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자|김인문

오늘 이 배우를 두번이나 즐겁게 봤다.
011광고와 드라마 천생연분.
내가 무척 좋아하는 배우들을 나이순서대로 나열하자면 아마 김인문과 신구가 맨 꼭대기일 것이다.

내가 처음으로 기억하는 김인문은 부잣집 아들과 연애하던 딸 때문에 부잣집에 불려간 가난한 아버지였는데, 홍차봉지를 뜯어서 찻잔에 쏟다가 비웃음을 당하는 장면에서 많이 울었던 기억이 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변함 없는 이 배우는 모진 말까지도 순하게 만드는, 그러면서도 무시할 수 없는 무게가 있는 그런, 아주 묘한 카리스마를 가지고 있다.

전원일기의 최불암을 두고 한국의 아버지라고 하지만 사실 그는 너무나 이상적이다. 비굴해져야만 하는 상황에는 처할 일도 없는 그런 넉넉한 어른. 인자한 모습, 가난해도 당당한, 그래서 정말 저런 사람이 아버지면 좋겠다고 생각하지만 현실과는 좀 떨어진 듯한 느낌.
김인문이 보여주는 아버지는 속을 다 내놓지 않는다는 점에서는 전형적인 한국의 아버지이지만, 그러면서도 거칠게 몰아부치지는 않고, 가끔 욕을 하거나 큰소리를 내도 그게 행패로 보이는 적은 거의 없이 강한 의사표현으로만 전달되곤 한다는 점에서는 이상적이기도 하다.

사실 생각해보면 김인문의 아버지는 늘 어딘가 불쌍했다.
가진 거라고는 아무것도 없고 그러면서 자식들한테 미안해 하고, 뭐라도 도움이 되어볼까 하면 그게 꼬여서 더 큰 폐를 끼치기도 하고. 해줄거 해주면서도 큰소리 한번 못친다. 주면서도 더 늘 충분히는 못주기때문에 그걸 더 미안해 한다. 옆에 드센 마누라라도 있을 때는 더 불쌍해지는데, 내 기억에 늘 '김인문의 마누라'는 좀 억센 편이었다.

나는 원래, 착하기 때문에 남을 더 힘들게하는 사람은 매우 싫어하지만, 김인문은 짜증스러운 적이 없었다. 이유를 생각해보니까, 우선 속을 잘 드러내지 않으면서도 왜곡해서 역정을 내지도 않고, 또, 어쩌다 드러난 속을 숨기려고 오버하지도 않기 때문이다.
할말 없으면 가만히나 있지..싶을 때 가만히라도 있어 주는 정말 보기 드문 사람이다.
장담하는데, 로즈마리의 장항선역을 김인문이 했다면 절대 그렇게 짜증나지 않았을 것이다(그게 장항선의 매력이기도 하지만).      

괜찮아유-가 언제 튀어나와도 잘 어울릴 것 같은 모습이지만, 그 한결같아보이는 표정에 많은 감정들을 녹여내는 김인문이 참 좋다. 내년에도 라이타를 켜라 같은 장면을 또 볼 수 있었으면 좋겠다.

사진을 찾으려고 검색을 했더니 정말 몇장 안나온다. 프로필도 마찬가지고.
한때 김인문과 신구 연합 팬클럽을 만들까 생각했었는데, 내가 나를 믿을 수 없어서 포기했었다. 자료도 없기도 하고.
어디 숨어있는 부지런한 팬 없을까......

***아마 탤런트 중에 새끼꼬기 경연대회를 한다면 김인문이 1등 일 거라고 확신한다.





내가 본 드라마 & 영화

수탉(1990): 기를 못펴고 사는 중년남자가 우연히 트럭에 태운 예쁜 처녀 덕에 잠시 기사는 내용이었다. 최유라가 상대역이었고 아마 신인상 받았을 거다.

대추나무 사랑걸렸네:(1990~아직도 하는 걸로 알고있다): 여기서는 시골에서 바람이 좀 든 아저씨로 나왔는데, 이전과는 많이 다른 역할을 하던 대로 편하게 소화해서 결과적으로는 새로운 캐릭터가 되지 않았나 싶다.

