : 예감.Jump >
::Non-verbal Martial Performance JUMP
현장에서는 더 멋짐^^



강력한 매력의 코믹 무술 아트 점프!
소문이 대단해서 기대 많이 했는데 기대 이상의 만족이었다.
마침 단체관람을 온 외국인 그룹의 시도 때도 없는 소란한 웃음소리에 분위기가 살짝 산만해 질 뻔도 하였으나 웬만한 객석의 번잡에는 끄떡 없는 듯 종횡무진 배우들의 활약이 눈부시다.
이렇게 몸을 잘 쓰는 사람들을 보면 정말,
같은 단백질인데 왜 내 몸은 이렇게 생산성이 떨어질까 싶은 생각이 든다--;;
아마도 무수한 수정을 거쳤을 짜임새 있는 몸연기의 꼼꼼함이 주는
계산된 웃음의 포인트도 멋지다.

무술인들의 단합대회도 아니고
고행의 연습을 통해 익혔다는 소문을 들었었기에
넓지 않은 무대에서 자로 잰 듯 안정감 있게 날고 뛰는 `배우`들을 보면서
사람이 가지고 있는 잠재에너지라는 걸 생각하게 됐다.
나이가 들수록 인체의 신비라는 게 정말 신기하게 느껴진단 말이지.
마지막에 성실하고(^^) 이쁜 몸매의 오빠들이 알아서 보여주는 근육 팬서비스도 일품~ㅎㅎ
볼 때마다 더 재미있어질 점프가 미리 기대된다.

안내지에 재키찬이 채플린을 만났다는 평이 정말 딱이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둘 다 오리지날루다가 우리나라 사람은 아니지만
뭐 어때, 제일 잘하면 그만이지^^


음악을 들을 수 있는 점프 홈페이지 http://www.hijump.co.kr/multi/multi.asp

뉴스 : [week& cover story] 공연판에 '빡센' 놈 하나 떴다



영화|플라이트플랜|Flight Plan|2005


아담하나 꿀리지 않는 액션

믿음직스러운 생활액션

멋있는 기장아저씨-감동의 설득장면을 대신하여
 

심리스릴러 같은 전반부 부터 절정의 직전까지 흥미진진이었다.
저 여자가 미친 걸까, 누가 짜고 사기를 치는 걸까.
그 답이 나오는 순간부터 좀 헐렁하다는 생각에 김이 좀 새긴 했지만,
아담해도 믿음직스러운 조디포스터의 액션이 좋다.
 
오랜 만의 조디포스터-많이 늙긴했다.
콘택트에서 상대역이었던 매튜 매커너히는 아직도 섹시남리스트에 이름을 올리면서 로맨스를 찍어대는데.
하지만 클로즈업에도 당당한 그녀의 다부진 얼굴이기에 주름도 금방 적응된다.
패닉룸에 이어 두번째로 남편 없이 애를 돌보는 믿음직한 엄마로 나온 그녀.
그러나 이 매력적인 싱글맘, 절대 로맨스의 여지도 없다.
남자들의 사건해결 뒤에는 반드시 따라오는 보너스이건만, 성차별이다, 쳇.

[펌] 톨레랑스의 나라? 웃기는 소리


뉴스 : "톨레랑스의 나라? 웃기는 소리"

우리만 그런 게 아니구나 싶은 게 컴플렉스를 비생산적으로 완화시켜주기도 하지만
이상은 역시 이상일 뿐인가 싶어 씁쓸하기도 하다.
도대체 별 다를 것 없는 사람들이 갖는 자부심은 어디서 오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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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알아둘만한.

http://www.hani.co.kr/kisa/section-002009000/2005/11/002009000200511092007565.html#

두번째달|서쪽하늘에|2004| Music


아티스트 - 두번째달
관련앨범 - 1집 - 두번째달
서쪽하늘에-두번째달
블로그 하면서 처음 받은 선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