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 스리망간의 행운

 
등에 멘 바구니에 따낸 차잎을 던져 담는데 손놀림이 무척빠르고,
머리에 쓴 모자의 색이 화려해서 푸른 차밭과 멋진 대비를 이룬다.

 
 
성당에서의 행운
 
스리망간은 우리나라로 치면 보성쯤 되는 차밭으로 유명한 곳이다.
원래 예정에는 없었는데 한국에서의 송금을 기다리느라 열흘정도의 시간이 생겨버려서 가이드북을 뒤적이다 찾아낸 곳이었다. 사실 방글라데시도 비행기표 때문에 어찌어찌 가게 된 거지만.
 
차밭을 실컷 거닐어야지 생각하고 찾아간 그곳에서의 첫번째 모험은 숙소.
가이드북을 뒤져보니 운이 좋으면 차밭에 딸린 게스트하우스에 초대를 받을 수 있을 거라는 대목이 번쩍 눈에 띄였다.
운이라...
이상하게도 여행 때마다 운은 엄청 좋았던 나였다.
돈도 도둑맞아 보고, 비행기표도 잃어버렸었고, 여권과 돈이 모두 든 일명 머니벨트-전대-도 잃어버려봤지만 구걸하지 않고 당당히 집에 돌아왔으니.
 
나는 확신했다.
분명히 초대를 받을 거라고.
이런 뻔뻔한 야망을 품고 배낭을 다 짊어지고 차밭으로 가는 차를 탔다.
가다가 경치가 제일 좋은 차밭에서 내려 초대를 받을 계획(!)이었다.
 
어마어마한 차밭은 몇시간이 걸렸나 싶게 컸고 간뎅이가 점점 부어가는 나는 더 가면 더 좋은 차밭이 나올까봐 결정을 못한 채 계속 구경만 하고 있었는데.
어라.
어느 순간 차밭이 끝나고 바나나 농장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둘러보니 차안에는 이제 막 내리려는 마지막 손님과 나, 운전사 뿐이었다.
 
슬쩍 말을 걸어오는 운전사.
알고봤더니 바나나 농장집 아들이라고 한다.
차마 차밭에서 초대받을 계획이었다는 말은 챙피해서 못하고 우물쭈물 몇마디를 주고 받는데, 농장집 아들이 예전에 유학할 때 자신도 도움을 많이 받았다면서 바나나 농장에서 묵어가기를 권해왔다.
아직 챙피하기는 해도 바나나 농장에 주저앉을 만큼 야망을 접지 않았었기에 나는 그냥 다과정도의 초대만 접수했다.
 
농장주인인 노부부와 함께 한 다과타임이 끝나자 여기서 묵겠냐고 다시 묻는데, 다른 차밭을 찾겠다고 말하기가 뭐해서 시내에서 묵는 게 나을 것 같다고 대답을 했다. 그러자 시내에도 집이 있다는새로운 버전의 친절을 베풀어오는 것이었다. 어쨌든 나가기는 해야할 것 같아서 확답은 못하겠지만 여기보다는 시내가 낫겠다고 하니 얼른 기사를 대기시켜준다.
사실 여러번의 친절로 혹시 요놈이 딴생각이 있나 의심했었는데 민망하게 됐다.....
 
다시 시내에 도착했을때는 초저녁이었다.
운전사는 정말로-나름대로 긴장하는 성격;;-나를 어떤 집으로 안내했는데, 집은 나쁘지 않았지만 오랫동안 비워둔 티가 역력해서 혼자 밤을 보내기는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인사만 하고 돌아서는데, 운전사가 나를 다시 부른다.
아까 그 주인집 아들이 내가 이 집에서 안 자겠다고 하면 동네 교회로 데려다주라고 했다는 것이다.
정말 완벽한 친절.
 
찾아간 곳은 동네에서 유일한 성당으로 마침 수녀님들이 다른 지역으로 일때문에 자리를 비워서 침실이 비어있단다. 결국 거기서 며칠 간 편안히 지내는 행운을 잡게 되었고, 나중에 성당을 찾은 농장집아들에게도 다행이 감사인사를 할 수 있었다.
 
차한잔의 행운
 
온통 차밭인 스리망간에서 나의 일과는 차타고 차밭까지 들어가서 하루종일 산책하다 오기였다.
둘째날인가, 정부가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와 식당이 있다는 차밭을 듣고 찾아갔다.
차밭을 보며 분위기있게 차를 한잔 마셔야지 하는 생각에.
가이드북에 나온대로 식당이 있기는 한데 분위기가 썰렁한 것이 좀 그랬다.
하긴, 방글라데시에서 여행하는 사람이라고는 수도 다카에서 의료봉사하던 독일부부 뿐이었으니.
그래도 차 한잔은 있겠지 싶어 주문을 하려는데, 일하는 사람은 딸랑 한명에 메뉴도 안 준다.
어차피 차를 마실 생각이어서 그냥 차를 주문했는데 미지근 한 것이 설탕도 안주고-인도나 방글라데시에서는 짜이라고 부르는 우유와 설탕을 듬뿍 넣은 밀크티를 마신다-맛도 없었다.
 
아무리 손님이 없다지만 너무하다 싶어서 아저씨를 불러 컴플레인을 했다.
듣는 표정이 뚱한 것이 맘에 안들었지만 그래도 내 컴플레인을 접수해준다.
다시 가져온 좀 나은 차를 마시면서 느긋하게 구경을 했다.
이제 집에 가야할 시간.
계산서를 달라니까 또 뚱하게 나를 본다.
얼마냐니까 그제서야 웃으면서 하는 말이.
공짜랜다.
엥?
알고보니 레스토랑은 지금 휴업중인데 손님이 와서 그냥 한 잔 준 거란다.
그럼, 진작에 말을 하지.
민폐끼치고 컴플레인 하고 미안하고 고마와 하는 나에게 아저씨가 한마디 한다.
"또 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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