===나머지 드라마들도 무지 많을텐데 프로필이 제대로 없고, 안보고 쓸 기억력은 안되므로===  

달마야 놀자(2001): 권위의식과 권위의 차이란 무엇인가를 확실히 보여주는 큰스님. 야단 한번, 설교 한번 없이 불량배들을 다스리는 카리스마를 보라. 역할 자체가 멋지기도 했지만 김인문이었기에 친근하면서도 정말 큰어른 같은 느낌을 가질 수 있었다. 그런 스님 밑에 있는 동자승이니까 축구선수를 꿈꿀 수도 있었겠지^^  

라이타를 켜라(2002): 아침부터 김승우를 작살내는 장면이 있는데, 내 생각에는 그 영화에서 재미있었던 두 장면 중 하나였다(하나는 박영규가 뭐라하는 장면이었는데 대사를 까먹었다).

해적, 디스코왕되다(2002): 임창정의 아버지, 똥지겟군인데, 쓰레기차 피하다가 똥지게에 치이나, 아무튼 정말 재수없게 다쳐서 내내 누워계신다. 김인문의 역할상 직업으로서는 거의 최고봉이 아니었나 싶다.

바람난 가족(2003):멋쟁이 바람쟁이 시아버지. 암으로 죽으면서도 마실 거 피울 거 별로 조심안하고 속편하게, 몸만 좀 아프다가 돌아가신다. 여기서는 윤여정과 김인문 모두 약간의 노출신이 있었는데, 헐리웃에서도 케시 베이츠의 누드를 가지고 난리치는 마당에 정말 대단한 열정이라 생각되었다.

*******우연히 발견한 재미난 기사*******
개그맨보다 더 웃기는 김인문올해 환갑을 맞은 연기자 김인문씨는 어느 배우보다 유쾌한 성격을 가진 인물입니다.
“야, 너 한 2박 3일 시간 있냐” 자신의 연기자 데뷔 시절 얘기를 하려면 2박 3일은 있어야 한다며 이렇게 말을 시작한 김인문씨.
“상면이 형이 딱한마디 하던데요. ‘죽인다’고.”
강성진은 ‘달마야놀자’에 함께 출연한 박상면이 김인문씨를 두고 한 말을 전해 주었는데, 그 말이 정녕 맞는 말인것 같습니다.

지금이야 경상도 전라도 사투리가 드라마의 맛을 살리는 조미료 역할을 하지만 70년대는 엄격히 규제가 됐습니다. 국민화합을 위한다는 명분이었죠. 김인문씨는 우리나라 드라마 사상 처음으로 사투리 연기를 한 사람. 1973년 KBS 드라마 ‘어머니’에서 충청도 사투리를 구사해 백상대상 신인연기상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의 고향은 경기 김포.

“우리 그냥 친구로 지내.” (선배와 연기하게 돼 부담스럽다는 강성진의 말에),
“하루에 몇번 전화할건데?” (휴대전화번호를 묻는 기자에게)
그와의 대화는 즐겁기 짝이 없습니다.

박은주기자
jupe@hk.co.kr
입력시간 2001/07/11 16:38
 
상상만 해도 웃음을 참을 수가 없는 저 빛나는 유머감각~!

드라마|천생연분|2004



오늘 천생연분 하는 날이다.
내가 요즘 너무너무 재미있어 하는 드라마.
첫회에서 푼수주책 황신혜와 안재욱의 연하용 발랄댄스 부터 반해서
그 다음부터 쭈욱 한회도 가르지 않고 보고 있는 것이다.

지금까지 나에게 친구들은 임자를 못만나서 그렇다는-아주 상식적이지만 설득력은 부족한 위로를 해주곤 했었다.
바로 이 드라마에서 친구들의 충고를 내가 왜 귓등으로 흘려들었던 것인지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

흐흐......진작에 돈이라도 벌었어야 하는 건데.

[잡담]얼마전 드라마에서...

가족은 누구 보는 사람 없으면 내다버리고 싶은 존재라고 해서 웃은 적이 있는데,
아직 부양의무도 지지 않았고,
여태 얹혀 사는 처지임에도 불구하고,
그 말이 잊혀지지 않는 이유는 뭘까.

가족은 너무나 불공평한 관계라고,
또 마지막에 남는 사람은 가족 뿐이라고,
뭐 이런저런 얘기를 들어봐도
역시 가족은 가족이달밖에.

가끔 철없이 가족전쟁이란 걸 치르고 나면
어휴, 부부 같으면 당장 이혼이다 싶지만
그래도 로또 당첨되면 나눠줘야지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된다.

기적은 쉽게 일어나지 않으니까
사지도 않은 로또 당첨되기 전에
내다버리고 싶은 등짐이 되지 않게
이쁘게 잘 살자......

[잡담]겁먹는 것



작년 겨울에 무릎인대를 다쳤다.
한달이면 괜찮아질 거라는 한의사의 처음 진단이 무색하게 두달 넘게 이삼일에 한번씩 침을 맞으러 갔었다.
단정하고 친절한 한의사와 원래 침맞기를 두려워 하지 않는 까닭에 치료는 그렇게 고역은 아니었지만
그러는 동안 주변의 얘기가 나를 더 겁먹게 했었다.
서른 넘어 다친 무릎은 관절염이 되기 십상이라나

원래 체력에는 자신이 있는 편이라 농담반 진담반으로 지나친 건강에 주의하라는 말도 종종 듣는 나지만,
내게도 한가지 아킬레스건이 있다. 불치의 병보다 더 무서운 뼈 다치기...
아마 그 공포는
뼈를 다친다는 것을 잘 모를때도 어렴풋이 짐작가는 치료의 어려움과
특히 맘대로 움직이지 못하게 되는 것에 대한 두려움 이었을 것이다.

남들의 기우가 현실이 되려는 지 올 겨울 찬바람에 무릎이 쑤신다.
옆구리 허전한 거는 감히 댈 바가 아니다.
다리를 다쳤을 때의 더욱 난감한 점은 다친 다리에 부담을 주지 않으려다
성한 다리에 무리가 가서 결국은 양쪽이 다 부실해진다는 점이다.
지금은 작년에 어느 쪽을 다쳤던 건지가 헷갈릴 정도로 두 다리가 다 부실하다.
이렇게 다치고 나니 체중감량의 꿈을 실어 겁없이 오르내리던 계단이나
가뭄에 콩나듯 하던 달리기도 다 먼 옛날의 얘기 같이 되어 버렸다.

조만간 인간일기예보기가 될 날도 머지 않은 것 같다.
에잇......

[이집트]룩소르|인샬라2

이 펄럭이는 원피스(!)가 바로 깔라베야(카이로 인근의 낙타시장)

색은 훨씬 더 이쁘고 다양하다(내가찍은 사진인데 신문지스캔한 것 같다)

 


우리는 우선 포목점으로 갔다. 이집트 아저씨들처럼 맞춰 입을 생각이었다. 옷감을 사는데도 한참을 흥정했다. 하지만, 여기도 역시 관광지. 여행 중에 깎기라면 남부럽지 않은 나인데, 의외로 부진한 성적으로 흥정을 마무리 하고 말았다. 세 명이나 샀는데도, 여기저기 물어봤는데도 더 이상은 깎아주지를 않았다. 할 수 없이 옷감을 사서 바느질을 맡겼다. 그 집 어르신이 입은 깔라베야의 디자인이 아주 맘에 들어서 그것과 똑같이 만들어달라고 신신당부를 했고 함께 간 안여사와 김양도 나중까지 입겠다며 좋은 옷감을 골라 턱 맡기고 돌아왔다.
 
그리고, 다음날.       
비슷한 시간에 옷을 찾으러 갔다. 일찍 오지도 말래서 꼼꼼한 바느질을 기대하며 그 집을 찾아갔는데, 어쩌면 세벌 모조리...멀쩡한 것이 없었다. 종이인형옷 만들 듯이 대충 선 그려서 대강 박아놓은 꼴이 여기저기 시접이 울고 난리가 아니었다. 이전에 몇 번 컴플레인을 하다가 기분만 상하고 돌아온 적이 있어서 참을까 했건만 나는 깔라베야를 입을 기대가 너무나 컸었던 모양이었다. 보는 순간 울화가 치밀면서 말이 술술 잘도 나왔다.
이게 뭐냐, 너 같으면 입을래, 니 꺼랑 차라리 바꾸자, 옷감만 다 버려놓고...옷감 물어내, 바느질 값 물어내...아니나 다를까 그들의 반응은 시큰둥 이었다. 이정도면 됐지-뭐, 이런 식이었다.
너무 화가 나서 할아버지가 입고 있던 깔라베야의 소매를 뒤집어 가며 그들이 망쳐놓은 내 옷감과 마구 비교를 해댔더니 슬슬 그쪽에서 꼬리를 내렸다.
승기를 감지한 나는 한말을 또 해가면서 어쨌든 변상을 받아낼 생각이었다. 하지만, 이집트에서 내내 부진했던 실력이 어디 가겠나 싶게 중간에서 타협하고 말았다. 옷감은 다시 끊어 주겠지만 자기들도 돈 주고 시킨 바느질이어서 손해를 입은 셈이니 새로 만드는 옷의 바느질값은 추가로 내라는 것이었다.
 
여기서, 멍청하게, 당한 집에 또 맡기냐 하는 사람이 있겠지만, 이 시점에서 다른 집을 간다면 결국 똑같은 바보의 같은 절차를 두 번 밟는 일이라는 게 나의 생각이었다. 왜냐면 다른 집은 또 어찌 믿나. 차라리 얼굴 한 번 이라도 더 본 이 집이 낫지. 나는 솜씨보다는 관계를 믿기로 했다.
그래서 결국 같은 집에다 바느질값을 더 주고 맡겼다. 이번에는 솜씨 좋은 사람에게 맡겨야 하니 바느질값도 더 내라고 했다. 울며 겨자먹기로 먼저보다 좀 더 얹어서 냈다. 그러면서도 불안해서 몇 번을 다짐했다. 할아버지 꺼랑 똑같이 만들어 주세요, 또 틀리면 옷감 두 배로 물어주세요.
그런데도 할아버지는 그저 잘하는 집에 맡기겠다고만 하고 책임지겠다는 말은 절대 안하는 것이었다. 불안한 나머지 나는 몇 번을 더 답을 재촉했다.
바로 그 다음 순간이었다. 나를 황당하게 만든 것은.


‘Inshala...'-이것이 할아버지의 대답이었다.
순간 황당과 불안과 또 실망이 교차하면서 내입에서 나온 말은,
‘신 말고 당신 뜻대로 하란 말이야....!!!’
그 말이 충격이었는지 할아버지는 드디어 내가 바라던 대답을 해주었다.
‘응’
그리고 다음날 우리는 그래도 입을만하게 만든 칼라베야를 한번씩 가질 수 있었다(1999).

[이집트]룩소르|인샬라1

Inshala......신의 뜻대로.
사막의 모래바람과 어우러지는 이 말 한마디는 ‘아랍어’의 매력과 함께 내가 가장 무지한 동네에 대한 환상을 심어주기에 충분했다.
그 환상은 한번 디뎌보기 전에 나의 머릿속을 가득 채워오며 거대하게 자리 잡던 이집트라는 나라에 대한 환상에 비해 
조금도 모자람이 없었다.
태양의 나라, 람세스의 제국, 거대한 고대 문명이 남긴 신비의 유적지들, 델타니, 룩소르니, 멤피스니, 알렉산드리아니..
이름만으로도 이국을 꿈꾸게 하던 나라...가 ‘이집트’였다.
그리고 그 멋진 울림. ‘신의 뜻대로’라니..
한 마디 원망도 없이 결과를 받아들이는 그들의 여유가 그 말 한마디에 다 녹아있는 것 같았고 
태양의 신전을 지으려는 오만을 부렸지만 어쨌든 신과 더 가까운 사람들이 아닌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
게다가 같은 제목의 소설에서 느꼈던 이국적인 러브스토리의 느낌도 어딘가 남아있는 듯한 짧은 아랍 문장.
...그런데 이 환상은 이집트를 떠날 무렵 다 깨지고 말았다.


이집트를 들어서기 전 많은 사람들이 경고를 해왔다.
배낭족들 사이에서 도는 족보가 있다.
그중 여행의 난이도에 대한 것이 있는데, 
세상에서 여행하기 제일 힘든 나라 1위가 모로코, 2위가 이집트, 3위가 인도라고 한다. 
3위의 인도는 이미 거쳐봤기에 자못 기대가 되기도 했는데, 
웬걸, 마음의 단도리가 너무 단단했던지 나의 이집트 초입은 ‘의외로’ 의인이 많은 괜찮은 곳이었다.

나일강을 따라 가다보면 이집트 영토의 중간쯤에 있는 룩소르. 
7-8월의 룩소르는 정말 찜통 그대로였다. 
날씨 탓에 관광객도 씨가 말라서, 
룩소르의 여름은 냉방시설이 잘된 숙소에서 아침식사까지 포함된 하룻밤에 1,500원이면 너끈한 배낭족의 천국이기도 하다.

그 여름을 화사하게 수놓는 풍경이 있는데 
그건, 연한 핑크 줄무늬, 연한 하늘색, 흰색, 연두색 등 파스텔톤으로 꾸며진 깔라베야의 행렬이다. 
깔라베야는 이집트 남자들이 입는 옷인데 언뜻 펑퍼짐한 원피스 같이 생겼다. 
그 예쁜 옷은 뚱뚱이 아저씨가 배를 내밀고 입든, 외소한 아이가 꼭 맞게 입든, 
그을린 피부색과 아주 잘 어우러져 맵시를 낸다. 
펄럭거리는 치맛자락은 또 얼마나 걸음걸음 시원한 바람을 일으켜 주는지.  


그런 옷만 보면 정신을 못 차리는 나는 어느 날 밤-낮에는 너무 더워서 돌아다니는 것이 정말 고역이다-
나의 일행들을 부추겨 시장으로 끌고 갔다. 
깔라베야를 한 벌 해 입을 생각이었다. 
사실 사려고만 마음먹으면 어디나 그렇듯 수도인 카이로가 제일 좋은 장소였겠지만, 
카이로의 시장이라는 시장마다 ‘관광객 물가’가 정가로 못 박혀 있어서 
가면이라도 쓰고 현지인인척 하지 않는 한 바가지를 면할 길이 없었기에, 
아예 포기하고, 그보다는 좀 덜 하려니 싶은 룩소르를 ‘나의 쇼핑타운’으로 찜했던 것이다.


싼 값에 널려있는 깔라베야들이 한밤중 길거리에 늘어서 있었지만 
나는 좀 오래 입을 수 있는 제대로 된 옷을 한 벌 장만할 생각이었다. 
파는 것들은 맘만 먹으면 현지 물가 가깝게 깎을 수도 있었겠지만, 바느질부터 엉성하기 그지없었다.

영화|스패니쉬 아파트먼트|L'auberge Espagnole



영화를 고르는 건 정말 순간의 선택이다. 가끔은 정반대의 이유로 생각을 바꾸기도 한다.
평론가들의 호평 때문에 안 보려고 했다가 재미있다는 말에 보기도 하고,
재미있다는 말이 거슬려서(이상한 얘기지만 어떤 영화는 그게 거슬릴 때도 있다)안 보려다가 평론가들의 칭찬을 믿고 보게 되는 경우.
스패니쉬 아파트먼트는 전자였다.

영화는 한 프랑스 청년이 스페인 교환학생으로 가서 겪는 일들과 그 시기의 짧은 성장기를 보여주는데,
가장 큰 매력은 여러 나라 친구들의 어울림이었다.
여행 다니면서 만났던 다른 나라 친구(라고 할 만큼 많이 가깝지는 않지만 타지에서의 인연이라는 프리미엄을 감안해서 그렇게 부르기로 한다)들을 떠오르게 했다.

타지에서의 인연은 좀 묘한 유대감을 만들곤 하는데,
그건 정착지에서 만난 사람들이라면 긴 시간 나누었을 여러 절차를 짧은 기간에 다 겪게 되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특정한 공간에서 만난다는 점에서 인연을 더 생각하게 되고,
일정 기간 함께 하는 시간의 밀도가 높아서 다방면에 대한 이해가 요구된다.
지내는 동안 외로움에 대한 공감도 많이 하게 되고,
특별한 상황이니까 평상시와 다른 모습도 보게 된다.
게다가 헤어짐도 빨라서 압축된 인연의 시작과 끝을 짧은 시간에 다 겪게 되는 것이다.

함께 지낼 때는 한 사람 한사람의 의견이 모두 존중받고,
그중의 일부와는 갈등도 겪고,
가끔은 같은 고민을 함께 하고,
헤어질 때는 너무나 아쉽지만
또 떠나고 나면 금방 새로운 생활을 하게 되고,
그 중 특별한 몇몇과의 지속적인 관계도 몇 차례의 편지나 메일로 마저 정리되지만,
언젠가 다시 만난다면 참 반가울 것 같은 인연.
보는 동안 한 때 내게도 있었던 그런 친구들 몇몇을 생각하며 재미있었다.

이 영화의 하이라이트는 영국 처자 웬디(이름과 얼굴 모두 진짜 영국틱 했다)의 동생 윌리엄의 만행이다.
독일 사람은 히틀러 정신으로 절도 있고 단정한 생활을 한다든가,
이탈리아 사람은 지저분하다든가,
각 나라 사람들의 영어 액센트를 흉내 내며 키들거리는 부분에서는 마구 웃어버렸다.

사실 내가 만났던 영국 사람들은 말수가 적고 조용한 사람 뿐 이었는데,
촐싹대는 윌리엄의 모습도 낯설지가 않았다.
얼마 전 러브 액추얼리가 쿨~한 수상 휴 그랜트를 통해 미국의 천박함을 씹었는데,
여기서는 윌리엄을 통해 영국을 씹고 있다, 재미있게도.

사람이 살고 있었네...라는 말은 새로운 곳을 갈 때마다 떠오르는 말이다.
어디 사람들은 어때, 거기는 어때라는 질문을 들을 때면 그래서 할말이 줄기도 했다.
차이를 보자면 한이 없는 듯 하지만 또 사람이기에 기본적인 정서 또한 많이 비슷하다는 게 내 생각이기 때문이다.
관계의 차이에서 오는 태도의 차이가 그렇듯이.

그 지역 또는 나라의 문화를 익히고 존중한다는 것과 차이를 알고 기술적으로 적응한다는 것 사이에서
편견 없이 바라보기가 여전히 어려운 숙제로 느껴지지만
아무튼 그 와중에 본 유쾌한 스페인 연수기 였다.

영화|4인용 식탁


 
며칠 전 만난 친구 동생에게 이 영화를 재미있게 봤다고 했다가 한 소리 들었다. 
그 녀석의 의문은 도대체 그 영화가 뭘 말하는 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그럼, 그녀석이 재미있게 본 영어완전정복은 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것일까. 
영어공부 열심히 하자? 아니면 영어공부 하지 말자?

4인용 식탁은 공포영화에 미리 겁을 먹는 성격 상 극장에서 보기는 처음부터 불가능한 영화였다.
주말이 바쁜 비디오 가게에서 남아있는 유일한 신작일 때라면 모를까.
이 영화의 메세지는 뭘까.
사실 모든 영화가 올드보이 처럼 분명한 교훈을 주고 있는 것은 아니지 않나.
그냥 이 영화는 내면에 봉인된 공포의 기억, 슬픔, 이런 것들이 인상깊었다.

스티븐 킹이라는 어마어마한 베스트셀러 작가를 좋아한다.
공인된 B급 작가이자, 호러전문작가.
영화로도 많이 만들어진 그의 작품을 전부 읽지는 않았는데 읽은 중에 내가 특히 좋아하는 소설이 있다. 
원제는 Four past midnight-우리나라에 환상특급이라는 제목으로 꽤 두툼하게 나온 책이다. 
제목처럼 4편의 소설이 묶여있는데, 이불을 뒤집어쓰고 끝까지 다 읽었다, 쉬지 않고.
그 책을 읽고나서 이 작가가 정말 공포에 정통한 사람이라는 생각을 하게됐다.
귀신이나 유령이 아니라 내면의 공포, 본능적으로 스스로도 외면하고 싶어했던 자기자신과 맞딱뜨리게 하는 것. 섬찟했다.

4인용 식탁에는 기억해 내려고 해도 스스로는 끄집어낼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하게 자신의 기억을 봉인해버린 사람들이 나온다. 
준비되지 않은 상태에서 자신의 기억과 맞딱뜨린 그 사람들은 그 기억을 외면하고 싶어하지만 
이미 알아버린 것과 되돌릴 수 없는 과거 속에서 균형을 잃고 만다.
결국 스스로 뿐 아니라 기억을 끄집어내 준 사람까지 불행하게 만들어버리고 말 정도로.
처음 연이 '사람들은 진실을 믿는 게 아니에요'했을 때 나는 뒷말이 '믿고 싶은 것만 믿어요'일 줄 알았다.
그런데 연이 이어간 말은 '감당할 수 있을 때만 믿어요'.

내게는 이 말이 공포 그 자체였다.
감당치란 건 사람마다 다른데 아무도 믿어주지 않고 진실을 부정할 때 진실을 알고 있는 사람에게 찾아오는 불행.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4인용식탁은 세련된 느낌이 드는 영화였다.
꿈자리가 별로 사나울 것 같지도 않은.
그래서 공포영화가 뭐 이래 할 수도 있겠지, 호러팬들이라면.

아, 영화를 보는 또 하나의 즐거움.
엽기녀, 아이콘이 아닌 배우 전지현을 만날 수 있다.